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0
10. 투자금 선물하기(4)
“헥! 헥! 헥! 헥!”
드디어 집에 도착한 나는 내 집 앞의 익숙한 풍경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나는 절망과 비애 속에 이 철문을 빠져나와 어느 빌라의 공사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었다. 그리고…
이렇게 개가 되었다.
일단 다시 이곳에 찾아온 나는 환생을 기념 삼아 철문의 기둥에 오줌을 찍 싸서 마킹을 한 후 주둥이로 조심히 문을 열었다.
‘어떻게 한다?’
분명 반지하의 현관문은 닫혀있을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노파와 조은이의 집처럼 열쇠를 돌리는 문은 아니었다. 도어록을 제대로 달아놨었다.
요는 그것이 지금 와서는 오히려 거대한 장애물이 되어 버린 것이 문제였다. 어차피 그것을 알았기에 뒤쪽의 창문으로 들어가려 했던 것 아닌가.
‘어?’
뒤로 돌아가기 전, 물끄러미 현관을 바라보던 나는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반지하의 도어록이 박살 나 있었고 문에는 하얀색 종이가 붙여져 있었다. 그리고 완전히 부서진 문을 고정시키려는 듯, 벽돌 하나가 문 앞을 막고 있었다.
‘뭐야, 누가 우리 집에 뭔 짓을 한 거야?’
흰 종이에 쓰인 글씨를 자세히 보기 위해, 나는 내려가는 계단의 옆으로 난 장독대에 섰다. 확실히 몇 가지 색이 보이지 않기는 했지만, 개의 시력은 매일 TV와 모니터, 핸드폰 화면만 바라보던 나보다 훨씬 뛰어났다.
[계별욱 님. 본인 행적 파악을 위해 행정인력 입회하에 문을 강제 개방하였습니다. 돌아오시면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XX광역시 XX구 XX경찰서 박종범 경사 010-239X-71XX]‘아!’
짚이는 것이 있었다.
뛰어내리기 위해 빌라의 계단을 오르며, 나는 몇 안 되는 연락처의 사람들에게 유서 비슷한 인사말을 단체 문자로 남겼다. 내용이야 간단했다. 죄송하다, 고맙다. 안녕히 계시라…
분명 그것을 본 누군가가 신고했을 것이고, 아마도 경찰은 가장 먼저 이 거주지로 찾아와 안에서 잘못된 선택을 했을까 하여 강제로 문을 개방했을 것이었다.
어찌 보면 운이 따라준 셈이었다.
결국 내 몸은 완벽히 사라진 채 그 검은 것이 가져간 터라 시신을 찾지 못했을 것이었다. 즉, 그러니 나는 아직 실종자인 셈이었다.
‘후우, 일단은 이것으로 큰 짐은 덜었네. 들어가는 것은 그렇다 쳐도 어떻게 나올까 걱정이었는데.’
나는 계단을 내려가 문에 기대어 놓은 벽돌을 밀었다. 문이 끼이이, 하고 벌어진 틈을 타 잽싸게 안으로 들어섰다.
현관에 켜진 센서 등. 불빛 속에 드러난 내 마지막 흔적들.
싱크대 위에 설거지도 하지 않은 채 놓인 라면 냄비. 음식물 쓰레기가 쌓인 봉투에서 나는 냄새. 각종 고지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옻칠 나무 밥상.
벽에 걸린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사진. 그리고 그 옆,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
“끼잉, 낑, 낑…”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차가운 공간, 홀로 남겨져서 더 차갑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개가 되어 보니 결국 그 볼품없는 나라도 있어서 조금의 온기라도 돌았던 공간이었다.
주인을 잃어버린 이 모든 것들이 개가 되어 돌아온 나를 보며 울부짖는 듯했다.
나는 먼저 화장실로 들어가, 수전의 이음새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을 받아놓은 대야에 주둥이를 대고 물을 실컷 마셨다. 그리곤 안방에 들어가, 딱딱하게 말라붙은 밤만쥬 빵(언제나 싼 맛에 샀던 그 빵!)을 허겁지겁 씹어 먹었다.
불이 꺼질 때마다 현관을 들락날락하며 배를 채우고 나니 다시금 몸에 힘이 솟는 것이 느껴졌다.
‘일단 핸드폰부터.’
작은 방에 들어가 담요 위에 놓인 핸드폰을 물고 나온 나는 그대로 문밖으로 나가려다 멈춰 섰다.
그리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어두운 안방 속, 내게 환생의 기회를 준 검은 실루엣이 서 있었다.
“크르르르르…”
핸드폰을 내려놓은 난 으르릉거리며 검은 실루엣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는 재미있다는 듯, 피식 웃으며 점점 희미해지더니 완벽히 사라졌다.
‘주시하겠다는 것이구나. 그래, 해 봐라. 내가 멍하니 3년을 그냥 보낼 것 같냐? 30억? 반드시 해 주지!’
“왈!”
나는 어둠 속을 향해 강하게 한 번 짖고는 핸드폰을 물고 계단을 올라갔다.
몇 번이고 뒤돌아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가 여기 다시 올 때는, 내게 주어진 목표를 달성한 후일 것이다. 엄청난 것을 준다고 했으니, 반드시 내 몸을 되찾고 성공해서 이곳을 들릴 것이다. 그때까진,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찾지 않을 것이다.
***
“헥, 헥, 헤엑…”
돌아가는 길, 시간은 이미 새벽 3시가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아직 3월인지라 새벽 공기가 춥기도 추웠지만 문제는 갈증이었다. 아무리 물기 좋은 가죽 커버로 싸여있다고 해도 역시 핸드폰의 무게는 만만찮았고, 핸드폰을 무느라 벌어진 입에서는 계속 침이 흘러나왔다.
그 와중에 아주 가끔씩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길옆으로 숨어야 했고, 저 멀리서 순찰차가 빛을 번쩍일 때도 얼른 어둠 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이렇게 요란한 색깔의 강아지, 게다가 핸드폰을 물고 있는 강아지란 것은 시선을 집중시키기에도 좋을뿐더러, 개를 구하거나 핸드폰을 뺏거나, 여하간 달려들어야 할 이유란 차고도 넘칠 것이었다.
‘아, 진짜 쉽지 않네. 미치겠다. 입이 얼얼하다 못해 힘이 안 들어가네.’
아까의 들개들과의 조우, 그리고 어마어마한 깊이의 구덩이를 생각해보면 더욱이 빠른 길로 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운 좋게 고인 물이나 누군가 공원에서 먹다 버린 치킨 조각 등으로 계속해서 배를 채워가며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이렇게나 오랜 시간 동안, 밤새도록 뛰고 걸어본 일이 있었던가.
어찌 보면 앞으로 해내야 할 거대한 여정의 첫 관문이라 봐도 좋았다. 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니 어마어마한 통증과 지쳐 쓰러질 것만 같은 피로 속에서도 발은 꾸준히 앞으로 움직여졌다.
그리고 사람들의 움직임이 많아지기 시작하고 여기저기 집들의 불이 켜지기 시작하는 이른 아침 6시가 넘은 시각.
나는 드디어 노파와 조은이의 집이 있는 골목에 비틀거리며 들어섰다.
그리고, 문 앞에서 얼굴이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된 채 종이를 들고 서 있는 노파와 조은이를 보았다.
무언가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누군가가 나를 저토록 간절하게 찾는다는 것,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보니 이루 말할 수 없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피어올랐다. 손에 든 종이, 그때 조은이와 공원에서 찍었던 그 사진이 인쇄된 것이 얼핏 보였다.
그러고 보니 바로 위 전봇대에도 그 종이가 붙여져 있었다.
[우리 해피를 찾습니다.견종 : 말티즈 (수컷, 중성화 안 함)
특징 : 온몸에 털 밀었고 귀와 꼬리는 짙은 형광 분홍색 염색
이 강아지를 보시거나 보호 중인 분은 꼭 연락주세요.
사례금 100만 원. 연락처 : 견주 010-250X-46XX]
‘뭘 나 같은 놈을 찾는다고 100만 원이나 써! 알아서 들어온다고 했잖아! 도대체 빚만 3,700이 넘어가면서 그 돈을 어디서 구하려고!’
구하기야 구하겠지. 조은이의 백몇십만 원이 들어 있는 통장에서.
코끝이 찡해왔다. 핸드폰을 물고 오느라 고개를 숙였기에 못 봤지, 아마 동네 곳곳에 붙여져 있을 것이 뻔했다. 그리고 저 얼굴과 옷차림을 보니, 이 추운 밤을 내내 돌아다녔을 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옆의 빌라 화단 뒤쪽에 핸드폰을 숨겨놓고 골목으로 나왔다.
그리고, 나를 찾으러 밤새 돌아다녔을 그들을 향해 비틀거리며 뛰어갔다.
“끼잉, 낑…”
힘이 없어서일까, 크게 짖고 싶어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겨우 낼 수 있는 것이 이런 낑낑거리는 소리였다.
하지만, 내 주인은 수많은 개들이 있는 곳에서도 나의 낑낑 소리를 정확히 알아낼 수 있는 이였다. 옆에서 굿을 하고 전투기가 지나가고 데스메탈 밴드가 최고 출력으로 공연을 하더라도, 그 사이의 모기 같은 낑낑도 딱 잡아 느낄 수 있는 이들이었다.
내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노파와 조은이.
그들의 눈이 커졌다. 눈앞에 나타난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 그대로 얼어붙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짖었다. 내가 여기 있으니 염려 말라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었다.
“왈!”
“해, 해피야!”
“해피다!”
조은이의 손에서 전단지와 테이프가 툭 떨어졌다. 그리고 내 쪽으로 비틀거리며 다가오는가 싶더니 이윽고 전속력으로 팔을 벌리고 뛰어왔다.
“해피야, 해피야! 으앙!”
내게 뛰어오는 저 아름다운 소녀. 밤새 날 찾고 기다리고 울었을 그 얼굴.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곤 모든 힘을 다해 조은이에게 뛰어갔다.
“해피야!”
“왈!”
‘내 주인님아!’
조은이가 땅에 무릎을 꿇고 나를 향해 팔을 벌렸다. 나는 울면서 그 품으로 풀쩍 뛰어올랐다.
‘키스, 키스!’
– 휙!
‘에?’
순간 내 몸이 낚아채졌다. 그리고 눈앞에 있던 조은이가 휙 사라지고 노파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 이 똥개가! 이 잡놈의 개시키가! 워딜 그리 쏘다니는겨! 응? 평생 얌전하던 것이, 갑자기 왜 집에서 내빼고 지랄인겨!”
“끼잉, 낑!”
제발 좀 날 놔달라는 몸부림을 무시하고, 노파는 나를 으스러지게 껴안고 내 입에 그 거친 입술을 쉼 없이 가져다 댔다.
내 주둥아리가 밀려 올라갈 정도로 거칠게 뽀뽀를 하던 노파가 날 펄쩍 들고 배방구까지 요란하게 했다. 그리곤 정신없이 등과 엉덩이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 퍽! 퍽! 퍽!
“캥! 캥! 깨앵!”
“맞아야 혀! 뒤지게 맞아야 혀! 이 말 안 듣는 강아지, 더 맞아야 혀! 아이구, 우리 해피야. 이 할미가 을매나 널 찾아다녔는지. 옴마, 쪼오오오옥!”
“캥! 왈! 왈!”
“맞아야 혀! 더 맞아야 혀! 아주 죽도록 혼내야 혀! 우리 이삔 해피. 배 좀 봐라, 요리 마들마들한 배에 뿌우우우웅!”
구타가 동반된 거친 사랑의 표현이 혼돈의 카오스처럼 나를 훑고 지나갔다. 여태 하루 종일 뛰어다녔던 것보다, 들개와 싸웠던 것보다 더 힘든 노파의 애정 표현.
바로 눈앞에 내 진짜 주인인 조은이가 있는데, 어째서, 어째서!
한참을 시달린 후에야 나는 간신히 조은이의 품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이 바보, 이젠 정말 멋대로 나가지 마! 도망 못 가게 안방에 줄 채워버릴 거야!”
“!!!”
나는 깜짝 놀란 눈으로 조은이를 쳐다보았다.
그런 내 눈빛을 읽었을까, 조은이는 배시시 웃으며 나를 품에 꼬옥 껴안았다.
“농담이야, 우리 해피. 다행이다. 이따가 붙여놓은 것들 다 떼어야지.”
그렇게 반지하로 내려가는 동안, 나는 아까 내가 떠나온 냉기 가득한 반지하와 이 온기가 가득한 반지하를 비교해 보았다.
당연히 지금이 좋았다. 겨우 이틀을 보냈건만, 이쪽이 말할 수 없이 좋았다.
방으로 들어온 후 낑낑대며 어리광을 피우던 난 조은이의 품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함께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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