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63
63. 소탕(2)
서둘러 놈들을 말리며 리엔을 돌아봤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충분히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눈치챘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나마 멀쩡한 놈들로 데려오라 했는데…….’
‘저게 그나마 멀쩡한 놈들입니다.’
단원들을 두들겨 패던 그녀가 곧장 눈빛으로 답을 해왔다. 노골적인 눈빛을 바로 읽어낸 나는 잠시 의문을 가졌다.
그나마 멀쩡한 게 저거라고? 정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느 정도 정상인 흉내를 낼 수 있는 놈이 한둘 정도는 있지 않을까?
리엔의 말대로 저놈들보다 더 나은 놈이 없는지 잠시 머릿속을 뒤적였다.
‘……없네.’
바닥에 나뒹구는 약을 아깝다는 듯 쳐다보는 클레터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없어.’
내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지는 것과 별개로 여기서 마냥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수도 없다.
어느 정도 소란이 잦아들었다 싶을 때, 약을 빼앗기고 시무룩해져 있는 놈들을 한심하게 보던 나는 힐긋 란을 쳐다봤다.
아직도 마음이 바뀌지 않았느냐는 내 무언의 질문을 눈치챈 그녀가 작게 끄덕인다. 제길.
“……싹 다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홀렸을 뿐인 이들은 제외해야 한다. 그러니 약은 안 돼.”
“너무 무르십니다만…….”
“어째서 저희를 데려오신 건지 이해했습니다. 빈민 구별에는 저희가 제격이겠죠. 다만 혼란스러운 상황이 될 텐데 굳이 그 와중에 빈민인지 아닌지를 구별해야 합니까?”
나도 알아 새끼야. 근데 어쩔 수 없잖아. 주술사가 협조를 안 하면 계획이고 뭐고 끝인걸.
“건물 내부에 불을 지를 거다. 이때 튀어나오는 놈들 대부분이 종교에 홀린 일반인들이겠지. 너희 중 넷은 외부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그들 사이에 숨어있는 수상쩍은 놈들을 골라 죽이고─”
굳이 생포할 필요는 없다. 만일 일반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도망칠 수준이라면 잔챙이일 테니까. 아마 몇 명 정도는 놓쳐도 큰 문제 없으리라.
좀 높은 자리에 있는 놈들이 숨기거나 챙겨야 할 것이 있을 테니 더 깊숙이 들어갈 테지. 나는 그 ‘숨기거나 챙겨야 할 것’을 입수한다.
없어도 상관없다. 그런 게 있을 만한 위치는 이미 알아두었으니까.
“─나머지 여섯은 내부에서 분탕질을 한다. 마찬가지로 수상쩍은 놈들을 죽이면 돼. 연기가 보일 때 들어가면 되겠군. 아, 그리고 만일 어디론가 가려는 것처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녀석이 있다면 너희 중 일부가 추적하도록 해.”
“불은 누가 지릅니까?”
“내가.”
일부러 연기가 잘 나고 오래 지속되는 재료를 챙겨왔다. 인적 드문 곳에 불을 붙이고 던져두면 되겠지.
주술사 씨는 당연히 나와 같이 다녀야 하고, 리엔은 내가 싫다 해도 따라올 테니 결국 남은 인원은 없는 셈이다. 음, 깔끔해.
”그런데…….“
”응?“
”계획이 뭔가 이상한 것 같습니다.“
클레터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뭔가…….”
”지금 주군의 명령에 토를 다는 것인가?“
”아뇨, 시키면 해야죠. 그런데…….“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제 기사복을 내려다보고 나를 쳐다보는 모습.
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겠다.
“빈민들을 살려 보낸다는 점에서 헷갈린 것 같은데, 이 일은 조용하게 처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야. 그러니 살인귀 기사단이 깽판을 쳤다는 걸 온 천지에 알려도 돼.”
아니, 알려야지. 그래야 내 공로가 인정된다.
물론 이런 식으로 막 나가면 당연히 나를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황제가 더 욕을 먹겠지만, 내 알 바 아니다.
황제가 욕먹는 것을 신경 쓰는 사람도 아니고, 설사 나를 질책하고 싶다 해도 그의 명을 따른 것뿐이니 큰 문제는 없으리라.
“그럼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대기해.”
“예.”
저들을 뒤로 하고 성큼성큼 건물 뒤쪽을 돌아 창문을 하나하나 만졌다. 저번의 그 열려있는 창문을 통해 들어가려 했는데…… 죄다 잠겨있네?
‘하긴, 그 난리를 쳤는데 보안이 여전하면 그게 더 수상하지…….’
큰일났다! 정문 외의 다른 출입구는 모르는데!
슬쩍 리엔과 주술사를 돌아보았다. 둘도 다른 방도가 없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민망한 바람이 우리 사이를 스쳐 지나간 것도 잠시, 그 사이 무언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란이 느릿하게 입을 뗐다.
“혹 데려온 기사들 중 창문 여는 법을 아는 이가 없는지 알아보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으음?”
“이곳에 데려온 기사들은 전부 빈민이라 들었습니다. 세상에 몇 번 나가보지 않아 확언을 드릴 수는 없지만, 제가 지금까지 만나본 빈민들은 대부분이 다양하고 흥미로운 기술을 익히고 있더군요.”
아하.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다.
그러고 보니 제법 재밌는 손재주를 가진 단원들이 꽤나 있었지. 이를테면 소매치기라던가 문을 따는 법이라던가…….
더 지체할 것 없이 리엔에게 가서 확인해보고 그런 단원이 있으면 데려오라 말했다. 그런데 평소라면 곧장 말을 들었을 그녀가 이번엔 망설임을 보인다.
“주군을 또 혼자 둘 수는…….”
“혼자 아닙니다. 이렇게 주술사도 있는 걸요. 가만히 기다릴 테니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
“……?”
뭐지? 단지 그것 뿐만은 아닌 것 같은데?
영 내키지 않아 하는 기색을 보이며 멀어지는 리엔의 뒷모습을 의아함을 담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단원 한 명과 함께 돌아오고,
그제야 나는 무엇 때문에 그녀의 심기가 어지러운지 알 수 있었다.
‘리엔은 기사였지.’
도둑처럼 창문을 따야 하는 이 상황이 불편했을 것이다.
언제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 주군이 위험한 상황도 아니고, 조금만 더 조사해보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굳이 창문을 따는 것을 택했으니.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입을 다물고 있을 뿐, 아마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조심스럽게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말했을 게 뻔했다.
내가 뭐라 말을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나는 리엔의 기색을 모른 척 시선을 돌려 능숙하게 문을 따내고 한껏 뿌듯해하는 단원을 돌아봤다.
“이게 여기에 이렇게 쓰일 줄이야…! 감회가 새롭네…….”
“그래, 수고했어. 이제 돌아가.”
“헉, 너무 매정하십니다. 좀 더 칭찬을 해주셔도 되는데…….”
입은 투덜대지만 행동은 착실히 명령에 따른다. 툴툴대며 돌아서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무심코 헛웃음을 흘렸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저놈들도 말만 미친개일 뿐, 상황 파악은 참 잘한다. 눈치가 있달까.
하긴 눈치가 없으면 그 전쟁터에서 살아남지도 못했겠지만, 그래도 기특하단 말이지.
그래서일까, 나는 조금 누그러진 마음으로 놈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빨리 가.”
“예에…….”
단원이 멀어지기가 무섭게 우리는 열린 창문을 붙잡고 넘었다. 아, 물론 내부에 사람이 있는지 정도의 최소한의 확인할 것은 다 확인했다.
당연하다는 듯 내 두 일행도 말없이 나를 따라 창문을 넘는다. 란이 조금 버거워하긴 했지만 리엔이 번쩍 들어 올려준 덕분에 큰 문제는 없었다.
이전에 넘었던 그 창문이 아닌 터라 생소한 풍경 앞에 잠시 멈춰선 나는 짧은 고민에 빠졌다.
‘어디가 좋을까…….’
불이 너무 빨리 발견되어서도 안 되고, 연기가 퍼지는 것이 너무 늦어서도 곤란하다.
이곳의 지리라도 안다면 모를까, 알 턱이 없어 망설이던 찰나, 리엔이 먼저 나섰다.
“주군께서 생각하시는 적합한 장소를 말씀하시면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리엔 경? 어떻게…?”
“그, 저번에 주군을 찾을 때 대부분의 복도와 방을 가봤습니다. 지리는 어느 정도 파악해두고 있습니다.”
그게 이렇게 도움이 되는구나. 세상 참…….
미묘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내가 생각한 조건을 늘어놓았다. 진중한 태도로 내 말을 귀담아들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내하기 시작했다.
리엔의 뛰어난 기척 파악으로 몇 차례의 위기를 무탈히 넘기며 이동한 것도 잠시, 지리를 어느 정도 파악했다는 게 빈말은 아닌지 그녀는 생각보다 빠르게 적합한 장소를 찾아냈다.
“여기입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괜찮은 것 같군요.”
“그럼…….”
“네.”
들고 온 재료에 불을 붙였다. 어우, 벌써부터 연기가 아주…….
리엔이 내민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며 그것을 바닥에 내던졌다.
벌써부터 시야가 가려지기 시작한 것이, 내가 재료 하나는 기가 막히게 준비한 모양이다. 다량의 연기를 뿜어내는 그것을 불안함 반, 뿌듯함 반을 담아 보다가 몸을 돌렸다.
이제부턴 시간 싸움이다. 수상함을 눈치챈 수뇌부가 중요한 증거물을 빼돌려 도망치기 전에 먼저 그것을 탈취해야 한다.
“서두르죠.”
리엔의 안내 덕분에 예의 그 기도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여전히 흰색의 벽과 보라색 천이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고 있는 내부였으나, 나는 이번만큼은 주위를 둘러보는 대신 곧바로 해결해야 할 일을 찾아 주술사를 이끌었다.
어차피 더 볼 것도 없을 테니까.
그나저나 사람은 없군. 여기가 아닐 리는 없을 텐데. 이미 안에 있는 건가? 아니면 이건 함정?
‘……솔직히 증거가 남아 있으리란 확신은 없어.’
리엔이 그 난리를 쳐놓았으니까. 저번의 그 사건으로 경각심을 가진 수뇌부가 이미 중요한 단서나 증거물은 다른 곳으로 빼돌렸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곳에 다시 온 이유는,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어찌 되었건 이번 일로 구원교는 박살이 날 것이다. 재기의 가능성이나 제2의 구원교의 가능성을 제하고 보면 그렇다.
수뇌부가 주요 서류를 빼돌렸다면 크루엘 역시 그것을 찾아내지 못할 테니 상황만 놓고 보면 결국 이 게임의 승자는 내가 된다.
주요 서류는 크루엘이나 나나 둘 다 못 찾았다.
구원교 와해는? 내가 했다.
그럼 승자는 누구겠는가.
속으로만 하는 생각이지만 솔직히 수뇌부가 장부를 빼돌렸으면 하는 심정이다. 그것은 내가 찾으면 가산점의 요소가 될 뿐이지만, 크루엘이 찾을 경우 이 게임의 판을 뒤엎는 중요한 패가 될 테니까.
그래서 이렇게 막무가내식의 허술한 계획을 계획이랍시고 들고나온 것이다.
‘어쨌거나 들어가 보면 알겠지.’
단상 위로 올라가 늘어진 보라색 천을 치웠다. 란의 눈동자가 곧바로 벽의 어느 한 지점에 내리꽂혔다.
“보석을 주 매개체로 한 주술인 모양이군요. 통신 기능에 파괴되면 곧바로 신호가 가게 하는 기능도 있고, 공간 왜곡 기능도 있는 것 같은데…….”
“그렇군요. 이곳을 지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
“……?”
“……잠시, 잠시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무언가… 무언가가…….”
말꼬리가 늘어진다.
처음의 담담하던 시선은 이상함을 감지한 듯 진중해졌고, 고요하던 검은 눈동자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얼마 못 가 경악으로 바뀌었다.
“……어째서… 이곳에…….”
“왜 그럽니까?”
“어째서 이곳에 마법이 걸려있는 겁니까?”
“……예?”
“이건 주술이 아닙니다. 주술을 위장한 마법이지.“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이건 완전히 예상 밖의 말이다.
마법이라니. 당연히 주술일 거라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마법이라고? 인간계에서?
이건 심각한 문제다. 아무래도 얼마 못 가 다시 마계에 가게 될 것 같은데…….
‘윽, 위장이…….’
생각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이는 기분이라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주술사와 리엔을 돌아봤다.
주술사인 만큼 상황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확실히 느끼고 있는 란은 굳은 얼굴로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는 리엔에게 이 장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설명을 하고는 있지만 생각에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공간 왜곡 기능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마법과 주술의 차이를 아시는지요?”
“마법은 세계의 규칙을 어기는 것이고, 주술은 일정 대가를 바치고 규칙을 살짝 비틀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사용하는 것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만…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이 공간 왜곡을 예를 들어보자면, 아니 왜곡도 아니겠군요. 이건 아예 다른 공간을 접목한 것이니.”
“접목 말입니까?”
“네, 전혀 다른 공간을 이 보석을 통해 연결해놓았습니다. 아마 이 벽을 부수면 그 뒤는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그 말은 즉, 만일 보석을 부수었다면…….”
“연결된 공간으로 넘어가는 것은 요원한 일이라는 뜻이 되겠지요.”
그 말에 괜히 내가 찔린다. 안 부수길 잘했네.
아무튼 지금 내가 궁금한 것은 그게 아니다. 내가 궁금한 것은 두 가지다.
누가 마법을 걸었는가.
이것을 통해 ‘그’ 공간으로 넘어갈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