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350
350. 이후의 이야기(4)
11군단장을 시켜 우리를 멀리 보내기 전, 그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너희는 꼭 살아.]두 번 다신 보지 못할 것이라는 걸 직감한 이들을 향해 속삭이듯이 남긴 말. 그 다정한 저주는 하나의 비수가 되어 로프티 기사단원들의 심장에 틀어박히고, 목줄을 옭아맸더랬다.
우리가 받을 충격을 모르지 않을 텐데도 거침없이 그런 말을 남기는 대장이 참 야속하면서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라 끝내는 수긍했지만… 찢어지는 우리의 가슴은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지.
‘대장.’
애초에 잃을 게 없는 이들이 남아 데온 하르트를 따른 것이다. 죽기 위해 싸우는 자들이 마지막 미련에 기대어 뭉친 모임이었다.
‘데온 하르트.’
그가 바로 우리의 마지막 미련이었다.
8년 전쟁이 끝났으나 돌아갈 곳이 사라져 삶의 의욕을 잃은 이들의 눈에 들어온 갓 성인이 된 청년. 전쟁터에서는 엄하면서도 잔혹한 면모를 보이는 동시에, 본인뿐만 아니라 부하들까지 살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다구니를 쓰더니, 전투 외적인 부분에서는 제 나이를 티 내듯 어설프게 굴어 손을 뻗을 수밖에 없게 만들던 어린아이가 눈에 박혀서.
‘……아가.’
그래서 남았고, 마계까지 기꺼이 따라간 것이었다.
그렇게 너 하나만 보고 달려왔거늘, 이리 저주만 던져 놓고 영영 헤어져 버리면 우리더러 어찌하라는 말인가.
“……돈 때문에 이러는 걸까 봐 걱정된다면 안 줘도 돼. 우리는 그저 저 아이를 키우고 싶을 뿐이니까.”
죽을 수는 없었다.
대장이 살기를 바라고 명했으니, 우리는 살아야 한다. 그래서 머리를 맞대고 생각했다.
[우리가 삶에 가장 치열하게 굴던 순간이 언제였더라.] [……생사를 걸고 싸울 때였지.] [그럼 뭘 하고 살아가야 할지 정해졌네.]용병.
가장 치열하게 살아갈 수 있으며, 가장 죽기 쉬운 직업.
죽고 싶으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들에게 이보다 딱 들어맞는 직업이 또 어디 있을까. 로프티 기사단은 로프티 용병단이 되었다.
하지만 마음이 약해지는 동료의 뺨을 후려치며 살아가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그들은 너무 늙었고, 뭐든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완숙한 성인이다. 자신들끼리 보듬으며 남은 시간을 살아가기엔 서로에게서 삶의 의욕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다 늙은 시커먼 아저씨의 얼굴을 보고 무슨 삶의 의욕이 생기겠는가. 오히려 나 하나 정도는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들지. 동반 자살 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리라.
사람은 채찍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삶의 낙이 필요했다.
“저 아이를, 잃은 아들과 겹쳐 보지도 않을 거야. 애초에 둘은 너무 다르거든.”
클레터는 턱짓으로 어느새 밀란의 손에 덜렁 들린 아이를 가리켰다.
저 아이는 백발에 붉은 눈이 아니다. 피부가 창백할 정도로 하얗지도 않고, 눈매가 날카롭지도 않으며, 성인도 아니었다.
“일단 떠오르는 대로 말하긴 했는데… 뭐 다른 신경 쓰이는 게 있다면 편히 말하도록 해. 들어줄 테니까.”
“…….”
황궁에 상시 거주하며 한정된 이들만 만난 탓에 냉혹하게 돌아가는 세상사에는 다소 둔하고 순진한 편이라지만, 그렇다고 사람 보는 눈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궁 사람들은 일상처럼 가면을 쓰고 다니는 터라 사람을 꿰뚫고 거짓말을 파악하는 능력 하나는 확실히 단련되어서, 노인은 경험과 연륜을 통해 얻은 혜안으로 상대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언제부턴가 우는 아이를 달래고 있는 용병들을 말없이 돌아보았다.
“쉬, 쉬! 이러다 너무 울어서 탈 나겠다! 착하지? 뚝 하자!”
“너무 울면 우리가 곤란해지거든? 그러니까 그만 울자! 까꿍!”
“빼애애액!”
“아악! 내 귀!”
“네 그 더러운 얼굴 때문에 더 울잖아! 면상 치워! 빨리!”
우스꽝스럽고 어설프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느껴지는 태도.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본인을 애 취급하는 걸 가장 싫어하는데, 거기에 대고 애 취급을 하며 달래니 더 열받아서 우는 것일 테지만… 저들은 모르겠지.
허둥대는 이들을 보다가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그러고 보니 자기소개를 안 했네. 로프티 용병단의 부단장, 클레터다. 저기 애 들고 있는 녀석은 단장인 밀란이고.”
‘로프티’라는 이름에 멈칫한 것도 잠시.
“……그렇습니까.”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했다. 어차피 현 상황에서 이들보다 더 적합한 보호자를 찾기도 힘드니 다른 선택지랄 것도 없고.
기력이 쇠한 탓에 무거워진 걸음을 힘겹게 옮겨 아이에게 다가갔다. 자세를 낮춰 밀란이라는 사내가 눈치껏 내려 준 아이와 시선을 마주하고, 한없이 다정하게 말했다.
“얘야, 앞으로는 여기 이분들이 너를 맡아 주실 거란다.”
“…….”
“전에 말했지? 할아버지는 몸이 아파서 혼자 먼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그동안 혼자 있기에는 너무 심심하고 외로울 테니, 이분들이 함께해 주시는 거야.”
“싫어….”
“얘야…….”
“싫어어어!!”
아이의 직감은 생각보다 날카로워서, 죽음이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두 번 다시 할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채게 만든다. 아이는 필사적으로 할아버지에게 매달렸다.
엉엉 울음 섞인 목소리가 쏟아졌다.
“왜 난 같이 못 가? 나도 갈래… 나도 데려가…….”
“아가….”
“나 버리지 마…!!”
훌쩍.
늙어서 감수성만 풍부해진 건지, 한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못난 동료들이 눈물을 훔친다.
애를 다독이고 안심시켜 줘야지, 대체 뭐 하는 거야? 보호자가 울면 아이가 불안해한다는 것도 모르나? 한심한 눈초리로 그들을 노려본 클레터가 아이에게 다가가 느린 속도로 손을 뻗었다.
“……많이 컸네.”
밝게 웃어 주려던 의도와 달리 흐린 미소가 그려졌다.
그래도 아이의 주목을 끌기엔 충분했던 모양이다. 신경질적으로 손길을 피하려던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절… 알아요?”
“그럼. 너희 할아버지보다 우리가 더 먼저 널 만났는걸?”
“……정말?”
“그래.”
느리게 다가간 손끝이 뺨을 잔뜩 적신 눈물을 훔친다. 생각보다 부드럽고 다정한 행동에 아이가 눈을 끔뻑이는 사이, 이때다 싶었던 듯 로프티 용병들이 끼어들었다.
“우리 기억 안 나? 익숙하다거나 그런 건?”
“우음…….”
“기억 못 하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우린 삼촌이라고 부르면 돼!”
“삼…촌?”
“그래, 삼촌! 삼촌이 높이높이 해 줄까?”
정신없게 군 것이 이번엔 제대로 먹혀든 듯, 어느덧 아이는 높게 들려 꺄르륵 웃고 있었다.
아이보다 어른이 더 신난 듯, 흥분으로 올라간 어른들의 목소리가 맑고 청량한 웃음소리를 뚫고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여전히 숨죽인 채 지켜보는 용병 길드 내의 사람들은 까맣게 잊은 듯한 행동이었다.
“울음소리 우렁찼던 거 기억하냐? 우리 애는 이름을 크게 떨칠 거야!”
“누구보다 똑똑하겠지!”
“싸움도 잘하지 않을까?”
“그건 가르치면 되지! 누구든 이기게 만들어 주면 될 거야!”
“이참에 용병왕 한번 만들어 봐?”
“아, 맞아. 그러고 보니 챙겨 둔 큐브랑 퍼즐이 있는데,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되려나?”
활발하고 잘 어울리는 건 좋다만…….
못내 불안한 듯, 클레터에게 돈을 건네고 아이의 이름을 비롯한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내내 저들을 힐긋거리던 노인이 한마디씩 더해지는 말을 듣고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됐다. 여기서 더 뭐라 말을 얹는 건 괜한 참견일 테지.’
그보다, 아이를 알고 있었다는 게 정말 사실일까.
이제 보호자는 자신이 아니기에, 그는 저들의 주접에서 묻어나는 불안한 육아 방침에 대해 말을 얹는 대신 다른 부분에 관심을 두었다.
“저보다 아이를 더 먼저 만났다는 부분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만, 가능할까요?”
“……아, 그거.”
클레터가 머리를 긁적였다.
“거짓말이야. 애 안심 좀 시켜 주려고.”
“……그렇군요.”
분명 그 말을 할 때 보인 태도에는 거짓이 없었다만, 그가 그렇다니 그런 것이겠지.
노인은 굳이 캐묻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자리를 떠나려는 듯, 대화를 마무리 짓는 말이 이어졌다.
“지금까지 잔병치레 하나 없었던 아이입니다. 피부도 아이답지 않게 튼튼해서 쉽게 다치지 않고, 다쳐도 금방 낫죠. 피치 못한 사정으로 먼저 떠난 부모가 내려 준 가호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니 적어도 이런 방면으로는 귀찮게 굴지 않을 겁니다. 아이 자체의 심성도 선하고요. 그러니….”
“…….”
“아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심성이 선하다고.
동료들이 사고 칠 때를 대비해 돈과 정보를 받는 내내 대놓고 감시하듯 저들을 지켜보던 클레터가 피식 웃었다.
“미리 사과해야겠네.”
“……네?”
“미안하지만 우리는 저 애를 아주 버르장머리 없는 애로 키울 거거든. 아마 흔히들 생각하는 이상적인 착한 아이로 자라는 일은 없을 거야.”
노인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난 것을 보고 있으려니 양심이 조금 아프긴 하지만, 말을 정정할 생각은 없다.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착하고 얌전한 애로 키울 생각은 아예 없었으니까. 오히려 그 반대면 반대였지.
이건 모두가 동의한 사항이었다.
“저 애는 어떤 순간에서도 본인의 목숨을 최우선으로 여기도록 자랄 거야.”
아주 뻔뻔해져서 스스로를 원망할 바엔 타인에게 죄를 돌려 버리도록. 타인의 시체를 짓밟아서라도 살아남도록.
그렇게 키우기로 모두가 다짐했다.
“아…….”
노인의 눈이 커졌다.
클레터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한쪽에서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방금 그건 농담이고, 그냥 평범하게 잘 크기만 하면 돼.”
“이 빌어먹을 시대에서 어디에 던져 놓아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면 좋겠지만… 그게 싫다면 평범해도 좋아. 우리가 지켜 주면 되니까.”
“어른이 되어도 우리의 태도가 바뀌는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 말고. 싸움 같은 큰 것부터 옷 정리 같은 사소한 것까지, 네가 못 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대신해 줄 테니…….”
그냥, 행복하게 잘 컸으면 좋겠다.
약 같은 나쁜 것에 관심을 둘 필요도 없을 정도로, 아주 행복하길 바란다.
누구에게 향한 건지 모를 속삭이듯 털어놓은 진심이 먹먹하게 울린다. 듣는 이가 다 아픈 발언에 클레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저들이 어떤 방식으로 ‘아들’을 잃었는지 알 것 같다. 무언가 눈치챌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노인은 모른 척 몸을 틀었다.
가겠다는 말 한마디 없이 자리를 뜨려던 것도 잠시, 떠오른 것이 있는 듯 멈칫한 그가 클레터를 돌아보았다. 망설임 끝에 질문이 던져졌다.
“저는 한때 황궁에서 일했습니다. 그렇기에 ‘로프티’라는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만….”
“…….”
“위험할 텐데, 그대로 쓰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까.”
쓴웃음이 돌아왔다.
“그게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흔적이거든.”
위험하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언제나 감시하는 듯한 시선이 따라붙고 있는데, 모를 수가 없지.
하지만 ‘로프티’는 데온 하르트 소속이다. 그와 저희를 이어 주는 몇 안 되는 끈이기에.
“걱정 마. 애는 우리가 죽는 한이 있어도 지킬 테니까. 위험할 일은 없을 거야.”
‘로프티’는 이 이름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의 발언과 태도에서 깨달은 것이 있는 듯, 노인의 눈이 커졌다.
“……설마.”
그 잃었다는 ‘아들’이…….
“아무튼 이만 가 보도록 해. 이러다 애가 눈치채고 또 매달린다.”
“…….”
명백한 축객령에 입을 다문 노인이 조용히 아이를 한번 돌아보고는 순순히 자리를 뜬다. 뒷모습을 지켜보던 클레터가 애 앞에서 호들갑 떨고 있는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왜 이렇게 시끄러워?”
“얘가 뛸 줄도 안대! 대단하지 않아?”
“……확실히 대단하네.”
걸음마 배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보다, 이젠 애도 생겼는데 뭐 하지? 위험한 임무는 함부로 못 맡잖아.”
“으음… 아무래도 간단한 임무 위주로 맡아야겠지…?”
“됐고.”
아이를 안아 들었다.
“돈을 받았으니 당분간은 생활비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냥 육아에만 집중하자고.”
“한동안 여유롭겠네.”
“아, 그럼 거기 가 보는 게 어때?”
“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