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61
61. Fate or Destiny(3)
“흐아아악!!”
“할머니?!”
“할머니! 정신 차리세요!!”
그게 이 빌어먹을 삶의 시작이었다.
그저 어쩌다 우연히 주술사 할머니께 점을 본 것이 전부였다.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할머니가 비명을 지르며 내게서 한껏 떨어졌을 때는 어찌나 놀랐던지.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날 이후 할머니는 노망이 났다. 그것은 불행의 시작이기도 했다.
단은 아직도 그녀가 한 말을 기억한다.
‘재앙의 강력한 지지자, 혹은 앞잡이가 될 거라 했던가.’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이 그 말만 수군거리며 날 피하는데.
이 작은 마을에서 소문이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단을 꺼렸고, 그것은 할머니의 손녀인 란이 말리려 들었음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만 덩치를 키워 ‘꺼림’이 ‘배척’으로 변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도통 적응할 수 없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던 이들이 자신을 배척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온종일 그 누구도 자신에게 말을 붙이지 않던 순간.
마을 축제 때 홀로 밤을 새워야 했던 순간.
언제부턴가 집 앞에 각종 오물이 놓이기 시작한 순간.
단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 예언 하나 때문에.’
이 얼마나 미개하단 말인가.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웃음과 달리 그의 두 눈은 금방이라도 실핏줄이 터질 듯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지금 내가 억누르고 있는 것은 눈물일까, 분노일까.
난 지금까지 이들과 무엇을 했던 거지?
작디 작은 마을에서 배척당한 사람의 삶이 각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겠다, 그대로 이 도태된 마을을 떠나 도시로 향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단은 버텼다.
‘내게서 재앙을 봤댔지.’
미래에 나와 엮인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내가 이곳에만 머물고 있으면 그 ‘재앙’이 이쪽으로 오지 않을까.
물론 운명이 엮여있는 이상 도시에 가서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내가 ‘재앙’을 알아차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 않나.
이곳에서 기다리자.
노망이 났다 해도 실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닐 테니 할머니는 ‘재앙’을 단숨에 알아볼 것이다. 지금의 성격을 봐서는 그대로 배척하려 들 테고.
그때 재앙의 편에 서면 쉽게 호의와 신뢰를 얻을 수 있으리라.
재앙과 엮이지 않으려 해도 모자랄 판에 단이 굳이 재앙의 편에 서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이렇게까지 내가 재앙의 편에 설 거라 확신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 기대를 충족시켜줘야지.’
단은 당하고 가만히 있는 호구가 아니다. 특히나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면 더더욱.
아직 무언가를 행하지도 않았는데 배척당하고 있으니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버티고 버텨 끝내 ‘재앙’의 얼굴을 본 순간, 그는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당신이었어?’
운명이라는 것이 뭐길래.
흰 머리와 붉은 눈.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 한들 그 인상적인 외모를 쉬이 잊을 리가 없었다.
“갑자기 데려가 달라니 어이가 없군. 누가 너처럼 수상한…….”
“그만.”
경계심 가득한 호위의 말을 끊은 남자가 천천히 다가온다. 새빨간 눈동자가 기묘한 흥미를 담고 이쪽을 위아래로 훑었다.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에 단은 마른침을 삼키며 자세를 고쳤다. 바짝 긴장한 와중에도 저를 뜯어보는 듯한 눈은 절대 피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산골 마을에서만 살아온 단이라지만 눈앞에 사내의 정체만큼은 안다. 모를 수가 없었다.
10년 전, 8년 전쟁이 터졌을 때 어느 순간부터 급격히 유명해진 이름, 데온 하르트.
‘전쟁 당시에는 ‘피에 미친 선봉장’과 ‘살인귀 부대의 주인’으로 유명했고.’
전쟁이 끝난 뒤로는 마지막 용사의 마지막 동료이자 제국의 영웅으로 유명했다.
수많은 그의 칭호를 떠올린 단이 그중 가장 인상 깊은 칭호를 떠올렸다.
‘뱀파이어 백작.’
그래, 뱀파이어 백작.
재앙이 되기에 손색이 없는 칭호다.
거기까지 생각한 단이 씩 웃었다.
그를 본 데온의 두 눈에 이채가 깃든다.
그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
정신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저택에 도착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을 확인했다.
대충 오후 5시쯤 되었으려나. 시간을 질질 끌어서 좋을 것은 없을 테니 오늘 바로 일을 끝내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넌 왜 따라온 건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찍이서 나를 훔쳐보던 남자가 일행에 자연스럽게 합류되어 있는 건 뭘까.
“리엔 경. 저 남자는…….”
“아, 단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여전히 저는 녀석이 못 미덥지만… 주군께서 친히 데려가겠다 하셨으니 계속 반대하는 것 역시 불충이겠지요. 시정하겠습니다.”
그새 통성명까지 했어?! 아니, 도대체 언제?
리엔의 말을 들어보니 내가 데려오기로 한 것 같긴 한데…. 기억이 전혀 나질 않는다.
나는 이에 대해 깊게 고민하며 끙끙 앓기보다는 낙관적으로 생각하기로 판단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아서 스트레스받고 있거든. 여기서 뭔가 더 얹어졌다간 골치 아프다.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
적어도 어딘가에 쓸모가 있어서 데려왔으리라.
이를테면 싸움을 잘한다던가, 아는 것이 많다던가…….
“배움이 모자라 아는 것이 적고, 전투도 영웅이신 마스터께서 만족하실 수준은 아닙니다.”
“…….”
도대체 얘를 왜 데려왔을까. 얜 또 왜 덥석 따라온 거고? 그리고 그 ‘마스터’란 호칭은 또 뭐야?
할 말은 많지만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것이 없다. 나는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단을 보다가 이내 주술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절대 현실외면이 아니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미뤄두는 것뿐이지.
“간단한 준비만 끝내고 바로 출발할 생각인데 괜찮겠습니까?”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도 되겠습니까?”
“일단 말해보세요.”
“귀인께서는 주도자들뿐만 아니라 무고한 이들의 목숨도 앗아갈 생각이신지요.”
“무고한 이들이라 하면?”
“단순히 주도자들에 의해 홀린 이들도 포함한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하려던 나는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고 잠시 멈칫했다.
‘내가 구원교에 간다고 말을 했었나…?’
따로 증명 같은 건 안 해도 되겠다. 이 사람은 주술사가 확실해. 아닐 수가 없다. 어우씨, 온몸에 다 소름이 돋았네.
오돌토돌해진 팔을 쓱쓱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사람에게 거짓말은 하고 싶지도 않고, 해봤자 금세 들통날 테니까.
나는 구원교의 일반 신도들도 모조리 죽일 생각이다.
‘잘못된 종교에 홀린 이들을 과연 무고한 이들이라 할 수 있을까.’
주술사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다.
종교에 미친 이들은 그야말로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 괜히 광신도라는 말이 있겠는가.
자신들이 믿는 종교가 무너진다면 아마 그들은 여러 방면으로 미쳐 날뛸 것이다.
종교를 무너뜨린 이를 죽이려 할 수도 있고, 제2의 구원교를 만들 수도 있다.
좌절하여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것은 얌전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의 반응들이 튀어나오리라.
그러니 괜히 찝찝하게 뒤끝을 남길 것 없이 전부 죽여버리는 쪽이 낫지.
주술사 란의 표정이 굳었다.
“벌써부터 많은 피를 흘릴 필요는 없습니다.”
어감이 미묘하다.
죄 없는 제국민들을 해쳐서는 안 된다거나, 목숨은 소중하다던가, 혹은 주술사들이 흔히들 언급한다는 업보 타령을 하며 말릴 줄 알았더니만, ‘벌써부터’ 많은 피를 흘릴 필요는 없다니.
이건 마치 앞으로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된다는 의미 같지 않나.
“……뭔가 알고 있습니까?”
“대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는 귀인을 위한 말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홀렸을 뿐인 이들은 제하여 주십시오. 거절하신다면 전 귀인께 도움을 주지 않겠습니다.”
표정을 보아하니 목에 칼이 들어온다 해도 안 할 꼴이다.
이래서야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
결국 나는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갈 인원수를 늘려야겠군요.”
다 죽인다면 모를까, 사람을 골라서 죽이려면 좀 더 많은 인원을 데려가는 것이 편하겠지.
“무리한 청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뭐… 그나저나 그쪽은…….”
내 시선이 닿기가 무섭게 한 남자가 지극히 공손한 어조로 답했다.
“편하게 단이라 불러주십시오.”
“그래, 단은…….”
“저도 따라가면 안 되겠습니까?”
“안 돼.”
놈의 얼굴이 우울하게 내려앉는다. 나는 되레 어이가 없어졌다.
따라가긴 어딜 따라가. 너 싸움 못 한다며. 죽인다는 말 못 들었어?
“넌 일단… 저택에서 기다리도록 해. 레멤베르에게 말해놓을 테니 문제는 없을 거야.”
싸움도 못 하는 녀석이 따라와봤자 짐만 된다.
물론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신분이 다르잖아? 나는 호위가 있지만 얜 없고. 내가 이놈을 지키라고 명령을 내린다 해도 한계가 있을 건 당연하다.
이를테면 나와 이 녀석이 동시에 위험에 빠졌을 때라던가.
내가 어떤 이유로 이 녀석을 데려왔건, 그런 식으로 허무하게 보낼 생각은 없다.
그러니까 안 돼.
“제가 짐이 되기 때문이군요.”
“…….”
잘 아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거기에서 긍정을 읽은 녀석이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한다.
그러더니 뭔가 결심한 듯 고개를 들고 나를 똑바로 마주했다.
“제게 검을 가르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제가 감히 마스터를 귀찮게 할 수는 없지요. 그저 기본적인 검술이라도 가르쳐 줄 사람을 붙여주시면 절대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무슨 가문의 검술을 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 애초에 가문의 검술 따위 내겐 없기도 하지만 – 무리한 부탁은 아니다.
그렇게까지 날 따라오고 싶을까.
이번은 보내주겠지만 다음번엔 반드시 따라붙겠다는 의지가 여기까지 느껴져 나는 슬쩍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불타오르는 듯한 환영까지 보일 정도라 차마 거절할 수가 없다.
뭔가 굉장한 스토커가 생긴 것 같지만, 기분 탓일 거야.
‘……그런데.’
문득 치솟는 의문에 도르륵 눈을 굴려 다시 그를 쳐다봤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의문 하나.
왜 난 이 녀석을 순순히 믿고 있는 거지?
어딜 봐도 수상하기 짝이 없는 이 녀석을, 왜?
‘조만간 일대일 상담이라도 하든가 해야지.’
녀석의 목적을 확실히 알아봐야겠다.
지금은 바쁘니 일이 끝나고 돌아오자마자 대화를 나누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난 어느새 마중 나와 있는 레멤베르에게 간단하게 단을 소개하고는 말했다.
“앞으로 함께 지내게 될 테니 적당한 방을 하나 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택에서 놀고 있는 기사들이 아주 많지 않습니까?”
“아주 많습니다.”
“잘 됐군요. 그 중 적당한 이에게 단에게 검술을 가르쳐주라고 전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 정도면 대충 됐고.
“그리고 리엔 경.”
“예, 주군.”
“놀고 있는 기사들 중에서 그나마 정상적인 놈들로 10명 정도 차출하려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차 한 잔 정도 즐기며 기다려주시면 그 안에 끝내겠습니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
달그락.
나는 내 앞에 놓인 찻잔을 떨떠름한 눈으로 내려다 봤다.
또 그 차다. 마실 때마다 화장실로 날 고생시켰던 그 빌어먹을 차. 아직도 남아 있었나.
황태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이 보낸 거야? 마음 같아선 싹 다 불태워버리고 싶지만 황태자가 준 것을 함부로 대할 수도 없고.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단이다.
대충 적당한 기사를 붙여두라 했다만, 사실 이 저택에서 놀고 있는 기사는 미친개들밖에 없으니.
‘약이라도 권하지 않으면 다행인데…….’
……아니 잠깐만. 진짜 권할 것 같은데?
그놈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나는 사색이 된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배, 백작님?”
“……지금 당장 가서 레멤베르에게 전해. 기사들이 단을 가르칠 때 딱 검술만 가르치게 하라고.”
쓸데없는 걸 가르치지 못하게 하라고.
이를테면 약이라든가, 약이라든가, 약이라든가.
내 주변에 미친 놈이 더 늘어나는 건 사양이다.
‘미친놈은 지금도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