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06
107. 똥석봉(5)
좋아하는 여자 친구의 이름을 써 달라는 요청에 동영상을 첨부해서 답변을 보내고 난 뒤, 며칠이 흘렀다.
우리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주말은 훌쩍 지나갔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노파는 지역복지센터에서 안내해준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가 들어와 보건소 입구에서 발열 체크와 손 소독 안내를 맡는 일을 한 달간 하게 되었다. 하루 4만 원, 1시부터 5시까지 하는 일이었다.
“잘 할 수 있겠어?”
“나야 문제없지.”
“해피가 혼자 있으면 심심하겠다.”
“왈! 왈!”
‘차라리 혼자가 낫다!’
노파의 궁시렁을 반나절 내내 듣는 것보다야 선풍기 틀어놓고 시원하게 혼자 있는 것이 훨씬 좋긴 했다. TV도 볼 수 있고 내 맘대로 뛰어다닐 수 있으니 차라리 원하던 바였다.
조은이가 나간 후, 노파는 설거지를 마치곤 운동 삼아 날 보행기에 태우고 또 동네를 돌기 시작했다.
이제 막 열기 시작하는 점포, 이미 열린 점포. 세탁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 속 석유 냄새. 새로운 동네도 사람이 사는 냄새는 용숭동과 같았다. 오가는 초등학생들이 장난을 치며 신발주머니를 휘둘렀다.
“어! 이 강아지 예쁘다!”
그 와중에 한 소녀가 내 앞으로 뛰어와서 날 빤히 바라보았다.
“뀽♥”
“와! 진짜 예쁘다.”
‘너도 미적 감각이 정상은 아니구나.’
그때 소녀의 손에 들려진 맥시봉이 눈에 들어왔다. 하아, 진짜 저거 오랫동안 못 먹었는데. 도화선녀님 그립습니다…
내 시선이 자신이 든 소세지에 향하자 소녀가 얼른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노파를 쳐다보았다. 이 강아지에게 줘도 되냐는 그 눈빛, 주고 싶다는 강렬한 호소.
“안 돼. 사람 먹는 것 개한테 주는 것 아니야. 그럼 죽어.”
“그래도 주려고 벗겼는데요.”
“그럼 이 할매가 먹을 테니 주라.”
“네에?”
당황한 채 서 있는 소녀의 손에서 소세지를 뺏어 든 노파가 반절을 부러트려 자신의 입안에 넣곤 나머지는 소녀에게 건넸다.
“내가 다 뺏어 먹은 것 아니여. 나눠 먹은 것이여. 맞지?”
“네에…”
“내가 이놈 주인이니 내가 먹어도 이 똥개가 먹은 것이랑 똑같아. 그치, 해피야?”
“크르르르르! 왈! 왈!”
노파는 내가 짖거나 말거나 무시한 채 앞을 보고 걸어갔다. 나는 보행기 뒤에서 소녀를 뒤돌아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소녀는 무언가 작심한 듯, 남은 소세지의 껍질을 벗기곤 살금살금 뒤로 따라붙어 내 입에 쏙 넣어줬다.
– 촵촵촵촵!
“잉?”
노파가 낌새를 느끼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소녀는 ‘으아아아! 마귀 할머니!’하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와하하하할! 와하하하할!”
“마, 마귀 할머니? 저 조막만 한 것이. 이 똥개는 뭐가 좋다고 웃고 난리여!”
노파는 씩씩대며 동네를 돌았다. 나는 산책 중에 얻어걸린 이 행운의 이벤트에 만족하며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신나게 꼬리를 흔들었다.
***
말표 사료를 가득 부어놓고 배변 패드까지 새것으로 교체한 후, 노파는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출근할 시간이었다.
“할매 금방 다녀올 테니 집 잘 지키고 있어!”
“왈! 왈!”
이윽고 발소리가 멀어져갔다.
이후로 찾아온 침묵. 간혹 여기까지 올라와서 전단지를 붙이거나 택배를 놓고 가는 이들의 발걸음이 들려왔지만, 그 외엔 오로지 침묵이었다.
나는 간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 것에 크게 만족하며 발로 에어컨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 쾌적 냉방을 시작합니다.
곧이어 쏟아지는 시원하고 쾌적한 바람. 이 정도 호사는 누려도 되잖아?
나는 TV 리모컨의 전원 버튼도 눌러서 켠 후, 다양한 앱 중에 동영상 플랫폼 앱을 찾아 눌렀다. 그리고…
[똥싸개]몇 번의 실수 끝에 간신히 검색어를 누를 수 있었다. 쏟아지는 다양한 영상들. 어떤 것은 모자이크가 생략된 날것 그대로의 영상도 올라가 있었다.
예전 조은이와의 광고들부터 하나하나 눌러보며, 나는 추억 아닌 추억에 빠졌다.
그다음엔 조은이의 채널. 간신히 찾아 들어간 후, 아직 많이는 올라오지 않은, 네다섯 개의 영상을 보며 신나게 웃었다.
‘이게 또 영상으로 보니 다른 느낌이 있네. 나 진짜 못생겼네, 우하하하!’
그렇게 신나게 에어컨을 틀어놓고 즐기다 보니 어느덧 오후 5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나는 얼른 에어컨과 TV를 끄고 세상 우울한 표정으로 되돌아간 채 거실에서 늘어지게 누웠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노파가 들어왔다.
“아니, 왜 이렇게 집이 시원해? 방금 전까지 에어컨 틀어놓은 것 마냥.”
‘!!!’
나는 모르는 척 일어나서 어슬렁어슬렁 조은이의 방으로 들어가 숨었다. 곧이어 노파가 저녁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된장국이 끓어오르는 구수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새로 산 밥솥이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하며 뜨거운 김을 뿜어냈다.
“다녀왔습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조은이가 들뜬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와 나를 껴안았다.
“할머니한테는 대충 인사하고 오자마자 해피 찾는 것 봐라.”
“해피가 얼마나 큰일 했는데!”
“끼잉?”
조은이는 나를 든 채 빛나는 눈으로 쳐다봤다.
“해피야, 메일 왔는데! 네가 똥으로 이름 써준 오유미, 그거! 그 학생이 고백했는데 잘 되었대! 그래서 감사 메일이 왔어! 자기 SNS에 올려도 되냐고 해서 그러라고 했어!”
아아! 다행이다. 그 학생의 진심이 통했구나! 내 똥에 담긴 진심도 통했어!
“여자 친구가 그걸 보고 엄청 웃더니 너무 감격했대. 여자 친구 SNS에도 올릴 거래.”
“왈! 왈!”
세상의 밝은 부분을 드러낼 수 있다면, 행복이 더해질 수 있다면 그 정도 이름은 얼마든지 써 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은이의 채널에도 그 학생의 감사 댓글이 길게 달렸다. 그 아래에는 자신의 SNS 링크가 있었다. 조은이가 그것을 누르니 정말로 내가 ‘오…유….ㅁ l’라 똥을 싸는 영상이 떴다.
그 아래로 ‘윰이’라는 이름의 사용자가 하트를 누르고 ‘해피 너무 귀여워! 완전 감동!’하고 단 댓글까지!
그 남학생의 댓글엔 사람들의 추천 버튼과 더불어 더욱 많은 요구가 이어져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써달라, 하트를 그려달라,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있는데 써 달라, 달마도를 그려달라 등 말도 안 되는 리플도 많았다.
그것을 훑어보던 나는 한 댓글을 보고 손을 탁 짚었다.
[제 생일인데 ‘축하’ 써 주시면 안 되나요?]난이도가 제법 올라가지만 무언가 의미가 있었다.
‘축이 가장 문제인데… 오유미를 쓴 양이 전부 저기에 들어갈 것이고. 한 자씩 끊어서 쓴다면 가능은 해. 다만 꽤 크게 써야 할 거야, 축자는…’
나는 그 댓글을 짚은 채 이게 좋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왈! 왈!”
“아, 이거? 이건… 좀 어려운데.”
“왈! 왈!”
조은이가 알았다는 듯 A4용지에 큼지막하게 ‘축하’를 쓴 후 배변판 앞에 붙여놓았다.
상을 차리던 노파가 그것을 보며 혀를 찼다.
“인자 저 똥개가 별짓을 다 하네.”
“그래도 사랑도 이뤄주는 우리 해피의 능력이야, 무시하면 안 돼!”
“맘대로 혀라. 그나저나 와서 간 좀 봐.”
노파가 무친 오이를 한 입 맛본 조은이가 인상을 찌푸리다 재빨리 얼굴에 미소를 지은 채 연신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너무 맛있다. 아후, 새콤해.”
“그리여. 식초가 사람 몸에 그리 좋디야.”
“왈! 왈!”
‘과유불급이지!’
단출하게 차려진 저녁 식사를 하며, 조은이는 새로운 학기의 시작과 함께 친구들도 난리라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노파에게 이야기했다.
여전히 들어오는 소개팅 제안, 그리고 투자대회 우승의 뉴스까지 알려져 한턱내라 하는 친구들의 말에 학식을 거하게 쐈다는 것까지.
‘그래서 아까 8만 원이나 빠져나갔구나.’
그래도 그 정도면 충분히 생색을 낼만은 했다. 나름 합리적인 소비였다.
“되게 해피를 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아. 그런데 데리고 갈 수가 없으니까. 강의실에 어떻게 해피를 데리고 있어?”
“끼잉…”
맞는 말이긴 했다. 나도 한강 대학교를 가 보고 싶은데, 그 한재호라는 호수의 다리를 조은이와 함께 걸어보고 싶은데…
아쉬운 마음에 사료를 씹어 먹자니 곧이어 신호가 왔다.
저녁 설거지는 조은이가 맡아서 하고 있었다. 노파가 상을 닦고 있는 사이, 나는 조금 더 배가 부글대도록, ‘변’크가 더 많이 생성되도록 거실과 안방, 작은 방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저 개가 왜 저러냐?”
“똥 마려운가 보지. 놔둬요. 해피야! 싸기 전에 저 글씨 잘 봐야 해. 알았지?”
“왈! 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운동을 했다. 이제 제대로 신호가 왔다.
“끼이잉! 끼이잉!”
“어맛!”
조은이가 서둘러 나를 안고 배변판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앞의 글씨를 손으로 가리켰다.
“축하. 축하! 축하가 뭐냐면, 좋은 일이 생기면 축하해 주는 게 축하… 엥? 이렇게 설명하면 안 되지. 좋은 일이 생기면 같이 기뻐해 주는 거야.”
“왈! 왈!”
나는 바닥을 킁킁거리며 빙글빙글 돌다가 엉거주춤 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내밀었다. 조은이가 재빨리 핸드폰을 들어 촬영을 시작했다. 노파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이 황당한 상황을 쳐다보았다.
“진짜 가지가지 헌다. 좋은 집으로 이사 와서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이여.”
“할머니, 조용! 지금 촬영 중인데 할머니 목소리 들어가요.”
“들어가라 그래라.”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최대한 배의 힘을 조절하고, 가늘고 길게 쌀 수 있도록 뒤의 직경을 세밀하게 풀었다.
“끼이이잉!”
‘ㅊ부터다. 실수하면 안 돼!’
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ㅊ]ㅜ
ㄱ
후우…
정말로 ㅊ은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여기에서 멈춰야 했다.
“할머니, 이것 봐. 정말 ‘축’을 썼어!”
“그리여, 좋것다.”
나는 뒤를 돌아 내가 싼 글씨를 쳐다보았다. 꽤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그날 늦은 저녁.
‘하’까지 완성했다. 조은이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영상에 담고 사진도 찍었다.
[ㅊ ㅎㅏ]ㅜ
ㄱ
그리고 늦은 밤까지 동영상을 편집해 올렸다.
[강타자호날두 님이 요청하신 생일축하 메시지, 해피가 썼어요.]제목과 함께 올라간 내 모습. 두 개의 동영상을 이어붙여 만들어낸 그 영상의 자막으로 [강타자호날두 님, 생일 축하드려요♥ 조은&해피] 까지 올라갔다.
완벽했다.
그 동영상의 반응 또한 폭발적이었다. 링크가 수없이 퍼져나가는지, 조은이는 아예 알림을 꺼 둬야 할 정도였다. 댓글이 어마어마하게 달리고 있었다.
‘뭐, 또 뭘 써달라는 것이겠지. 그런데 이게 정말로 개운이라고? 시키는 대로 했는데 다 잘 될 거라고?’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후에도 두어 번, 신청자들 중에서 고르고 골라 똥으로 글씨를 싸 줬지만, 딱히 무언가 변화하는 것은 없었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1억 3,024만 4,650원]꾸준히 생활비는 빠지고 있었고 주식도 정체기였다.
그냥 평범한 일상인 듯싶었다. 다만, 곧 얼마 되지 않아 조은이가 광고 수익을 신청할 수 있을 정도로 채널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만은 좋은 신호이긴 했다. 벌써 구독자 수는 900명을 훌쩍 넘고 있었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
조은이가 주말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뒤지고 있을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혹시 조은&해피 Story의 안조은 님이신가요? 전에 로이와두찌 채널에 출연하신 것이 있어 그쪽 담당자를 통해 연락처를 받게 되었는데요.]“네, 맞는데 누구세요?”
[ABS 방송국의 ‘세상에 이런 뭣 같은 일이’ 팀인데요, 똥으로 글씨를 쓰는 강아지가 있다고 해서요.]개운, 이것이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