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42
42. 명예 백작 데온 하르트(7)
“연무장의 무기들로 나무 맞추기 놀이를 하다가 무기 11개를 망가뜨리고 나무 네 그루를 쓰러뜨렸으며, 후에 그건 우리 측 기사들을 노리는 놀이로 변화했습니다.”
나는 말없이 살인귀 기사단원을 노려봤다.
그러자 민망한 듯 눈을 굴리던 녀석이 이내 뻔뻔해지기로 한 건지 가슴을 쫙 폈다.
“훈련이야, 훈련.”
“닥쳐라! 쉬어야 하는 시간에도 습격을 하면서 훈련이라고?!”
“적이 쉬는 시간을 가려서 공격해오는 건 아니잖아. 익숙해져야지.”
“그럼 우리 몫의 식사를 뺏어 먹은 건!”
“식량이 부족한 상황을 대비한 훈련?”
“허윽, 위장약이…….”
저 튼튼한 기사가 위장약을 찾게 되다니…….
그것도 고작 일주일만이다. 나는 탄식을 감추지 못했다.
기어이 품에서 위장약을 찾아 먹은 카인 경이 간절히 나를 불렀다.
“위장약을 복용하고 있는 기사들이 늘고 있습니다. 부디 저 개새……. 기사단을 어떻게 해 주십시오.”
“너 방금 개새끼들이라고 말하려 했지?”
“아니다.”
“지랄하네! 진짜 개새끼가 뭔지 보여 줘?”
분명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백작저의 기사들은 혈색이 좋았던 것 같은데.
초췌한 카인 경의 얼굴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날뛰고 있는 미친개를 다시 노려봤다.
짐승 같은 감각으로 내 시선을 알아챈 녀석이 알아서 수그러드는가 싶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어설픈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그건 변명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래도 황궁에 있을 때보다는 적당히 한 건데…….”
“황궁에서도 이랬냐?!”
아니, 오히려 더했다고? 이 미친 새끼들이!
후두둑.
피가 떨어졌다.
그럼 그렇지. 오늘 이런저런 일로 피곤했는데 혈압마저 오르니 몸이 버틸 수가 있나.
“백작님!”
“대장, 아니 백작님!”
나는 급히 코를 부여잡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빌어먹을, 모처럼 피를 안 본다 했어.
시야가 흐릿하다.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는가 싶더니, 이내 암흑이 찾아왔다.
마지막으로 언뜻 보인 것은, 레멤베르와 리엔 경으로 보이는 이들이었다.
‘다행이다. 어서 이 새끼 내 눈앞에서 치…….’
익숙한 이불 냄새가 난다. 눈을 뜨자 마찬가지로 익숙한 천장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상황 파악이 되질 않아 눈을 깜빡이고 있기를 잠시,
“정신이 드십니까.”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차분한 목소리를 내는 이는 내 기억상 단 한 사람밖에 없다.
“레멤베르.”
“예, 백작님.”
“내가 얼마나 누워있었습니까?”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정확히 1시간 24분이 되겠군요.”
고작 코피 터져서 기절한 것 치고는 오래된 것 같은데?
내가 쓰러진 사이 주치의를 불렀는지,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주치의가 다가와 내 몸을 이리저리 살피며 진찰하기 시작했다.
그런 주치의는 안중에도 없는 듯, 레멤베르는 또렷이 나를 응시하며 담담히 말을 꺼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네?”
“백작님의 심기를 어지른 기사단원은 현재 리엔 경의 손에 끌려갔습니다. 부르신다면 금방 오겠지요.”
은청색 눈동자가 오묘하게 빛난다.
단 한 번의 눈 깜빡임도 없이 그를 마주 보던 나는 먼저 시선을 내리고 답했다.
“그렇다면 불러 주겠습니까?”
“예, 바로 불러오지요.”
“아니요. 이곳이 아니라 집무실에서 대기하라 하세요.”
“……그리하겠습니다.”
의외라는 표정이지만 되묻지는 않는다.
레멤베르가 문을 살짝 열더니 밖에 대기하고 있던 시종에게 말을 전한다. 그리고는 나가는 대신 다시 돌아와 침대에서 한 걸음 떨어진 곳에 섰다.
왜 굳이 이곳에 있기를 고집하나 했더니, 주치의 때문인 모양이다.
“몸 자체가 약한 데다 피로가 많이 쌓였을 뿐, 큰 이상은 없습니다. 피로와 스트레스를 주의하라는 말 밖에는 딱히 드릴 말이 없군요.”
“그렇습니까. 서류가 많이 밀렸는데……. 곤란하군요.”
이거 아무래도 날 걱정해서 그런 게 아니라, 어떻게든 서류 작업에 써먹기 위해 진찰 결과를 들으려 한 것 같은데……?
소름이 돋아 몸을 부르르 떨자 놀란 주치의가 다시 달려와 진찰을 시작했다.
나는 몇 번이고 괜찮다는 말을 하고 나서야 간신히 그를 떼어 낼 수 있었다.
그나저나 지금쯤이면 그 녀석도 집무실에 도착했겠지. 슬슬 만나 봐야겠다.
침대에서 내려오자 자연스럽게 레멤베르가 따라붙는다.
그는 내 집사니까 당연하다 치고…….
‘댁은 왜 따라오는데?’
어째서인지 주치의까지 같이 와 버렸다. 돌아봤을 때 그가 있어서 어찌나 놀랐던지.
아까부터 우물쭈물하며 눈치를 살피더니만, 어지간히도 간이 작은 사람인지 갈 타이밍을 놓치고 얼떨결에 내 뒤를 따라온 듯싶다.
나는 내심 혀를 차며 힐긋 그를 보고는 집무실 문을 열었고─
나를 따라온 주치의의 선택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크흡-”
어지간히도 얻어맞았는지 팅팅 부은 단원의 얼굴.
그 탓에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려다 그만 코피가 다시 터지고 말았다.
서둘러 주치의가 내게 손수건을 내민다.
그걸로 코 중간 부분을 잡고 있으라는 그의 말을 순순히 따르며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녀석을 쳐다봤다.
‘얼굴은 익은데……. 얘 이름이 뭐였더라? 밀? 말? 말라?’
“이름이 뭐였지?”
“예? 설마 제 이름을 까먹으신 겁니까? 밀란입니다. 세상에 까먹을 게 따로 있지, 하필이면 제 이름을…….”
“네놈!”
밀란의 책임자로서 함께 있던 리엔 경이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릴 듯 울컥한다.
원래 저런 놈인걸, 뭐 어쩌겠어. 나처럼 어느 정도 포기하면 편할 텐데.
서둘러 그녀를 말리며 터벅터벅 걸어가 집무실 책상 의자에 앉았다.
코피를 그렇게 흘렸음에도 다행히 서류는 멀쩡했다.
……흰 종이에 붉은 자국이 좀 남긴 했지만 글자가 멀쩡하니 됐지, 뭐.
아무튼.
“밀란,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황궁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냐?”
이게 바로 그를 부른 이유다.
애초에 난 그를 벌할 생각이 없었다.
이래 보여도 8년 전쟁 때 함께 전쟁터를 구르며 서로 살리겠다고 난리 친 사이다.
특히 모자란 지휘관인 나도 상관이랍시고 지키겠다며 그 난리를 치던 놈들인데, 어떻게 무거운 벌을 내리겠는가.
“음……. 혼내지 않으실 겁니까?”
“너!”
“리엔 경, 괜찮습니다. 혼내지 않을 테니 어서 말해 봐.”
솔직히 좀 불안하긴 하다.
무슨 사고를 쳤길래 저 남 눈치 안 보는 놈들이 혼내지 않을 거냐 물어봐?
만에 하나 혈압이 올라 뒷목 잡고 쓰러지기라도 할까, 슬그머니 나가려는 주치의를 눈짓으로 붙잡아 두고 짐짓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밀란이 뺨을 긁적이며 천천히 운을 뗐다.
“사소한 것부터 말씀드리자면, 혁명군 잡으려다 건물 몇 채 무너뜨렸습니다.”
“사소한……. 아니, 그 전에. 혁명군이라니?”
내가 탄 마차를 습격하고, 저택에 폭탄을 던졌던 그놈들은 왜?
혁명군이 얘네를 노리는 건 이해가 되는데, 얘네가 혁명군을 잡겠다고 난리 치는 이유는 뭐지?
“그, 마차 습격 때 말씀드렸다시피 폐하께서 밥값 하라며 제국 수도에서 난리 치는 혁명군 제압을 맡기셨거든요.”
“…….”
그랬어? 몰랐는데. 그때 기억이 날아갔어서.
그럼 그때 날 구한 게 이놈들이었겠구나. 어쩐지, 죽을 줄 알았던 내가 왜 황궁 연회장에 와 있나 했네. 정신 차리고 얼마나 당황했던지.
‘그렇다면 그때 내 몸이 피범벅이었던 것도……?’
가늘어진 눈초리로 녀석을 훑자 괜스레 찔린 놈이 변명이랍시고 개소리를 허둥지둥 늘어놓는다.
물론 그 내용은 뒷골 당기는 말투성이었다.
“그, 그래도 물어내라는 말은 안 하셨습니다. 재상님이 우릴 좀 노려보시긴 했지만…….”
노려봤다는 걸 알아채다니, 눈치가 좀 늘긴 했네.
그나저나 이놈들을 당장이라도 황궁에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 자칫하다 그 건물 몇 채, 내가 물어내게 생긴 것 같은데.
내 침묵이 어지간히도 불안했던 모양이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눈치를 살피던 녀석이 에라 모르겠다며 적반하장으로 마구 내뱉기 시작했다.
“포, 폭탄 들고 설치는 혁명군을 피해 없이 제압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건물 몇 채 정도는 무너뜨릴 수도 있지!”
“……그 몇 채가 정확히 얼마인데?”
“어……. 한 열두 채?”
“…….”
“…….”
옆에서 리엔 경이 눈빛을 보낸다. ‘끌고 갈까요?’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건물 몇 채 무너뜨린 게 사소한 일이라면 다른 더 큰 사고도 쳤다는 뜻일 테니, 그것까지는 들어봐야지.
“그것 말고 다른 사고는?”
“근위대랑 한판 붙었습니다.”
“근위대랑…….”
“어쩌다 보니 시비가 붙어서 패싸움을 좀 했죠.”
“패싸움…….”
“아, 물론 지지는 않았습니다.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죠. 무려 황실 근위대를 상대로 말입니다!”
“…….”
“사실 좀 수세에 몰리긴 했는데, 제가 근위대장의 귀를 물어뜯어서 말입니다! 근위대장씩이나 되어 가지고 그거 하나 못 참고 빈틈을 내보이는데, 얼마나 우습던지. 물론 전 그 틈을 놓치지 않았고 말입니다! 흐하핫!”
리엔 경, 저거 끌고 나가세요.
패도 됩니까?
마음껏.
“어, 어? 단장님? 왜 제 멱살을 잡으시는……. 저기요? 백작님? 백작니이이이임!!”
혼내지 않을 거라면서요오오오오…….
철컥.
소음은 친절하게도 문을 닫아 준 레멤베르 덕분에 금방 차단되었다.
혼내지 않겠다 했지 화내지 않겠다 한 적은 없다. 물론 개소리지만.
저놈도 개소리를 당당하게 지껄이는데 나라고 못 할쏘냐.
언제부턴가 뒷목을 주무르던 손을 내려 코 밑을 매만졌다. 다행히 코피는 안 터졌군. 내 뒷목도 멀쩡하고.
‘저놈을 어떡하냐…….’
아니, 그냥 기사단 놈들 전체가 문제다. 이 망할 미친개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깊은 한숨과 함께 여전히 주위에서 얼쩡거리는 주치의에게 물러가라는 말을 던지고 눈앞의 아무 서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얼마 못 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거다!’
저놈들이 사고를 치는 것은 체력이 남아나서다.
그렇다면 체력을 소모시키면 되는 것 아닌가!
마침 국경선 근처 영지에 몬스터들이 얼쩡거리고 있다고 했다. 저 꼴 보기 싫은 놈들을 눈앞에서 치워버릴 겸, 체력도 소모하고 오라고 보내면 완벽할 터!
한시름 덜어 낸 나는 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명령서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백작님! 저기 몬스터가 보입니다!”
“……그래…….”
계획과는 달리 빌어먹을 놈들과 함께 몬스터 토벌에 끌려오고 말았다.
***
몬스터 토벌을 다녀오라는 명령서를 받았을 때, 로프티 기사단원들의 반응은 평범한 다른 이들과는 달랐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몬스터 토벌. 심지어 그 위치는 국경선 근처다.
자칫하면 생사가 오가는 전투를 치러야 함에도, 그들은 경악이나 분노 대신 환호성을 질렀다.
혼내시는 줄 알았는데, 이런 재미난 일거리를 주시다니! 이건 거의 휴가가 아닌가!
“와 역시 백작님! 심심해서 미치는 줄 알았는데! 우리가 괜히 사고를 친 게 아니라는 걸 알아봐 주시는구나!”
“바쁜 와중에도 심심해할 우리를 챙겨주시다니! 우리 백작님 욕했던 새끼 누구냐?!”
“욕 아니었거든?! 그냥 백작저 기사들과 우리 기사단에 대한 백작님의 온도 차이를 논했을 뿐이지!”
“네놈이구나아아!!”
말끔한 흰 기사복을 입은 장정들이 하늘을 날았다. 착지점은 기겁하며 몸을 웅크리고 있는 한 남자, 밀란.
이어서 처절한 비명이 터지자, 그나마 침착한 성격의 한 단원이 간신히 정신 차리고 저 멀리 구석에 처박힌 채 잊힌 명령서를 집어 들었다.
장담하건대, 분명 이 새끼들은 끝까지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나라도 제대로 읽어 놓아야지.
아니나 다를까.
“우리 기사단만 가잖아? 백작님도 같이 안 가시고.”
“……응?”
“뭐?”
정적이 찾아왔다.
밀란을 두들겨 패던 이들이 일제히 이쪽을 바라본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둥그레진 눈들을 보며, 단원 클레터는 이마를 짚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글은 끝까지 읽어야지 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