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343
343. 마지막 용사와 마지막 마왕(5)
“……마왕이 용사를 죽이기 위해 태어난 것이 먼저였구나.”
“그래. 하지만 그때도 마왕이 용사를 죽이고자 직접 인간계에 발을 들이지는 않았어.”
그럴 필요가 없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이미 용사를 통해 ‘변수’에 예민해진 세계는 또 다른 변수의 씨앗을 과하게 견제했으니까. 그렇기에 인간계가 아닌 심연에서 탄생시킨 것일 테고, 경계선이라는 인간계와 심연을 잇는 문을 열었음에도 마왕을 인간계에 내보내는 대신 용사를 불러들이기를 택한 것이리라.
때문에 지금까지도 마왕은 경계선을 통해 인간계에 나가지 못하는 것이고.
‘하지만 여기까지 말할 필요는 없지.’
쓸데없는 잡설이다.
그래도 답을 기다리고 있는 저 의문 어린 얼굴을 그냥 둘 수는 없는 노릇. 카베르는 싱긋 웃으며 다른 이유를 내밀었다.
“세계가 마왕의 탄생을 거창하게 알리며 인간계의 하늘을 검게 물들이니 인간들이 알아서 용사를 보냈거든.”
거창한 탄생과 불길한 징조.
강력한 적의 탄생이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은 인간들은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가장 강한 동족인 용사의 등을 떠밀었으며, 결국 용사는 세계의 뜻대로 마왕을 죽이기 위해 그의 앞에 섰더랬다.
“덕분에 마왕은 세계가 의도한 대로 용사를 죽였고, 이제 심연에 완벽하게 격리된 상태로 그 수명이 다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 되었지. 목적을 달성한 경계선은 닫혔어.”
이로써 심연과 인간계도 다시 단절되었으니 가장 주의해야 하는 인간계에 변수가 미칠 위험도 없다.
용사를 죽이기 위해 그에 준하는 존재를 만들다 보니 용사를 본떠 만든 마왕의 수명 또한 용사에 비견되는 상황이지만, 마왕은 용사와 달리 번식하지 못한다. 또 다른 변수가 탄생할 일은 없을 터.
세계의 입장에서는 완벽했으리라.
“……하지만 지금 경계선은 버젓이 존재하는데. 변수가 생겼군.”
“맞아. 그것도 아주 거하게 생겼지.”
한 생명을, 그것도 완전히 다른 새로운 종족을 급하게 만든 상황이다. 오류가 안 생기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변수를 그리도 경계한 주제에, 참으로 우습지.
“탄생 시 계산에 넣지 않았던 마력, 마법 같은 자잘한 마왕 개인의 변수는 한두 가지가 아니니 대충 넘어가고 중요한 것만 말하자면…… 용사를 죽인다는 목적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마왕이 불사가 되어 버렸거든.”
“……뭐?”
“정확하게는 조건부 불사랄까. 원래 목적은 용사를 죽이기 전까지는 마왕이 죽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은데, 궁극적인 목적에 너무 힘을 준 탓에 용사를 죽여서 더 이상 존재 의의를 달성할 수 없을 때조차 죽음이 허락되는 것이 아닌 다른 용사가 등장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지. 게다가 은연중에 흘러나온 마왕의 힘에서 ‘마족’과 ‘마물’이 탄생하기 시작했어.”
‘일회용’이라는 의도와 ‘모든 생명은 종족 보존의 의무를 가진다’는 중추의 규칙이 충돌하여 상위 규칙인 후자가 이긴 결과였다.
그나마 이러한 ‘오류’에서 태어난 ‘정상’인 마족들은 뒤늦게 ‘일회용’이라는 의도가 적용되어 번식을 할 수 없게 되었으나, ‘오류’에서 태어난 ‘오류’인 마물들은 완연한 오류답게 세계의 의도를 깡그리 무시해 번식이 가능했다.
“‘불사’와 계산에 없던 단일 종족의 ‘번식’. 대충 듣기에도 세계가 진저리를 칠 법한 단어지?”
의도와는 다르게 새로운 종족이 자리 잡기 시작한 상황.
심지어 마족들은 마왕이 지닌 오류 중 하나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을 지녔으니 세계로서는 어떻게든 이를 제거하기 위해 혈안이 될 법도 했다.
“그래서 세계는 다시 마왕을 죽일 수 있는 존재를 탄생시켰어. 또 다른 변수를 만들 수는 없으니 이미 존재하는 종족에서, 그것도 이미 마왕과 맞먹는 선례가 있었던 종족인….”
“……인간.”
“그래. 그렇게 용사가 다시 탄생했지.”
뭐든 처음 만드는 것이 어렵지, 다시 만드는 건 쉽다. 세계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를 가져와 가공하는 것을 택했다.
그렇게 세계는 최초의 용사가 가졌던 재능을 고스란히 힘의 형태로 묶어 마왕을 죽일 자로 낙점 지은 이에게 부여했다. 물론 번식을 통한 물림이나 다른 이에게 직접 양도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아예 생명과 묶어 버리고 제약을 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참고로 최초의 용사와 완전히 똑같은 조건으로는 마왕을 죽이는 것이 어려울 테니 직접 힘을 부여하기 시작한 두 번째 용사부터는 부여한 힘이 ‘마왕을 상대할 때에 한해’ 더 강해지도록 손봤고.”
“……그 용사는, 마왕을 죽였나?”
“죽였지. 죽이고 세계의 눈엣가시 자리를 이어받았어.”
그렇게 또 용사를 죽이기 위해 마왕이 탄생했겠구나.
이로써 어떻게 ‘굴레’가 시작된 건지는 이해했지만… 다른 방향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데온은 얼굴을 찌푸렸다.
“왜 세계는 용사와 마왕의 수명을 조정하지 않은 거지? 처음에야 몰랐으니 그렇다 쳐도 두 번째부터는 탄생시키기 전에 미리 손댈 수 있었을 텐데. 이런저런 제약도 걸고, 조금이지만 용사의 힘을 부여할 때 손봤잖아.”
“으음…….”
뭐라고 설명하는 것이 이해가 쉬울까.
카베르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듯 무릎을 툭툭 두드리더니 이내 싱긋 웃었다.
“제약을 가하고 약간 손본 것은 사과를 반질반질하게 닦고 빛을 비춰 보기 좋게 만든 것에 비유할 수 있다면, 수명 등의 재능에 손대는 것은 사과의 품종을 개량해서 보다 크고 당도 높게 만드는 것에 가깝달까.”
“아…….”
“품종을 개량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지. 이미 그 시행착오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세계가 그런 길을 선택할 리 없잖아?”
그 수명 하나를 줄이기 위해 또 얼마나 변수를 만들어 내야 할지.
“그럼 직접 죽이는 건?”
“세계는 이미 태어나 존재하며 살아가는 생명체에는 직접 손을 대지 못해. 이것도 좀 이상한 비유긴 하지만… 몸속에 병균을 들이는 건 쉽지만, 그걸 다시 쫓아내 말끔하게 낫는 건 어렵지 않아?”
“……흥미롭네.”
그렇다고는 해도 의미 없는 굴레를 이어 가는 건 세계의 입장에서도 손해일 텐데. 거기서 또 새로운 개입을 하기엔 변수를 더 늘리게 될까 봐 그냥 지켜본 건가?
흥미로운 정보였고, 현실감 없는 옛이야기였다. 마왕이 이것이 실제 이야기임을 일깨워 주지 않았더라면 허구의 구전으로 받아들였을 정도로.
하지만.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지?”
제 숨이 끊기기 전까지 가볍게 대화나 나누자며 시작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정말로 아무 의미 없이 한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붉은 눈동자가 의심을 담고 마왕을 훑었다.
숨기지 않은 의심이 선명하게 보일 텐데도, 카베르는 그저 눈을 접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냥, 용사와 마왕에게 있어 ‘마지막’이라는 수식어는 참으로 쓸모없기 짝이 없다는 걸 말해 주고 싶어서.”
어차피 굴레에 따라 후대 용사와 마왕이 나올 테니까.
대답이 영 시원치 않은 듯 얼굴을 찌푸린 데온을 향해 그의 질문과는 전혀 연관 없는 다른 이야기가 쏟아졌다.
“……용사는 보통 생존에 대한 열망이 강하지. 이는 마왕을 만나기 전까지 죽지 않기 위한 용사의 본능이기도 하고, 마왕을 죽인 이후에는 그간의 고생에 대한 보상 심리가 한몫 보탠 것도 있어.”
“…….”
“사실 ‘보통’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용사가 그랬지. 삶을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집요함을 품고 있었는데.”
역안과 붉은 눈동자가 허공에서 마주쳤다.
“과연 데온 넌 어떨까?”
마지막 남은 양심을 끌어모아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복수를 위해 죽인 상대로부터 감사 인사를 들어 봤자 분통만 터질 테니.
대신 눈을 마주친 채, 말했다.
“마왕에게 있어 승리는 언제나 또 다른 시작이었지. 용사는 어떨지 궁금하네.”
“…….”
“……내가 말했지? 용사와 마왕에게 있어 ‘마지막’이라는 수식어는 쓸모없다고.”
거기까지 말한 카베르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힘 빠진 몸을 억지로 가누려 하는 대신 여전히 얼굴을 찌푸린 데온의 눈을 마주하며, 살짝 웃는다.
“마지막 마왕을 죽인 것을 축하한다, 마지막 용사여.”
“……!”
오랜만에 시원하게 싸웠다. 몸이 좀 늦게 풀린 감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즐거웠고 목적도 달성했으니 후회는 없다.
호흡이 느려진다. 죽음이 몸을 잠식하는 것이 선명히 느껴져 카베르는 눈꺼풀을 내렸다.
고요해져 가는 세상 속에서, 어렴풋이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너의 무덤은 아주 화려하게 장식될 거야.”
원수의 시신이면 만족할 테지?
그건 카베르의 마지막 발언에 대한 긍정을 내포한 답이었다.
***
승패가 정해졌다. 마왕님의 패배였다.
장검이 마왕의 가슴팍을 꿰뚫었을 때부터 흠칫거리던 에드를 잡아 누른 벤이 히엔에게도 잘 잡고 있으라 말하고는 돌아가는 상황에 집중했다.
바닥에 앉은 마왕이 제 맞은편을 가리킨다. 가볍게 무시한 데온 하르트가 단검을 들어 올리는가 싶더니, 이내 마왕으로부터 무슨 말을 들은 듯 멈칫- 단검을 거두고는 자리에 앉는다.
들리지는 않지만 제법 긴 대화가 이어지는 듯했다.
그러다 언제까지 대화하려는 건지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질 때쯤, 마왕의 움직임이 멎었다.
……죽었구나.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데온 하르트가 물끄러미 마왕을 보더니 다시 단검을 꺼낸다. 혹, 시신에 손을 대려는 걸까 싶어 숨죽인 채 지켜보던 세 마족은 날카로운 칼날이 밖이 아닌 안쪽을 향하는 것을 보고 움찔했다.
데온 하르트는 죽으려 하고 있었다.
“저…저저…!!”
“쉿.”
“네놈…! 이거 놔! 데온 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아아!!”
입장이 바뀌었다.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 격하게 날뛰는 벤을 잡아 누르며 히엔에게도 잘 잡고 있으라 말한 에드가 조금 전부터 심각할 정도로 많이 모여들기 시작한 까마귀 떼를 노려보았다.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위화감 가득한 모습.
“잠시만 기다려 봐. 뭔가 이상하니까.”
이어서, 그의 의심이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듯 까마귀 떼가 뭉친 곳에서 한 존재가 걸어 나왔다.
“저건…….”
끊임없이 싸우고 죽이는 마족들에게 있어 너무도 익숙한 불길함이 공간을 잠식한다. 동식물 구분 없이 그가 존재하는 곳 주변의 모든 생명들이 눈길이라도 닿을까 숨을 죽였다.
마침내 그 존재가 데온 하르트의 앞에 섰을 때, 에드는 벤을 붙잡고 있던 것을 놓고 데온을 향해 달려 나갔다.
“데온 님!”
그것이 내뿜는 기운은 ‘죽음’ 그 자체를 닮아 있었다.
***
[마지막 마왕을 죽인 것을 축하한다, 마지막 용사여.]마왕은 이후에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알고 있었구나.
언제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굴고, 실제로도 그러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 데온은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끝났네.”
마왕의 죽음을 확인하자 핏물이 수위를 높였다.
데온은 목을 넘어 턱 아래까지 차오른 그것을 보다가 끝내 소리 내어 웃어 버렸다. 이건 분명 내 죄책감이라 했는데, 마왕의 죽음에도 핏물이 오르니 솔직히 웃길 수밖에 없었다.
목과 가슴을 압박하는 액체에 숨이 턱턱 막히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죽을 거니까.’
진실을 알고 용사로 각성하던 그때 다짐했던 것이다.
마왕을 죽이고 나면 나를 죽이겠노라고. 이 긴 복수의 마지막에는 데온 하르트가 있었다.
그래서 이 의미 없는 굴레를 끊고 싶어 하는 세계가 내 행보에 분노하면서도 차마 가호를 거두지 못한 것이겠지.
“이제… 마지막 복수를 할 차례인가.”
후회 없이 살다 오라는 말대로 후회 없는 복수를 행했으니, 이제 후회 없이 죽을 차례다.
설령 크루엘 하르트가 내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하여도 그 역시 제멋대로 선택하여 죽은 상황인데, 그가 직접적으로 무어라 말리지 않는 이상 이쪽이 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아직 세 개의 달이 완전히 겹쳐지지 않았으니 하루가 지난 건 아니다.
“기일이 지나기 전에 복수를 끝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그렇지,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