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84
84. 격동하는(4)
제국의 세 번째 영웅, 데온 하르트.
그에 대한 호의를 숨김없이 드러내며 스티그마가 질문을 던졌다.
“그 전쟁에 내 후배님도 오시니?”
“데온 하르트 명예 백작이라면 아마 늦게라도 참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긴, 그 좋은 패를 황제가 아껴 둘 리 없으니.
“어서 만났으면 좋겠구나.”
스티그마는 그가 좋았다.
전쟁 영웅들에게 공을 치하하는 상을 내릴 때, 순서는 두각을 드러낸 시기 순이었다.
그렇기에 스티그마는 무엇을 바라느냐는 황제의 물음에 앞서 대답한 네메세우스처럼 딱히 없다 답했고, 후작의 작위와 남부의 드넓은 영지, 상당량의 돈과 보석을 받았다.
당시엔 만족스러웠다.
딱 그다음, 황제와 독대를 청한 데온 하르트가 무엇을 청했는지 알게 되기 전까지만.
‘제 손으로 가문을 멸문시키는 것을 허락해 달라 하다니.’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았다.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
충격을 넘어 희열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동시에 대화 한번 나누지 않은 데온 하르트에게 호감이 생겼다.
물론 조금 아쉽기도 했다. 공에 대한 포상을 말하기 전에 그 방법이 있음을 알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런데 데온 하르트 명예 백작은 후작님의 후배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는 어릴 적부터 전쟁이 있기 전까지 저택에서만 지냈다고 들었습니다.”
“같은 영웅이니까. 난 두 번째, 그 아이는 세 번째.”
피식피식 웃으며 꽂혀 있는 검을 지지대 삼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울퉁불퉁한 땅을 밟고 서는데, 발밑에서 미약한 움직임이 전해진다. 스티그마의 눈동자가 힐긋 아래로 향했다.
“아, 이런.”
아직 살아 있었군.
혹시 몰라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놈들이 간간이 보인다.
어쩐지 의자가 불편하더라니.
바닥에, 아니 누군가의 배에 박아 넣었던 검을 빼 들었다.
그대로 꿈틀거리는 놈의 목을 찌르며, 스티그마는 차갑게 명했다.
“숨이 붙어 있는 놈들이 있으니 확실히 찾아내서 죽이렴. 아니, 어차피 전염병 문제도 있고… 그냥 아예 불을 지르는 게 낫겠어.”
“예.”
그럼 모처럼의 전쟁이니 이만 준비를 하러 가 볼까. 어차피 일상이 전투이니 준비할 것도 별로 없겠지만.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늘어뜨린 채 스티그마가 걸어 나간다.
그의 뒤로는 시체의 산이 이루어져 있었다.
그가 앉았던 의자… 시신 더미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이어서 여기저기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스티그마 프리미로.
제국의 두 번째 영웅으로 후작위를 받은 자.
그가 받은 영지는 야만족이라 불리는 바르바이족과 매일같이 전쟁을 치르는 제국의 최남단이다.
황제가 그를 싫어해서 하사한 것이 아니다. 제국 남부 출신으로 야만족들에게 많은 유감을 갖고 있던 스티그마가 바란 것이었다.
황제의 암묵적인 학살 허용 아래, 습하고 험한 남부에서 전염병과 싸우고 야만족과 싸우며 악착같이 커간 그의 세력이 얼마나 강대하겠는가.
이미 남부에서 하나의 군벌을 이룬 스티그마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기쁘게 전쟁 준비를 명했다.
***
어….
마차에서 눈을 휘며 어서 타라고 손짓하는 드벨라니아를 떨떠름한 얼굴로 보던 나는 배웅 나온 마왕을 돌아봤다.
언제나처럼 웃고 있는 얼굴이 어째서인지 마왕의… 아, 마왕 맞지.
“역시 무르는 건….”
“당연히 안 되지.”
“사직은….”
“농담도.”
젠장.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으로 땅에 박힌 듯 멈춰 있던 걸음을 억지로 뗐다.
순탄치 않은 미래를 알려 주기라도 하듯, 내 목에 걸린 마력석 목걸이가 존재감을 과시하며 달랑달랑 흔들리고 있었다.
…….
내가 불길함을 느낀 것은 두 번째 도시로 출발하기 약 30분 전이었다.
에드가 부관의 역할에 충실하게 출발 전 마지막 점검을 하던 때.
“2군단장은 2군단을 대동하고 가겠다 합니다. 데몬 님께서는 여전히 0군단을 데리고 가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를 완전무장시키던 에드가 허벅지 부근의 단검집 매듭을 단단히 매며 입을 열었다.
“네, 2군단까지 같이 간다니 그걸로 충분합니다.”
아니, 오히려 넘치지. 고작 옷 사러 가는 건데, 호위로 한 개의 군단이 나설 정도면….
더해서 드벨라니아가 날 죽이려 들 이유도 없으니 굳이 보기만 해도 정신력이 깎이는 0군단을 데려갈 필요도 없다.
이곳이 인간계였다면 절대 확신하지 않았겠지만, 이곳은 마계… 아니, 마왕성이다.
같은 군주 아래 있으면서도 군주를 따르는 자와 따르지 않는 자, 또 그 사이에서 서로 권력다툼을 하며 끊임없이 분열하는 인간들과 달리, 마족들, 특히 마왕성의 군단장들은 그런 것 없이 오로지 마왕만을 따른다.
그렇기에 같은 군단장을 죽여 마왕의 전력을 깎는 멍청한 짓은 알아서 자중한다는 것.
물론 화가 나면 죽이진 않아도 그 직전까지 만들어 놓기 때문에 내가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하는 것이지만….
‘어쩌다 우연히 군단장 간의 싸움을 봤는데, 그게 어찌나 살벌하던지.’
그런 식으로 날 공격하면 분명 난 죽는다.
그런 만큼 언제나 모든 행동에 있어 매사 조심해 왔으니 드벨라니아의 심기를 거스르지도 않았을 테고, 새삼 그런 일을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특별히 걱정할 것은 없는데….
그런데 왜.
“그렇습니까… 역시 0군단은 데몬 님께 방해만 되는 모양이군요.”
“……네?”
“차라리 데몬 님 혼자 가는 것이 편하실 정도라니….”
“……?”
“훈련 강도를 좀 더 높여야겠습니다.”
에드의 반응이 이 모양인 거지…?
“물론 그것으로 데몬 님을 따라잡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발목은 잡지 않도록….”
“…….”
이것이 내가 느낀 첫 번째 불길한 징조였다.
두 번째는 리리넬이었다.
한 손에 익숙한 모양의 목걸이를 쥔 채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방에 찾아온 그녀는 대뜸 들뜬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데몬 님, 또 마왕성을 나가신다면서요?”
“네, 두 번째 도시에 갈 예정입니다.”
그런데 그게 왜…?
“왜 그것만 말씀하세요. 외곽으로 돌면서 가신다고 들었어요.”
“네….”
그러니까 그게 왜…?
“데몬교의 교주 된 자로서 그런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죠! 그래서 이걸 준비했어요!”
눈앞에 익숙한 목걸이가 들이밀어졌다.
아니, 그 전에 뭔가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뭐, 무슨 교?
이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냥 지나쳤다간 분명 후회할 거야.
……라고 외치는 본능의 경고에 착실히 따르며 입을 여는데, 리리넬이 한 발 더 빨랐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단어에 백지가 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둔 그 몇 초의 공백을 기다리지 않고, 그녀는 목걸이를 내 손에 쥐여 주며 자랑스레 말했다.
“저번이랑 마찬가지로 보호 마법이 새겨진 목걸이예요! 목숨을 위협할 만한 공격에 반응할 거고요, 거기에 더해 한번 착용하면 소유주를 자동 인식해 빼놓거나 잃어버려도 알아서 돌아오는 기능도 추가했어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방금….”
“아, 그리고 목걸이가 깨지면 저를 자동 소환하는 기능도 추가….”
와….
절대 착용하지 말아야지.
“…하려고 했지만 마법 낭비에 전력 낭비라고 마왕님께 혼나서 못했어요. 죄송해요….”
“다행…이 아니라,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고맙습니다.”
“뭘요. 자 어서 착용해 보세요!”
순간 멈칫했지만 그건 잠시였다.
껄쩍지근한 기능도 다행히 넣지 않은 것 같고, 리리넬이 내게 해를 끼칠 이유도 없으니… 나는 곧장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소유주를 인식한 목걸이가 잠시 빛났다가 잠잠해진다. 그제야 말할 틈을 얻은 내가 또다시 선수를 빼앗기기 전에 서둘러 입을 열었다.
조금 전부터 머릿속을 맴돌던 리리넬의 발언.
이어진 대화에 짚을 타이밍을 놓치고 흘러가 버리긴 했지만 워낙 강렬했던 탓에 도저히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보다, 그, 무슨… 교주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아, 데몬교요?”
“쿨럭.”
세상에. 잘못 들은 게 아니었어! 데몬교라니, 이름부터가 나랑 연관 있다는 게 딱 느껴지잖아!
일단 침착하기 위해 리리넬이 서둘러 내민 물잔을 받아 들었다. 한 모금 넘기니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기분이다.
“괘, 괜찮으세요?! 주치의를 불러야…!”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그 데몬교라는 게….”
“데몬 님을 숭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죠!”
“푸흡-”
어디까지나 잠시였지만.
조금 더 마실까 싶어 입에 머금었던 물이 고스란히 다시 튀어나왔다.
이런 젠장. 기도로 넘어갔잖아.
“커흡, 쿨럭쿨럭!”
“어, 어떡해! 역시 주치의를…!”
“아, 콜록, 아니, 됐… 쿨럭쿨럭!”
망할, 쉽사리 기침이 멈추지 않는다. 어서 진정해야 하는데….
기겁한 리리넬이 서둘러 주치의를 불러오겠다며 일어서는 것을 급히 손을 뻗어 붙잡아 두고, 몇 번을 더 기침하고 나서야 겨우 진정한 나는 고개를 들어 리리넬을 눈에 담았다.
그녀는 어째서인지 제 옷깃을 잡은 내 손을 감격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기분 탓이겠지?
“리리넬?”
“네? 아, 네! 이제는 좀 괜찮으세요?”
“네… 그건 그렇고,”
데몬교라… 그런 괴상망측한 이름과 목적을 가진 종교를 믿을 멍청한 놈은 얼마 없겠지만서도.
분명 얼마 못 가 사라질 것이라는 머리와 달리, 불길해하는 본능과 호기심을 무시하지 못한 나는 결국 슬쩍 입을 열었다.
“그… 데, 몬교를 믿는 이들의 수는 얼마나 됩니까?”
“일단 내성의 사용인들은 거의 전부가 믿고 있다고 보시면 되고요, 외성에도 1/3 정도는 믿고 있을 거예요.”
생각보다 많잖아?! 근본 없는 종교가 마왕성을 잠식하고 있는데 마왕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사실 마왕님도 관심을 보이셨어요.”
그야, 당연하지.
어느 군주가 사이비 종교가 세를 불리는 걸 그냥 보고만 있겠어?
역시 마왕. 마냥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
“부교주 자리는 없냐고 하셨죠.”
“이런 미친.”
“네?”
“아닙니다.”
확실히 가만히 보고만 있진 않았네. 미친 짓을 하셨어.
그래서 설마 지금 마왕이 부교주라는 건 아니겠지…?
이어질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들고 있던 물컵을 슬쩍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괜히 놓치거나 해서 또 괜한 소동을 벌일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마왕님께서 들어오시면 데몬교는 정치적 의미를 가진 공식적 단체가 될 테니 결국 포기하실 수밖에 없었죠. 굉장히 아쉬워하시더라고요.”
음, 뭐….
각오했던 것 외로 충격은 없었지만….
‘…….’
난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리리넬이 왜 하필 외곽으로 간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목걸이를 준 건지 다시 한번 생각했어야 했다.
그리고 세 번째 불길한 징조를 느낀 것은 벤이 동행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였다.
정확하게는 마왕의 명령에 동행하기 위해 합류한 벤이 2군단장 드벨라니아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에서.
시간이 다 되어 1층에 도착한 나는 마차 입구를 막아선 채 팔짱을 끼고 있는 드벨라니아와 삐딱한 태도로 그녀를 올려다보는 벤을 볼 수 있었다.
“난 데몬 님과 단둘이 가는 줄 알았는데-”
“마왕님의 명령이십니다. 그리고 단둘이 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2군단은 뭐고요.”
“아무튼 마차 안에 타는 건 단둘일 예정이었단 말이지이.”
“그러십니까. 그것참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데몬 님의 건강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상 제 동행은 당연합니다. 심지어 두 번째 도시로 곧장 가는 것도 아닌 ‘외곽으로’ 돌아서 가지 않습니까.”
또, 또 ‘외곽’이다.
외곽으로 좀 돌아서 가는 게 뭐가 문제라고 다들 언급하는 건지. 단지 시간이 좀 걸리는 게 전부 아닌가?
힐긋 시선을 내려 대충 걸친 로브 아래의 무장 상태를 확인했다.
전쟁터라도 보내는 것처럼 에드가 단단히 무장시킨 탓에 확실하게 착용된 여섯 개의 단검.
‘뭔가 좀… 아닌 것 같은데?’
절대 옷만 사러 가는 게 아닌 것 같다. 지금이라도 안 가겠다고 물러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