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46
46. 전조(1)
“……야, 저 정도 부상이면 회복에 얼마나 걸릴 것 같냐?”
“화살대를 바짝 잘라 버렸으니 좀 더 오래 걸릴 듯싶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어지간히 깊게 박힌 모양이던데, 아무는데 최소 한 달은 걸리지 않을까요. 후유증까지 생각하면…….”
“그렇단 말이지…….”
까슬까슬한 턱을 쓸어내렸다.
8년 전쟁이 끝난 지 이제 고작 2년이 지난 상황이다. 제국 입장에서도 전쟁은 부담스러울 터.
게다가 데온 하르트가 부상을 입었다. 전쟁 당시 그를 이곳저곳에 보내며 가장 많이 활용했던 만큼 그 없이 전쟁을 치를 확률은 낮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이용해 이득을 챙길 수도 있지 않을까?
“저거 아무리 봐도 무력시위로 보이지 않냐?”
“예?”
“우리 왕국에 보내는 무력시위로 보이지 않냐고.”
“아무리 봐도 무력시위라기보단 일방적인 습격으로 보이…….윽!”
다행히 눈치 빠른 녀석이 하나 있었다.
재빠르게 동료의 발을 밟아 입을 막은 녀석이 싹싹하게 긍정했다.
“예! 무력시위로 보입니다!”
“그렇지? 왕궁에 연락해라. 아니, 내가 직접 연락하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말씀드려야 한다. 잘하면 무려 제국으로부터 보상을 두둑이 얻어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보아하니 몬스터 토벌을 명목으로 염탐하러 온 것 같던데, 이 정도 대가는 받아야 공평하지.
지휘관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걸렸다.
***
데온 하르트의 말은 애써 외면하고 있던 진실을 푹푹 찔렀다.
그도 딱히 대답을 바라는 것 같지 않고, 단원들 역시 대답할 경황이 없었기에 이 작은 전쟁터에는 어느덧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무서운 것이 아니다. 아니, 무서운 것도 맞긴 하다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원래 저렇게 말을 잘하셨나?’
‘잘하시긴 했지. 저렇게 날카롭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집사님께 배우셨나.’
‘집사님, 대체 왜 그러셨습니까.’
단원들이 쓰린 속을 쓸어내렸다.
욕설 하나 섞이지 않은 말인데도 아프다.
아픈 곳을 후벼 파는 공격에 단원들의 넋이 나간 반면, 적들 사이에서는 다른 의미의 침묵이 맴돌고 있었다.
‘먼저 움직이는 놈부터 죽는다.’
한창 전투를 치르던 상대가 굳어버린 지금이 기회이건만, 수많은 의뢰를 받아 오며 단련된 본능이 죽음을 경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데온 하르트와 눈이 마주쳤을 때 확신으로 변했다.
피와 같은 색의 붉은 눈, 샐쭉이 휘어지는 눈매, 어서 누구 하나 움직이길 기다리듯 설핏 올라간 입꼬리까지.
‘시발.’
상대를 잘못 골랐다.
사실 본능의 경고 어린 외침은 처음 의뢰를 받았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다만 돈을 너무 많이 준 나머지 홀랑 넘어가 버렸을 뿐.
반드시 죽이라는 것도 아니고, 부상만 입혀도 된다는데 이를 누가 거절하겠는가.
사실상 의뢰를 거절하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처음 화살을 맞췄을 때 무리하지 않고 물러갔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상황이다.
‘제길, 괜히 욕심을 내어 가지고.’
돈 욕심에 더해, 그의 부상 정도를 확인했을 때 해 볼 만하단 판단이 들어 공격을 감행했다.
그의 태도나 행동을 보아하니 소문이 과장된 것 같기도 했고.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돌변할 줄이야.
누구의 희생도 없이 이 상황을 뒤엎는 방법은 단 하나다.
그 사실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문제는 신뢰지.
‘셋 하면 동시에 공격하는 거다.’
‘하나…… 둘, 셋!’
‘…….’
‘…….’
‘더러운 새끼들.’
‘남 말하고 있네.’
이 짓거리만 벌써 세 번째다.
기가 막히게도,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움찔거리는 이조차 없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눈치를 주고 있을 때, 정적이던 분위기를 뒤바꾸는 목소리가 들렸다.
“정보를 얻을 녀석은 이미 하나 잡아 놓았으니─ 점잔 떨지 말고 죽여.”
“……!”
“말도 잘 못 타는 것들이 어울리지 않게 뭐 하는 짓거리야.”
단원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는 단순히 피를 즐기는 ‘미친놈들’이었다면, 지금은 적을 사람으로조차 보지 않는 눈빛.
그들이 이쪽을 향해 씨익 웃는다.
그 모습이 가히 심상치 않아 말을 뒤로 물리기가 무섭게, 안장을 박찬 놈들이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려 왔다.
낙마의 위험성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 과감한 행동이었다.
“미친!”
경악이 욕설로 승화해 튀어나왔다.
쿠웅! 쿵!
여기저기서 둔탁한 소리와 나직한 신음이 울려 퍼지고.
조금 전과는 비교가 안 되는 광기와 피비린내가 넘쳐흐르는 공간에서, 제대로 된 진흙탕 싸움이 시작되었다.
난장판이었다.
겁도 없이 제일 먼저 덤벼들었다가 바닥에 꿰여 버린 사내가 고통도 잊고 눈앞의 상황을 멍청히 바라봤다.
욕설과 비명이 난무하고, 온갖 더러운 술수가 가득하다.
더해서 무엇보다 잔인했다.
눈에 흙을 뿌리는 것은 이해한다. 물어뜯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죽었을 것이 분명한 이를 굳이 찢어 놓아야 하겠는가. 이건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다.
절로 몸이 떨렸다.
‘살인귀.’
정식 이름이 따로 있건만, 눈앞의 기사단은 여전히 ‘살인귀’란 명칭을 달고 있다고 했다.
황제가 내린 이름을 두고 왜 굳이 좋지도 않은 이름을 언급하는지 의아했는데, 이젠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웃으며 적을 찢어놓는 모습은, 누가 보기에도 살인에 미친 귀신 같았으니까.
8년 전쟁 때 저런 놈들이 선봉에 섰다고 했지. 이기는 것이 당연하다.
저놈들을 눈앞에서 마주하고 제정신일 수가 있을까. 상대가 누구였건 그놈들은 분명 공포에 떨었으리라.
심지어 저들이 중얼거리고 있는 말은 공포에 그 무게를 더했다.
[모든 것은 생존을 위해.]한껏 웃으며 적들을 난도질하고 있는 놈들이 하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실로 소름이 끼칠 정도로 훌륭한 합리화다.
저놈들은 그걸로 죄책감을 덜겠지. 행동에도 망설임이 줄어들 것이다.
‘악마 새끼들.’
질린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수하들이 저 모양인데, 그런 수하들을 밑에 둔 상관은 어떻겠는가.
‘당연하게도.’
더 미친놈이었다.
데온 하르트. 희극적이게도 ‘제국의 영웅’이란 칭호를 갖고 있는 자.
‘영웅’이라니. 황당함에 말도 안 나온다. 저런 인간을 ‘영웅’으로 지정한 황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란 말인가.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공간을 자유롭게 헤집고 돌아다니는 그는, 진심으로 즐거워 미치겠다는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웃음과는 별개로 그의 손이 거치고 지나간 녀석은 어김없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의 걸음을 따라 흔적처럼 늘어진 시체는 하나같이 너덜너덜해서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까지 가세하자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
“…….”
순식간에 다시 찾아온 정적 속, 비현실적이기 짝이 없는 공간 이곳저곳에서 흥분을 채 가라앉히지 못한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여전히 약 기운이 남은 듯 벌겋게 충혈된 기사단원들의 눈을 차마 마주할 수 없어 사내는 시선을 데온 하르트에게 고정했다.
그는 느릿하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대충 상황은 정리된 것 같고.”
시선을 느낀 듯 붉은 눈동자가 이쪽을 향한다.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그는 싱긋 웃더니 성큼성큼 걸어와 어깨에 꽂힌 단검을 콱 밟았다.
단검이 더 깊숙이 밀어 넣어지고, 갑자기 가해진 고통에 반사적으로 낮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돈에 눈이 먼 건지, 멍청한 건지. 아니면 둘 다 해당되기라도 하는 건지…….”
“…….”
“아무리 쪽수를 많이 데려왔다 해도 그렇지, 기사단과 함께 있는데 정면으로 공격해 오는 건 또 무슨 황당한 짓이야?”
단검을 밟은 발이 천천히 흔들린다. 덩달아 단검이 위아래로 흔들리며 상처를 늘렸다.
“아프지?”
“…….”
“나도 고문은 별로 안 좋아해. 그러니 되도록이면 순순히 배후를 불었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그건 힘들 것 같군.
리엔 경은 가서 단원들을 추스르도록.
온몸이 붉게 물든 악마가 단둘이 남기를 우회적으로 표했다.
***
“이레온 왕국에서 항의가 들어왔습니다.”
나른한 눈으로 서류를 읽어 내리던 황제가 시선을 들었다.
맹수의 것과 같은 황금빛 눈은 지금 자신이 들은 게 무엇인지 의문을 담고 있었다.
항의라니. 누가 감히 ‘제국’에게 항의를 한단 말인가.
“데온 하르트 명예 백작이 그 근처에서 몬스터 토벌을 한 모양입니다. 그러다 습격을 당해 불가피한 전투를 치를 수밖에 없었고…….”
“잠깐, 습격을 당했다 했나?”
“예, 그렇습니다.”
“하르트 백작은 무사한가?”
“좌측 어깨에 화살을 맞아 한 달간 팔을 제대로 쓰기 힘들 것이라 합니다.”
“한 달이라…….”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턱을 괴듯 팔꿈치를 세워 입가를 매만졌다.
매끈한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계속하도록.”
“예, 이레온 왕국 측은 그 전투를 무력시위라 주장하며 항의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보상을 원하는 듯합니다.”
“전쟁은 그리 가볍게 벌일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하르트 백작이 부상을 입기도 했으니 전쟁을 피할 것이라 판단했겠지. 그만한 장수는 드무니까.”
참으로 얄팍하다.
힘이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 하는 것을. 이레온 왕국은 눈치는커녕 생존 본능마저 없는 모양이다.
‘제국’이 괜히 제국인 줄 아는가.
황제는 무력으로 ‘제국’의 칭호를 따냈다. 그럴 만한 무력을 지녔기에 제국이라는 것이다.
대체할 수 없는 선봉장의 부재? 물론 아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은 아니다. 데온 하르트는 승률을 높여 주는 수많은 패 중 하나일 뿐, 그가 없다 하여 전력이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쪽 수뇌부가 엉망이라더니 알만하군. 이쪽 입장에서는 데온 하르트 명예 백작이 당한 습격을 저쪽의 탓으로 돌리고 역으로 몰아붙일 수도 있는데.”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럴싸한 명분과 국력.
아직 한창때인 제국과 아슬아슬한 이레온 왕국. 타 왕국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는 안 봐도 뻔했다.
“그럼 폐하께서 말씀하신 방안대로 대응을…….”
“아니.”
손 아래, 가려져 있던 입술 끝이 말려 올라갔다.
황제 에도아르도는 이를 드러내듯 사납게 웃으며 말했다.
“짐이 그동안 너무 얌전하게 지냈던 모양이야.”
“…….”
“네메세우스.”
“예, 폐하.”
“전쟁을 준비하도록.”
“폐하!”
대답은 네메세우스가 아닌 재상에게서 나왔다.
비명을 지르듯 황제를 부른 재상이 희게 질린 얼굴로 서둘러 만류했다.
“전쟁이 끝난 지 이제 겨우 2년입니다.”
“2년이면 많이 쉬었지.”
“전쟁에는 돈도 많이 듭니다.”
“이것들이 있는데 돈을 걱정할 필요가 있나.”
탁. 황제의 손이 지도를 짚었다.
그래, 돈과 물자는 정복해 가며 얻는 것이다.
8년 전쟁 때도 그리했으니 이번 역시 그리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재상이 차마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황망히 황제를 바라봤다.
보통의 왕국이라면 협상을 하던가 정 안되면 보여 주기식으로라도 물의를 빚은 이를 벌하고 상대 왕국에 금전적인 보상을 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전쟁은 양측 모두에게 타격이 큰 수단이니까.
하물며 지금 제국에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한 역 대응 방법이 존재하는데.
황제는 그런 쪽으로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이 상황을 야기한 하르트 백작에게는 어떠한 질책도…… 없는 겁니까?”
없겠지. 권한만 있다면 직접 질책하고 싶다.
간신히 꺼트려 놓았던 황제의 전쟁 본능에 다시 불을 붙여놓았지 않나.
“그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짐은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그를 질책할 생각이 없다. 그는 그저 자신의 영지를 착실히 돌봤을 뿐이니. 듣자 하니 고작 1개의 기사단만 이끌고 토벌을 나섰다 하던데, 이는 상대 왕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함이 아니었나. 그는 할 만큼 했다.”
“하오나…….”
“재상.”
황제가 칼날처럼 웃었다.
“짐은 폭군이다.”
“…….”
“그렇지 않아도 슬슬 대륙 정복을 이어갈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잘되었지.”
대륙 정복은 왕의 자리에 오른 순간부터 정해진 목표였다.
어쨌건 그는 형제자매들을 죽이고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 그 이유가 무엇이고 진실이 무엇이었건 무책임하게 굴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떠올린 목표.
스스로조차 베어 버릴 것 같은 날카로운 웃음에, 무언가를 더 말하려던 재상이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황제는 책임에 너무 집착했고, 책임은 족쇄가 되었으며, 족쇄는 재앙을 부르려 하고 있었다.
‘폭군을 자처한다면 책임 따위는 내팽개치셔야지요, 폐하.’
책임 의식, 나쁘진 않다. 그러나 적당히 해야 할 것 아닌가.
애초에 우선순위가 잘못되었다. 그는 제국민들에 대한 책임보다 죽어버린 형제자매들에 대한 책임을 더 우선시하고 있었다.
죄책감이 원인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이것 때문에 폭군을 자처하고 있는 것 역시도.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만일 재앙이 발생한다면, 그 재앙이 부디 제국에게는 미치지 않기를.’
미치더라도 황제 개인에게만 미치기를 감히 바라며 재상 아르달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은밀히 예산안을 작성해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