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00
101. 이사(4)
드디어 이삿날이 밝았다.
워낙 단출한 살림이라 사실 이사랄 것도 없긴 했다. 오래된 파란색 트럭을 몰고 온 중년의 아저씨 한 분이 전부였다. 도착하는 곳의 모든 세팅이 끝난지라 얼마 안 되는, 미리 정리해 놓은 짐만 실으면 되었다.
아저씨가 짐을 싣는 동안 노파와 나, 조은이는 부동산으로 향했다. 집주인과 맞은편에 앉아있던 범재, 지혜가 우릴 보고 벌떡 일어섰다.
“아, 안조은? 야! 네가 여기에 왜 와?”
“어? 나야 이사 가니까 보증금 받으러 온 거지. 우리 집에 이사 오는 사람이 지혜, 너야?”
옆에 노파도 있는 데다 계약서를 쓰는 자리이기에 지혜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꾸욱 참고 있었다.
“흥, 네가 살던 곳인 줄 알았으면 이사 안 했을 거야.”
“뭐? 지혜야, 거기 오빠 집이야. 오빠 돈 3천만 원 들어갔어.”
범재가 눈을 부라렸다. 3천만 원이라는 말에 지혜가 ‘쳇’ 하며 고개를 돌렸다.
엄밀히 따지면 무시무시한 분들이 대출해 준 돈이 들어간 것이었다. 과연 범재와 지혜는 뒷감당이 가능할 것인지, 내가 다 앞이 막막했다.
계좌에 3천만 원이 이체되었으나 이미 총자산에 포함된 것이기에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이것으로 이제 완벽하게 이 반지하와는 이별인 셈이었다.
눈을 흘기는 지혜와 싱글벙글대는 범재를 뒤로한 채, 우리는 먼저 부동산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이미 짐을 다 실어놓은 아저씨가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다가 우리를 보곤 안에 들어가서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하라며 손으로 가리켰다.
“오래도 살았다, 진짜 오래.”
“그리여. 진짜로 오래.”
텅 빈 반지하의 구석구석을 쳐다보며 조은이와 노파가 상념에 젖었다. 절대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고, 너무나 익숙해져서 다른 곳은 꿈도 꾸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머릿속에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듯했다.
“보살님! 내가 안 늦었나?”
“잉? 점쟁이?”
“아주머니!”
노파와 조은이가 뒤를 돌아보곤 도화선녀를 반겼다. 나 또한 품 안에서 왈왈 짖으며 인사했다.
“인사도 안 하고 가려 했어?”
“에이, 설마. 사람이 그러지는 않지.”
“부적 좀 써 왔어. 나도 데리고 가. 오늘 하루만.”
“새집에?”
“응! 내가 살림도 그러니 선물 사드릴 건 없고, 가서 부정 치고 좋은 기운 들어오라 부적 쓴 거 붙이고 조그맣게 상이라도 차려서 터주신에게 잘 봐달라 기도라도 올리려 하지.”
누가 보면 하찮은 미신이고 오히려 기분 나쁜 무속 행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조은이도, 노파도, 그리고 나도 이 도화선녀의 마음이 얼마나 진솔한 것인지 알았다. 돈이나 선물 같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성이었고, 정이었다.
“그리여. 어차피 택시 타고 가는데 몇이 타든 금액은 똑같으니께.”
노파와 조은이, 그리고 꾸러미를 든 도화선녀가 바깥으로 나왔다.
“잘 보셨죠? 놓고 가신 것 없죠?”
“네. 일단 요 트럭 옆에 조은이랑 해피가 타고 먼저 가서 문 따고 짐 들이는 거 보면 되것네. 나는 점쟁이랑 택시 잡아타고 바로 따라갈 터잉께.”
“응, 그래요. 할머니. 집에서 봐요.”
조은이가 날 안은 후 트럭에 올라탔다. 짐들 위로 포장을 씌우고 혹여 날아가거나 쓰러지지 않게 고무 로프로 잘 묶은 아저씨가 곧이어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골목 밖으로 막 나가려는 순간,
– 둠칫! 둠칫! 둠칫! 둠칫!
“엥?”
조은이가 골목을 막으며 들어오는 하얀 승용차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오전 10시임에도 휘황찬란한 조명에 골목을 깨우는 저 비트 소리. 박자의 울림에 맞춰 골목 쪽으로 난 창틀이 ‘드르르르’ 떨렸다.
“뭐시여, 저 썩을 것은.”
아저씨가 창문을 열고 차를 뒤로 빼라고 손짓을 했다. 먼저 시동을 걸고 나가는 쪽인지라 뒤에 들어온 차량이 빼는 것이 우선이었다. 게다가 이쪽은 골목이라 차를 돌리거나 물리려면 한참을 고생해야 했다.
– 둠칫!!! 둠칫!!! 둠칫!!! 둠칫!!!
창문이 열리고 색이 덜 채워진 팔이 빠져나왔다. 그리곤 이쪽을 향해 네가 빼라는 듯 손을 까딱였다.
“하아, 저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의 자슥이. 아야, 얼릉 빼 부러라!”
아저씨가 손을 크게 휘휘 내저었다. 그러나 흰 승용차는 빠지지 않았다. 내 눈에 건방진 표정을 한 범재와 그 옆에서 한껏 범재의 기를 살려주는 지혜의 모습이 보였다. 입 모양이 ‘절대 오빠가 빼지 마. 나 뒤로 물러나는 남자 극혐!’이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하이빔이 번쩍이며 눈을 괴롭히더니, 곧이어 가운뎃손가락이 올라왔다.
“아니 저 상놈의 자슥이!”
“아, 아저씨!”
지금까지 사람 좋게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짐을 실었던 아저씨의 표정이 바뀌었다. 차량의 기어를 바꾸고 시동을 끈 아저씨가 내림과 동시에, 범재가 ‘하아, 아침부터 또 사람 열 뻗치게 하지?’하고 고개를 옆으로 꺾으며 차에서 내렸다.
“어이, 트럭 아저씨. 지금 내 하얀 승용차가 이사 갈…”
“이런 개 상놈의 새끼가, 니 한번 뒤지게 쳐맞아불래? 아가, 나가 니 대굴빡을 잡아 조터트려불라다가 시방 참는다. 확 눈까리를 파서 조사불까 보다. 아야, 안 빼냐? 아야, 다시 내밀어 보라, 그 염병헐 손꾸락!”
“아, 아니… 저기요, 사장님. 그게…”
“이 씨불 것이 사람 말이 귓구녕으로 안 쳐백히는가 봉게. 확 귓구녕부터 도라이바로 뚫어불까? 얼릉 내 보라고, 그 염병할 손꾸락. 확, 그냥 짤라불랑게! 손꾸락 네 개로 살아도 밥수저는 쥘 수 있을 거시다. 아야, 빨랑 안 내놓냐!”
“아니, 죄송합니다. 제가 빨리 빼 드려야 하는데 아직 운전이 서툴러서…”
범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차 안의 지혜도 아저씨의 폭풍 같은 욕설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둠칫거리는 비트에 맞춰서 욕이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확, 고 지랄맞은 음악부터 빨리 안 끄냐? 고 음악이 쿵짝거리는지, 니 간땡이가 쿵짝거리는지 나가 오늘 여기서 한번 확인해 볼까? 잉? 아가야, 빨리 안 빼냐, 요 염병할 놈아!”
“뺍니다, 빼요!”
범재가 땀을 뻘뻘 흘리며 뒤로 차량을 후진시키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쳤다. 김칫국물과 팅팅 불은 라면 면발 등이 흰 차의 옆면을 물들였다.
시큼한 썩는 내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차를 돌리던 범재가 실수로 앞에 있는 빌라의 화단을 박았다. 후미등이 깨지고 빨간색 파편이 땅에 떨어졌다.
“운전은 염병, 세 살짜리 애가 뿡뿡이를 타도 니보단 잘 몰것다. 아, 오른쪽으로 안 돌리냐!”
“오, 오른쪽! 오른쪽!”
입으로는 오른쪽을 외치며 왼쪽으로 핸들을 꺾던 범재의 차가 멀쩡한 반대쪽 후미등까지 부숴먹었다. 트렁크가 있는 후미가 화단의 벽돌에 긁히며 도장이 진하게 벗겨지고 찌그러졌다.
‘감가상각 오지구요…’
나는 조은이의 품에서 웃음을 참으며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결국, 보다 못한 아저씨가 자신의 차를 다른 빌라의 주차장에 세운 후, 범재의 키를 뺏어 들곤 엉망이 된 차를 몰아 집 앞에 세워놓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지혜와 그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범재를 바라보며 혀를 차던 아저씨는 휙, 하고 차 키를 던져주었다.
“한 번만 더 센 척했다간 아주 귓방맹이를 후려쳐서 저승골로 보내줄랑게.”
“죄송합니다, 사장님!”
아저씨가 인상을 찌푸리며 트럭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때, 나는 보았다.
우리가 이삿짐을 빼고 완전히 집을 비운 그 창틀 사이로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전봇대에서 활강 비행을 하며 어마어마한 크기의 바퀴벌레가 안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벽을 타고 다른 바퀴벌레들도 그 반지하로 숨어들기 시작했다.
“!!!”
나는 덜덜 떨며 고개를 푹 숙였다. 범재나 지혜는 이쪽을 신경 쓰느라 지금 자신들의 등 뒤로 일어나는 지옥의 시작을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트럭이 골목을 지나 근린공원 앞을 지났다. 그리고 역 앞에서 신호에 걸려 잠시 멈추어 섰다.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통기타와 드럼, 베이스 소리. 나와 조은이의 눈이 자연스레 음악이 흘러나오는 쪽으로 향했다. 아까 범재의 둠칫과는 비교도 안 되는 아름다운 소리였다.
“땅시는~! 싸랑 베퀴 위해 때어난 싸람. 땅씨네 쌈 쏘게소, 그 싸랑 베퀴 이찌요!”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 가족의 어울림 한마당]이라는 현수막 아래, 베이스 기타를 튕기며 마크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뒤로 같은 고향 출신으로 보이는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이 드럼과 기타를 치며 화음을 넣고 있었다.“어! 저 아저씨, 그때 추가 소독해 준 아저씨다. 아저씨!!!”
조은이가 창문을 열고 마크를 향해 아는 체를 했다. 그리곤 나를 번쩍 들고 흔들었다.
“왈! 왈! 왈!”
‘잘 있어요, 고마웠어요!’
마크가 노래를 부르다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선한 인상의 마크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노래를 이어갔다.
곧이어 신호가 바뀌는 가운데, 우리는 마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마크에게만 인사한 것이 아니었다. 조은이가 초, 중, 고등학교에 대학 1학년 절반을 보낸 이 동네. 이곳에서의 수많은 과거의 일들을 추억으로 남기는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아, 되게 시원할 줄 알았는데. 으흐흑…”
“끼이이잉…”
조은이가 눈물을 쏟았다. 그것을 본 나도 슬프게 낑낑거렸다. 전부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짧은 시간만으로도 조은이의 복잡한 마음을 어느 정도는 헤아릴 수 있었다.
아쉬움, 슬픔, 후련함, 기대감, 불안함이 모두 뒤섞인 거대한 감정의 흐름.
“아유, 이 동네에 추억이 많은가 봐요?”
어느새 다시 세상 인자한 모습으로 돌아온 아저씨가 트럭에 속도를 올리며 물었다.
“그냥요, 추억도 되게 많은데 버리고 싶은 것, 놓고 가고 싶은 것이 더 많거든요? 그런데 그것들을 막상 놓으려니 뭔가 너무 슬퍼요. 으흐흑…”
“세상을 살다 보면 말이야.”
아저씨가 한숨을 쉬었다.
“결국 모든 것이 과거로 남게 돼. 그런데 그것을 웃으며 추억할 수 있으려면, 절대 그 과거보다 나아져야 해. 그래야 웃으며 추억하게 되지, 그것보다 못하면 이미 지나간 과거를 울면서 후회하게 되거든.”
조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
얼마 되지 않는 짐을 모두 옮기고 나서 조은이는 아저씨에게 일당을 드렸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1억 2,895만 4,440원]도화선녀는 입구와 집안 구석에 막걸리를 조금씩 뿌렸다. 그리곤 곳곳에 소금과 쌀을 놓고 향을 피웠다.
“아유, 이런 걸 해도 되나 모르것어!”
“쉿! 보살님, 입 좀 다물어. 부정 타. 그리고 내가 봉투에 담아온 거, 그거 의자 가지고 현관 위에 하나 붙여.”
진지한 표정의 도화선녀가 시키는 대로, 노파는 낑낑거리며 조은이의 방에서 새 의자를 가지고 와 위로 올라가 부적을 붙였다.
“저, 잠시만 나갔다 올게요!”
“워디 가려고?”
“아니, 금방! 요 앞에!”
황급히 바깥으로 나간 조은이는 실제로 그리 얼마 되지 않아 돌아왔다. 그사이 부정을 치고 간단한 고사를 마친 도화선녀는 시원한 에어컨 앞에 앉아 노파가 내어온 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조은아, 내가 말했지? 사람은 그 집 기운에 따라간다고. 너, 정말로 이사 잘한 거야. 여기 토지신도 아주 좋아하셔.”
“그래요? 그렇다면야 다행이죠.”
“잘 살 거야, 다 잘 될 거고. 이제 난 일어나야겠다.”
“아니, 점쟁이! 뭘 벌써 가! 맛있는 것 사 줄 테니 오늘 여기서 자고 내일 가.”
“오늘 밤, 기도 가야 해. 그래도 좋은 날로 날 잘 잡아 이사 마쳤네. 보살님, 나중에 꼭 놀러 와. 응?”
“그쪽이나 놀러 와. 언제라도 와. 비밀번호는 세로로 2580 그리고 *이던가, #이던가…”
일어서서 싸 온 그릇들과 초, 향을 꾸러미에 담는 도화선녀에게 조은이가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저기, 아주머니. 이것 받으세요.”
“응?”
조은이가 내민 것은 봉투였다. 도화선녀의 안색이 변했다.
“이거, 너 뭐야?”
“그냥, 여태 너무 우리 때문에 고생하셨고, 또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하기도 하고…”
“나 이런 것 받으려고 한 것 아냐.”
“알아요. 그래도 받아주세요. 우리가 거기 가 있으면서 먹은 밥값에, 에어컨 맨날 틀어놓고 과일 사 주시고. 다시 반지하 들어가서도 계속 신경 써주시고, 안 쓰는 것들 이라며 저희 필요한 물건들 요모조모 챙겨주시고.”
“아니야, 이러지 마.”
“아주머니도 힘드시잖아요. 다 알아요.”
조은이의 그 말에 도화선녀의 입이 살짝 떨렸다. 노파가 못마땅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더니 한마디 내뱉었다.
“안 받으면 나 안 놀러 갈 거야.”
그 말에 마지못해 도화선녀가 봉투를 받았다. 조은이의 얼굴에 그제야 미소가 번졌다.
“제가 무슨 돈이 있겠어요. 그냥 감사의 의미로, 너무 고마워서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 네가 그리 말하니 정말로 네 마음이라 생각하고, 또 전에 네게 해 준 공수 값이라 생각하고 받을게. 절대 허투루 못 쓰겠다.”
도화선녀가 봉투를 공손히 받아 품 안에 넣고 눈시울을 찍어눌렀다.
이윽고 조은이를 꽉 안아 준 후 도화선녀는 나중에 또 오겠다며 집 밖으로 나섰다.
“아니, 너는 돈도 없는 애가! 이사한다고 그렇게 큰돈을 쓴 애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걸 주는 거야! 얼마나 넣었어?”
배웅이 끝나자마자 분위기를 확 깨는 노파의 질문. 조은이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응? 아, 20만 원 정도…”
“뭐, 그 정도야…”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1억 2,695만 4,440원]200만 원이 빠져나갔다.
그러나 나는 전혀 아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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