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351
351. 이후의 이야기(5)
“왜, 에스페라네스에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가 있다고 하잖아. 거기서 애의 안위를 빌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에 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물론 미신일 가능성이 크지만, 어디 부모가 그런 걸 몰라서 하는 거겠나. 그저 다 정성이고 마음일 뿐이지. 간절함은 때로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니, 해서 나쁠 것은 없으리라.
“게다가 에스페라네스라면 인간계에 존재하는 모든 지역 중 가장 안전한 곳이잖아? 육아하기에 아주 적당할 거야.”
“너…….”
“왜, 왜?”
내가 뭘 잘못했나?
저를 빤히 바라보는 클레터의 시선에 흠칫한 단원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선다. 클레터는 그 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정말 의외라는 듯 중얼거렸다.
“아예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구나?”
“뭐 이 새끼야?!”
지금까지 날 그딴 식으로 보고 있었다, 이거지?!
단원이 길길이 날뛰었으나 누구도 그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다른 이들의 이목은 이미 말을 잇는 클레터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쟤 말대로 하자.”
저 녀석이 말하는 ‘애’가 단순히 지금 우리 곁에 존재하는 이 아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주장이 잘못된 것도 아니니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확실히 에스페라네스가 안전하기는 하지. 그 탓에 목숨 걸고 산맥을 넘으려 드는 이들도 많은 데다, 넘는다고 해도 이미 너무 많은 이들을 수용한 탓에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긴 하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클레터는 씩 웃으며 동료들을 둘러보았다.
“그거야, 몰래 들어가면 되잖아?”
“그렇지!”
“당장 가자고!!”
밀입국 정도야, 쉽지.
로프티 용병단은 길의 방향을 잡았다.
***
데온 하르트와 강제로 헤어진 지 얼마 안 됐을 때, 정신이 반쯤 나간 로프티 기사단원들은 생각했다.
‘대체 왜 이동된 거지?’
원래 뭐든 잘 챙기지 않고 잘 잃어버리는 그들이지만, 11군단장에 의해 강제 이동될 당시에는 분명 데온 하르트가 준 부적을 소지하고 있었다.
대장이 저희의 안위를 걱정하여 준 것을 어찌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 분명, 한 명도 빠짐없이 소지하고 있었거늘.
‘왜?’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마법을 막는 부적이 아니었던 건가. 분명 그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에게 마법이 통하지 않는 것을 봤었는데,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대장은 이 부적을 줄 때, 마법을 막아 주는 거라 말하지 않았어.’
의문은 차츰 과거를 되짚자 조금씩 풀렸다.
[대장, 이게 뭡니까?] [네놈들과 마족들의 전투 조건을 조금이나마 비슷하게 만들어 주는 부적]이건 다른 종류의 부적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후 마계에서 다른 마족들과 시비가 붙어 싸울 때 전과 달리 상대하기 수월하다 싶었지.
그렇다면 11군단장에게 이동을 명령하기 전에 우리를 향해 견장을 떼라 명령했던 건…….
‘……견장에 부적이 들어 있었구나.’
마법을 막아 주는 부적은 견장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우습게도 이를 알았을 때 든 생각은 ‘다행이다’였다. ‘해산’이라거나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라는 느낌으로 견장을 떼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니까.
물론 그런 의미로 말했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 테지만.
“이게 그 나무야?”
“확실히 뭔가 묘한 느낌이 들긴 하네.”
“이제 소원을 빌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빌어야 하지? 엎드리면 되나?”
“손바닥을 맞대는 거 아니었어?”
“고개 숙여야 하는 거 아니야?”
“닥치고, 마음이 중요한 거니까 엎드리든 고개를 숙이든 내키는 대로 해. ……아가, 넌 가만히 있어도 되니 이 과자나 먹으면서 기다려.”
……그가 저희의 안전을 위해 알게 모르게 조치를 취해 두었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슬프다.
하여 용케 에스페라네스에 밀입국해 소문의 나무 앞에 선 로프티 용병단원들은 간절히 빌었다.
만약 네가 정말 소원을 들어준다면…….
살아 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아이에게는 가호를.
그리고 먼저 떠나 버린 괘씸한 아이에게는… 부디, 안식을 줘.
***
“다소 걱정되시리라 생각합니다.”
로프티 기사단, 로프티 용병단.
평소 살인귀 기사단으로 불렸기에 ‘로프티’라는 이름은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아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아예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새로운 출발에 어울리는 판단은 아니다. 일반인들은 모른다 쳐도, 일부 권력자들은 알고 있을 것 아닌가.
하지만 레멤베르는 태연히 말했다.
“그래도 권력자들은 그들에게 손댈 여유가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용병단으로서 얌전히 살아가는 이들까지 신경 쓰기엔 다른 신경 쓸 일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게다가 뒤에서 몰래 지켜 주는 자도 있더군요.”
이 늙은이가 장담하지요.
그리고 레멤베르는 잠시 침묵했다. 익숙한 이들을 입에 올려서인지 다른 익숙한 인물이 머릿속에 떠올라서, 그는 답지 않게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이건 그저 궁금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능청스럽게 저택에 들어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려 하던 아이가 눈에 선하다.
내심 차기 집사로 내정할 정도로 눈치 좋고, 정을 붙일 수밖에 없도록 천연덕스럽게 굴던 어린 청년. 레멤베르는 끝내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질문을 던졌다.
“단은… 만나셨습니까?”
잘 지내고 있는지요.
시신도 무덤도 없어서 더욱 마음에 걸린다. 또 하나의 손주 같던 아이의 얼굴을 되짚듯 조금 일그러진 눈매가 자글한 주름을 만들어 내더니,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쓰디쓴 미소를 내걸었다.
“그가 만든 덴 상단을 기억하고 계실는지 모르겠군요. 그 상단의 이름이 무슨 의미를 가졌는지 아십니까?”
아마 당신은 그저 재앙의 행보를 뒷받침하기 위한 ‘소굴’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겠지. 물론 틀린 것은 아니다. 단 역시 처음에는 그런 의미로 만들었을 테니까.
하지만.
“단어 자체만 살펴보았을 때, ‘덴’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아늑한 은신처라는 의미도 품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데온 하르트를 지켜보고, 단이라는 인물을 가르치며 파악한 레멤베르는 알았다.
마계로 가고, 데온 하르트와 함께 지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단에게 있어 ‘덴 상단’의 의미는 점차 바뀌었을 것이다.
벼랑 끝에 매달려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는 이를 어떻게 더 몰아붙일 수 있을까.
그저 못다 한 일을 끝낼 때까지만 살아 있으려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이니, 오히려 그 아슬아슬함에 되레 주춤했으리라.
“……조금만 더 신경 썼다면 그러한 방향으로도 운용이 가능했을 텐데, 다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떠난 탓인지 그러질 못하더군요. 아쉬움이 큽니다.”
데온 하르트의 행보를 뒷받침해 줄 추진력도 좋지만, 당시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잠시나마 쉴 수 있는 안식처였다.
덴 상단은 침공 외의 방법으로는 인간계에 쉬이 발을 들이지 못할 데온 하르트를 위한 안식처가 될 수 있었으나, 단은 뭐든 공격적인 방향으로만 활용할 줄 알았기에 이러한 방향으로는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 역시 당신을 위해 무언가 손을 썼다는 것 정도는 알아주셨으면 했습니다.”
그래도, ‘안식처’를 이루는 것은 실패했지만, ‘도피로’를 만드는 것은 성공했다.
레멤베르는 무언가 몇 번 시도해 보려다가 포기하고 다른 방면에 손을 대었던 상단을 떠올리며 시선을 내렸다.
“상단이 이루어 두었던 것들 중, 당신이 다 포기하고 도망치고자 할 때를 지원하기 위한 것도 있더군요.”
그런 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처럼 굴더니, 뒤로는 다 준비하고 있었더랬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상단을 하나의 도구로 쓰고 버린 데온 하르트의 명령 아래에 모래성처럼 사라졌지만.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담담한 목소리가 말의 목적을 담고 흘러나왔다.
“그러니 만약 만났다면, 너무 혼내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소 이기적이고 밉게 굴었을지라도, 그는 결국 당신에게 마음을 줘 버렸으니까.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겠군요. 대신 제 행선지를 알려드리자면, 에스페라네스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곳에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가 생겼다는 소문이 있던데, 직접 확인해 볼 겸 오랜만에 고향 땅을 밟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사실, 떠나간 젊은이들의 안식을 빌어야 마음이 좀 편해질 것 같아서.
레멤베르는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한번 지어 보이고는 곧장 등을 돌렸다.
***
한편, 자리를 비켜 준 에드는 멍하니 서 있다가 꽃을 들고 찾아온 히엔과 마주했다.
새삼스러운 상황은 아닌 듯 익숙하게 상대를 훑고 주변까지 훑은 에드가 눈살을 슬쩍 찌푸린다. 무뚝뚝한 음성이 이어졌다.
“……에이가는?”
같이 있는 줄 알았는데.
“마왕님 무덤에 갔어요.”
“아… 그럴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마왕님의 무덤은 마계에 있으니까요. 오가는 것도 일이니 돕고 싶었겠죠.”
“……그래.”
보나 마나 제 부담을 덜어 주겠다는 이유에서겠지.
‘친구’라는 이름으로 이것저것 돕고자 하던 인큐버스가 떠오른다. 장난스러운 웃음과 함께 손을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선해 에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나저나…….”
조금 아래로 내려간 시선이 작은 꽃다발에 닿았다.
“무덤을 만들 당시에도 꽃을 들고 오더니, 이번에도 꽃을 들고 왔군.”
“아, 이번에는 다른 꽃이에요. 장례식도 아니니 굳이 국화꽃을 가져올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요. 사실 그때 죽을 뻔하기도 했고…….”
“하긴,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왔었나.”
인간들은 장례식 때 흰 국화꽃을 두는 문화가 있다며 꽃을 찾아 인간계를 헤집다가 들켰더랬지. 그렇지 않아도 마족에 대한 반감이 극도로 치솟아 있던 상황이라, 인간들이 그를 죽이고자 날뛴 것은 당연했다.
실제로도 반쯤 죽어 가는 상태로 귀환했었고.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그때 벤이 없었다면 넌 분명 죽었을 거다.”
“그래서 인간계에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 다른 종류의 꽃을 가져온 거예요…….”
“……보통은 그런 식으로 돌아다니지 않고 얌전히 숨어 지내… 아니, 됐다.”
말해 봤자 내 입만 아프지.
은근히 고집 있는 인큐버스이니 들어 먹지도 않을 것이다. 하긴, 차기 군단장이었을 때의 저와도 눈을 마주치며 할 말은 하던 녀석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역시 이 녀석도 제정신은 아니야.’
한숨을 푹 내쉬었다.
데온 님의 무덤을 만들던 날이 떠오른다. 정확하게는 그날의 히엔이.
……당시 가장 충격이었던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용케 꽃만큼은 상처 없이 품에 꼭 안고 왔다는 것이었다. 벤은 물론이고 평소 그에게 틱틱거리던 저조차 할 말을 잃었었지.
그때를 떠올리니 마음이 어쩔 수 없이 누그러져 한층 풀어진 목소리가 나왔다.
“그 꽃은 뭐지?”
“찔레꽃이래요.”
“그래?”
“네, 꽃말은… 잠시만요.”
그냥 눈에 보이는 꽃을 집어 온 거라…….
묻지도 않았건만, 히엔이 줄곧 옆에 끼고 있던 책을 뒤적인다.
전 5군단장이었던 오엘의 창고에서 찾은 인간계의 식물도감을 파르륵 넘기던 그는 이내 원하는 부분을 찾은 듯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고독, 그리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네요.”
어… 이거 드려도 되려나…….
“……찔레꽃 말고 다른 종류도 섞여 있는 것 같은데.”
“아, 이건 데온 님께서 생전 마음에 들어 하시던 꽃이어서요.”
크루엘 하르트의 무덤에 피어 있던 것과 같은 종류.
꽃말이 아마 ‘후회 없는 청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 뭐든 상관은 없는데, 지금은 선객이 있으니 조금 기다렸다가….”
……나왔군.
기척을 느낀 에드가 한 곳을 돌아보았다. 은청색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볼일은 다 끝냈나?”
“네. 배려 감사합니다.”
“당연한 것이니 감사할 필요는 없지.”
“그리 말씀해 주시니 기쁘군요. 그리고 옆은… 오.”
히엔을 본 레멤베르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오랜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