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36
36. 명예 백작 데온 하르트(1)
자연스러운 정보 전달을 위한 행동은 사교계의 소문을 좀 더 자세히 풀어 놓은 것과 같은 가설을 내었다.
──모종의 이유로 가문에 원한을 가진 데온 하르트는 다른 모든 이익을 포기하는 대신 하르트가의 멸문을 바랐고, 모처럼 등장한 인재에게 뭐라도 쥐여 주고 싶은 황제는 기어이 명예 백작의 지위와 돈을 안겨 주고 이를 반쯤 수락했다.
물론 그렇게 중대한 결정을 고작 그것만으로 결정지을 수는 없어 내건 조건이 바로 용사의 동료로서 마왕을 물리치는 여정에 참여하는 것이었고.
‘공식 영웅으로 인정하는 것 역시 미뤘지.’
별 의미는 없는 행동이지만.
데온 하르트는 이미 8년간의 전쟁을 치르며 영웅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황제가 인정을 하든, 하지 않든 그는 이미 영웅인 것이다.
그럼에도 미룬 것은 그가 전쟁 영웅들 중 유일하게 용사의 파편을 지니지 않아서.
‘차별이 아니라 혹시라도 그 이유를 들먹이며 반발할 다른 이들의 입을 막기 위해 더 공을 쌓게 한 뒤 주려고 했을 테지.’
용사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데온 하르트는 살아서 돌아오기만 하면 공이 된다.
황제의 속을 알기는 하는 건지, 데온 하르트는 이마저 수락하고 작위를 받기가 무섭게 용사의 동료로서 다시 길을 떠났다.
황제가 대대로 데세르트에게 충성을 다해 온 하르트가와, 혜성처럼 등장해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강한 이미지를 남긴 데온 하르트를 두고 무게를 잰 결과였다.
‘보통은 생각할 것도 없이 전자를 택했겠지만, 현 황제는 반정으로 군주의 자리에 올랐으니 저들의 충성을 믿을 수 없었겠지. 그렇기에 무게추가 어느 정도 동일해졌고.’
그만큼 여정의 결과에 따라 황제의 결정 역시 달라졌으리라.
살아 돌아오기만 했어도 황제는 충분히 그를 아꼈을 테지만, 결과적으로 데온 하르트는 용사의 시신을 수습해 오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였고, 황제는 기꺼이 그의 조건을 수락했다──
─라는 것이 그가 크루엘을 이용하여 온갖 소문과 정보를 긁어모아 조합해 낸 가설이다.
그 가설을 내리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이가 바로 크루엘 하르트였고.
‘그때 그의 표정이 어땠더라.’
힐긋 시선을 돌려 한쪽에 앉아 있는 데온 하르트와 그에게 다가가고 있는 크루엘 하르트를 본 스타베가 다시 고개를 돌려 침묵한 채 저를 보고 있는 이들을 향해 싱긋 웃었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입을 조심해 줬으면 합니다. 이번 연회의 주인공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하르트가의 사람이니까요.”
“예, 예! 실례했습니다!”
***
인생은 원래 혼자 사는 거랬다.
올 때 혼자 왔고, 갈 때도 혼자 갈 테니 굳이 인맥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그래, 사실 이런 건 다 헛소리고.
‘나도 누군가와 대화 좀 나누고 싶다! 근데 아무도 안 와!’
심지어 다가갔더니 도망가더라 시발…….
이쯤 되면 눈치가 없는 사람도 눈치챌 것이다. 지금 난 명백히 모두에게 외면당하고 있었다.
아, 외면은 아니지. 연회장에 들어서자마자 모든 시선이 나를 향했으니까. 다만 다가오지 않고, 내가 다가가도 도망갈 뿐.
‘음식이나 구경하자. 맛있어 보이는 게 많네…….’
근처 의자에 아무렇게나 앉아 턱을 괴고 가까운 곳에 놓인 디저트를 눈으로 훑었다.
가장 기본적인 쿠키부터 시작해서, 마카롱, 케이크, 푸딩…… 오, 저 푸딩 맛있어 보인다. 딸기 푸딩인가?
선명하고도 투명한 붉은색이 한 번쯤은 먹어 보고 싶게 만든다.
‘……먹어도 되겠지?’
애초에 먹으라고 둔 것일 테니까.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쪽으로 향하는데,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얼핏 ‘하르트 백작님’ 하고 부르는 것 같았는데……. 에이, 착각이겠지. 목소리가 귀에 익은 것도 착각이리라.
적어도 이곳에선 아무도 내게 다가오지 않는걸.
“하르트 백작님!”
“……어?”
착각이 아니었다! 나를 부르는 이가 있었어!
반가운 마음에 푸딩을 손에 든 채 고개를 돌리자 저쪽에서 이쪽을 향해 척척 걸어오는 한 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큰 보폭으로 순식간에 내 앞에 오더니 가슴에 주먹을 얹고 깍듯이 기사의 예를 취했다.
“리엔 라이너가 백작님께 인사 올립니다.”
“리엔 경!”
세상에 이리도 반가울 수가 있나!
리엔 경은 내 휘하의 기사단장이다.
내 휘하에는 한 개의 기사단이 존재하는데, 사실 그건 기사단이라 부를 수 없다. 광견들의 모임일 뿐이지.
‘결론이 이상한데?’
……의식이 이상한 곳으로 흘렀는데, 아무튼 내 휘하에 로프티 기사단이라는 이름조차 거지 같은 기사단이 존재한다.
말이 기사단이지, 원래는 8년 전쟁 때 나와 함께 싸웠던 선봉대가 공을 인정받아 기사단으로 승격한 것일 뿐이니 보통의 기사단처럼 반듯한 모습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그놈들이 이전엔 ‘살인귀 부대’라고 불렸다면 이해가 되겠는가.
사실 지금도 ‘로프티 기사단’이라는 이름 대신 ‘살인귀 기사단’이라 불리고 있으니 말은 다 한 셈이다.
아무튼, 그런데 어째서 리엔 경을 그리도 반기냐고?
‘그녀는 낙하산이니까!’
즉, 8년 전쟁 때 적들을 찢어발기며 미친 듯이 웃던 그놈들과는 다른 아주 정상적인 족속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반갑게 맞이하는 내가 이상했던 모양이다. 고개를 갸웃한 리엔 경이 한층 조심스러운 어조로 운을 뗐다.
“표정이 좋지 않으신데. 혹, 몸이 안 좋으신 겁니까?”
“……아닙니다.”
내 표정이 어땠길래.
“그러지 말고 이쪽에 앉으십시오.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곤란합니다.”
친절하게 의자까지 빼 주니 거절할 방도가 없다.
테이블 위에 숟가락과 딸기 푸딩을 슬쩍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화제를 돌릴 생각으로 여전히 내 안색을 살피고 있는 리엔 경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갑자기 웬 연회랍니까?”
“예? 모른 척…… 하시는 겁니까?”
“……?”
“역시 농담이시죠? 하하하, 훌륭한 현실 부정이었습니다.”
웃으며 박수 치던 리엔 경이 여전히 의문 가득한 내 얼굴을 보더니 점차 표정을 굳혔다.
“설마, 정말…… 모르셨습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내 눈치를 살피며 우물쭈물하더니,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과 함께 천천히 말을 뱉었다.
“새로운 영웅의 탄생과 데뷔전을 축하하는…….”
“데온.”
리엔 경의 말을 끊고 서늘한 목소리가 훅 들어왔다.
낯설면서도, 더럽게 익숙한 목소리.
기분이 확 나빠져 고개를 돌리자 차갑게만 보이는 단단한 녹색 눈과 눈이 마주쳤다.
……아하.
상황 파악은 끝났다. 리엔 경의 말을 굳이 끝까지 듣지 않아도 얼추 알 수 있었다.
언제나 당당하던 기사가 저리도 대놓고 내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눈앞의 기분 나쁜 사내가 이리도 당당히 연회의 주인공이라 티 내고 있는데.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누구신가 했더니.”
명백한 적의가 섞인 내 말에도 녹색 눈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게 더욱 짜증이 나 왈칵 인상을 찌푸린 나는 표정도 감출 겸, 순식간에 치솟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천천히 머리를 쓸어 올렸다.
아마 지금 내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살의가 깃들어 있을 것이다.
위험하게 빛나고 있을 눈동자를 이곳에서 고스란히 드러낼 생각은 없어 보란 듯이 환히 눈을 접었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나와는 다른 녹색 눈, 검은 머리카락.
더 이상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하르트가의 상징.
참으로 오랜만에 마주한 얼굴은, 기억 속 모습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환한 웃음에 당황한 듯 잠시 얼굴을 굳힌 크루엘이 이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랜만이군.”
“영웅이 되셨다고요.”
“운이 좋았다. 용사의 파편을 얻었지.”
“형님께선 이전부터 검에 능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용사의 파편이 아니더라도 언젠간 영웅이 되셨을 테지요. 축하드립니다.”
“……전장에서, 0군단장과 맞붙었던 적이 있다.”
움찔한 것도 잠시, 내 입가에는 다시 미소가 떠올랐다.
저건 뭔가 짚여서가 아닌, 그냥 말을 돌리는 거다.
가식적인 칭찬과 웃음이 역겨웠던 모양이군. 아니면 검 실력을 칭찬한 것에서 무언가 뜨끔했다던가.
“그래서요?”
“그 자체보다는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져서 고생했었지.”
“저런. 그래도 잘 해결되었잖습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이곳에 있을 리 없는 데다, 이런 연회는 애당초 열리지도 않았을 테니.
“너는 역시 사기를 다루는 것에 능하다고 들었다. 네가 있었다면…….”
“아하하하, 형님!”
크루엘이 입을 다문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보나 마나 내가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고생하진 않았을 거라는 등의 말을 하려 했겠지.
지랄.
“그런 가정은 굳이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형님과 같이 싸울 리가 없잖습니까?”
같이 싸우는 척하다가 죽이려 든다면 몰라도.
애초에 우리 사이를 잘 아는 황제가 같이 싸우게 붙여 둘 리도 없을 테지만.
“…….”
이 와중에도 저 단단한 녹색 눈동자는 깨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깨지기는커녕 흔들림조차 없어 나는 내심 입술을 비죽이며 테이블 위의 푸딩을 숟가락으로 헤집다가 한 스푼 크게 떴다.
이쯤 했으면 알아서 가겠지.
서로 얼굴 보면 기분 상하는 것은 피차일반이니 어서 꺼졌으면 좋겠다.
사실 기분이라면 이미 상할 대로 상해 버렸지만, 여기서 난리를 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푸딩이나 먹고 속을 삭이는 수밖에.
“……몬스터 토벌을 다녀왔다고 들었다.”
무슨 이득이 있다고 자꾸 말을 붙이는지 모르겠다.
숟가락을 기울여 위에 얹어져 있던 푸딩을 접시 위에 투둑 떨어뜨리고 귀찮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크루엘이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다친 곳은 없나?”
“……푸흐─”
아, 이런. 너무 어이가 없는 나머지 그만.
나를 전쟁터에 밀어 넣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걱정하는 척이라니. 뒤늦은 후회라도 하는 것일까.
우습기 짝이 없다.
14살에 불과했던 나를 전쟁터에 밀어 넣은 작자가 누구네였던가. 건강하다 못해 검술도 뛰어난 3살 위의 형을 두고 몸이 약한 나를 전쟁터에 보낸 작자는 누구들이었던가.
그리고, 그런 그들을 그저 방관하고만 있던 자는 누구였는가.
크루엘 하르트.
한때는 사랑해 마지않던 내 친형.
바로 너잖아.
“새삼스럽게 뭘 묻고 그러십니까. 제 한 몸은 제가 잘 간수할 줄 압니다. 이제 와서 신경 쓰는 척하실 필요 없어요. 적어도 형님 앞에선 아주 멀쩡할 테니까.”
네 앞에선 다쳐도 티를 내지 않을 거다.
적에게 약점을 드러내는 멍청한 짓을 할 수는 없으니까.
전부는 아니어도 내 말의 의미를 대강 파악했는지 크루엘의 표정이 희미하게 굳어졌다.
그게 제법 유쾌해 나는 빙글빙글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 형님께서는 늘 그렇듯 그저 보기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전쟁터에 끌려갈 때 방관했듯이. 그렇게.
“…….”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불편한 침묵 속에서 크루엘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 역시 지지 않고 그의 눈을 마주 노려봤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챈 근처 사람들은 진즉에 거리를 벌린 상태였다.
본의 아니게 상관의 집안싸움을 목격하게 된 리엔 경만이 차마 자리를 피하지도, 그렇다고 말리지도 못하고 나와 크루엘을 번갈아 보고 있을 뿐.
……뭐 합니까, 리엔 경. 빨리 말리지 않고.
‘눈 아파 죽겠다.’
자존심상 피하진 못하고 있는데, 벌써 한계인 듯 눈이 시큰거린다.
다시 한번 속으로 리엔 경을 부르는 순간, 나를 보던 크루엘의 시선이 내 어깨 너머를 향했다.
무언가를 본 듯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오는 얼굴.
리엔 경 역시 어딘가를 눈에 담고는 한껏 경직된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주위의 다른 이들의 시선도 전부 한곳을 향하고 있었다.
‘……뭐야?’
의문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뭔진 몰라도 나와 관련된 건 아니겠지.
나와 관련된 거였으면 나를 봤을 테지 저렇게 다른 곳을 보고 있을 필요가 없을 테니까.
대충 신경을 끄고 주위의 시선이 떨어진 틈을 타 크게 뜬 푸딩을 입에 밀어 넣었다.
‘아, 딸기가 아니라 체리였네. 어쩐지 색이 좀 많이 빨갛다 했더니만.’
입안에 도는 새콤한 맛과 향이 딱히 나쁘진 않다.
입을 움직여 푸딩을 으깨 삼키려는데, 어디선가……. 그래,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상 깊은 우애로군요.”
“……?”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한쪽으로 느슨하게 묶어 내린 보라색 머리카락이었다.
머리카락으로서는 흔치 않은 색. 보라색이 어느 가문의 상징이었지?
아, 일루스터 공작가였지.
……응? 공작가?
“……?!”
진짜 공작이잖아? 스타베 일루스터 공작!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푸딩은 슬쩍 밀어 저 멀리 치워 놓고, 어떻게든 허둥지둥 인사를 올리려 했으나…….
‘아직 푸딩 못 삼켰는데!’
말을 할 수가 없다.
공작 앞에서 대놓고 우물거리며 뭔가 먹고 있다는 티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삼키기에는 조금 버거운 크기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