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52
52. 구원교(2)
수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사이비 종교라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구원교’는 그동안 수없이 등장하고 사라져갔던 다른 사이비 종교들과도 달랐다.
‘현재 평민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추세고, 몇몇 귀족들의 후원도 받고 있댔나.’
지금이야, 몇몇 귀족들이 후원하고 있어서 사정이 좀 괜찮을지 몰라도, 시작할 때는 상당한 돈이 들었을 것이다.
즉, 일반인으로서는 쉬이 가질 수 없는 수준의 자금을 쥐고 시작했다는 것.
심지어 그 출발지점이 빈민가였으니 당시 그들의 돈 사용량은 거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대충 계산해보면 어지간한 귀족가에서도 감당하기 부담스러운 액수가 나오는데…….
‘돈이 목적인 것도 아니고, 자금 제공자가 스스로 교주가 되어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고 싶은 것도 아니고. 도대체 뭐야 진짜.’
답답함에 찻잔에 남아 있던 미지근해진 차를 단번에 목구멍에 때려 부었다. 그리고 곧장 후회했다.
제기랄, 차를 괜히 마셨다. 이런 진지한 상황에서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다니.
보고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필요가 있지만…….
‘일단 화장실부터 다녀오고. 그 뒤에 다시 생각을…….’
“역시 직접 가보시려는 겁니까?”
“예?”
문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췄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일순간 멍해진 나와 달리, 리엔 경은 어쩐지 존경 어린 눈빛을 하며 비장하게 말했다. 얼핏 시야에 그녀가 허리춤의 검을 매만지는 것이 비쳤다.
“혼자서는 위험합니다. 따르겠습니다.“
”예? 아니……어…어?“
……결국 얼떨결에 끌려와 버렸다.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로.
리엔 경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존경합니다’를 외치며 성큼성큼 앞장서서 문을 열고 기다리는데, 어떻게 그 상황에서 ‘저 화장실 좀…….’ 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
그 탓에 능동적인 행동은 취하지 못하고 그저 저택을 나가기 전에 구원자가 등장하길 바랐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시발, 내 운이 그렇지 뭐.’
아무도 만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녀도 있고 시종도 있었다. 심지어 계단을 내려가던 도중 레멤베르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평소에는 그렇게나 유능하시던 우리 집사님께서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한 나의 표정이 보이지도 않는지 그저 “나가시는 겁니까.” 하고 물을 뿐이었고, 빈민가로 갈 것이라는 리엔의 대답에 말없이 너덜너덜한 로브를 두 개 챙겨주며 다녀오시라는 차분한 인사말과 함께 친히 배웅까지 했다.
매끈한 재질의 로브나 깔끔한 여행자용 로브도 아닌 너덜너덜한 로브를 챙겨준 걸 보면 우리가 뭘 할지 대충은 아는 눈치던데. 그렇게 눈치가 좋은 사람이 왜 내 표정은 눈치채지 못한 건지.
설마 일부러 외면한 거 아냐?
“여기서부터 로브를 입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멍하니 걷다 보니 어느새 빈민가 초입이다. 근처 구석진 골목으로 나를 이끈 리엔 경이 예의 그 허름한 로브를 내밀었다.
나는 암담한 눈으로 그걸 내려다보다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받아들었다.
‘정말 이대로 가게 되는 건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라도 줄 것이지. 아니면 최소한 화장실을 갈 시간만이라도.
이대로 들어갔다간 정말 다른 의미의 실수를 저지르게 될 것 같아 나는 입술을 한 번 꾹 깨물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전에 잠시 어디 좀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예? 어디를…….”
“잠시 저쪽에… 아주 잠깐이면 되니 절대 따라오지 마세요.”
마음의 준비도 할 겸, 몸 안에 가득 차 있는 물을 버려야겠다.
아직까진 직접 겪은 적은 없지만, 사람이 너무 놀라거나 공포에 질리면 바지에 실례를 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의 증거를 두 눈으로 목격한 적이 있었다.
참으로 꼴사나웠지. 나로서는 절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그러니 미리 대비를 해두는 편이 좋겠지. 아무리 빈민가라 해도 바지에 막 싸고 다니지는 않을 거 아니야.
……그런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리엔 경이 불안한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아무래도 이곳이 빈민가라서 불안한 모양인데…….
당연히 괜찮지. 내가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화장실도 혼자 못 갈까 봐? 게다가 너, 여자잖아. 따라와서 무슨 못 볼 꼴을 보려고.
단호한 얼굴로 리엔 경을 마주했다. 태연해 보이는 얼굴과 달리, 속내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시간 그만 끌고 이제 그만 보내줘라, 제발. 하얗게 질린 이 얼굴이 보이지도 않냐. 척하면 척하고 알아들어야지.
이러다 정말 볼일을 보고 있는 도중에 난입할까 두려워 나는 다시 한번 따라오지 말라는 말을 못 박듯 남기고 급히 골목 구석으로 달려갔다.
”자, 잠시…!“
혹여 리엔 경이 기웃거릴 가능성까지 생각해 두어 번 정도 더 꺾어져 들어가 간신히 볼일을 보는데, 문득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치솟는다.
내가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 이 고생을 하는지. 땅을 갖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영지 하나 반납하겠다는 건데!
단순히 그것만이 전부였다면 나름대로 깔끔하게 포기했겠지만, 하필이면 크루엘이 이 일을 맡고 있다고 하니 포기하는 것도 요원하지가 않다.
‘빌어먹을…….’
바지춤을 추스르고 로브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골목을 빠져 나와 한 번 꺾어지는데,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던 골목 한가운데에 누군가 서 있다.
저 사람도 어딘가에 잠입하려는 모양이다. 그의 손에 들린 허름한 로브가 그런 내 추측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저 사람, 어딘가 낯이 익은데. 검은 머리 하며…….
막 로브를 걸친 남자 역시 느껴지는 인기척의 주인을 확인하려는 듯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직 후드를 쓰지 않은 탓에 당연하게도, 그와 눈이 마주쳤다.
……’어딘가에 잠입’?
정정하겠다. 아무래도 저 사람 역시 구원교에 잠입하려는 모양이다. 아니, 확실하다.
“너, 끅─”
그 역시 나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테니까.
크루엘 하르트.
증오스러운 존재가 눈앞에 있음에도 나는 불쾌한 감정을 채 표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대비하지 못한 만남에 너무 놀란 나머지─
주르륵.
“……!”
“아, 제길… 쿨럭,”
─피를 토하고 말았으니까.
어쩐지 요즘 좀 잠잠하다 했더니, 이렇게 터져버리는구나. 젠장.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기 싫어 일단 입을 틀어막았다. 손바닥을 가득 적시다 못해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붉은 액체를 보다가 시선을 들어 크루엘을 확인했다.
그는 미동도 없이 나를, 정확하게는 내 바로 앞의 피가 잔뜩 쏟아진 바닥을 보고 있었다.
“…….”
“…….”
바닥을 보던 녹색 눈동자가 천천히 위로 올라와 내 입가에서 머문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제길, 쪽팔려서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고작 ‘놀라서’ 피를 토하다니. 이 자체만으로도 쪽팔려 죽겠는데, 그것도 하필이면 저놈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일 건 또 뭐람.
이대로 있어봤자 시간만 낭비할 뿐이니 서둘러 놈을 밀치고 골목을 빠져나가려는데, 그의 뒤쪽에서 익숙한 실루엣의 누군가가 망설이듯 살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백작님,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서…….”
나를 확인한 리엔 경이 말끝을 흐리는가 싶더니 종국엔 입을 다문다.
그녀의 시선이 나와 내 앞에 서 있는 크루엘을 오가고.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허리춤의 검으로 슬금슬금 움직이는 그녀의 손을 보며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일단, 볼일을 보던 도중에 찾아온 것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
손으로 입을 가렸다지만 손가락 사이를 타고 흐르는 피를 감출 수는 없었다.
바닥을 적신 피와 붉게 물들어버린 데온 하르트의 손을 보며 기사단장 리엔 라이너는 내심 후회했다.
‘그냥 보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하르트 백작을 호위할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왜 간과하고 있었을까.
생각하고 보면 징조는 뚜렷했다.
창백한 얼굴, 부들부들 떨리던 손, 식은땀과 고통을 참듯 꽉 깨문 입술에 더해─ 무언가를 감추듯 급히 골목으로 달려가는 평소의 그와 어울리지 않는 행동까지.
마왕의 저주가 발동한 것이다.
‘기사 실격이다.’
제 눈이 장식으로 달린 것이 아닌 만큼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고 할 때 걱정을 담아 한 차례 묻기도 했었고.
[괜찮으시겠습니까?] [예.]단호한 대답과 절대 따라오지 말라는 표정에 차마 그 뜻을 거역할 수 없어 순순히 보냈던 것이 실수였다.
세간의 소문과 달리, 하르트 백작은 남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선한 부류의 사람이다.
물론 전투 시에는 또 다른 잔혹한 면모를 보여 상당한 충격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투’에 한해서일 뿐.
평소의 그는 너무 물렀고, 또 착했다.
이번에만 봐도 그렇다. 정보가 부족하면 사람을 시켜 다시 조사를 지시하면 될 것을, 직접 확인해보겠다며 이 더러운 곳에 거리낌 없이 발을 들이지 않으셨는가.
아마 자신의 상태를 이리 숨기려 하신 이유도 객혈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간 돌아가자고 할 것 같아 그랬던 것이겠지. 걱정을 끼치기도 싫고, 조사도 하고 싶으셨을 테니까.
이러니 어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눈동자를 굴려 하르트 백작 앞에 서 있는 한 사내에게 시선을 옮겼다.
누구지? 위치상 뒷모습만 보이기 때문에 누구인지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지만, 백작님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우호적인 관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설마, 지금까지 기회를 노리고 있던 암살자인가? 백작님께서 약해진 틈을 타 공격하려는?
하지만 암살자가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드문데.
‘……이미 한 번 시도한 건가.’
저주 탓에 약해졌다고 해도 백작님은 영웅이다. 쉽사리 습격을 허용하지는 않으셨을 터.
백작님의 실력이 만만치 않은 탓에 습격이 실패로 돌아갔고, 그 후 대치 상태에 돌입했다고 하면 앞뒤가 맞는다.
‘우선 저자부터 제압하도록 하자.’
백작님의 상태와 안전에 소홀했던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이지만, 그 충격에 빠져 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더 큰 죄다.
나는 기사다. 백작님을 지켜야 하는 기사.
빠르게 평정심을 찾은 리엔이 천천히 검에 손을 올렸다.
수상한 낌새를 느낀 건지 뒤늦게 로브의 후드를 눌러쓴 상대가 몸을 틀어 이쪽을 본다.
로브 아래에 있을 시선이 제게 닿는 것을 느낀 순간, 리엔은 즉시 검을 뽑아 들고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채앵!!
살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
크루엘은 검을 맞댄 채 말없이 상대의 얼굴을 훑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이었음에도 동요는 없었다.
낯익은 얼굴이다. 데온의 휘하에 있는 기사단의 단장, 이었던가.
그녀가 거침없이 검을 휘둘러온다. 카앙! 재차 거친 소리가 고막을 쨍하니 흔들었다.
‘영웅’이란 칭호를 거저 얻은 것이 아닌 만큼 크루엘은 능숙하게 공격을 막아내며 데온이 그리도 끔찍해 마지않는 녹색 눈으로 둘을 한차례 살폈다.
‘역시 임무인 건가.’
데온이 저와 같은 임무를 받았다는 소식은 진작에 들었다.
그러니 지지 말라던 공작의 목소리가 다시금 머릿속에서 울려 퍼진다. 동시에 늘어나 버린 임무 역시.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설마 벌써부터 마주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어찌나 놀랐던지.
못 알아보고 지나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창백한 피부와 붉은 눈은 그리 흔하지 않다. 저렇게 명백한 증거를 드러내는데, 형씩이나 되어서 고작 어설픈 로브 하나 뒤집어썼다고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되레 우습지 않나.
예상치 못한 만남에 당황한 것도 잠시, 잡념은 짧았다. 흥분을 억누르지 못한 데온이 피를 토해버린 것이다.
─저건 선천적인 몸 상태 탓에 나온 것일까, 마왕의 저주 탓에 나온 것일까.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한 동생이었다. 그런 몸에 저주마저 겹쳤으면 앞으로의 수명은 얼마나 남은 것일까.
잘은 몰라도 그리 길지는 않으리라.
“…….”
데온의 입가에 잔뜩 묻은 피를 지독하리만치 담담한 표정으로 살피며, 크루엘은 생각했다.
‘저 녀석이 이 임무에 참여해서는 안 돼.’
다른 것들이라면 몰라도 이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팔 하나로는 부족했던 걸까.
또 의뢰라도 넣어야 하나 고민하는 크루엘에게서는 데온이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의심하는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확실히 보았으니까.
데온의 쇄골 위, 목과의 경계선에 새겨진 기묘한 문양의 검은 낙인을.
낙인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이 으레 생각하듯, 크루엘 역시 그것이 데온의 몸 상태와 수명을 깎아 먹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만.’
그때까지만 버티면 되는 거다.
그렇게 되뇌며 크루엘은 데온을 눈에 담았다.
생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녹색 눈이 침잠하게 가라앉은 채 한 사람만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