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ady for Divorce! RAW novel - Chapter (170)
외전 5화(完)
“이프리트한테 부탁하고 싶어.”
“……!”
엘로디의 결정이 내려졌다.
다들 충격받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엥? 나?”
당사자인 이프리트 역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마님! 아무리 정령이어도 그렇지! 강아지한테 맡기다뇨! 안 됩니다!”
“저 자식이…….”
하인츠의 반발에 이프리트가 발톱을 세웠다. 엘로디가 이프리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프리트는 어릴 때부터 카빌의 곁을 늘 지켜 준 친구잖아. 내가 직접 이프리트를 구하기도 했고…….”
“그, 그래도 그렇지…….”
엘로디는 이프리트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해 줄 거지, 이프리트?”
“그, 그래, 뭐……. 네 부탁이라면야.”
“……쳇.”
하인츠와 브리엔, 시르카, 마리.
네 사람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이프리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프리트는 언제 당황했냐는 듯 어깨를 쫙 폈다.
“그래! 사실 이 정령왕님 말고 누가 하겠어? 저 아이들을 지켜 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구!”
“그래요, 뭐…… 인정합니다.”
시르카와 하인츠, 브리엔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물러났다.
하지만 마리는 단호했다.
“마님, 2순위도 정해 주셔야죠.”
“2순위라니?”
“전 2순위까지는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마리의 말에 시르카와, 하인츠, 브리엔의 얼굴에 희망이 돋기 시작했다.
“그럼…….”
이 네 명 중에 골라야 한다면 깊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마리.”
엘로디가 마리의 이름을 부르자, 마리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반면 하인츠와 시르카, 브리엔의 표정은 참담했다. 엘로디는 멋쩍게 웃으며 사과했다.
“미, 미안해요. 다들.”
“자, 끝났지? 이제 꺼져.”
카빌이 오래 참았다는 듯 하인츠, 브리엔, 시르카 세 사람을 내쫓았다.
시르카는 가져온 서류를 내려놓고 훌쩍이며 나갔다.
“후후후. 마님, 그럼 저는 아기님들의 잠자리를 보고 올게요.”
마리는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복도에 나온 세 사람은 패배자끼리 술이라도 한잔하자며 걸음을 옮겼다.
“마리, 너도 갈래?”
하인츠가 뒤따라 나온 마리에게 제안했다. 갑자기 브리엔이 긴장하며 그녀를 슬쩍 바라보았다.
“글쎄요. 하인츠 경이랑 둘이 마시는 게 아니면 전 별로.”
“…….”
“…….”
“…….”
마리의 말에 세 사람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마리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들을 지나쳐갔다.
“너 뭐냐.”
브리엔이 다짜고짜 하인츠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뭐, 뭐가요!”
“뭐냐고!”
“…….”
시르카는 실랑이하는 두 사람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
밖에서 무슨 소란이 일어나든 말든, 엘로디와 카빌은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카빌, 너도 괜찮지?”
“그럼요.”
엘로디가 이프리트를 힐끗 바라보며 물었고 카빌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나 정작 이프리트는 뭐가 그렇게 초조한지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엘로디는 이프리트한테 괜한 짐을 지워 주었나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프리트는 엄청난 사명감이라도 떠안은 듯한 표정이었다.
“…….”
이프리트는 아주 심각한 얼굴로, 엘로디와 카빌의 품에 안긴 아이들을 보다가 허공을 바라보았다.
사실 아기들이 마리보다 더 가까이하는 존재는 바로 이프리트였다.
이프리트는 매일 밤 아기들이 자는 침대의 머리맡을 지켜 주고 있었다. 엘로디의 침실을 지켜 주었던 것처럼.
아기들도 그 사실을 아는지, 이프리트만 보면 꺄르르 미소를 지으며 끌어안곤 했다.
“이럴 수가.”
이프리트의 중얼거림에 엘로디와 카빌의 시선이 향했다.
“왜 그래, 이프리트?”
“아, 아, 아니야.”
이프리트는 크게 당황하며 아기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꺄아-”
“따야야.”
아기들은 정체불명의 소리를 내며 이프리트에게 손짓했다.
이프리트는 조금 전, 아주 짧은 사이에 초월자의 눈을 통해 아기들의 미래를 보았다.
“……너무 범상치 않은데?”
“무슨 혼잣말을 자꾸 하는 거야. 시끄러우니까 저기 가서 해.”
카빌의 지적에도 이프리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흠…….”
이프리트는 로엘을 빤히 바라보았다. 두 아이는 쌍둥이임에도 벌써부터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다.
그중 먼저 태어난 로엘은 아주 얌전하고 차분한 성격이었다. 이프리트가 본 미래로는 장차 훌륭한 영주가 될 것이다.
엘로디를 닮아 성실하고, 단호하지만 정이 많은 그런 멋진 영주가……!
탐스러운 분홍 머리카락과 따스한 분위기의 잘생긴 외모는 벌써부터 싹이 보였다.
그런데 미엘은…….
“…….”
이프리트는 아기인데도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미엘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이거, 감당할 수 있으려나.
미엘은 하녀들이 벌써부터 미래를 기대하고 있었다. 카빌을 똑 닮은 눈매와 짙은 머리카락, 어른이 되면 엄청난 분위기의 미녀가 될 거라고 떠들었다.
성격은 얌전한 로엘과 정반대였다.
미엘은 그야말로 천방지축이었다. 어찌나 호기심이 많은지 뭐든 잡으면 입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듯했다.
이프리트가 본 바로, 미엘은 대륙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실력의 마검사가 될 것이다.
이프리트는 겁도 없이 전장을 뛰어다닐 미엘의 뒤를 쫓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벌써 피곤함이 밀려왔다.
그래도 이프리트는 미소 지었다.
엘로디와 카빌, 이제는 저 두 아이까지. 아주 오랫동안 제가 지켜 줄 수 있기를 소망하며.
***
아이들은 점점 커갈수록 더욱 이프리트를 따랐다.
“로엘, 미엘. 이프리트 괴롭히면 안 돼.”
엘로디가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아이들은 뾰로통한 표정이었다.
“개롭히눈 거 아냐.”
“엄만 아무것뚜 몰라.”
엘로디는 이프리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은 이프리트와 놀길 좋아했는데, 귀를 잡아당기거나 꼬리를 깨물기도 했다.
엘로디가 놀라 말렸지만, 그때마다 이프리트는 꼭 손주 재롱을 보는 조부모처럼 허허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심지어 아이들은 이상하게도 이프리트의 등에 올라타는 것을 좋아했다.
이프리트는 그런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이 커갈수록 점점 제 몸을 키워갔다.
엘로디는 이프리트가 크기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워했다.
어쨌든 커다란 강아지 크기만큼 자란 이프리트를 보며 엘로디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늘 고마워, 이프리트.”
“넌 꼭 카빌이랑 놀러 갈 때 나한테 이렇게 고마워하더라?”
“……미안해.”
오늘은 카빌과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이프리트가 늘 아이들을 보살펴 주기 때문일까, 엘로디는 이프리트와 마리에게 아이들을 맡겼을 때 가장 마음이 편했다.
“빨리 다녀오기나 해.”
“고마워, 이프리트.”
엘로디는 아이들의 뺨에 입을 맞추며 인사하고는 방을 나섰다.
복도로 나서니 멋지게 차려입은 카빌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인.”
“카빌.”
카빌은 엘로디를 보자마자 그녀의 뺨에 입술을 맞췄다.
“너무 아름다워요.”
카빌의 칭찬에 엘로디는 부끄러운 듯 뒷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어서 가요.”
“근데 어디로 가는 거야?”
“비밀이에요.”
카빌이 엘로디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그런 카빌의 어깨 너머로 자그마한 아기 곰의 귀가 뾰쪽 튀어나왔다.
그리고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아기 새가 파닥거리며 그들을 쫓았다.
오늘 갈 곳은 아기 정령들의 텔레포트가 필요한 장소인 모양이었다.
엘로디는 카빌의 손을 꽉 잡고 그가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이 어디든 카빌과 함께라면 상관없을 것 같았다.
도착한 곳은 영지의 끝, 인적 드문 해변이었다.
“와…….”
에메랄드빛 바다 위로 선명한 무지개가 떠 있었다.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수평선 너머로는 새하얀 구름 사이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엘로디는 멍한 표정으로 아름다운 광경을 두 눈에 담았다.
“번개정령이 말해 줬어요. 오늘 무지개가 뜬다고.”
카빌이 엘로디의 손등에 입 맞추며 말했다.
“너무 아름다워.”
카빌은 멍한 엘로디를 끌어 해변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준비해 온 천을 꺼내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털썩 앉았다.
“여기 앉아요, 부인.”
카빌은 제 다리 사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엘로디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의 앞에 앉았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카빌이 팔을 뻗어 엘로디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마치 뒤에서 꽁꽁 옭아맨 듯한 자세였다.
카빌은 엘로디의 어깨에 턱을 대고는 그녀의 뺨과 귀에 쪽쪽 입을 맞췄다.
“간지러워.”
엘로디는 꺄르르 웃으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름다워요.”
“그치?”
카빌은 엘로디를 보며 말한 것이지만, 엘로디는 하늘을 보며 대답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난 뒤, 카빌은 엘로디의 귓가에 대고 비밀 이야기를 하듯 속삭였다.
“부인, 이프리트가 말해 준 비밀인데요.”
“응?”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어진 운명이었대요.”
“그래?”
“네. 그래서 다음 생에서도, 그 다음 생에서도 만나게 될 거랬어요.”
카빌의 말에 엘로디는 작게 웃었다. 어른이 되었음에도 어린아이나 할 법한 순수한 상상을 하는 카빌이 귀여웠다.
“다음 생에서도 나는 부인을 찾아갈 거예요.”
“그래, 그때도 꼭 다시 만나자.”
“그때는 내가 부인을 구할게요.”
“응?”
엘로디가 무슨 말이냐며 되물었지만, 카빌은 대답 없이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혼당할 준비 완료했습니다. 외전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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