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1
11. 투자금 선물하기(5)
그날 이후.
다시는 이렇게 몰래, 또 멀리 나갈 일이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물론 확신할 수는 없다. 이놈의 견생, 3년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역시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빌런이나 다름없는 노파와 내 진짜 주인 조은이의 통제와 감시는 철저해졌다.
가장 먼저 변한 것은 노파였다. 박스를 주우러 나갈 땐 목줄을 채운 채 앞에 태우고 줄 끝은 늘 유모차의 손잡이에 꽁꽁 묶어놓았다. 그렇기에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다. 족발 뼈를 얻어오는 즐거움이라도 없었다면 정말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었다.
또 아쉽기 그지없는 것은 잘 때마다 노파가 안방에 날 가두고 꼬옥 껴안고 잔다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낑낑대고 몸을 뒤틀려고 하면, 눈을 번쩍 뜨고 엉덩이를 사정없이 내리치곤 다시 품 안으로 꼬옥 껴안았다.
“우리 강아지, 우리 해피! 인자 또 도망가면 안 뒤야.”
‘당신이 날 도망치게 만들고 있잖아요!’
하릴없이 품 안에 안긴 채 억지로 자려고 하면, 이불 속에서 장중하게 울리는 방귀 소리, 그리고 그윽하게 올라오는… 마치 마귀를 냄새로 표현하면 딱 어울릴 만한 냄새를 맡아야 했다. 그렇게 한껏 노파의 방귀를 들이켠 날에는 자면서도 가위를 눌리고 깨어서도 가위를 눌리는 신묘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할머니, 요새 해피 얼굴이 너무 안 좋아. 죽상이야.”
“뭐, 죽을상?”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낑! 낑! 낑!”
아침에 학교로 가기 전, 뉘렇게 뜬 내 얼굴을 보고 걱정하는 조은이의 눈을 바라보며 난 제발 이 구렁텅이에서 날 빼달라고 울부짖었다. 이 순간에도 하루, 이틀 시간은 줄어들고 있었고 머릿속의 빚태창도 소액이지만 꾸준하게 마이너스 금액이 늘어나고 있었다.
‘빨리 핸드폰을 가져와야 하는데.’
내 머릿속의 생각은 온통 화단에 숨겨놓은 핸드폰뿐이었다.
“아 참! 할머니, 나 그거 있잖아! 촬영 아르바이트.”
쫑긋!
“잉, 그래! 그 30만 원!”
역시 나만큼이나 돈 냄새에 민감한 노파. 조은이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거, 합격했어! 당일 알바인데 오래. 그리고 촬영하는 거랑 반응 봐서 추가 촬영도 있을 수 있대!”
“왈! 왈! 왈!”
“오메, 장하다. 시상에, 아유 감사합니다! 30만 원!”
나도 노파도 기쁨에 겨워 소리 질렀다. 아무리 파지를 줍고 빈병을 줍고 주말에 카페 알바를 나가도, 저 어마어마한 부채를 제로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 와중에 하루에 30만 원이라는 것은, 전체로 보면 엄청 미미하겠지만 그래도 확실히 꽤 큰 수확이기는 했다.
“그리여, 진짜 잘혔다.”
“응, 다녀올게요! 저녁때 봐요!”
조은이는 그렇게 밝은 미소를 띤 채 노파의 품에 안긴 내 콧잔등에 입을 맞추곤 바깥으로 나갔다.
‘하아, 내 주인님.’
아련한 내 눈빛을 본 노파가 조은이의 흉내를 내듯 내 얼굴에 뽀뽀를 퍼부었다. 아련이 비련으로 금방 바뀌는 가운데, 형광색 귀와 꼬리를 축 늘어트린 날 내려놓은 노파는 주섬주섬 모아놓은 파지와 책 꾸러미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보행기에 싣기 시작했다.
‘오늘도 족발 뼈를 먹을 수 있으려나.’
나는 흐뭇한 상상에 빠져들었다.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기 시작했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저주받을 말표 개 사료보다, 남이 먹다 남긴 족발이라도 그것을 핥는 것이 내겐 더욱 중요했다.
“아이고, 갑자기 배가.”
천둥과도 같은 방귀를 내뿜던 노파가 급히 화장실로 들어갔다. 진득하게 퍼지는 그 악마의 유혹(!)과도 같은 향기를 맡지 않기 위해 코를 막던 나는 순간, 노파가 책을 위로 올리느라 문을 열어두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가 아니면 진짜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한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숨겨놓은 핸드폰을 물고 와야 했다.
여태 파악한 노파의 화장실 습관을 볼 땐 적어도 10분 가까이는 앉아있을 것이 뻔했다. 끙끙 소리를 몇 번 낸 다음엔 구슬픈 노래를 부르고, ‘아유, 세상에. 아유’ 하는 의미 모를 한탄을 열댓 번은 하곤 큰기침 소리와 함께 물을 내릴 것이었다. 그 사이, 충분히 핸드폰을 가지고 올 수 있었다.
“헥! 헥! 헥! 헥!”
형광색 귀를 휘날리며 골목 입구의 빌라 화단으로 뛰어간 나는, 다리에 힘을 모아 단번에 화단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썩어 말라버린 나무 뒤쪽에 감춰놓은 핸드폰을 찾아 물곤 다시 집으로 뛰어왔다.
계단을 내려서자마자 노파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모르실 거야.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름을 불러보세요~!”
‘실컷 불러보세요!’
나는 핸드폰을 든 채 안방과 조은이의 방을 번갈아 바라보다 조은이의 방으로 들어가 옷장 옆, 구석에 쌓여있는 박스들의 틈 사이로 재빨리 핸드폰을 밀어 넣었다. 분명 조은이의 핸드폰은 이 핸드폰과 같은 매우 오래된 모델이었다. 충전 타입도 당연히 동일한 것이었다.
“아유, 세상에, 아유!”
‘곧 나오겠구만.’
얼른 조은이의 방에서 나온 나는 물을 실컷 마시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화장실 앞에 앉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난 후 노파는 오래된 고민을 해결했다는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나왔다.
“우리 해피, 이렇게 착하게 앉아서 할매를 기다렸어?”
“왈!”
“오메! 내가 정신이 나가버렸나. 문을 저리 열어놓고 똥을 바락바락 싸고 쳐 앉아있었네.”
‘부디 그대의 존엄을 위해 그 이상은 말하지 마시오.’
“아이고, 우리 해피. 그래도 안 도망가고 이렇게 착하게 앉아 있었구만!”
노파는 내가 나가지 않았다고 생각하곤 기뻐하며 나를 들어 쓰다듬고는 목줄을 채웠다. 그리곤 유모차의 바구니에 앉힌 후, 내 등이 눌릴 정도로 책 꾸러미와 빈병을 담은 채 골목을 나섰다.
큰일을 해냈다는 뿌듯함에 나는 봄 햇살을 맞으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렇게 털털거리며 보행기는 고물상으로 향했다.
***
그날 밤, 나는 노파가 먼저 잠든 틈을 타 10초에 1mm를 움직일 정도로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간신히 그 거미줄 같은 품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곤 살짝 닫힌 안방 문을 주둥이로 열고 나가 조은이의 방문을 긁으며 낑낑댔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해피야!”
“낑! 낑!”
방에는 컴퓨터가 켜져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주식 차트 창이 열려있었다.
‘컴퓨터에도 깔았구나. 그나저나 그 10만 원으로 끝날 줄 알았더니…’
조은이는 주식의 꿈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던 것이었다. 나는 그 차트의 종목을 보았다. 나도 몇 번이고 들어봤었던 종목. 대체에너지 주였다. 조은이가 모의투자로 10만 원을 탄 종목이기도 했다.
“낑! 낑!”
“아하하하, 오늘은 누나랑 잘까?”
“와, 왈! 우왈! 우하할!”
나는 기쁘게 고개를 끄덕이며 조은이의 품에서 재롱을 피웠다. 그런 내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 조은이는 나를 안은 채 컴퓨터 앞에 앉아 다시 차트를 보기 시작했다.
계속 동영상 분석 사이트와 뉴스, 기업 정보 등을 열고 닫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조은이는 주식계좌의 잔액 10만 원을 확인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집중해 조은이의 주식계좌를 외우고 또 외웠다.
‘네가 이렇게 진지하게 계속 공부를 한다면, 내 80만 원을 이체해 줄게. 그게 맞는 것 같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적어도 무엇을 해 보려는 아이라면, 내가 쓰지도 못한 채 나중에 동결될 이 돈을 얼른 이체해 주는 것이 나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내 주인이 잠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결국 한참을 공부하다 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조은이는 나를 안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들었다.
슬쩍 몸을 일으키려 하니 ‘우웅, 해피야.’ 소리와 함께 조은이가 팔을 열었다. 나는 잽싸게 빠져나왔다.
‘언제고, 30억은 못 벌더라도 네가 단 얼마라도 벌게 된다면, 꼭 좋은 침대를 사렴.’
나조차도 침대가 없는 반지하에서 살았었지만, 그래서인지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운 조은이에게 더욱더 침대를 사주고 싶었다. 나는 가만히 조은이를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숨겨놓았던 박스로 가 그걸 물고 왔다.
가장 먼저 할 것은 전원이었다.
앞발을 눌러 케이블을 고정시킨 채 주둥이로 힘겹게 밀어 충전 중인 조은이의 핸드폰을 뽑아버린 후, 나는 몇 차례의 실패 끝에 아예 벽에 내 핸드폰을 고정시킨 후 케이블을 밀어 넣는 방식으로 간신히 충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전원이 켜지기 위한 5%의 충전, 그 짧은 시간이 내겐 너무나 길었다.
드디어, 충전이 되고 낯익은 화면이 나타나자마자 나는 얼른 앞발로 패턴을 그었다.
‘아이고!’
역시 손가락이 아니라 앞발이니 움직임이 쉽지 않았다. 두 번째도 실패하고 나니 가슴이 콩닥거렸다.
세 번째, 간신히 성공하니 여러 앱들이 띄워진 화면이 나타났다. 나는 부리나케 앞발로 화면을 넘겨 주식 앱을 띄운 후, 잔액 80만 원을 내 통장으로 이체했다. 비밀번호도, 이체 패턴도 그 작은 키보드 자판을 누르기가 어렵기 그지없었지만 어떻게든 천천히 하니 되긴 되었다.
그리고 내 은행 계좌에서 80만 원을 조은이의 계좌로 넣기 전, 나는 ‘보내는 이’ 입력란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아무것도 입력하지 않으면 ‘계별욱’ 본명으로 표시될 것이었다.
결국, 나는 힘들게 자판을 두드렸다.
‘조은위한선물’
유치한들 어떠랴.
이것이면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가명을 쓴들 모르는 이에게서 입금이 되면 불편한 마음에 신고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조은이의 지인 이름을 아는 것도 아니었다. 끽해야 들었던 것이 노란 머리에 세상 못된 인상의 지혜와 제대로 색도 채우지 못한 대방어 문신의 ‘범재 오빠’, 그리고 이름만 꺼내도 우울하기 짝이 없는 박복녀뿐이었다.
이렇게라도 한다면 누군가가 모의투자 1등을 한 것에 대해 익명으로 상금을 더했다거나, 그도 아니면 정말로 증권회사의 이벤트라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아니, 무엇을 어떻게 하든지 간에 ‘이걸 받아도 되는 걸까? 누군가가 내게 주는 것 맞나보다’ 하고 생각만 해도 그만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체를 마쳤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3,672만 5,720원]정확히 80만 원이 줄어들었다.
‘잘한 걸 거야.’
나는 이제 영원히 쓸 일이 없어진 그 핸드폰을 장롱 밑, 깊숙하게 밀어 넣었다. 그리곤 조은의 품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무언가 좋은 꿈을 꾸는 것일까, 눈을 감은 채 미소를 지으며 ‘헤헤’하고 웃는 조은을 보며 난 나른해져 오는 의식 속에 잠을 청했다.
계속 신경 쓰이던 것을 처리할 수 있어서 너무나 뿌듯한 하루였다. 그리고 노파의 방귀를 피할 수 있어서 더더욱 해피한 하루였다.
나는 해피.
해피해도 안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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