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05
106. 똥석봉(4)
“해피야, 여기 봐!”
“왈!”
나는 조은이와 함께 바깥에 나와 있었다. 목줄을 한 상태였지만 재빨리 앞으로 달려가려고 낑낑대고 있었다.
“안 돼, 위험해! 여기!”
“왈!”
뒤를 돌아본 나를, 조은이는 미소를 지은 채 핸드폰을 들어 촬영하고 있었다.
“오늘 우리는 해피의 귀와 꼬리를 염색하러 가요. 전에 무지개색으로 했는데 보시다시피 엄청 색이 빠졌거든요. 그래서 다시 분홍색으로 염색하러 간답니다.”
“왈! 왈!”
“이사를 와서 이 근방의 애견 미용실은 잘 모르는데, 처음 가보거든요? 아마 예쁘게 잘해주시지 않을까 합니다!”
녹화를 멈춘 조은이는 나를 안고 상가가 밀집해있는 거리를 걸어갔다. 그리곤 미리 찾아둔 한 애견 미용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아까 전화로 예약했던…”
“아, 안조은 님이세요? 그리고 이 강아지가… 어머!”
조은이보다 서너 살 정도 많아 보이는 젊은 여자가 나를 보며 깜짝 놀랐다. 분명 인터넷에서 봤을 게 분명하다.
“똥싸개!”
“아하하, 다들 그렇게 부르시더라고요.”
“맞네! 견주분 얼굴도 보니까 동영상에서 본 기억이 나요. 와, 신기하다.”
“이 근처로 이사 와서요. 잘 부탁드릴게요.”
“그럼요. 그 어느 곳보다 더 화려하게, 더 튀게 해 드릴게요.”
음, 그건 곤란한데…
나는 무언가 불안한 눈으로 조은이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세상 똑똑하고 야무지고 부지런한 조은이는 꼭 내가 염색할 때엔 순진하고 맹한 주인이 되었다.
방금 꺼낸 직원의 말에 ‘화려하게요? 좋아요. 엄청 예쁘게 해 주세요!’하고 손뼉을 치며 좋아하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난 이제 세상의 삐에로, MZ세대의 시대적 아이콘이자 대변!자가 될 테니.’
나는 미용 공간 안쪽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동안 조은이는 잠시 시장에 다녀온다며 바깥으로 나갔다.
“어쩜, 진짜 똥싸개네? 해피라고 했나?”
“왈!”
“너, 진짜 신기하게 생겼다. 이따가 사진 찍어줄게?”
“왈!”
“언니가…”
순간 직원은 내 다리 사이를 쳐다보곤 재빨리 말을 바꿨다.
“누나가 예쁘게 염색해줄게!”
“와, 왈!”
나는 민망해 다리 사이를 잔뜩 오므렸다. 아무리 그래도 역시 이런 것만은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딱 봐도 ‘나는 진하다’하고 말할 것만 같은 통에 든 염료가 내 귀와 꼬리에 발라졌다. 그리고 익숙한 작업. 피어오르는 특유의 냄새.
이젠 나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귀와 꼬리. 아니, 내가 환생하기 전에도 해피라는 개의 몸은 늘 화려한 염색이 되어있었겠지만, 이젠 정말로 만인에게 인식되는 나만의 색이 된 것이었다.
‘어떻게든 잘 되겠지. 어차피 30억을 채우면 이 개의 몸을 떠나니까. 참는 것이다.’
“와아, 똥싸개는 엄청 얌전하구나. 누나가 작업하기 편하네.”
“왈!”
‘해피라고!’
나는 한 번 짖어준 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어차피 조은이가 와야 나갈 수 있을 것이었다.
***
“와, 와아…!”
나를 본 조은이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 눈은 놀람을 넘어 희열로 바뀌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기에. 어차피 염색이 다 거기서 거기… 엥?’
반짝이. 초등학교 아이들이 즐겨 쓰는 반짝이풀과도 같은 그런 찬란한 빛이 내 귀와 꼬리에 내려앉아 있었다. 밝디밝은 형광분홍색 귀와 꼬리에 모래알처럼 박힌 이 영롱한 번쩍임…
“특별히 이번에 들어온 것 처음 써 봤어요. ‘어메이징 펄’이라고 완벽하게 고급스러움을 더해주거든요. 똥싸개, 아니 해피에게 딱이다. 그쵸?”
“너무, 너무 예뻐요. 정말 해피에게 잘 어울려요!”
‘…’
내 주인의 저 최악의 미적 감각은 언제나 정상으로 돌아올까…
활짝 깎아 분홍 소세지가 된 몸, 풍성한 귀와 꼬리는 형광분홍색에 반짝이는 보석빛, 지저분한 눈물 자국, 기다란 주둥이, 긴 앞 뒷발, 다리 사이의 시커먼 고환.
나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뀽♥? 캐해해행! 캐앵! 캐앵!”
나는 혹여 괜찮아 보일까 하여 거울 속의 나에게 애교를 날려봤다가 주화입마에 빠질 뻔했다. 순간 온몸이 마비되고 내 안의 강렬한 분노가 혈관을 퍼져나가는 듯했다.
“해, 해피야! 괜찮아? 왜 그래!”
“켁! 케엑! 헥, 헥…”
조은이가 나를 재빨리 안아 들고 카드를 내밀었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1억 3,031만 7,770원]하아, 또 줄었네.
이번 주는 다른 공과금도 나가는 것이 있어 25만 원이 넘게 빠져나갔다. 거기에 내 번쩍이는 꼬리와 귀가 한몫을 했다는 것이 난 너무나 아까웠다.
직원의 요청으로 사진까지 찍어준 후, 우리는 바깥으로 나왔다.
“자아! 해피가 멋지게 염색을 했어요. 아까 직원분께서 무슨 펄이라더라? 미스테리 펄인가 오마이갓 펄인가 그거라고 했는데, 정말 잘 나왔어요. 우리 해피 너무 예쁘죠?”
“끼이잉…”
길거리에 선 채 나를 찍는 조은이. 그리고 그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의 엄청난 시선.
나는 재빨리 이 거리를 벗어나기 위해 목줄을 앞으로 끌며 조은이를 이끌고 갔다. 아무리 당당해지기로 했고 세상의 아이콘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한들, 정말 이 펄의 존재감은 어떻게도 이길 수 없었다.
“아유, 깜짝이야! 이게 개야, 도깨비야?”
바로 옆의 미장원에서 나오던 한 노파가 나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다 문턱에 걸려 뒤로 나동그라졌다. 그 안에서 짖으며 뛰어나오던, 꼬리와 귀를 초록색으로 염색한 시츄가 내 귀를 보곤 ‘깽깽’거리며 안으로 쏜살같이 도망쳤다.
‘환장하겠네.’
결국 조은이가 나를 품 안에 안아 들었다.
“해피가 너무 예뻐서 사람들이 놀라는 것 좀 봐!”
“끼이잉…”
‘퍽이나.’
***
염색을 마치고 돌아오니 노파는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여보세요? 할머니!”
[잉! 나 오늘 하도 심심해서 점쟁이네 집에 놀러가는 중이여. 저녁때 고기라도 구워 먹어.]“알겠어요. 너무 늦지 마세요.”
[그 똥개, 사람 먹는 것 주지 말어! 특히 비싼 쇠고기는 절대 주지 말어!]“네이, 네이! 다녀오세요!”
전화를 끊은 조은이가 나를 보며 ‘으흐흐흐’ 웃었다. 나 역시 입이 찢어지게 헥헥댔다. 고기다! 그것도 세상 인자하시고 배려심 넘치는 우리 처묵소 용숭점 사장님이 주신 고기다!
저녁을 먹을 때까지, 조은이는 신나게 오늘 찍은 동영상을 편집했다. 미용하러 가기 전, 그리고 미용하고 난 후의 동영상과 사진들이 어우러지며 편집되었다. 배경음악과 자막까지 넣는 그 손길이 엄청 빨라졌다.
‘확실히 머리는 좋단 말이야.’
어느새 업로드까지 마치고 나니 벌써 저녁을 먹을 때였다. 최대한 기름이 없는 부위를 골라 고기를 구운 후, 조은이와 나는 오래간만에 포식을 했다.
“하아아, 좋다. 그치?”
“왈! 왈!”
조은이가 소금 기름장에 고기를 한 점 찍어 입안에 넣으며 눈을 찡긋 감았다.
“헥! 헥! 헥! 헥!”
“자아, 우리 해피도 맛나게 팍팍 드시고오!”
– 지잉! 지잉!
아까부터 계속 울리는 댓글 알림. 역시 동영상을 올리자마자 쏟아지는 반응들이 나와 조은이에게 쏠려있는 관심을 보여주는 듯했다.
핸드폰을 들어 댓글을 보며 웃던 조은이가 ‘어?’하고 한 댓글을 주시했다.
“그때 그분이네? 짝사랑하는 여자 친구의 이름을 써 달라시던 분.”
“끼잉?”
굉장히 열정적인 부탁이었다. 나는 조은이의 손에 앞발을 딛곤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물어나 볼까?”
조은이가 댓글로 그분 성함을 혹시 메일로 보내줄 수 있느냐 적으며 메일 주소를 남겼다. 그리고 곧이어 메일이 도착했다.
‘부디 쉬운 이름이었으면 좋겠다.’
[안녕하세요! 메일을 보내게 되어 기쁩니다!저는 세강중학교 3학년 김진혁이라고 합니다.
사실은 제가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해피의 엄청난 팬이거든요. 그래서 혹시 해피가 그 여자 친구의 이름을 써 준다면 되게 멋진 고백 이벤트가 될 것 같아요. 핸드폰 바탕화면도 해피가 똥 싸는 모습이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여자 친구의 이름은 오유미 입니다!]
이제 막 첫사랑에 빠진 느낌이 팍팍 묻어났다. 조은이가 그 풋풋한 메일을 읽은 후 답변을 보냈다.
[기, 길긴 한데 일단 해 볼게요. 그리고 부디 해피의 노력이 닿길 바라요.]‘하아… 아냐, 오유미 정도면 어떻게든 조절할 수 있어!’
나는 이미 쇠고기로 배가 부른 상황이었지만, 이 사랑의 고백을 위해 억지로 말표 사료를 씹어 먹었다.
그리고 조은이는 내 눈치를 보며 A4용지에 ‘오유미’를 써 놓고 가만히 배변판 앞에 내려놓았다.
오유미, 유미야… 부디 그 학생의 마음을 받아주렴.
유미야, 그래도 난 네가 유미라 좋다. ‘꿹뚫꿇’이나 ‘뷁퐍퀰’같은 이름이 아닌 것이 어디니. 미도리카와 유키에나 릴리야 체르니코바 같은 외국인이 아닌 것도 너무 좋구나.
“해피야, 혹시… 물론 못 해도 누나는 아무런 상관없어. 이 글씨 보여? 이게 사람 이름인데…”
‘알아, 알아. 충분히 알아.’
조은이는 내가 개라는 것도 잊고 필사적으로 첫사랑이 얼마나 풋풋한지,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마법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것을 돕는 행위가 얼마나 숭고한지 등을 더듬거리며 설명했다.
“물론, 나는 아직 첫사랑도 못 해봤지만. 아하하.”
“왈! 왈!”
‘해피 사랑한다며!’
여하간 조은이의 설명이 대충 마무리되었다. 나는 계속 조은이가 가리키는 글씨를 보며 이것을 인식하는 척 연기했다.
“오오오, 해피! 무언가 지금 머리에 집어넣고 있어! 아주 좋아!”
“왈! 왈!”
곧이어 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살코기 위주로 구웠어도 기름이 아예 없을 리 없었고, 거기에 말표 사료 특유의 빠른 소화까지 더해지니 배는 금세 가득 차기 시작했다.
“끼, 끼이잉! 끼이이잉!”
“어? 어! 오유미! 오유미!”
조은이가 손가락으로 계속해서 종이를 가리켰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노려보며 엉거주춤하게 다리를 구부리고 뒤뚱뒤뚱 자세를 잡았다.
‘처음부터 단번에 쏟아냈다간 또 똥폭탄이 되고 만다. 세 글자야, 긴장해야 해. 일단 붓으로 치면 얇은 붓인 거야. 중간에 잉크, 아니 변크를 다 쓰면 안 되니까 글자 크기는 작고 가늘게… 마지막의 ’미‘ 자는 네모가 정확해야 해. 오유이가 되면 안 돼!’
온 힘을 집중한 가운데 나는 천천히 ‘열었다’.
이제 곧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열심히 공부하며 미래의 진로를 생각해야 할 나이. 신록이 우거진 학교 교정에서 교복을 입은 채 친구들과 웃으며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한 학생.
언제부터인가 불쑥 찾아와버린 설렘, 그리고 괜히 찾아보게 되는 노래 가사와 짧은 글귀. 생일은 언제인지, MBTI는 뭔지, 혹시 좋아하는 아이돌은 누구인지 끝없이 알고 싶은 너.
가끔 보이는 환한 웃음, 머리를 뒤로 쓸어올릴 때 나타나는 하얀 얼굴과 동그란 이마, 가지런한 이의 너.
내가 가슴에 처음 담게 된 너의 이름은…
오…
유…
ㅁ l…
해냈다. ‘미’ 자가 자음과 모음이 살짝 떨어졌지만, 난 그 학생의 첫사랑 이름을 쌌다.
“해, 해피야! 대단해!”
조은이의 눈이 황홀하게 빛났다.
첫사랑의 큐피드가 된 나는 뒤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조은이의 손에 들린 핸드폰은 그런 나와 내가 방금 싼 글을 그대로 동영상으로 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