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55
55. 구원교(5)
“그건…….”
“…….”
“당신이 독실한 신도가 되면 알게 될 거예요.”
김이 팍 샌다. 벌써부터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그 말은 즉 정보를 얻으려면 여기에 꾸준히 눈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것 아닌가.
얼떨결에 끌려와 잠입하게 된 것이 장기전이 되게 생겼다. 썩을.
내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앉아있자, 여자가 살살 눈웃음을 치며 몸을 일으켰다.
“시간이 너무 흘렀네요. 저는 일이 바빠 이만 가봐야겠어요.”
“아…….”
“음식은 출구의 보초들에게 말하면 바로 줄 테니 걱정 마시고요. 일단 오늘은 자유롭게 견학이라도 하다 가세요.”
……’일단 오늘은?’
“출입금지인 곳은 지키는 사람이 있으니 그런 곳만 가지 않으면 돼요.”
그 말을 끝으로 여자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나는 다 식어버린 차를 단숨에 들이키고 의자에 몸을 편히 기댔다. 긴장이 풀린 몸이 뒤늦게 축축 늘어졌다.
‘저 여자, 은근 재수 없네.’
또 올 거라는 것을 확신하는 태도 하며─
물론 내가 빈민이라고 생각했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공짜로 빵과 물을 주는 곳인데 아예 안 와봤다면 모를까, 한 번 온 이상 또 오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겠지.
‘……일단은 내부부터 둘러보자.’
리엔 경은 어디서 뭘 하길래 아직까지 들어오지 않는지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그건 잠시였다.
그녀는 기사다. 그것도 살인귀라는 이름을 단 미친개들을 통제하는 기사. 그런 그녀를 걱정하는 것 자체가 사치이리라.
걱정을 해도 나를 걱정해야지.
그렇게 그녀에 대한 생각은 저 멀리 날려버리고 천천히 건물 내부를 거닐기 시작했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평범한 신전과 똑 닮은 생김새에, 성기사에 빗대면 딱 맞을 것 같은 보초들까지.
그래서 더 수상하다.
‘이렇게 수상한 냄새를 풀풀 풍기는 주제에 깨끗하다니. 말도 안 되잖아.’
역시 보초가 있는 방에 들어가 봐야 하나.
슬쩍 경비가 있는 방들을 훑던 찰나, 그런 내 시야에 누군가 들어왔다.
세상 걱정 없다는 듯, 행복에 절어버린 미소가 너무도 이질적이라 시선이 끌릴 수밖에 없었다.
왜소한 체구. 거친 재질이지만 나름대로 깨끗한 옷차림.
한두 번 와본 것이 아닌지 거침 없이 내부를 가로질러 어디론가 향하는 그 사람은…….
‘……여자아이?’
대충 12살 정도로 보이는데, 이곳의 신도인 것일까. 아무래도 빈민 같은데.
혈색도 나쁘지 않고 행복하게 웃고 있다지만 특유의 굶주렸던 기색이 얼굴에 남아 있다. 필시 굶주림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터.
더해서 품에 들려 있는 빵 한 덩이를 보며 빈민 신도가 맞으리라 반쯤 확신하고 있는데, 시선을 느낀 건지 여자아이가 이쪽을 돌아봤다.
눈이 마주치고, 어색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
여자아이가 이쪽의 신분을 추측하려는 듯 눈을 데굴데굴 굴린다.
얼굴을 확인한 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내린 뒤 다시 얼굴을 보는 행동에 나도 모르게 허리를 빳빳하게 세운 것도 잠시, 변장으로 꼬질꼬질해진 몰골을 확인한 여자아이가 뭔가 알겠다는 듯 손뼉을 마주쳤다.
“아!”
“……?”
“새로 오신 신도분이시구나!”
“으, 응?”
“반가워요! 전 시이아라고 해요!”
“어, 응. 반갑다…?”
뭐야, 왜 이렇게 밝아? 빈민 맞아? 내가 잘못 추측한 건가?
어쨌거나 이 꼬맹이는 내게 명백한 호감을 가지고 있다. 마침 정보를 얻을 구멍이 필요했는데 이렇게 다가와 주면 고마울 따름이지.
고사리 같은 손을 마주 잡고 흔들었다. 덩달아 여자아이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제가 얼굴을 모르는 걸 보면 오신지 얼마 안 되신 것 같은데. 오늘 오셨어요? 아니면 어제?”
“오늘…….”
“아하, 그럼 아직까진 모든 게 어색하고 의심스러우시겠네요. 그런데 걱정하실 거 없어요. 이곳은 정말 아무 조건 없이 음식을 주는 곳이니까.”
자연스럽게 날 어디론가 이끌며 여자아이가 설명을 이어간다.
아이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확고한 믿음만이 담겨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확신할 수가 있지?
“종교를 믿으라고 강요하지도 않아요. 다만 믿으면 더 많은 음식을 줄 뿐이죠. 아저씨 빈민이시죠? 저도 빈민이에요. 같은 빈민이 먼저 경험해보고 하는 말이니 믿어도 좋아요.”
“그렇구나.”
“그리고… 아, 이곳은 기도실이에요. 음식을 목적으로 가볍게 믿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기도를 하죠.”
“……그렇다는 건 독실하게 믿는 사람들의 기도실이 따로 있다는 거…니?”
우와, 어색하다. 아이랑 대화를 해봤어야 알지.
말이 조금 어색하게 끝맺어졌으나 다행히도 뭔가 수상함을 느끼진 않았는지 아이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하에 따로 기도실이 있어요. 그곳에서 진짜 구원에 관한 사제님의 연설을 듣죠. 구원은 실재해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눈은 몽롱하게 풀려 있었다. 거기서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세뇌인가? 아마 세뇌일 것이다. 저렇게 확신을 담아 말하려면 세뇌가 아니고서야 힘들 테니까.
……그렇지만.
‘이상해.’
세뇌당한 이들에게서 일괄적으로 드러나는 탁한 눈동자가 아니다. 오히려 아이의 두 눈은 희망을 담고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잠시 몽롱했던 눈은 희망찬 미래를 상상하느라 잠시 풀렸을 뿐.
‘왜?’
무슨 수를 쓴 거지?
신나게 조잘거리는 아이를 복잡한 표정을 내려다 봤다. 지금쯤 내 눈은 혼란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으리라.
뭐 빠지게 고민해봤자 지금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으니 일단은 그 지하에 있다는 기도실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
복잡한 표정을 지우고 살풋 미소지었다. 그래 봤자 어설프고 희미한 미소일 뿐이지만, 어차피 지금의 난 평소 웃을 일 없는 ‘빈민’이니 이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역시나, 아이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나를 마주했다.
“그 기도실은 어떻게 들어가는 거니?”
“아, ‘진짜 기도실’이요? 몰라요.”
“……응? 몰라?”
“네. 입구는 알지만 여는 방법은 사제님만 아시는걸요.”
역시 그런가. 하긴, 아무나 숨어들었다간 곤란할 테니까.
“그럼 그 기도실 입구의 위치만이라도 알려주지 않을래? 나도 네가 말한 그 ‘구원’을 한 번 믿어볼까 하는데, 독실한 신도가 된다면 어디서 기도하게 될지 궁금해서.”
“정말요? 이제 아저씨도 구원받을 수 있겠네요. 잘됐어요!”
“그래, 그러니…….”
“음, 근데 기도실 입구의 위치는 안 돼요. 저도 알려주고 싶은데, 사제님이 함부로 알려주지 말랬거든요.”
……얘 전부 알고 있는 거 아니야? 물으면 뭐든지 답할 것처럼 굴면서 은근 철벽이네. 지금 나 갖고 노는 건가?
본능이랄까,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 녀석은 틀렸어. 아무리 캐물어도 대답하지 않을 거야.
직접 알아보던가, 다른 놈을 찾아 물어봐야 한다.
고민할 것도 없이 나는 깔끔하게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시간도 없는데 어느 세월에 이 아이만큼 괜찮은 녀석을 찾겠어. 괜히 캐묻고 다니다가 의심만 사지 않으면 다행이지.
일단 아직도 옆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이 아이부터 떼어놓도록 하자.
……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저 멀리서 한 남자아이가 이쪽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시이아! 뭐해! 가야지!”
“아, 폴! 저기 죄송한데,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어서 가봐.”
어차피 잡을 생각도 없었지만……. 이쪽을 보는 폴이라는 남자아이의 눈초리가 제법 매섭다.
여자아이와는 다르게 경계 가득한 눈빛.
보아하니 16~17살 정도 된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가? 나름 여자아이보단 머리가 컸다 이거지?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색을 보였다간 곧바로 경비에게 말할 것 같은 기세라 되도록 무해한 표정을 지어주려 하니, 아직도 가지 않은 건지 명량한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아, 그리고 피곤해 보이시는데, 멀리서 오셨다면 이 근처에서 머무시는 게 편할 거예요. 왔다 갔다 하는 것도 힘들잖아요?”
“그래, 조언 고맙다.”
“그럼 또 봐요!”
아이가 남자아이를 따라 사라진다. 어렴풋이 “내가 처음 보는 사람이랑 함부로 대화 나누지 말랬지.” 하는 타박이 들렸다.
나는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남자아이가 이쪽을 힐긋 돌아보는 순간 재빨리 돌아섰다.
그대로 천천히 입구로 향하며 흙칠이 벗겨지지 않을 정도로만 얼굴을 더듬었다. 피곤해 보인다는 여자아이의 말을 곱씹느라 나온 행동이었다.
‘내가 그렇게 피곤해 보였나…?’
하긴, 서류작업 도중에 그 흔한 휴식 시간 하나 없이 이곳에 끌려왔으니 그럴만도 하지. 빌어먹을 내 팔자야.
당당하게 입구로 나간 후, 방향을 틀어 소리 없이 건물 주위의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물론 나갈 때 음식을 받아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세뇌를 했다면 주로 음식에 약을 타 세뇌하는 방식을 택할 테니 확인차 받아왔으나.
‘……아무 이상도 없어.’
그냥 평범한 빵과 물이다. 의외의 결과에 잠시 사고가 멈췄다.
그럼…… 어째서 그렇게 공격적으로 신도를 모을 수 있었던 거지? 설마 나도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 아니면, 정말 그 허접한 주장으로 끌어들였다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빵과 물을 미끼로?
‘…….’
머리가 멍하다. 무언가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목까지 타는 듯해 확인이 끝난 물병을 입에 대고 기울였다.
그러나 채 목구멍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누구냐.”
“푸확! 큽, 끅- 쿨럭쿨럭…!”
서늘한 음성이 몸을 짓눌렀다.
젠장 덕분에 물을 잘못 삼켰잖아. 고개까지 숙인 채 기침하던 내 시야에 잔뜩 젖은 흙바닥이 보인다. 흙이라 색 구분이 안 되는데, 저거 설마 피는 아니겠지.
음, 입안에 비릿한 향이나 짭짤한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다행히 물만 뱉은 모양인데…….
‘……다행이 아니잖아!’
들켰나? 역시 들킨 거겠지?
여기서 잡히면 여러모로 곤란하다. 아니, 곤란을 넘어 위험하다. 대충 입가를 닦아내고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집중했다.
‘3…2…1… 지금!’
아슬아슬한 상황인 만큼 판단은 빨랐고, 실행 역시 빨랐다.
나는 아무런 전조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아…!”
다행히도 쫓아오지는 않는지 낭패한 기색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만에 하나 뒤늦게라도 쫓아올까 나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달리며 사람이 없어 보이는 방의 창문을 하나하나 건드리다 유일하게 열려있는 곳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
정체 모를 인물이 사라진다. 리엔은 허탈한 얼굴로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쫓으려 한다면 쫓을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러진 않았다.
괜히 소란을 피웠다간 자신은 물론이고 안에 계실 백작님마저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그런데 어째 뒷모습이 익숙한데…….’
기침 소리마저도 익숙하다.
어디서 본 적 있는 사람인가? 난 이곳에 처음 오는 건데. 빈민이랑은 연도 없고… 응? 빈민?
그러고 보니 백작님께서 빈민으로 변장하고 잠입하셨었지.
……맙소사.
리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왜 거기에 계셨던 겁니까!!‘
안에 계셔야 할 사람이 도대체 여기서 뭘 하신 거야!
일단 무사해 보였으니 다행이긴 한데! 아니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역시 쫓을까?’
거리를 가늠하듯 가늘어진 눈이 길목을 훑어내리다 무언가를 발견한 듯 한 곳에서 멈췄다.
길 한 가운데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축축한 흙.
흙의 특성상 무슨 액체를 쏟아도 검게만 보이니 색으로는 판별이 불가능하다만, 주변 상황과 환경을 고려해 몇 가지 가설을 세우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보아하니 액체가 쏟아진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그렇다면 백작님과 연관이 있다는 뜻일 테고. 더해서 조금 전 백작님께서 심한 기침을 하셨으니…….’
평소라면 냄새를 맡는 방법도 생각해봤겠지만, 이곳은 빈민가다.
사방에서 온갖 오물 냄새가 나는 것은 물론, 바닥에서조차 시궁창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기에 리엔은 그 방법은 아예 뇌리에서 지워버렸다.
기어이 냄새를 맡겠다고 하면 못할 것도 없지만…. 귀족 출신의 기사인 그녀가 주군의 명령도 아닌 일에 굳이 정체 모를 젖은 흙을 만지거나 코를 박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정황만으로 모든 가능성을 동원해 가장 그럴듯한 가설을 세운 리엔이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설마…….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