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344
344. 완벽한 엔딩(1)
진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단 한 순간도 나 자신을 증오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저 저를 살리고자 희생했던 형의 뜻을 존중하여 할 수 있는 데까지 살아 보고자 했을 뿐이지, 데온 하르트는 언제든 제 숨통을 끊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복수라는 이름하에 죽음을 미루길 몇 년. 그렇게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목표마저 이룬 지금, 데온은 고개를 들고 제 목에 단검을 겨눴다.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데온 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아아!!”
어디선가 나를 향한 외침이 들리는 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지. 마왕을 죽인 자를 어느 마족이 걱정하고 말리겠는가.
마족뿐만이 아니다.
가족을 죽인 패륜아. 형마저 잃은 머저리. 인류를 등진 용사. 마계를 배신한 0군단장. 인간계와 마계 구분 없이 세계를 뒤엎은 재앙…….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수식어란 수식어는 싹 쓸어 왔으니, 나의 죽음은 만인의 기쁨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어쩌면 축제를 벌일지도 모르지.
‘그러니 내 죽음에 슬퍼할 멍청이는 없을 거야.’
……시야 가장자리에 날뛰는 벤이 비쳤다.
못 본 척 시선을 돌리니 이번엔 마왕의 시신이 눈에 들어온다. 검에 가슴이 꿰뚫린 주제에 더없이 기꺼운 감정을 담고 있던 눈빛이 떠올라 데온은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기분이 더러웠다.
‘……난 절대 누군가의 구원이 될 수 없을진대.’
직접 다가와 따르기를 택한 단조차 데온 하르트를 구원이 아닌 재앙으로 보았다.
그런데, 마왕이 어떤 눈으로 저를 보았는지 아는가.
“고맙다는 말만 안 했을 뿐이지, 눈으로 다 말해 놓고는.”
구원이라는 듯이 보았다.
기꺼운 감정을 넘어 종종 보여 주곤 했던, 더없이 사랑스러운 것을 보는 듯한 지극히 우호적이면서도 희열 어린 눈빛. 마지막이어서 그런지 고맙다는 감정이 여실히 묻어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비겁한 새끼.”
눈빛을 감추지 않은 마왕이 짜증 나고, 그가 가장 소원하는 것을 ‘몰라 버린’ 저 자신이 증오스럽다.
결국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것 없는 주제에 삶에 지쳐 가장 중요한 복수마저 포기해 버린 비겁한 머저리인 것이다.
‘……그래도 마지막 복수는 확실히 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
피식 웃고는 손을 움직였다. 의지에 따라 단검이 이 숨통을 끊기 위해 내려온다.
조금 전부터 자꾸만 주변에 비상식적으로 까마귀가 모여들고 있었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곧 이 목숨은 끊길 테니까.
……까마귀 무리에서 걸어 나온 정체 모를 사내가 앞에 서지만 않았어도 그랬을 것이다.
“데온 님!”
까아악! 까악!
푸드덕!
까마귀의 울음소리와 날갯짓 소리 너머로 어렴풋이 에드의 외침이 들린다. 단순히 저를 부른 것이 아닌 직접 달려오기까지 한 것 같았으나 까마귀 떼의 장막에 가로막혀 그 이상 접근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 기이한 현상에 움직임을 우뚝 멈춘 데온이 조용히 시선을 들었다. 등골을 훑어 내리는 섬뜩함과 전쟁터에서 지긋지긋하게 느꼈던 기운의 원천이 코앞에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취했으나 절대 인간이 아닌 존재. 척 느끼기에도 이 땅에 존재하는 종족일 수 없는 존재다. 지독한 이질감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데온은 제 목을 조금 파고든 단검의 존재마저 잊은 채 고개를 기울였다.
“……누구?”
주륵. 기어이 목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이를 힐긋 본 사내가 붉은 눈동자를 마주한다. 순간 압도당한 데온이 눈빛을 굳힌 것과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글쎄…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만.”
“…….”
“살아 존재하는 것들의 숨을 빼앗고,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존재이자 모든 세계의 대리자. 인간들은 날 가리켜 경외를 담아 ‘죽음’이라 부르더군.”
“……뭐?”
“날 현신시킨 존재와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던 참이었는데, 마침 네가 날 부르고 있어 이렇게 현신하자마자 바로 왔지.”
그의 손가락이 아직까지도 목을 조금 찌르고 있는 단검을 가리켰다. 그제야 데온은 단검을 내렸다.
갑작스럽게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죽음’이라고? 그쪽이?”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았을 때 죽음과 연관이 있으리라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 봤자 사신 같은 종류로 추측했지 설마 ‘죽음’ 그 자체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애초에 죽음은 형체 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아, 맞아.’
나를 가리켜 자신을 현신시킨 존재라 했었지. 원래는 형체가 없는 존재였다는 뜻이다.
죽음을 코앞에 둔 와중에도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 조금 전 죽음의 발언에서 걸리는 부분을 짚어 냈다.
“……내가 널 현신시켰다고 했지. 조금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별거 아니다. 그저 네가 진행한 대규모 학살이 원인이었을 뿐이니.”
“학살, 이라…….”
“그래, 학살. 단기간에 너무 많은 생명이 죽을 경우, 죽음이 지상에 고여 그러한 학살을 진행한 주체의 종족 형태를 취하게 되지.”
사방에 핏물이 흘렀다. 대륙이 피에 잠겼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이름을 부르짖는 이들이 넘쳐나고, 본인의 목숨마저 수단으로 내걸 정도로 사람의 목숨이 가벼운 세상이 되었더랬다.
죽음이 땅 위를 잠식하여 떠나지 못하고 있으니, 끝내 뭉쳐서 현신했노라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순간이지만 내가 압도당한 이유는 상대가 ‘죽음’이기에 그랬던 것인가. 데온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새 아문 목의 상처를 쓸어내렸다.
“내가 널 불렀다는 건…….”
“조금 전까지 그쪽이 취하고 있던 행동과 연관이 있지.”
이해는 쉬웠다.
나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의 숨통을 끊는 것이 현신한 죽음을 부르는 꼴이 되어 버렸군.
어쨌든 손해 볼 것 없는 상황이다. ‘죽음’이 내가 목숨을 끊는 것을 막을 리 없으니까.
눈앞의 녀석을 무시하고 당장 목숨을 끊어도 상관없겠지만……. 데온은 상대를 바라보았다.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왔다고 했지?”
“그래.”
“그럼 질문을 해도 받아주나?”
“특별히, 그래.”
“그렇다면….”
‘죽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드문 기회를 그냥 놓치는 건 역시 아쉽다.
질문을 허락하는 말이 떨어졌음에도 머뭇거리던 데온은 이내 진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언제나 마음에 걸려 있던 부분을 질문의 형태로 입 밖에 내었다.
“사람은… 죽은 뒤 어떻게 되는 거지?”
“…….”
죽음은 잠시 입을 다물고 데온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알 수 없는 표정과 눈빛이 오가고, 짧은 침묵 끝에 조금 늦은 답이 툭 튀어나왔다.
“이 대륙에 떠도는 가장 유명한 민요를 기억하나?”
이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언급될 만한 민요는 하나밖에 없다.
인간이 아닌 마왕조차 알고 있었던…….
“……‘죽음이 남긴 조언’?”
“그래. 내가 다른 곳에서 실제로 했던 조언이 이곳까지 흘러와 노래의 형태로 떠돌게 된 것이지.”
“그렇다는 것은….”
데온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낱 인간의 표정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설명이 이어졌다.
“인간들이 짓는 크고 작은 죄는 업보가 되어 쌓이게 된다. 이후 죽은 뒤, 그들의 업보 수치가 평균 아래면 자유를, 평균을 넘어서면 기구한 삶으로 환생하게 되고.”
“……환생이 벌이라고?”
“살아가는 것과 죽는 것, 너에게 있어 둘 중 더 괴로운 쪽은 어디지?”
“…….”
단박에 이해했다.
입을 다문 채 피 묻은 단검을 만지작거리던 데온은 문득 노래의 2절을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2절은 무슨 뜻이지?”
「정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면.
누구보다 큰 죄를 지을지어다.
죽자마자 혼이 부서지고 소멸하여 죗값을 영영 회피할 수 있도록.
이것이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란다.」
“본래 살면서 지은 죄의 업보는 육신과 혼이 나눠서 짊어지고 있지. 이는 육신이 죽으면 혼이 혼자 짊어지게 되는데, 보통 업보의 무게는 주로 육신이 감당하고 있던 터라 이 경우 업보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혼이 부서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1절에 죄의 규모가 클수록 빠른 환생 절차를 밟는다는 이야기가 있었구나.”
“그래. 보통은 그래 봤자 부서지는 속도가 있어 혼이 완전히 부스러지기 전에 환생시키곤 하지만… 아주 드물게 업보가 평균 수치를 과하게 뛰어넘었을 경우 죽는 것과 동시에 혼이 부스러져 소멸하는 경우가 있다. 스타베 일루스터가 이를 통해 죗값을 피할 뻔했고.”
스타베 일루스터라면… 공작?
‘여기서 공작이 왜 나와?’
예상치 못한 인물의 언급에 데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확실히 공작쯤 되면 널리 알려진 민요의 잊힌 2절 정도는 알고 있을 법하긴 하다만…… 살아서도 후회 없이 죽어 사람 기분 더럽게 만들더니, 죽어서도 죗값을 피한다고?
순간 울컥할 뻔했으나, 용케 붙잡은 이성이 말의 허점을 찾아냈다.
“‘피할 뻔했다’라는 건, 실패했다는 뜻인가?”
“마왕과 계약하고 마력을 얻어 마법을 사용한 점은 좋았지만, 문제는 그 방법이 ‘저주’였으니까.”
공작은 남은 마력을 긁어모아 데온 하르트를 저주하는 것에 썼다.
“타인을 향한 저주는 본인에게도 돌아오기 마련이지.”
마법은 세계의 중추가 되는 규칙을 멋대로 어기는 중죄이기에 마법을 사용한 존재는 보통 죽는 즉시 혼이 부서지지만, 공작 스타베 일루스터에게는 마족 본인이 아닌 계약한 ‘인간’이라는 특수성과 ‘저주’라는 주술의 형태를 빌린 마법 아닌 마법이 존재했다.
“저주의 반동이 부서지는 그의 혼을 묶어 환생시켰다. 제법 끔찍한 삶일 거야.”
“……그건 잘됐네.”
소멸은 너무 쉽지.
혼이 부서지는 고통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전혀 상상이 안 되지만, 그래도 환생도 못 할 정도의 속도로 삽시간에 부서져 소멸한다 했으니 고통이 인식되기도 전에 소멸하는 것이리라.
몰랐다면 모를까, 데온은 공작이 그렇게 죗값을 회피하는 꼴을 전해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죄의 대가가 환생이라는 것은 확실히 이해했다. 하지만.
“죄 없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자유’라고?”
업보 수치가 평균 이하라는 것은 제법 착하게 살았다는 뜻인데. 그것에 대한 상이 ‘자유’라…….
우습게 보지 말라는 듯 죽음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래, 자유. 안락한 공간에서 인세를 지켜볼 수도 있고, 원하는 때가 올 때까지 잠을 잘 수도 있지. 인세에 간섭하거나 좋은 조건으로 환생할 수도 있으며, 모든 게 지겹고 의미 없다고 느낀다면 소멸을 택할 수도 있다. 참고로 소멸은 영원히 깨지 않는 깊은 잠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할 거다. 고통도 무엇도 없으니까.”
“……잠깐, 방금 인세에 간섭할 수도 있다고 한 것 같은데.”
“그래. 간섭할수록 업보가 쌓여서 신중해야 하지만.”
“…….”
크루엘 하르트의 무덤에 피어 있던 꽃이 떠오른다. 그 꽃이 전해 주던 메시지가, 악몽에서 깨워 주던 하얀 빛이, 꿈에서 해일처럼 밀려오는 저주로부터 저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감싸던 사내가 떠올랐다.
분명 ‘자유’의 범위에 인세 간섭이 들어 있었다. ‘자유’는 선하게 산 자들을 위한 상이니까, 그렇다는 건…….
“아, 참고로 인세에 간섭하는 것은 환생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죄인들도 가능하다. 보통은 혼이 부서지는 고통 때문에 생각도 못 하지만.”
“…….”
“적어도 너는 너무 많은 죄를 지어 몇 번이고 환생해야겠지. 인세에 간섭은커녕 사후세계 구경을 하기도 전에 바로 환생할 거다. 쌓아 올린 업보가 다 삭감될 때까지 고통만 가득한 삶을 반복하게 될 거야.”
“……그게 궁금해서 물은 게 아니야.”
공작의 사후가 궁금해서, 내가 죽은 뒤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운을 뗀 것이 아니었다.
공작은 죽음을 확인한 순간부터 안중 밖이었고, 자신은 사후에 어떻게 되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저. 내가 궁금한 것은.
“……인세에 간섭하면 업보가 쌓인다고 했는데, 그렇게 평균치를 넘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땐 환생 절차를 밟아야지. 부서지기 시작한 혼으로 죄인들이 환생하기 위해 줄을 서는 달군 철판 위에 올라서게 될 거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크루엘은?”
데온은 창백해진 안색으로 물었다. 줄곧 묻고 싶었으나 두려움에 망설이던 질문이 문장을 이루었다.
형은, 크루엘은 괜찮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