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8
8. 0군단장 데온 하르트(6)
“……이곳에서 지내는 데 불편한 점은 없나?”
“딱히 없습니다.”
있어도 없어야 할 판이다.
군단장들은 다들 어딘가 엇나가 있다고 했던 마왕의 말을 상기하며 군더더기 없이 답하자, 제이카르가 미묘하게 굳은 얼굴로 내 표정을 꼼꼼히 살폈다.
“딱히, 라고 한다면… 있긴 있다는 건가.”
“네?”
“아무래도 그대는 인간이니 불편한 점이 없을 수가 없겠지. 그러니 참지 말고 말하도록. 할 수 있는 한 편의를 봐주겠다.”
뭐지 이건. 배려…인가? 난 마왕이 직접 데려온 인력이니 직접 신경 써주는, 뭐 그런 거?
그럴 리가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나’ 하는 생각을 품던 찰나, 제이카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마치 눈치를 보듯, 한층 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괜히 성을 뒤엎는다거나 그러지 말고….”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역시 그럴 리가 없지. 으아아아아, 죽고 싶다.
저건 분명 정원에서의 일을 돌려서 까고 있는 거다. 왜 쓸데없이 정원에 불을 질렀냐고 질책하고 있는 게 분명해.
동시에 이건 경고다. 한 번만 더 그런 쓸데없는 짓을 벌였다가는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고.
두려움에 막혀버린 목구멍을 꾸역꾸역 뚫어내고 억지로나마 대답을 뱉어내니, 그제야 그가 다시 음식에 집중한다. 그러자 옆에서 묵묵히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아실드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러려 했다.
“어머, 데몬 님. 오랜만에 뵙네요?”
갑자기 끼어든 4군단장만 아니었다면.
아실드의 미간에 골이 팼다. 내 미간에도 골이 팰 뻔했으나 다행히 직전에 표정 관리를 할 수 있었다.
‘역시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어.’
1군단장부터 시작해서 3군단장과 4군단장까지. 예상치도 못했던 이들이 자꾸 꼬이니 그렇지 않아도 간당간당했던 내 정신이 아예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있다.
벤이 무슨 말을 하든 버텼어야 했다며 진득하게 후회하고 있는데, 옆에서 낮게 깔린 목소리가 느릿하게 고막을 파고들었다.
“이델리아, 알면서 그런 거지?”
척 듣기에도 이를 악문 듯한 목소리.
그 대상이 내가 아님을 아는데도 절로 흠칫하게 만들 정도였으나, 4군단장 이델리아는 아무렇지 않은 듯 오히려 요요하게 웃으며 부채로 입가를 가렸다.
“내가 뭘?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는데?”
“헛소리.”
아실드가 으르렁거린다.
맞다, 저 둘은 원래 사이가 안 좋았지. 나는 이미 구멍투성이가 되어버린 샐러드를 또다시 포크로 쿡쿡 찌르며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애써 외면했다.
물론 속은 말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음식을 패대기치고 싶을 정도로… 아, 이미 한 번 그랬지.
먹은 게 없는데도 체할 것 같다.
이러다 정말 얹힐 것 같아 조용히 포크를 내려놓자, 상황을 지켜보던 제이카르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둘을 불렀다.
“둘 다 그만. 지금 누가 앞에 있는지 잊은 것 같은데.”
“……아.”
“죄송합니다.”
짜기라도 한 듯 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당혹스러움에 서둘러 고개를 저어 괜찮다는 의사를 표하니, 이델리아가 남은 내 옆자리에 앉아 슬그머니 말을 붙였다.
“정원을 불태우셨다면서요?”
“이델리아.”
“아,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저는 그냥, 데몬 님을 그렇게까지 분노하게 한 원인이 뭔지 궁금해서….”
제이카르가 아니었다면 정말 먹은 것도 없이 사레들릴 뻔했다.
제발 정원 이야기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본인이 연관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직접 목격한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관심을 갖는지.
……그러고 보니 4군단이 정보를 다룬다고 했던가.
‘이런 쪽에 관심이 많을 만하네.’
맡은 일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이델리아를 포함한 4군단은 정보 처리 담당이다. 물론 주로 정보를 모으는 건 2군단이고 그걸 가공해 거를 건 걸러내고 엑기스만 쫙 뽑아내는 것이 4군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아예 정보를 모으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게 있어서는 이들 중 가장 위험한 군단장이란 말이지.’
의식의 흐름대로 나온 뜬금없는 결론이지만, 틀린 것은 아니다.
나는 마왕성의 유일한 인간이다. 당연히 날 싫어하는 이들이 태반일 터.
이델리아가 언제, 어디서 나에 대한 약점을 알아내 팔아버릴지 모른다.
새삼 와닿는 현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흐트러진 정신을 빠르게 수습하고, 단단히 각오한 뒤 눈을 마주했다.
계속해서 이쪽을 보고 있었던 듯, 곧바로 눈이 마주친 이델리아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떠도는 소문으로는 정원사 때문이라고 하던데요….”
“…….”
“그를 살려두신 이유가 직접 손을 쓰는 것이 꺼려지기 때문이셨다면 제가 기꺼이 대신 제거해 드릴 의향도 있답니다.”
“……됐습니다.”
누가 마족 아니랄까 봐, 무슨 문제가 터졌다 하면 대뜸 그 원인을 죽이는 것부터 생각한다. 도대체 이들에게 자비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건지….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 말인즉, 반대로 생각하면 나에게도 자비가 없을 거라는 뜻 아닌가?
‘안 돼, 위험해.’
미래의 내가 위험하다.
그렇지 않아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중인데, 이 사실까지 알게 되니 새삼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포크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어찌나 세게 힘을 주었던지 손등의 핏줄이 도드라졌다.
옆에서 움찔하는 기척이 느껴진 것 같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훗날의 나를 위해서라도 이곳 마왕성의 이들에게 ‘자비’라는 것을 심어줘야 한다.
그런 다짐과 함께 잠시 내려갔던 고개를 들어 이델리아를 쳐다봤다. 조금 전과는 달리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건지 그녀의 눈이 심히 떨리고 있었다.
혀라도 잘못 씹었나? 잘 보니 손도 떨고 있는 것 같고.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미래의 나를 위해 할 말은 해야겠다.
“애초에 별거 아닌 일이었습니다. 죽일 정도는 아니에요.”
“네, 네….”
“아시겠습니까? 죽일 정도는 아닙니다.”
“네, 죄송해요.”
“이델리아, 당신이 뭐가 죄송합니까. 그냥, 죽인다는 말을 하기 전에 한 번만 생각해 보세요. 정말 상대가 죽을 정도의 잘못을 했는지.”
아, 제일 중요한 말을 잊을 뻔했다.
“그리고 가끔은 자비를 베푸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네, 꼭 기억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왜 자꾸 죄송하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이대로 서서히 물들이다 보면 언젠가 내가 실수를 한다 해도 한 번쯤은 봐주겠지.
문제는 이델리아가 입을 다물고 난 후 정적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시무룩해진 표정 하며, 딱딱하게 굳은 다른 군단장들의 표정을 보니 마치 내가 그녀를 혼낸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고 보니 잘못한 것도 없는 이델리아가 연신 사과를 하기까지 했지.
그제야 내가 천하의 쓰레기가 된 이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
“…….”
침묵이 길어진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압박을 이기지 못한 내 표정은 점차 제어를 벗어나 멋대로 굳어져만 갔다.
덩달아 군단장들의 표정이 더욱 좋지 않게 변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인간이 감히 저들 앞에서 표정을 굳히고 있는데 어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이 침묵이 불편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군단장들과 눈빛을 주고받으며 무언가 필사적으로 고민하던 이델리아가 나를 한 번 보고 슬며시 입을 열었다.
“……데몬 님.”
어, 그래!
어색했던 공기가 풀어진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뭐든 다 들어주겠다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델리아를 마주했다.
좋아, 뭐든 말해 봐. 내가 이번만큼은 뭘 말해도 다 들어줄….
“군단을 살피러 가신다면서요.”
들어줄….
“아, 저도 그것과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젠장.
여차하면 도망, 아니 자리를 피할 생각으로 조용히 의자를 뒤로 밀었다.
확실히 군단을 살피겠다고 한 적은 있다.
그게 언제였냐면… 아마 술을 마시고 싶다고 했다가 마왕이 찾아왔던 때, 그때였을 것이다.
[아무튼 술은 안 돼. 마왕성을 뒤엎을 일 있어? 정 심심하다면 네 군단을 돌아보든가, 정원이라도 돌아보도록 해. 히엔이 이번에 새로운 꽃을 들였다고 좋아하던데 말이지.] [군단을 돌아보겠습니다.]그 끔찍한 정원사를 상대하기보단 차라리 군단원들을 상대하는 것을 택했었지.
억울하다. 정원사를 상대하기 싫어서 군단을 선택했던 건데, 히엔은 히엔대로 만나고 군단은 군단대로 살펴야 한다니.
심지어 마왕 앞에서 한 말이라 이제 와서 무르지도 못 한다.
“데몬 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표정이 이상했나. 다행히도 의자를 뒤로 민 건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다. 이대로 타이밍만 잘 보고 도망치면….
‘……안되겠네.’
생각하고 보니 완벽하게 포위된 상황이다.
왼쪽엔 이델리아가, 오른쪽엔 아실드가. 정면에는 제이카르까지. 심지어 하나같이 전부 군단장이다. 도망치려는 순간 곧바로 뒷덜미를 낚아챌 터.
체념은 빨랐다.
티 나지 않게 긴장시켰던 몸에 힘을 풀자, 내가 조금 전까지 도망치려 했다는 것을 알 리 없는 아실드가 내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군단원들을 살피실 때 검을 드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들긴 들었지.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게다가 진검도 아닌 목검이다.
목검 그거, 너무 무거워서 팔이 후들거리더라. 부끄럽지만 솔직히 내 근력으로는 일반 철검은 꿈도 못 꾸고 목검 정도만 간신히 든다.
그런데 그게 왜?
“군단원들을 전부 지도하고 난 뒤, 그때 대련을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
귀로 가려는 손을 간신히 멈췄다.
아무래도 내가 요즘 기가 많이 허한 모양이다. 별 헛소리가 다 들리는 것을 보면.
그렇게 애써 현실을 부정하려던 내 노력은 제이카르가 툭 내뱉은 말에 속절없이 무너져버렸다.
“좋은 생각이군. 난 참관을 해도 되겠나?”
불편한 거 있으면 말하라더니, 살려달라는 내 표정은 보이지 않는가 보지.
애당초 이건 말도 안 되는 대련이다. 당장 그와 나의 체급부터가 말도 안 되게 차이가 나는데 대련은 무슨 대련. 아실드의 손만 봐도 그렇다. 검이 아니라 저 손에 한 대 맞기만 해도 분명 내 목은 뽀각- 하고 부러지리라.
“……그….”
대답을 마냥 미룰 수는 없어 일단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기다렸다는 듯 단번에 집중되는 시선들.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시선 가운데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아냈다.
─찾아내려 했다.
“……그건 곤란합니다.”
결국 실패했지만.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여기서 이렇게 끝인가. 타당한 이유가 없으니 저들은 이대로 밀어붙이겠지. 그럼 내 실력은 들통날 테고 저들을 속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아니, 들통난 이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내가 한 방에 죽는 기염을 토함으로써 실력이 만천하에 드러날 테니까.
얼마 먹지도 못한 채 차게 식어버린 음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죽기 전에 따뜻한 음식이라도 배불리 먹어둘걸.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처럼 대답을 기다리는데, 생각 외로 아실드의 반응이 침착하다.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그렇겠습니다.”
“……?”
“데몬 님께서는 대련보다는 실전 방향으로 두각을 드러내시는 편이니. 자칫하면 대련 중 저를 죽여버리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르니 곤란하셨을 테지요.”
“?”
“죄송합니다. 경솔했습니다.”
“아뇨, 뭐….”
잘… 풀린 건가?
영문 모를 불길한 말들을 들은 것 같지만 어쨌거나 대련은 피했으니 잘된 거라고 치자.
“나중에, 제가 쉽게 죽지 않을 만큼 실력을 쌓았을 때, 그때 다시 한 번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전혀 잘 풀린 것 같지 않다.
큰일 났다.
“그리 오래 기다리시게 하진 않겠습니다.”
“…….”
“그래도 오늘은 구경 정도는 하러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3군단장에게 선전포고를 듣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