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02
103. 똥석봉(1)
새롭게 만든 동영상 채널.
채널 이름은 간단했다.
[조은&해피 Story]이 간단한 이름을 짓는 데에도 조은이는 수없이 많은 고민을 거듭했다.
첫 번째 영상을 찍기 위해 조은이는 거실로 나왔다. 점점 물이 빠지고 있는 무지개색 귀와 꼬리를 신나게 흔들며, 나는 너른 거실을 정신없이 쏘다녔다.
“해피야, 손!”
“왈!”
“해피야, 짖어!”
– 척!
“해피야, 뛰어! 점프!”
– 발라당!
“해피야, 누워!”
– 폴짝!
약 1분간의 동영상 촬영 후, 조은이는 셀카 모드로 변환한 뒤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아, 이제 조금씩 저와 우리 해피 일상을 올리려고 해요. 지금까지는 SNS를 통해 올렸는데, 이 채널을 통해 브이로그를 올릴 테니, 해피에게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그렇지, 해피야?”
“왈! 왈!”
“그리고, 이번 주 토요일에는 해피의 귀를 다시 분홍색으로 염색하러 가도록 하겠습니다앗!”
“와, 왈?”
동영상 촬영을 멈춘 조은이가 푸하! 하고 한숨을 토해냈다. 이 짧은 영상에도 긴장이 역력했다.
정말로 보잘것없는 영상이고 장비도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그저 핸드폰으로 찍은 영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어찌 보면 또 다른 거대한 도전의 첫 발자국이 될 것이었다.
동영상 파일에 몇 가지 편집을 하고 자막을 입히는 데에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들어갔다. 그래도 조은이는 무료로 제공하는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의 기능을 꽤 빠르게 터득하고 있었다.
첫 번째 동영상이 업로드된 후, SNS에 채널을 홍보하고 URL을 걸기까지 모든 것을 마친 조은이는 곧바로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인자 오늘이 마지막이여?”
“응. 그래도 나름 이사는 이사라고, 끝나고 새집으로 오면 열두 시 가까이 되었는데, 이젠 진짜 끝이다. 아쉽다, 처묵소.”
“사장님헌티 안부 전해 줘.”
“알겠어요!”
조은이가 웃으며 신발을 신었다. 그리곤 인사하러 쫓아 나온 나를 꼬옥 안은 후 내려놓곤 집을 나섰다.
오늘이 마지막 아르바이트 날. 그리고 내일은 새 학기의 시작.
엄청 바빴던 여름에서 또다시 그대로 바쁜 2학기로. 쉼이 없이 달리는 조은이가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늘 저렇게 긍정적으로, 밝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나 역시도 무한한 에너지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휴우…”
땅이 꺼지는 한숨이 조은이 때문에 끌어 올려진 긍정 에너지를 쫘아악 빨아들였다.
순식간에 이 22평 산뜻한 빌라를 반지하의 음울한 어둠 속으로 밀어넣을 듯한 기운이 밀려왔다.
“끼이잉…”
뒤를 돌아보니 노파가 바닥에 앉아 한없이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공공근로 신청을 했지만, 워낙 노인들이 많아 당장 자리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낯선 곳이라 아는 이가 있는 것도 아니요, 일자리가 바로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딱히 당장 생활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1억 2,877만 1,890원]보증금 1억과 어제 다시 들어간 주식 2천만 원을 빼면 그래도 877만 원이나 여유자금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조은이는 한 달 동안 일한 아르바이트 급여로 180만 원 정도는 받아올 것이었다.
합치면 1천만 원이 넘었다.
물론, 일정한 벌이가 없으니 생활비로 빠르게 소진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적어도 5개월 동안은 버틸 수는 있긴 했다.
‘버틸 수는 있긴 하지…’
결국 노파의 걱정 또한 아무런 근거 없는 망상은 아니었다.
“해피야, 할매랑 같이 산책이나 나갈까나?”
“왈! 왈!”
노파가 나를 안고 나와 오래간만에 보행기 바구니에 날 넣었다. 요새 다리가 꽤 괜찮아져 보행기 없이 걸어 다닌다 싶었지만, 역시 장을 보거나 나와 단둘이 갈 때는 보행기를 이용했다.
빌라와 빌라 사이를 걷고, 처음 보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구경했다. 하지만 노파의 눈은 정신없이 사방을 훑고 있었다. 전단지가 붙여진 전봇대를 발견하면 혹여나 부업거리 모집하는 것일까, 하여 빤히 쳐다보았다.
그때, 한 빌라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유치원생이 보는 듯한 동화책 여러 권을 노끈으로 묶어 내어놓았다. 그냥 봐도 스무 권가량 될 책 뭉치가 두 개였다.
순간 나는 노파의 눈이 변하는 것을 느꼈다.
‘이 사람, 예전에 파지 모았던 것 다시 생각하고 있구만!’
나는 깜짝 놀란 눈으로 노파를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노파는 여자가 들어가자마자 조심스레 그 책 뭉치로 다가갔다.
“끼이잉…”
나는 그러지 말라고 낑낑댔다. 여태 잘 참아왔고 완벽하게 손을 떼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일을 빨리 하고 싶다 하더라도 예전의 그것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막고 싶었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일에 귀천은 없고 무엇이라도 노동을 해서 돈을 번다는 행위는 숭고했다.
다만, 그 일을 했을 때의 그 분위기들, 기억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두려웠다. 이제야 간신히 훨씬 넓고 밝은 집으로 이사 오고, 중고지만 비교도 안 될 좋은 가전제품과 새 가구까지 들였는데. 예전에 왜 그 일을 그만두었는지 상기해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필로티로 지어진 한쪽 주차장. 우리 차가 없으니 늘 비어있는 그 공간에, 예전 용숭동 때처럼 다시 파지를 주워서 쌓아놓을 것인지. 공병과 파철도 모을 것인지. 하루에 두세 번 이 동네를 돌며 모은 후, 삼 일에 한 번꼴로 고물상을 오가며 팔 것인지.
‘하아…’
노파의 손이 머뭇거리다 그 책을 집었다. 그리고 뒤돌아선 그때.
낡은 보행기를 끌고 서 있는 한 노파가 노파를, 정확히는 노파의 손에 들린 책 꾸러미를 쳐다봤다.
지금 노파가 입고 있는 옷도 엄밀히 따져 좋은 옷은 아니었지만, 손수레를 끄는 이는 그보다 더 낡은, 노숙인이나 다름없을 차림으로 서 있었다.
새카맣게 탄, 얼마나 안 씻었을지 가늠도 안 되는 얼굴과 몸. 때에 절어있는 옷에서는 악취가 풍겨왔다. 헝클어진 흰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딱딱하게 떡이 져 있었다.
이 더운 여름에 위아래 긴 솜옷을 입은 그 노파는 노파보다 열 살 이상은 더 많아 보였다.
이가 몇 개 남지 않은 입술이 우물거렸다.
“그, 그 책… 안 쓰실 거요?”
책이 손에 들려있으니 노파가 들고 버리러 나온 것으로 착각하는 듯했다. 뒤에 세워진 보행기에는 잡다한 고물과 파지가 가득 실려 있었다. 마치 진기명기 쇼를 하는 것처럼, 그 작은 보행기를 완벽하게 가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다.
두 노파의 눈이 부딪혔다.
한 명은 당혹스러운 눈, 한 명은 너무나 절실한 눈이었다. 당연히 이쪽 노파는 전자였다.
“그거, 안 쓰실 거요?”
재차 묻는 허름한 옷의 노파.
노파는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이곤, 몸이 아픈지 덜덜 다리를 떨고 있는 노파의 손에 책 꾸러미를 쥐여주었다.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그 노파는 서둘러 책을 쏟아지지 않게 짐 사이에 잘 끼우곤 다시 보행기를 밀며 사라져갔다.
“드, 들어가자. 아무래도 그 일을 다시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네.”
“왈! 왈!”
맞는 말이었다.
***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1억 3,057만 1,890원]빛태창의 숫자가 올라갔다. 180만 원이 더해졌다. 어제 조은이가 계산했을 때엔 178만 2,000원이었는데 기분 좋게 뒷자리를 채워 준 듯했다. 그만치 인심은 있는 이였다.
아니나 다를까, 약 한 시간 후.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에 집에 도착한 조은이의 손에는 쇠고기가 가득 든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오메! 이게 무엇이여?”
“처묵소 사장님이, 한 달 동안 너무 고생했다고. 이사했다는데 선물은 못 해주고 냉장고나 채워주겠다고 이렇게 싸 주셨어.”
“아유, 아주 그냥 좋은 냥반이여! 감사허다고 인사는 혔어?”
“그럼, 엄청 인사드렸지. 겨울에도 아르바이트할 거라면 언제든 환영이니 연락 달래. 할머니랑 놀러도 오래, 돈 안 받겠다고.”
“돈 안 받는다고? 아유! 밥 한 번 굶고 가야겠다.”
노파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조은이에게서 고기를 받아들었다. 한동안 고기 걱정은 없을 생각에 내 얼굴이 흐뭇해졌다.
“얼른 씻고 일찍 자! 내일부터 학교 가야 하잖어!”
“알겠어요! 오늘 월급 받은 것은 할머니 카드에 넣었으니까 그걸로 생활비랑 다 쓰면 될 거야!”
“그리여! 나도 금방 일할 것 찾을 테니께!”
“에이, 무리하지는 마시고. 아직은 괜찮아.”
***
샤워를 마친 조은이가 내일 학교에 가져갈 것들을 미리 가방에 챙겼다. 낮 동안에 택배로 배달 온 전공과 교양 과목 서적들은 그대로 책장에 고이 꽂혔다.
“해피야, 이것 봐!”
나를 안은 조은이가 책상 앞에서 컴퓨터를 켜곤 동영상 채널 페이지를 열었다. 그사이 구독자가 무려 200여 명이었다. 첫 동영상임에도 ‘좋아요’ 수도 상당했다. 그 밑의 댓글도 수십 개였다.
게다가 그 가운데 딱! 보인 걸덕이의 댓글
[오오오! 드디어 우리 안조은 님이 채널을 개설! 축하, 축하! 로이와 두찌 채널에서 방문 왔습니다! 이쪽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조은 님 파이팅! 다음에도 같이 고고!]‘우리는 개코나 우리? 뭐가 다음에도 같이 고고야, 쳇!’
마음엔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와서 이렇게 댓글을 달아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조은이가 걸덕이의 아이콘을 눌렀다. 아니나 다를까, 걸덕이 채널의 공지에 ‘안조은 님 동영상 채널 오픈 축하!’라고 쓰여 있고 조은이의 채널 URL이 바로가기로 입력되어 있었다.
‘흠, 고맙긴 하구만…’
“그러잖아도 걸덕이 오빠에게 문자로 보내서 알리긴 했는데 이렇게 찾아와 주셨구나. 게다가 꼭 연락 달라고, 가르쳐 줄 게 많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너무 늦었지. 에혀.”
조은이가 하나하나 댓글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 볼게요!’하고 남겼다. 그리고 걸덕이의 댓글에도 남기는 순간!
–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아아, 이 귀신같은 사람. 지금 자정이 넘어가고 있는데!
“여, 여보세요?”
[아아, 댓글 알림 뜬 거 보고 안 자고 있구나, 해서 전화해봤죠. 잘 지냈어요?]“아, 네네. 오늘로 아르바이트도 끝났고, 내일부터 2학기 시작이라. 아하하하!”
“왈! 왈!”
‘12시다, 이놈아!’
나는 전화기 속의 걸덕이에게 ‘네 무례함을 알라’며 짖어댔다. 조은이가 황급히 전화기를 손으로 막곤 내게 눈을 흘겼다.
“끼이잉…”
[하하하, 해피는 건강하네. 첫 동영상, 짧지만 되게 잘 봤어요. 편집은 신경 쓰셨는데 역시 폰카 티가 확 나긴 한다.]“그, 그쵸?”
[별로 상관은 없어요. 장비야 나중에 천천히 사도 되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콘텐츠인데…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시게요?]“아, 일단 제 일상이랑 해피 일상, 그리고 투자 일기 같은…”
걸덕이가 명쾌하게 잘랐다.
[투자 빼고, 안조은 일상, 해피 일상. 이 두 개만 제대로 파요. 아무리 짧아도 매일 올릴 것.]“네, 네에? 그걸 어떻게요! 이제 학교 다니면 정신없는데!”
[학교 가서 5분 못 찍어요? 어차피 명문인 한강대 다니는 한강대 광고녀 안조은이잖아요? 그게 콘텐츠지. 학식도 찍고, 학교 호수도 찍고, 정문 앞 대학가 맛집도 찍고! 사진을 여러 장 찍어도 음악 잘 넣어서 뮤비처럼 하면 되고.]“아? 아아…”
[해피는 사료 먹는 모습 찍어도 좋고, 인근 근린공원 산책도 좋고. 소세지 좋아하면 애견 소세지 하나 사서 먹는 먹방 짧게 찍어도 좋아요. 토요일날 귀 분홍색으로 염색한다는 것, 들어가기 전 이야기하고 해피 표정 찍고 나온 모습 짜잔! 해피 표정 찍고.]와아.., 프로는 프로다. 조은이의 입이 쩍 벌어졌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팬들은 한강대 다니는 예쁜 광고녀 안조은의 일상과 귀여운 모습, 어리숙하지만 총천연색 모습을 보려 하는 것이고, 해피의 활달하고 엉뚱한 모습, 그 못생… 어흠! 개성 넘치는 모습을 보길 원해요. 투자 같은 건 전혀 넣지 말아요. 방향이 어긋나니까.]“아, 네에… 하긴 SNS에 따로 넣어도 되니까.”
[그리고, 해피 똥 안 싸게 할 거예요?]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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