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335
335. 오늘이 지나기 전에(7)
결론부터 말하자면.
드벨라니아를 죽이는 건 금방이었다. 어느샌가 4군단장을 죽이고 온 5군단장 데르니반이 원거리에서 활로 지원했으니까.
사실 죽였다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데르니반의 화살이 날아오자 본인을 제외하고 살아남은 군단장이 데온 하르트 측 진영밖에 없다는 것을 파악한 드벨라니아가 우뚝 멈춰 서서 헛웃음을 터뜨리며 스스로의 목에 실을 감았기에.
“애초에 우리 측 세력은 군단장의 자리가 빈 군단이 많아서 기대도 안 했지만… 그래도 마왕 측 세력이 있었는데, 설마 데온 하르트 측의 군단장들만 살아남을 줄이야.”
“……우리도 온전한 건 아닌데.”
대충 둘러보기만 해도 멀쩡한 놈 하나 없는 데다, 리리넬은 아예 죽지 않았나.
“뭐, 그렇겠지.”
살아서 끔찍한 꼴을 보느니 여기서 죽는 게 낫다.
드벨라니아는 트로버의 중얼거림에 무어라 말을 더하는 대신 싱긋 웃고는 실을 당겼다. 머리가 떨어지고, 한 군단장의 목숨이 허무하게 끊겼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된 듯하자 1군단장 제이카르가 바위에 기대어 앉는다. 고요한 분위기가 어색한 듯 머리를 긁적이던 9군단장 트로버가 입을 열었다.
“그… 이제 정말 다 끝난 건가?”
“……글쎄.”
제이카르는 내리깔고 있던 눈을 들었다.
무심하고 고요한 시선이 스르륵 굴러가 트로버의 어깨너머에 닿았다.
“적어도 넌 아닌 것 같군.”
“……!”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도 전에 불길함을 감지한 트로버가 급히 몸을 틀었다.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손톱이 어깻죽지를 찢고 지나갔다.
……몸을 틀지 않았다면 필시 목이 찢겨 나갔으리라.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습격한 이를 노려보았다. 한 늑대가 살기로 눈을 빛내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데르니반.”
습격자가 데르니반이라는 것을 안 이상 더 파악할 것도 없다. 실로 집요한 원한에 트로버는 이를 부득 갈았다.
“너 이 새끼가 기어이!”
왜 이러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뻔했다.
오엘! 그 덜떨어진 군단장 하나 죽인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이쯤이면 잊을 만도 하지 않냐?!”
“가능했다면 진즉에 잊었을 겁니다. 그랬다면 애초에 이런 일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테고요.”
데르니반은 담담히 제 상태를 점검했다.
몸 상태는 최악이고, 화살은 다 떨어진 지 오래다. 그렇지 않아도 12군단장의 창에 꿰뚫렸던 어깨는 시위를 당기는 데 장애가 되는 데다, 이미 한참 전부터 떨어진 화살을 주워 재활용하고 있었으니.
이젠 쓸 만한 화살도 보이지 않는 주변을 대충 훑고는 생각했다.
‘문제 될 건 없군.’
고통은 무시하면 되고, 화살은 마력으로 만들면 된다. 마력 화살은 말도 안 되는 낭비지만 자신은 하나만 바라보기에도 벅찬 마족이라서.
이후는 생각하지 않고 현재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예정이니, 몸에 힘이 들어가는 이상 근거리든 원거리든 충분히 싸울 수 있다.
데르니반은 오엘의 것에서 이제는 제 것이 된 활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어차피 벌어질 일이었습니다. 그저 유예된 것뿐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계셨잖습니까.”
“꼭 지금이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짐승의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데르니반은 막연히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마침 ‘아군’만 남아 방해할 존재가 없는 데다, 누가 누구에게 죽든 이상할 것 없는 상황.
‘‘방해’라 하니 아직 남아 있는 1군단장이 걸리긴 하지만…….’
힐긋 자리에 앉아 있는 제이카르를 돌아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몇 차례 느리게 눈을 깜빡인 그가 이내 관여하지 않겠다는 듯 아예 눈을 감아 버린다.
데르니반은 다시 트로버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제 오래된 원한을 청산할 시간입니다.”
“하, 그래. 네가 죽든 내가 죽든 어디 한번 해보자고.”
제이카르가 눈을 감은 순간부터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한 트로버가 끝내 헛웃음을 흘리며 자세를 잡았다.
…….
서로를 죽이기 위한 전투는 상당히 추잡하게 흘러갔다.
눈에 흙을 뿌리고 부상 입은 부위를 노려 후려치는 것은 기본이요, 급할 때는 군단장의 품위 따윈 내팽개친 채 과감히 바닥을 구르기도 했다.
데르니반은 꿰뚫렸던 어깨를 비롯한 신체 곳곳의 환부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후들거리는 팔이 안정적으로 시위를 당길 수 있게 하는 데에만 신경을 기울였고, 트로버는 그렇지 않아도 금이 가 있던 신체가 부상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더욱 큰 균열이 생기고 있음에도 조심하는 기색 하나 없이 온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다.
어쩔 수 없었다. 지면 죽으니까.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저 새끼는 죽이고 죽는다는 생각으로 싸울 수밖에.
보기만 해도 처절함이 느껴지던 전투는 언제 팽팽하게 흘러갔냐는 듯, 데르니반이 활대와 시위를 잡고 당기려다 멈칫하기 무섭게 한쪽으로 기울었다.
이상을 감지한 트로버가 곧장 거리를 좁히며 히죽 웃었다.
“왜, 더 이상 팔이 안 움직이나 보지?”
“…….”
활을 들어 올리고 시위를 당겨야 하는데, 팔이 부들부들 떨릴 뿐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그토록 가볍던 활이 바윗돌처럼 느껴지고, 조금만 힘주어도 쉽게 당겨지던 시위가 강철로 만들어진 것처럼 단단했다.
그러나 여기에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일단 거리를 좁혀 오는 적부터 처리해야 한다. 데르니반은 급한 대로 손을 다시 변형하여 마주 휘둘렀고.
“─큭!”
트로버는 이를 어렵지 않게 쳐 낸 뒤 상대의 목을 잡아챘다.
데르니반의 몸 곳곳에 새겨진 작지만 깊은 상처를 확인한 그가 비웃음 서린 말을 뱉었다.
“생각하고 보니, 너 이델리아를 상대했었지? 암기에도 맞았을 테고.”
“……!”
뒤늦게 원인을 파악한 데르니반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한두 번도 아니고 꽤 많이 맞은 것 같던데, 걔 암기에 독이 있는 거 몰랐냐?”
대답은 없었으나 표정이 말해 주고 있었다. 알았지만 잊고 있었다고.
본인의 몸 상태를 배제한 채 전투에 집중하다 보니 잊은 모양이지. 뭐, 덕분에 이렇게 승기를 잡았으니 이득이다만.
“조금 짜증 나긴 했지만 나름 재밌었다.”
“…….”
“그런데 이를 어쩌냐.”
트로버는 한쪽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곱게 죽여 주긴 싫은데.”
솔직히 그렇잖아. 내가 뭐 그리 큰 잘못을 했다고 그렇게 이를 악물고 덤벼든 건지.
이쪽이야말로 오엘과의 전투 탓에 몸이 크게 망가졌거늘, 그런 주제에 새 5군단장이라는 작자는 눈에 불을 켜고 목숨을 노릴 틈만 찾고 있으니 신경이 날카로워질 만도 하지 않나.
그러니 이 정도의 분풀이와 복수는 당연하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어. 그간의 정도 있고, 나도 체력이 딸려서 고문할 힘도 없거든. 내 말 하나만 들어주면 깔끔하게 보내 줄게.”
“…….”
“눈빛이 건방진데, 네 처우는 내 손에 달려 있다는 걸 잊지 말고.”
슬쩍 손에 힘을 주자 색색거리는 소리가 짙어지며 짤막한 기침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죽을 정도로 힘을 준 것도 아니기에 트로버는 신경 쓰지 않고 머리를 굴렸다. 이 녀석에게 모욕과 굴욕감을 줄 수 있는 명령이 뭐가 있을까.
녀석이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은 굳이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히 반항하겠지. 그저 명령을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굴욕적일 테니 수락의 여부는 상관없다.
그러다 문득, 데르니반의 건조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아, 그래. 어차피 죽을 거, 마지막으로 신선한 재미라도 안겨 주고 가는 건 어때? 이를테면…….”
오죽하면 진짜 감정이 없는 건 아니냐는 소문이 들 정도로 무감정하고 표정 변화가 없던 마족이다.
오엘이 죽었을 때조차 표정만큼은 담담했었지.
지금껏 그의 표정에 변화가 있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상기하며, 트로버는 데르니반의 목을 틀어쥔 채 씩 웃었다.
“웃어 봐.”
“…….”
“아니면 울어 보든가.”
이 불쾌한 명령에 얼굴을 찌푸려도 좋다.
뭐든 좋으니 그 지루한 표정에 변화를 좀 주기만 하면 되는데.
“…….”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일까, 트로버의 기대가 무색하게도 한결같이 지루한 반응이 돌아왔다. 데르니반은 말없이 시선을 들어 트로버와 눈을 맞췄다.
굴욕적인 발언에 대한 분노도, 수치심도, 심지어는 생존에 대한 갈망조차 없는 철저한 무반응. 트로버에게 있어 그의 목을 꺾어 버리는 것쯤은 마음만 먹으면 단숨에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무표정했다.
그 건조한 시선에 잠시 반응을 살피듯 입을 다문 트로버가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뭐… 그래. 그렇게 반응할 줄 알았어.”
“……콜록.”
“그래도 그냥 죽이긴 아까운데…….”
언제까지 장난치고 있을 거냐는 듯 제이카르의 시선이 닿는다.
데르니반과 싸우며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은 그의 칼질 한 번에 끝날 것을 알기에, 데르니반을 죽이기도 전에 죽고 싶지 않은 트로버는 곧바로 말의 방향을 틀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네 인생에 대한 소감이라도?”
“…….”
“솔직히 이 정도면 무난하지 않냐? 난 양보할 만큼 양보했다고 생각하는데. 뭐라도 받기 전에는 계속 이러고 있을 생각이거든.”
장난치듯 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풀며 이죽거렸다.
그와 별개로 더 이상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듯 단호한 눈빛. 이를 건조한 시선으로 마주 보던 데르니반이 천천히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굳게 닫혀 있던 입술이 열리고, 이어서 메마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멍.”
“…….”
일순간 트로버의 표정이 멍해졌다.
“너, 지금…….”
짖은 건가? 그 데르니반이? 개처럼?
인생에 대한 소감을 묻는 말에 돌아온 대답이 개 짖는 소리라니. 수많은 대답과 반응을 떠올렸건만, 설마하니 이 모든 걸 벗어난 답을 할 줄이야.
할 말을 잊은 듯 두 눈을 크게 뜬 채 데르니반을 바라보던 그가 천천히 자유로운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덮었다.
“풋.”
손바닥 아래, 미처 가려지지 못한 입꼬리가 찢어질 듯 올라갔다.
“푸하하하! 아하하하학!!”
그 무미건조하던 놈이 이렇게 재밌는 녀석이었을 줄은 누가 알았을까. 여기서 죽여야 한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다.
“푸흐흐흣… 아, 정말이지…….”
미친 듯이 웃었더니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간 모양이다. 목이 졸려 두 눈이 뻘겋게 충혈된 데르니반과 눈을 맞추며, 트로버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말한다.
목에 쥔 손에 힘을 빼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강하게 힘을 주며, 재밌어 미치겠다는 듯이.
“넌 최고야, 데르니반.”
우드득.
…….
이것으로 기력을 다한 듯 몸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조금 쉰다면 다시 움직일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 저 녀석이 날 가만히 두고 볼 리 없겠지.
힘없이 떨어진 데르니반의 시신을 앞에 두고, 트로버는 눈을 옆으로 굴렸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서서히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이제 내가 죽을 차례인가?”
우뚝. 그림자가 걸음을 멈췄다.
“그래.”
“…….”
새삼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데온 하르트가 자신들의 죽음을 바라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그걸 알면서도 침묵한 녀석들을 알게 되며 이 전투가 끝나도 싸움은 끝나지 않겠구나 싶었으니까. ‘아군’만 남더라도 완벽한 마무리를 위해 서로를 죽이려 들 거라고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굳이 돌아보지 않고 등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향해 말했다.
“좀 아쉽구만. 내가 몸만 움직여졌더라도 반항 정도는 했을 텐데.”
그래도 호시탐탐 내 목숨을 노리며 짜증 나게 굴던 녀석을 죽였다는 것 하나는 속 시원하니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 하려나.
“그나저나… 날 죽이고 나면 그쪽은 어쩌시려고?”
“……마계에서 장애는 치명적이지.”
눈 하나와 팔 하나.
제이카르는 군단장들 중에서도 유독 강한 7군단장과 유독 까다로운 2군단장을 상대하며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입었다. 이미 죽은 다른 군단장들과 비교해 봐도 오히려 살아 있는 쪽이 더 너덜거릴 정도이니 그 심각성은 굳이 늘어놓지 않아도 뻔할 터.
“아하.”
트로버가 낮게 키득거렸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