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57
57. 구원교(7)
나는 눈을 의심했다. 상식적으로 저런 게 가능하긴 한 건가?
흐물흐물해진 벽. 잘못 본 것이 아니다. 여자의 손은 마치 물에 담근 듯 유동하는 벽에 반쯤 들어가 있었다.
‘드디어 내가 미친 건가?’
그것도 아니다. 새로 추가되었다는 신도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져 있었다.
나는 눈을 의심하는 것을 그만두고 대신 다른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하지? 마법…은 아닐 테고, 주술? 주술로 저런 게 가능한가?‘
주술에 대해 아는 것이 통 없다 보니 영 답답하다.
그 와중에도 여자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자, 따라오세요.”
여자가 벽 안으로 사라진다. 이미 겪어본 적 있는 듯한 신도들이 망설임 없이 그 뒤를 따르고, 새로 온 듯한 신도들 역시 머뭇거리다 벽에 몸을 밀어 넣었다.
마침내 모두가 들어가자, 벽은 언제 그랬냐는 듯 본래의 딱딱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유일하게 그곳에 들어가지 않고 남아있던 사제마저 다른 할 일이 있는 듯 방을 나가고, 다시 고요함이 찾아오기 무섭게 나는 곧바로 커튼 뒤에서 뛰쳐나가 여자가 손을 대었던 벽 앞에 섰다.
‘뭐지? 뭘 어떻게 한 거지?’
분명 손을 댔고, 무언가를 작게 중얼거렸다.
그것만으로는 알 수 없어 벽을 이리저리 더듬었다. 몇 번 더듬자 손 끝에 미묘한 감촉이 전해진다.
육안으로도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잘 다듬어져 손으로 만져야지만 간신히 존재를 알 수 있는─
‘보석?’
의아함은 잠시였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이건 주술이다.
귀중한 대가를 지불하고 마법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이 주술 말고 달리 뭐가 있겠는가.
마족의 마법에 대항하기 위해 인간들이 발견해낸 일종의 방식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도대체 배후가 누구길래 이런 수준의 주술까지…….’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이거 점점 불안해지는데, 여기서 그만두면 안 되나? 일반적인 사이비 종교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예상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주술이라니.
일반인은 일생을 다 살아도 주술사를 만나는 횟수가 10번을 넘기지 못한다. 그만큼 주술사는 고용하는 것도 힘들고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드는데, 여기서 주술이 등장한다는 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당장이라도 황궁으로 달려가 황제를 붙들고 못해 먹겠다고 외치고 싶지만…….
‘그놈의 크루엘…….’
황제가 쉬이 포기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크루엘이 문제다.
그 녀석에게 소원권이 넘어가는 꼴은 두 눈에 흙이 들어가도 못 본다. 차라리 여기서 깽판을 치고 말지.
’……진짜 해버려? 같이 망해버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배후를 놓친 이상 구원교는 다른 곳에서 또 일어설 테지만, 일단 본거지는 부쉈으니 황제에게 쓴소리들을 일도 없을 테고.
깽판을 친다면 어떻게 깽판을 칠지도 생각하자 너무 몰입했는지 밖이 좀 소란스러운듯한 기분마저 든다.
‘진짜 깽판을 치게 된다면…… 이것부터 깨부수게 되겠지.’
아무래도 이 주술의 매개체는 눈앞의 보석으로 보인다. 이걸 깨버리면 주술은 파훼될 터.
……부술까?
보석을 노려보며 고민에 잠겨있는데, 갑자기 바로 옆 커튼 뒤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와 내 팔을 덥석 잡았다.
그것만으로도 기겁하며 놀랄만한데 그 손은 멈추지 않고 강한 힘으로 나를 휙 끌어당겼다.
모두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필이면 화살에 맞았던 팔이라 고통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흐읍?!’
‘쉬이─’
물론 그마저도 내 입을 틀어막는 손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당황해 시선을 위로 올리자 나를 내려다보는 담담한 녹색 눈과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치밀어오르는 혐오감을 이기지 못하고 거칠게 뿌리치려 했으나,
벌컥!
조금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사제복을 입은 남자 탓에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그 사제는 아니다. 처음 보는 얼굴의 사제는 다급한 표정으로 이쪽을 향해 거의 뛰다시피 오더니, 조금 전까지 내가 노려보고 있던 보석을 꾹 누르고 옆으로 비틀었다.
“빨리빨리…!!”
……왜 저렇게 다급해 보이지? 아니, 근데 밖은 왜 이리 시끄러워?
어렴풋이 ‘주군을 내놓아라!’ 등의 외침이 들리는 것이 어째 좀 불길하다. 그러고 보니 리엔 경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수 초의 시간이 흐르고, 보석에서 약간의 잡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금세 선명해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죠?”
“침입자가 들어왔습니다!”
“……그렇군요. 수는 얼마나 되죠?”
“한 명입니다!”
“……한 명이라고요?”
“예, 지금 ‘주군’이란 사람을 찾으며 건물 내부를 헤집고 있습니다!”
콰아앙!!
타이밍 한 번 끝내주게 굉음이 울렸다.
이미 열려있는 문을 재차 발로 걷어차 이목을 모은 여자가 당황한 채 멍청히 서 있는 한 사제를 발견하고는 애써 침착함을 가장한 목소리로 거칠게 말했다.
그녀의 손에는 이곳 경비에게서 빼앗은듯한 검이 한 자루 들려 있었다.
“주군께선 어디에 계시지?”
“…….”
“…….”
황당함과 당황스러움에 그 누구도 말을 잇지 못하고 보석 너머의 목소리조차 침묵하는 사이, 나는 골때리는 침입자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슬그머니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위에서 집요한 시선이 느껴졌으나 애써 무시했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난 모르는 일이다. 난 저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다. 아무튼 모른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야.
‘……제기랄.’
댁이 왜 거기서 나오는 건데…?
***
와장창!
“뭐, 뭐야!”
요란스러운 침입이었던 만큼 경비는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몸에 붙은 유리 조각을 털어낼 시간도 없이 리엔은 그들이 아직 얼빠져 있는 틈을 타 재빠르게 근처에 있는 놈의 뒷목을 가격해 쓰러트리곤 검을 빼앗았다.
자신의 검이 아니라 조금 어색하지만 큰 문제는 없다. 그럼 이제 백작님의 행방을 알아야 하는데…….
검을 고쳐 쥔 리엔이 주위를 죽 훑었다. 그녀의 실력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시선이 닿은 이들이 저마다 흠칫하며 물러선다.
“……주군께서는 어디에 계시지?”
자신은 고용된 것일 뿐이지 충성맹세를 한 것이 아니니 본래는 주군이 아니라 백작님이라 불러야겠지만……. 이 상황에서 백작님의 존재를 널리 알려서는 안 되니.
‘죄송합니다 백작님. 이 책임은 반드시 지겠습니다.’
속으로 짧은 사과를 남기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덩달아 한 걸음 물러서는 꼴들이 제법 볼만했으나 지금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이렇게 시간을 지체하고 있는 사이, 백작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찌한단 말인가!
“아무도 모르는 건가?”
“…….”
“그렇군. 그럼…….”
“그, 그 주군이라는 사람이 누군데!!”
아무도 모른다면 그냥 보내주고 다른 사람을 찾아보려 했는데, 뜻밖의 다급한 외침이 돌아왔다.
멈칫한 리엔이 그 말을 한 이를 돌아봤다.
……그러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데온 하르트 백작? 영웅? 어느 쪽이든 정체를 밝히는 셈이니 말해서는 안 될 테고.
잠시 깊은 고민에 빠졌던 그녀는 결국,
“……내 주군이시다.”
이렇게 얼빠진 대답만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순간 제 귀를 의심하는 듯 멍해진 놈들을 그대로 지나쳐 문으로 향했다.
이놈들은 운이 좋다. 이 소란을 널리 알릴 이들이 필요하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엉망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을 테니까.
‘나름대로 고민을 해봤지만…….’
역시 자신은 계략, 계책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효율적으로 백작님을 찾아 구출하는 방법 따위, 모른다.
그러니 자신은 오늘 이곳에서 소위 말하는 ‘깽판’을 친다. 웬 기사가 ‘주군’이란 사람을 찾으며 날뛴다면 분명 찔리는 이가 한둘 정도는 나오겠지. 놈들은 분명 누군가에 보고를 하든 자신이 해결을 하든 무언가 움직임을 보이려 할 테고, 자신은 그런 놈들을 쫓으면 되는거다.
“주군을 내놓아라!”
“아, 그러니까 그 주군이 누구냐고!!”
“네놈은 모르는 모양이군.”
“에이씨 진짜!!”
리엔은 검을 휘두르며 구원교 내부를 거침없이 헤집기 시작했다.
죽이진 않았다. 백작님의 명령이 떨어진 것도 아닌데 굳이 살인을 해 일을 키울 필요는 없으니까.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침 일반인들도 보이지 않아 한 층 더 거리낌 없이 난리를 치기를 한참, 드디어 그녀의 눈에 한 수상한 사제가 들어왔다.
이 난장판을 보더니 기겁을 하며 어디론가 달려가는 모습.
‘저놈이다!’
저놈을 쫓아가면 백작님의 행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한 척, 계속해서 종횡무진 건물 내부를 활보하며 자연스럽게 그 뒤를 쫓았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가는 길에 수많은 이들이 흔적처럼 늘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바삐 뛰던 녀석이 어느 복도 끝의 문을 열고 쏙 들어간다.
놈의 뒤를 따라 들어가기 전에, 그녀는 문득 한 가지 가정을 떠올렸다.
‘어쩌면 이건 함정일지도 몰라. 만약 그렇다면…….’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더 강하게 들어간다.
어쩐지 살인귀 기사단원들에게 물들어버린 듯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어차피 안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저 안에 몇이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제 휘하의 기사단원들을 떠올린 리엔이 피식 웃었다.
‘어차피 난 미친개들의 통솔자이니.’
제대로 미친개가 되어 날뛰어주마.
콰아앙!!
이미 열린 문을 걷어차 빛나는 인성을 선보이며 그녀가 안으로 난입한다.
자신이 쫓았던 사제로 보이는 이를 발견해 검을 겨누는 것이 첫째였고, 주위에 몇이나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둘째였다.
눈앞의 사제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에 당황한 것도 잠시, 리엔은 애써 침착한 척 제 감정을 숨기고 낮게 물었다.
“주군께선 어디에 계시지?”
***
– 주군께선 어디에 계시지?
“…….”
사에린은 보석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기껏 경비를 강화하라는 말도 해놓았건만, 이렇게까지 무능할 줄이야. 크루엘 하르트가 들어온 것도 눈치채지 못했을 때부터 알아봤다.
같은 주인을 모시는 사이라 망정이지, 건물 내부에서 딱 마주쳤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가.
간신히 놀란 마음을 다스리기 무섭게 떠올린 것은 데온 하르트도 같은 임무를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크루엘의 침입을 눈치채지도 못했다면 데온 하르트의 침입은 더욱 쉽게 허용할 것이라는 생각 역시도.
거기까지 생각하자 문득 붉은 눈의 빈민이 떠올랐으나 다시 나와 그를 찾았을 땐 이미 사라진 뒤였기에 더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더니만 ‘주군’을 찾으며 쳐들어온 기사라니.
‘확실해.’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문 앞에서 쫓아냈던 그 수상한 기사다.
‘주군’을 찾으며 쳐들어온 ‘기사’. 그리고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각에 방문했던 붉은 눈의 빈민.
사에린은 평민 출신이지만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편이다. 이렇게나 딱딱 맞는 단서가 나온 이상 상황 파악은 순식간이었다.
‘데온 하르트구나. 분명 보초들이 나가는 걸 봤다고 했는데, 둘이 엇갈렸나? 아니, 어쩌면 아직 이 안에 있을지도.’
물론 상황을 파악했다 하여 무언가 조치를 취할 생각은 없다.
조치할 수도 없거니와, ‘구원교’의 소기의 목적은 이미 달성한 지 오래고, 남은 것은 정리뿐이니까. 그저 이곳을 정리하는 이가 데온 하르트가 아닌 크루엘 하르트이기를 바랄 뿐이다.
이대로 지켜보다가 데온 하르트가 먼저 핵심에 도달하려는 낌새가 보일 때, 그때만 내가 직접 나서 정리하면 되겠지.
그전까지 나설 필요는 없다. 공작님께서도 그리 말하셨기에 사에린은 평소와 같이 행동하는 것 외에 무언가를 굳이 나서 할 생각이 없었다.
‘난 할 만큼 했어.’
경비도 강화하라 경고했고, 중요한 서류는 가장 깊숙한 곳에 꽁꽁 숨겨놓았다.
지금 상황에서 최우선으로 생각할 것은 저 기사에게 벽에 박힌 보석의 존재를 들키지 않는 것.
분명 알아차리기 무섭게 깨버리리라.
주술이 깨져서가 아니다. 절대 들켜서는 안 되는 것이 들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공작님의 모든 것을, 심지어는 그분의 목숨조차 위협할 수도 있을 정도의 비밀이…….
‘그러니 절대 들켜서는 안 돼.’
혹여나 숨소리마저 저쪽으로 넘어갈까 조심하며, 사에린은 가차 없이 바깥과의 연결을 끊고 돌아섰다.
방의 문을 열고 나간 그녀는 주르륵 앉아 이쪽을 바라보는 이들을 향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잠시 실례했네요. 그럼 계속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