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01
102. 뜨거운 여름
모든 게 다 정리되고 나서 맞이하는 첫 저녁.
인터넷 설치 기사가 와서 통신 이전 및 설치도 완벽하게 끝냈다. 실로 오래간만에 TV를 보며 조은이와 노파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너무 좋다. 이렇게 거실에서 TV를 본다니. 게다가 짐이 없어서 그런가 오히려 더 넓어 보이고 완전 좋아!”
“그리여. 집이 크니 아주, 어떻게 청소를 해야 할까 걱정이여. 내일은 가서 장 좀 보고 냉장고도 채워놔야지.”
에어컨으로 시원해진 거실. 넘어가는 햇살이 하늘을 빨갛게 물들였다.
– 지이이잉!
“이모 오셨나 보다. 버스 정류장 앞쪽이래. 나가서 모셔와야지.”
“이, 잉?”
노파가 황급히 일어났다. 그리곤 서둘러 신발을 신었다.
“할머니도 나가게?”
“바람이나 쐬려고. 이 근방에 뭐가 있나 구경도 좀 해 볼란다.”
이모를 피하는 모습. 여전히 손녀를 고생만 시키고 있고 결국엔 손녀 덕에 얹혀 살고 있다는 자책감과 민망함에서 노파는 쉬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에이, 할머니. 그러지 좀 마라. 전에 찾아갔을 때도 할머니 안부도 묻고, 인사드려야 한다고도 하셨어.”
“난 받을 인사 없어. 그리고… 네 아빠와 엄마 결혼했을 때 가장 싫어했던 사람 아니냐. 나도 서운할 이유는 있어.”
조은이의 얼굴이 굳었다.
노파가 그런 조은이를 못 본 체하고 바깥으로 나갔다.
“하아…”
한숨을 쉰 조은이가 이내 표정을 바꾸고 웃으며 나를 불렀다. 나는 무지개 귀와 꼬리를 팔랑이며 뛰어가 조은이의 품에 안겼다.
현관, 신발을 놓는 곳도 넓었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뭐가?’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노파와 조은이, 그리고 나에겐 거의 배 이상 넓어진 공간들이었다.
“진짜 좋다. 하하하.”
슬리퍼를 신은 채 조은이가 바깥으로 나와 큰 도로를 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저만치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이모를 봤다.
“이모!”
“아아, 그래! 이사 잘 했고?”
밝게 웃으며 조은이를 살포시 안은 이모는 내 머리도 가볍게 쓰다듬었다.
“왈! 왈!”
“차 가지고 오실 줄 알았어요.”
“아니, 일부러 대중교통 이용했지. 역에서 얼마나 걸리나, 그리고 주변 환경은 어떤가 한 번 둘러보려고.”
역시 어른다운 생각이었다. 이윽고 빌라 앞에 선 이모가 외관과 주변을 훑어보며 ‘괜찮네’ 하고 중얼거렸다.
올라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이모는 안방과 작은방, 화장실 등을 확인하며 ‘좋네, 깨끗하다’ 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인 후, 거실에 앉아 조은이가 내어온 음료수를 받아들었다.
“그래, 어르신은?”
“할머니는 잠시 마실 나가신다고 아까 나가셨어요.”
“응, 그래…”
“아무것도 준비 안 되었는데, 저녁은 시켜 먹거나 나가서 먹으려 했어요. 같이 먹어요, 이모.”
“어르신은 그러지 않으실걸.”
이모는 씁쓸히 웃으며 품에서 봉투를 하나 꺼냈다.
“뭐 가전제품 같은 거라도 집들이 선물 겸 해주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가져왔어. 그냥 받아. 이건 말 그대로 집들이 선물이야.”
“아니, 괜찮은데.”
“곧 2학기도 시작하잖아? 너 돈 들어갈 곳 많아질걸?”
조은이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봉투를 받아 들었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1억 2,895만 4,440원]‘200만 원!’
나는 상태창의 숫자를 통해 그 봉투 안에 얼마가 들었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아까 도화선녀에게 주었던 돈이 그대로 채워지고 있었다. 신기했다.
조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이모가 조용히 말했다.
“일부러 전세로 가라고 한 거야. 내가 봤을 땐 결국 그 돈에서는 빠듯하게 빌라를 매매하거나 전세로 가는 것, 두 개 외엔 선택지가 없었어. 하지만 넌 학생이고 어르신도 뚜렷하게 벌이가 없으시잖니.”
“그렇죠.”
“그럼 일단 여유 생활자금은 반드시 필요한 법이니 전세가 오히려 더 삶의 질에 있어서 안전할 수 있거든. 그리고 남는 여유자금으로는 내가 말했던 대로 다시 투자도 시작해보고. 소질이 있으니까.”
조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지금 해주는 조언이 저 봉투에 든 돈보다 훨씬 더 값지고 클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전세기한이 만료되었을 때엔 더 넓은 집, 더 좋은 집으로 간다는 목표를 뚜렷하게 세우는 거야. 시간은 충분하잖아? 그러면 네가 투자한 금액은 그만큼 점점 불어나겠지. 사람의 의지는 투자 성향에 묻어나거든.”
맞는 말이었다. 극도의 간절함이 도박과 같은 대회 마지막의 투자 선택을 만들어냈다. 그와 같지는 않겠지만, 2년, 연장하면 4년 후 더 좋은 곳을 가겠다는 뚜렷한 목표는 조은이에게 보다 신중하면서도 확고한 투자 원칙을 만들어줄 것이 분명했다.
“세대주는 어르신 이름이지?”
“그렇죠.”
“그럼 주택청약 아직 안 들고 있으면 지금부터라도 넣기 시작하고, 이제는 조은이 네가 모든 것을 이끌어가야 해. 네 삶을.”
조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이런 경제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주변의 어른은 이모가 유일했다.
청약부터 현재 주식시장의 전체적 흐름, 그리고 자산을 불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놀고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 돈이 어느 정도 모이면 그것으로 또 수익을 창출할 생각을 하라는 조언들이 이어졌다. 조은이가 눈을 빛내며 그것들을 들었다.
“분명히 조은이 넌 2학기 때도 아르바이트를 할 테고.”
“당연히 구해야겠죠.”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 시급은 아마 뻔할 거야. 당장이야 계산 가능한 돈이 되고 시간 맞춰 들어오니 계획을 세우기엔 유리하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수익을 꾸준히 낼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 것도 좋아.”
이모의 말에 조은이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했다. 동영상 채널을 만들고 싶고, 해피의 일상과 자신의 투자일지 등을 올리고 싶다는 것, 그리고 지금 SNS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 등.
“그쪽은 이모가 잘은 모르지만, 분명 동영상 콘텐츠도 나쁘진 않겠지. 과거에 만들어놓은 것들이 누적되어서 수익을 계속 가져다주는 방향, 월세처럼 계속해서 수익이 들어오는 구조, 그걸 꼭 설계해보렴.”
“네, 알겠어요.”
“그렇게 돈이 모이면 또 새로운 것을 할 수 있잖니. 이번에 이모,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 밀키트 점포 두 개를 더 늘렸거든.”
“두 개나 더요? 이모 운영하는 회사도 바쁘시잖아요.”
“무인 점포니 딱히 관리가 필요 없으니까. 밀키트도 코로나가 끝나고 사양 산업이라 하지만, 쉽게 일정한 맛을 보장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신도시,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서는 아직도 매력적이야.”
“아아, 대단하시다.”
“꾸준히 들어오는 것을 점점 더 늘려가고 키워나가는 것. 그게 가장 큰 시작이야. 알았지? 그러니 너는 부지런히 모아. 그래서 이사를 가건, 그 돈으로 또 다른 수익이 발생하는 것을 만들건 여하간 움직일 생각을 해야 해.”
“네!”
이모가 웃으며 일어섰다. 조은이가 황급히 따라 일어나 이모의 손을 잡았다.
“같이 식사하셔야죠!”
“내가 너랑 식사하면 어르신이 혼자 드실 것 아냐? 나도 집에 가서 가족들이랑 먹어야지.”
“…”
“이모, 오늘 너무 기분 좋아. 이렇게 깨끗한 곳, 그것도 내 조카가 스스로의 힘으로 마련한 곳도 와 보고. 언니랑 형부도 얼마나 좋아하시겠니. 그러니 아까 이모가 말한 것 잊지 말고. 알았지?”
“네.”
“나오지 마, 앞에서 택시 타고 갈 테니까. 푹 쉬고, 나중에 이모 집 놀러오고.”
그래도 조은이는 기어코 날 안고 바깥으로 따라 나갔다. 저 멀리서 조은이와 이모, 내 모습을 보던 노파가 서둘러 골목 안으로 숨었다. 나는 그 모습을 못 본 체했다.
택시를 잡아탄 이모를 배웅한 후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노파가 스윽 나와 헛기침을 했다.
“할머니! 그냥 들어오지.”
“뭘, 이 동네 한번 둘러봤는데 살만허드라.”
조은이의 발걸음이 한 점포 앞에서 멈췄다. 찜통 위로 하얀 김이 마치 연기처럼 올라가고 있었다. 찐 만두가 그 안에서 하얗고 토실토실한 자태를 드러냈다. 새우만두는 빨갛게 익은 꼬리를 내어놓고 있었다.
“어차피 오늘 저녁은 사 먹을 수밖에 없는데, 만두 먹을까?”
“만두?”
노파의 눈이 만두로 향했다. 나 역시 개로 환생 후 만두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기에 입에 침이 가득 고였다.
조은이가 재빨리 앞으로 다가갔다. 찜통을 열어 판을 바꿔 끼우던 사장이 ‘어서 오세요’하고 큰 소리로 인사했다.
“저기, 고기만두랑 김치만두 하나씩이요. 그리고 음… 새우만두도 하나 주세요!”
“4천 원, 4천 원, 5천 원, 합이 1만 하고 3천 워언~!”
운율이 멋들어지게 실린 그 말에 조은이가 웃으며 카드를 꺼냈다. 그 뒤로 노파가 다가섰다.
“비싸! 무슨 만두가 1인분에 4천 원이야!”
“맛보고 맛없으면 환불해 드려요~!”
“맛없다고 할 거야! 맛이 없을 게 분명해!”
“할머니, 아! 좀!”
조은이가 새빨개진 얼굴로 포장된 만두와 카드를 받았다. 싱글벙글 미소가 가득한 만둣집 사장이 옆의 찜통을 열고 우유 찐빵을 두 개 꺼내 덤이라고 쥐여줬다. 그걸 받아든 노파의 표정이 슬쩍 풀렸다.
“흠, 보니까 한 군데 오래 장사한 데엔 다 이유가 있어. 맛은 있을 거여.”
“네에, 드셔보시고 다음에 또 오세요~!”
얼굴이 토마토색이 된 조은이와 그만큼 온몸이 빨개진 나는 최대한 노파와 거리를 두기 위해 앞서 걸어갔다. 그러나 노파는 덤으로 받은 찐빵을 한 손에 들고 먹으며 귀신같이 뒤로 따라붙었다.
“할머니, 그러지 좀 마라!”
“뭐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TV를 켜고 거실에 앉았다. 그리곤 포장해 온 만두를 먹기 시작했다. 조은이가 노파의 눈치를 보며 슬쩍슬쩍 옆으로 내어준 조각을 나는 잽싸게 훑어 먹었다.
“여기는 일할 만한 곳이 있을라나?”
“아까 전입 신고하면서 알아볼걸. 어차피 내일 나랑 같이 가서 등기부 등본도 떼고 할머니 공공근로 신청도 해요.”
“잉, 그리여. 니는 언제까지 아르바이트냐?”
“이번 주 일요일.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학교 나가지. 2학기 시작하니까.”
“벌써 그렇게 되었냐?”
“그러게. 이번 여름, 무언가 엄청 빠르게 지나갔어. 어디 놀러 갈 생각 같은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정신없이 금방 지나가 버릴 줄은 몰랐네.”
김치만두를 오물거리던 조은이가 생각에 빠졌다.
그 틈을 타 몰래 김치만두를 한 입 베어 문 나는 생각보다 엄청 매콤한 그 맛에 ‘켁! 켁!’ 거리며 기침을 했다. 여지없이 노파의 효자손이 날아왔다.
“깨애앵! 깨애앵!”
‘저놈의 효자손은 왜 안 버리고 들고 온 거야!’
서둘러 노파의 효자손을 막고 나를 안아 든 조은이가 노파를 향해 눈을 흘겼다.
“그나저나 진짜로… 방학 시작하자마자 비가 엄청 와서 집은 침수당하고, 그런 상황에서 투자 대회도 했고, 방송도 했고, 처묵소 아르바이트도 했고, 이사할 곳도 알아봐서 이사도 했고.”
대단했다. 정말로 대단했다.
노파가 멍하니 조은이를 쳐다보았다.
“그러네, 우리 조은이가 요 두 달 남짓 동안 그렇게 정신없이 여러 가지를 했네?”
“나, 진짜로 엄청 뜨거운 여름을 보낸 것 같아.”
“그럼, 아무렴!”
“왈! 왈!”
그건 나도 보장할 수 있었다. 아마 이 대한민국의 20살 또래 중에서 조은이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낸 이는 없을 것이었다.
어쩌면 조은이의 인생 중에서 가장 뜨거운 두 달로 남을지도 몰랐다.
물론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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