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54
54. 구원교(4)
‘역시 대단하시다.’
탁탁.
검을 묻은 리엔이 주변의 파헤쳐진 바닥을 손으로 다지며 내심 감탄했다. 그녀는 지금 구원교에 잠입할 때의 데온을 떠올리고 있었다.
잠입을 위해 몸까지 날리는 연기!
넘어져 바닥을 쓸며 여자의 앞까지 도달한 그는 누가 봐도 며칠은 굶어 다리 힘이 풀린듯한 빈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분명 들어갔겠지. 의심할 건덕지는 없었으니까.
문제는 안에서 로브를 들췄을 때의 경우인데…….
‘그건 백작님께서 알아서 처리하시겠지.’
무려 백작님이신데. 그 정도는 대비하고 계시지 않을까.
데온을 향한 극한의 믿음으로 중요한 문제를 가볍게 넘겨버린 리엔이 근처에 있던 작은 바위를 들어 검을 묻은 곳 위에 올렸다.
이걸로 검을 잃어버릴 걱정은 없을 터.
그럼 이제 구원교 내부로 들어가 백작님을 만나기만 하면 되는데…….
“어머, 죄송해요. 오늘은 더 이상 새로운 신도를 받기가 힘들어서…….”
“……예?”
“빵과 물이 목적이실 테죠? 여기 드릴 테니 나중에 다시 와주시겠어요? 정말 죄송해요.”
“…….”
고의다. 일부러 안 들여보내는 것이 분명해.
얼떨결에 빵과 물을 받아든 리엔이 멍하니 눈앞의 여자를 바라봤다.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는 분명 백작님이 넘어졌을 때 앞에 서 있던 여자가 맞다.
그런데 왜 백작님과 내 대우가 다른 거지? 뭔가 눈치챘나? 아니면 차별? 하긴 백작님이 잘생기시긴 했… 아니 로브를 쓰셨는데?
이해가 되진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이곳에 서 있다간 되레 의심을 살 수 있기에 리엔은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돌렸다.
‘근처에서 대기해야겠군.’
잠입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이 무능함에 대한 사죄는 백작님이 나오시면 하도록 하자.
***
‘내가 들여보낼 줄 알았니?’
평생 와 보렴. 내가 들여보내 주나 봐라.
구원교의 얼굴 마담이자 실질적 총괄인 사에린이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터덜터덜 돌아가는 리엔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녀가 조금 전의 남자는 들여보내고 저 여자는 돌려보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저 여자는 검을 배웠으니까.’
걸음걸이가 검을 배운 자의 것이다. 절제되고, 힘이 있으며, 지나치게 규칙적인 걸음걸이.
몰락해 빈민이 되어버린 기사라는 가정을 대입해봐도 저건 말이 안 된다.
몇 날 며칠을 굶어 필사적일 빈민이 저렇게 힘 있게 걸을 리가 없잖은가.
‘반면에 조금 전에 들여보낸 남자는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걸음걸이였지.’
심지어 다리에 힘이 빠져 넘어지기까지 했다.
일어날 때는 한쪽 팔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기도 했다. 필시 팔에 문제가 있는 것이리라.
‘더해서 그 피.’
그건 연기로는 나올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어.
그런 인간을 첩자로 쓰기엔 부적절하다.
중요한 정보를 빼돌리려면 장부를 빼갈 정도의 실력이 되어야 하는데, 피를 토하는 지병에 한쪽 팔은 제대로 못 쓰고 오래 굶어 다리 힘조차 없는 인간이 중심부까지 들어가 장부를 빼돌리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그러니 그 남자가 첩자일 확률은 0에 가까울 것이다.
‘이 참에 신도나 한 명 더 늘려야지.’
자신이 들여보낸 그 남자, 데온 하르트가 전쟁터에서 구르다 스스로 검을 터득했기에 정형화된 검술이 없다는 것을 알 리 없는 사에린은 한 치의 의심 없이 다시 그를 보기 위해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
“여기 차라도 드세요.”
“아, 감사합니다.”
손을 뻗어 내민 찻잔을 받았다. 물론 의심 없이 냉큼 마시진 않았다. 이 안에 뭐가 들었을 줄 알고.
조용히, 자연스럽게 냄새부터 맡자 그걸 또 어떻게 눈치챈 건지 여자가 생긋 웃는다.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싸구려 차예요. 아무것도 안 탔으니 염려 말고 드세요.”
“……네.”
확실히 아무 약 냄새도 안 나긴 하는데……. 에라 모르겠다. 저 여자 입장에서도 한낱 빈민인 날 죽여 얻을 건 없을 테니.
조심스럽게 차를 입에 머금고 꿀꺽 삼켰다. 따뜻한 기운이 몸 내부에 들어가 퍼지며 긴장을 풀어준다.
지금이 겨울이었다면 효과가 배 이상이었을 텐데, 조금 아쉽다. 차는 겨울에 마시는 게 최곤데.
“그런데, 안 답답하세요?”
“……아.”
반사적으로 로브 후드를 매만졌다. 흠칫 몸을 뒤로 물릴 뻔하기도 했으나, 가까스로 그건 멈출 수 있었다.
기분 탓인가? 얼핏 여자의 두 눈이 번쩍 빛났던 것 같은데.
아니, 지금 그런 것에 신경 쓸 시간이 아니다.
‘뭐라 답해야 하지?’
로브를 벗었다간 정체가 들킬 위험이 있다. 다행히 사교계 출입이 드물었던 덕분에 아직까진 내 얼굴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만, 붉은 눈은 나의 상징이기도 하니…….
뭐라 말해야 할까.
“……괜찮습니다. 보기 흉한 모습이어서…….”
“네? 그게 이유라면 더더욱 마음 편히 벗고 계셔도 돼요. 여기선 외모 가지고 뭐라 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아……!”
얼굴을 가려주던 든든한 후드가 벗겨진 것은 한순간이었다.
나는 황급히 시선을 아래로 고정했다. 아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거나 고개를 푹 숙이고 싶었으나 그건 객관적으로 봐도 너무 과한 반응이었기에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빌어먹게도.
여자의 손이 이쪽으로 뻗어오는 것을 또렷이 보고 있었음에도 차마 거부할 수가 없었다.
거부하면 분명 의심할 테니까.
로브가 벗겨지고, 혹시나 싶어 흙칠을 해놓은 탁한 색상의 머리가 드러난다.
머리 위로 여자의 부드러운 음성이 떨어졌다.
“괜찮으니까 고개 드세요.”
“…….”
잠시 망설이자 지체 없이 고운 손이 뻗어온다. 양 뺨이 부드럽게 감싸지고, 고개가 들렸다.
나의 붉은 눈이 여자의 상냥을 가장한 눈과 마주쳤다.
그리고 동시에, 여자의 눈에 있던 의심이 덩치를 키우는 것이 망막에 선명히 비쳤다.
“눈이… 붉은색이네요?”
“……그…….”
각오를 했음에도 저렇게 의심하는 것이 눈에 선히 보이니 말문이 턱 막혔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워진 듯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대로면 최악의 결말을 맞이하게 될 터.
‘정신 차려!’
여기서 넋을 놓으면 안 된다. 서둘러 눈을 굴렸다.
최근 세가 많이 늘었다는 것이 사실인 듯 입구를 지키는 보초의 뒷모습이 보인다. 내부 역시 몇몇 무기를 든 장정들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그냥 리엔 경을 기다릴 걸 그랬어.’
이럴 때 그녀라도 있었다면 마음이 든든했을 텐데.
탈출은 꿈도 못 꾸고, 이 상황에서 자유롭게 놀릴 수 있는 것은 입 하나뿐이다. 그러니 말해야 한다.
‘무슨 말?’
무슨 말을 해야 이미 생기기 시작한 의심을 지울까?
‘생각해.’
저 여자가 후드를 벗는 것을 종용할 때, 난 뭐라 말하며 거절했었지?
자연스럽게 대답할 수 있는 시간의 마지노선이 다가오고 있다. 이 이상 침묵이 길어지면 필시 수상하게 생각할 터.
시간이 흐르고. 여자의 눈에 있던 의심이 점차 확신으로 변하던 순간, 내가 입을 열었다.
절대 급한 기색 없이 천천히, 오히려 머뭇거리는 기색을 한껏 담아, 눈을 감추듯 고개를 푹 숙이며.
“……여, 역시…….”
“…….”
“보기 흉하지요…?”
“…….”
짧은 침묵이 찾아왔다.
통했나?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표정을 볼 수가 없으니 통 알 수가 없다.
그냥 이대로 기다리기만 해도 나쁘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것 같지만, 상황을 보니 몇 마디 더하는 쪽이 더 좋을 것 같다.
침묵은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
애매한 것보다는 확실하게 저울을 기울여놓는 편이 훨씬 나을 테니.
“역시 싫어하실 줄 알았습니다…….”
부러 비참함과 슬픔, 체념과 억울함을 담아 입을 열었다.
연기는 어렵지 않았다. 반쯤이지만 분명한 진심이 담겨 있었으니까.
“가족조차 버린 이 눈을, 어느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아, 아뇨! 전혀 흉하지 않아요!”
됐다!
다급하면서도 상냥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데온 하르트 아시죠? 제국의 영웅 데온 하르트! 그 사람도 붉은 눈이라고 해요. 당신처럼.”
“데온 하르트… 말씀이십니까?”
“네! 무, 물론 뱀파이어니 살인귀니 하는 악명도 많지만…!”
“…….”
그건 말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좀 상처받았다.
뭐, 그래도 의심은 거둔 것 같으니 다행이지만.
여자도 마지막 말은 실수였는지 잠시 입을 다물더니 황급히 말을 돌렸다.
“이곳이 뭐 하는 곳인지는 아세요?”
알긴 아는데 자세히는 모르지. 그래서 이렇게 온 거고.
온전한 내 의지는 아니었다는 사실은 제쳐두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냥 이곳에 오면 먹을 걸 준다는 말만 듣고…….”
“아하, 많은 분들이 그렇게 알고 오시죠. 그게 일반적이니 너무 눈치 보지 마세요.”
눈치 안 봤는데. 내 얼굴을 기억할까 봐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것이 여자에게는 그렇게 비친 모양이다.
자애로운 미소를 지은 여자가 슬슬 설명하려는 듯 부드럽게 입을 연다. 나 역시 안 그런 척 귀를 바짝 기울이며 앞으로 나올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그래, 이렇게 사람을 끌어들여서 신도로 만들었겠지. 얼마나 말을 잘했으면 그렇게 세를 늘렸을까.’
그러니 어디 한 번 나도 설득해봐.
“이곳은 구원교 교단이에요.”
“구원교…?”
“네, 폭군 에도아르도의 치하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종교단체죠.”
맙소사.
존경하는 황제 폐하,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그저 듣기만 했습니다. 아니, 듣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제가 귀가 잘 안 들립니다.
그러니 살려주세요.
얘가 미쳤나. 왜 그렇게 위험한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거야?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표정 관리, 표정 관리!’
무너지는 표정을 다잡았다.
지금 난 아무것도 모르는 빈민이다. 말 몇 마디에 쉽게 흔들리는 빈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그래서 빵을…….”
“네, 여러분들이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것 또한 황제 때문이니까요. 황제가 통치를 제대로 했으면 이렇게 살고 있겠어요?”
“그…렇군요.”
존경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황제 폐하! 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또 다른 제가 멋대로 입을 나불댄 겁니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황제라면 같은 입, 같은 몸뚱이로 나불댄 것은 맞지 않느냐면서 죽여버릴지도…….’
그런데 어쩔 수가 없잖아. 여기서 내가 폐하를 모독하지 말라고 외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리고 이 여자는 왜 자꾸 폭탄을 던져대는 건데? 목숨이 아깝지도 않나!
아니면 설마 내 정체를 눈치챈 건가? 그래서 같이 죽자고…?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라서 더 무섭다. 하지만 여자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건 아닌 것 같고, 정말 선동이 목적인 것 같은데…….
한숨이 나왔다.
‘주장이 어설퍼. 어설프다 못해 어이가 없을 정도인데…….’
빈민의 존재 이유가 황제가 통치를 못 해서라니. 빈민 구제는 역사를 통틀어 어느 통치자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이러다가 넘어져도 황제 탓을 하겠네.
“당신이 넘어져서 다치는 것도 황제가 길을 제대로 닦아놓지 않았기 때문에…….”
진짜였냐!
표정을 감추기 위해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희미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다. 하지만 빈민들에게는 다르게 다가오겠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 여부 따위가 아니라, 빈민이어서 받은 불이익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를 토해낼 곳이니까.
쉽게 말해 눈앞의 여자는 원망거리가 필요한 이들의 앞에 탐스러운 먹잇감을 던져놓고 끌어들인 것이다.
‘구원교’라는 이름의 단체 아래로.
그 와중에도 여자의 설명은 멈추지 않았다.
“사이비 종교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구원교는 일반적인 사이비 종교와는 달라요. 우리는 돈도 바라지 않고, 다른 무엇도 아닌 그저 ‘구원’을 믿는답니다.”
“……믿으면 정말 구원을 해줍니까?”
“네, 당연하죠.”
“누가?”
결국 모든 의문은 돌고 돌아 단 하나에 집중된다.
‘누가?’
누가 구원을 해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