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346
346. 완벽한 엔딩(3)
“그 말은…….”
죽음을 현신시킨 자가 제정신일 리 없다는 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라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만, 이 인간은 정말 독특한 방향으로 미친 것 같다.
완전히 예상을 벗어난 대답에 잠시 눈을 깜빡이던 죽음이 눈빛을 어둡게 가라앉혔다.
“……죽음의 앞에서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종류인데.”
“고작 네 말을 좀 들었다고 바로 그만둘 것이었으면 진즉에 그만두었겠지. 애초에 그만두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한 말 아니었나?”
확실히. 죽음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다. 설령 조언을 받아들여 그만두었다 해도 이미 너무 오랜 시간 저주를 걸어 왔기 때문에 당사자의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 외에는 달라지는 것도 없었을 테고.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거지만.
“나름의 자비이자 배려였다만.”
“필요 없으니까 눈이나 가져가.”
빨리 거래하고 끝내자고.
예전에 주술사가 말했던 눈을 조심하라는 말이 이거였구나 하는 직감이 스쳤지만, 이제 와서 의식하는 것도 우습다.
현재에 집중한 데온이 가져가라는 듯 고개를 들고 눈을 치켜떴다. 피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보석을 닮은 것 같기도 한 붉은 눈동자가 죽음의 시선을 확 잡아끌었으나, 그는 손을 뻗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걸 말하지 않았군. 내가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네가 직접 행해야 한다.”
멈칫.
순하게 뜬 눈이 무엇인지 모를 감정을 담고 깜빡였다.
“겁난다면 포기해도….”
“아니 그거 말고. 그냥 문득 형이 앞으로도 인세에 간섭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허.”
거래를 진행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까지 이득을 뽑아내는 편이 좋지 않겠나. 질린 표정의 죽음을 향해 데온이 씩 웃었다.
“지금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그가 쌓게 될 모든 업보도 전부 내게 넘겼으면 좋겠는데. 가능한가?”
그가 인세에 간섭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간섭할 수 있도록.
살아서 뭐 하나 제대로 해 준 것 없이 손해만 끼쳤으니, 이거라도 해 주어야 도리겠지. 데온은 당당한 얼굴로 죽음을 보았다.
“……지독하군.”
기어이 죽음이 감탄을 뱉었다.
정말 지독해. 제아무리 은혜를 갚는 것이라지만 어떻게 인간이 타인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 본래 받은 건 쉬이 잊어버리는 것이 인간이라는 족속 아니던가.
심지어 크루엘 하르트는 받은 것도 없이 희생하기만 했다. 죽어서도 동생만을 위했으니.
‘환경의 문제인지, 핏줄인지…….’
혹은 영혼이라는 본질 자체에 뭔가 있었던 건지. 하나같이 독한 형제를 떠올리며 혀를 차는데, 흘긋 하늘을 본 데온 하르트가 조급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래서, 가능해 불가능해? 눈 말고 다른 것도 줘야 하나?”
“……용사와 마왕의 굴레를 끊은 공로를 죗값 탕감이 아닌 이쪽으로 돌리면 이대로도 가능하다. 네가 바라는 대로 해 주지.”
크루엘 하르트가 동생에게 쌓일 업보를 무시한 채 인세에 마구잡이로 간섭하지도 않을 테고, 기껏 해 봐야 환생한 동생이 위험할 때나 끼어들 테니 문제 될 것은 없다. 그 본인이 환생을 택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건 저쪽의 손해지 이쪽으로서는 이득인 데다, 애초에 그가 동생이 기껏 이렇게까지 하며 제게 준 자유를 내팽개칠 리도 없으니까.
긍정을 들은 데온이 그제야 활짝 미소 지었다.
“고맙다.”
그리고 단검을 들었다.
“온전하게 뽑아야 하나?”
“아니, 그냥 찔러도 상관없다. 이 대가의 주목적은 ‘죽음이 거래 상대의 눈을 취득하는 것’이 아닌 ‘거래 상대가 눈을 잃는 것’이니까.”
“그래?”
잘 선 날이 달빛을 반사하며 예기를 뽐낸다. 데온은 그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멈칫, 죽음을 돌아보고 입술을 달싹였다.
“그런데…….”
말을 꺼내려다 멈칫거리며 입을 다물기를 반복한 것도 잠시, 크루엘에 대한 의문이 해결된 시점부터 서서히 존재감을 발하기 시작한 의문이 망설임 끝에 입 밖에 나왔다.
“……리엔 경은, 어떻게 됐지?”
크루엘이 환생할 정도라면 제가 아는 다른 인간들은 반드시 환생할 테니 물을 것도 없다. 시대적 배경을 고려한 듯 업보의 ‘평균’ 수치를 기준으로 따진다 했으니, 이 전쟁의 시대에서 살인은커녕 살인 교사 한번 해 본 적 없는 저의 부모님과 그때의 하르트 백작저 사람들은 ‘자유’를 얻었을 테고.
그렇다면 남은 애매한 존재는 리엔 경뿐.
‘그냥 묻지 말까 했지만…….’
어차피 저는 제 형에게 죗값을 갚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설령 그녀가 환생의 길을 밟는다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그래도.
이유 모를 긴장으로 바짝 경직된 어깨 위에 죽음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엇나가는 재앙을 막기 위해 영웅도 아닌 평범한 몸을 이끌고 홀로 상대를 막아선 올곧은 기사가 사후 얻을 게 뭐라고 생각하지?”
“……하하, 그것참….”
“…….”
“……다행이다.”
이제 정말 남은 미련은 없다. 마지막 남은 짐을 털어 낸 데온은 진심을 담아 환하게 웃었다.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가 얼굴에 걸렸다.
“역시 난 운이 좋다니까.”
그걸로 끝이었다.
데온은 망설임 없이 단검을 내리찍었다.
하얀 달빛 아래 붉은 피가 튄다. 잠시 입을 다물고 그를 지켜보던 죽음은 이내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만족스러운 대화였다.”
역시 죽음을 현신시킨 존재답게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고.
“아무래도 난 널 절대 잊지 못할 것 같군. 만약 후생의 네가 날 찾아와 지금처럼 거래를 청한다면 받아들일지도 모르겠어.”
“그래? 그럼 기다리고 있어.”
고통 따윈 개의치 않는 듯 단검 위치를 바꿔 겨눈 데온이 얼굴에 걸린 해사한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장난스럽게 답했다.
“다음번엔 ‘불사’를 요청할 테니까.”
“……허.”
“깔짝깔짝 환생하면서 죗값을 치르느니 그냥 한 생에 몰아서 끝내는 게 낫지. 안 그래?”
“그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만. 뭐, 그래. 기대하지.”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발언이다. 죽음은 낮게 웃었다.
웃음소리에 동조하듯 데온도 키득키득 웃었다. 죽음과의 거래라는 예상외의 선물을 받아서 그런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았다.
누가 보면 미친 사람이라 생각하겠지만, 아무렴 어때.
세상이 어두워지기 전, 막 하나로 겹쳐지는 달을 본 데온은 다시 한번 단검을 내리찍으며 더없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완벽한 엔딩이네.”
형의 기일에 복수도 끝냈고, 그에게 완벽한 자유도 주었다. 인세 간섭이든 뭐든 앞으로 강제로 환생 될 걱정 없이 편하게 사후 생활을 즐길 수 있겠지.
다소 이기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걸로 내 마음까지 어느 정도 편해졌으니 더없이 완벽한 끝맺음이다.
‘이번에야말로 편히 쉬자, 형.’
이 숨이 끊어지는 잠깐의 틈을 빌려 나도 좀 쉴 테니까.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꿋꿋하게 단검을 심장에 박아넣은 뒤, 뒤로 풀썩 누웠다. 어둠을 배경으로 육신에서 힘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으나 데온은 그저 웃었다.
‘솔직히 힘들었는데.’
힘든 삶이었다.
누군가 이 말을 듣는다면 세상에 힘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죄인인 네가 무슨 낯짝으로 혼자 모든 불행을 혼자 끌어안은 듯이 구냐고 비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고통과 불행은 주관적인 것이어서, 이기적인 나는 차마 힘들지 않았노라 말할 수 없겠다.
‘그래도 최악은 아니었어.’
그럼에도 최악의 삶이었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나를 위해 준 많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건너선 안 될 강을 건너겠다고 점차 불어나는 세찬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는 내가 뭐가 그리 예쁘다는 건지 기꺼이 한 몸 희생해 작은 돌 받침대가 되어 준 이들. 금방 불어난 물살에 흔적도 없이 잠기고 쓸려 가 버릴 것을 알면서도 나를 위해 준 그들을 생각하면 차마 최악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에.
‘난 후회하지 않아.’
같은 관점에서 후회 또한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걸어온 길에 늘어진 수많은 이들의 시신을 생각해서라도. 아니, 사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후회할 수 없었다.
황제, 에도아르도도 이런 마음으로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일까. 의미 없는 생각을 하며 실실 웃었다.
‘그러니까 형, 혼내지 마. 약속은 지켰잖아.’
최선을 다해 살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죽어 갔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과거를 착실하게 되짚어 나갔다.
후회 없이 길을 걸었고, 마지막에 이르러 후회 없는 선택을 했다.
그렇기에 이런 방식의 죽음은 솔직히 내게 있어 과분할 정도라고 생각한다.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행복해지세요.]……그래, 행복했다.
줄곧 머리 한구석에서 저주처럼 꾸준히 외쳐 대던 목소리가 비로소 편하게 느껴진다.
의도치 않게 맺어진 다소 일방적이고 기약 없는 약속이었지만, 그래도 제대로 이룰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이제 좀 리리넬에게 떳떳해질 수 있겠어.
‘……죽음은 자리를 떴을까.’
사고의 흐름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쓸데없는 의문을 떠올렸다. 아니, 사실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난 이미 죽은 게 아닐지.
어둠 속에서 아득한 의식 저편을 헤매는데, 어렴풋이 꽃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그것의 정체가 ‘마왕의 배려’라는 것을 눈치챈 데온은 흐리게 웃었다.
온실이 깨지고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꽃은 전투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짓밟혀 엉망이 되었지만, 향은 아직 남았더랬다.
‘겨울은 싫었는데.’
덕분에 봄 속에서 죽게 되네.
…….
“……이봐.”
“…….”
“데온 하르트.”
“…….”
의식이 끊겼다.
마지막으로 떠난 줄 알았던 죽음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지만, 더 이상의 사고는 불가했다.
일단 대답했던 것 같긴 한데…….
“……세계가 전해 달라는군. ‘감당할 수 없는 업보를 짊어진 인간아, 업보는 돌고 도는 것이다. 네가 저지른 일들이 언젠가 다시 네 목을 조를 것이니, 넌 죽어서도 편치 못하겠구나.’”
내가 뭐라고 답했더라.
***
영혼이 웃었다. 저주나 다름없는 말에도 그저 웃었다. 죽음의 기운에 짓눌리기는커녕 몇 번이고 폭소를 토해 내더니, 씩 웃었다. 실로 짐을 내려놓은 듯 후련한 웃음과 함께 답이 돌아왔다.
‘좆 까.’
“…….”
죽음은 말없이 혼을 거뒀다.
숨 막히는 정적이 찾아왔다. 지독할 정도로 고요한 공간에서, 그는 고개를 돌려 뒤늦게 주변 풍경을 눈에 담았다.
여기저기에 떨어진 꽃잎과, 짓밟힐 대로 짓밟혀 뭉개진 채 향기를 강하게 내뿜는 꽃을 확인한 그는 그제야 확신했다.
“정말… 완벽한 엔딩이었겠군.”
크루엘 하르트를 비롯하여 데온 하르트와 연이 있던 이들을 전부 앗아 간 것이 겨울이었고, 온전한 크루엘 하르트의 육신을 돌려주고 그의 전언을 전해 준 것이 봄이었다.
봄 향기에 둘러싸여 죽었으니 데온 하르트에게 있어 이는 상황뿐만 아니라 배경까지 정말 완벽했으리라.
“……아무튼.”
줄곧 접근을 막고 있던 까마귀 떼로 이루어진 장막을 거뒀다.
“데온 님!”
“당장 거기서 떨어져!”
기다렸다는 듯이 벤과 에드가 달려왔다.
금방이라도 고유능력을 최대 출력으로 활용해 갈길 것 같더니만, 흘긋 마왕과 용사의 시신을 본 에드가 이를 악물고 주먹을 날린다. 죽음은 그의 공격을 피하며 벤이 데온 하르트의 시신 앞에 앉는 것을 슬쩍 보고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
사라진 그를 찾던 것도 잠시, 에드는 쓰러진 용사와 마왕을 향해 비척비척 다가갔다. 혼란스러운 기색을 담고 두 시신을 오가던 하늘빛 눈이 이내 비를 뚝뚝 떨어뜨렸다.
“왜…왜…….”
“…….”
“이런 결과를 바란 게 절대 아니었는데…….”
멀찍이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죽음은 시선을 돌렸다.
용사와 마왕의 굴레가 끊겼으니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과거, 굴레를 끊기 위해 손을 댔던 게 있는 세계로서는 뒷정리에도 다시 손을 써야 할 테지. 데온 하르트가 많은 것을 들쑤셔 놓고 간 것까지 고려하면 이후에 벌어질 변화는 세계의 탈피라고 이름 붙여도 무방할 수준일 터.
하니 저들의 신파극보다는 이쪽의 확인이 우선이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시작됐군.’
인간계와 심연을 이어 주던 거의 모든 통로가 서서히 닫히기 시작하는 것이 보인다. 그 경계선을 넘어 인간계로 이동하는 심연의 종족들도 시야에 비쳤다.
‘요정족, 인어족, 드워프족인가… 뱀파이어족은 빠졌고.’
그렇게 태양을 탐내더니, 인간계가 제 몸 추스르기에도 바쁘고 세계가 뒷정리를 하느라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지금을 노려 이주하는 모양이다.
뭐… 위험한 사상이나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들을 멸족시킬 정도로 위협적인 종족도 아니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지만.
‘많은 것이 달라지겠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세력을 키우고 나라를 세워 통합하거나 분열하며 안정을 찾아가는 역사를 고스란히 되풀이하게 될 인간들과, 그 혼란을 틈타 인간계에 스며들어 정착하려는 심연의 종족들.
용사와 마왕의 굴레는 끝났고, 인간계와 심연이 ‘한 세계’인 이상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더라도 두 세계를 쉽게 오갈 수 있게 돕던 대부분의 경계선이 닫힐 것이다.
이후에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겠지.
죽음은 씩 웃으며 살아남은 이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새 시대의 시작에 자리한 것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