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2
12. 빌런의 존재감(1)
새벽에 먼저 일어난 나는 세상 다 산 표정으로 사료를 씹어 먹고 물을 마신 후 시원하게 패드에 똥, 오줌을 누었다.
그리곤 몸을 쭉 펴서 스트레칭을 마친 후 어두컴컴한 안방으로 들어갔다.
세상이 꺼져라 코를 골고 있는 노파의 옆에서 리모컨을 찾은 나는 앞발로 전원 버튼을 누른 후 멍하니 주식 채널과 부동산 채널을 돌려보았다. 여전히 패널들의 말과 상담을 요청하는 시청자들의 말은, 나와 이 반지하 공간에는 맞지 않았다.
‘아니, 집이 두 채이고 모두 역세권에 고속철도 정차역으로 지정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니, 장난하나? 자랑은 다른 데 가서 하세요.’
‘뭐? 평균 매수가가 46,000원대이고 지금 24% 이익을 봤는데 팔아야 하냐고? 그 정도면 스스로 정해라!’
보다 보니 점점 더 열이 받아 나는 TV를 끄곤 툴툴거리며 이불 위에 발라당 누웠다. 어차피 내 80만 원으로 조은이가 무엇이라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무엇을 하더라도 나보다는 수익이 좋을 것 같았다.
그때,
– 부우우우욱!
‘하아, 이분의 뱃속은 정말 밑이 안 보이는 바닥보다 무섭네. 장 기능이 전부 상장폐지 되셨나?’
이윽고 두꺼운 이불까지 뚫고 올라오는 냄새. 마치 봄날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뉘리끼리한 공기가 천 사이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도저히 버티지 못한 나는 다시 조은이의 방으로 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 탁!
“!!!”
“아이구, 우리 해피. 할매 품을 언제 벗어났어? 우리 이쁜 강아지. 이리 들어와.”
노파의 손이 날 움켜쥐곤 이불 안으로 끌어당겼다.
“캥! 깽! 깨앵!”
나는 슬프게 울부짖으며 그 흑암 안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앞발의 발톱을 세우고 이불을 잡으며 필사적으로 버텼다. 그러나 곧이어 허벅지에 터지는 무지막지한 노파의 손찌검에 화들짝 놀라 앞발을 떼었다.
‘아, 안 돼! 제발!’
나는 겁먹은 눈을 한 채, 그대로 방 안의 어둠보다도 더 어두운 이불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리곤, 그 밀폐된 공간 안에서…
– 뿌우우우욱! 푹! 핑! 퐁! 부드득! 뿌딜, 띨! 띨! 띨! 부와악!
“아이구, 아이구 우리 해피! 해피가 이 할매 아랫배에 있으니 소화가 잘 된다!”
– 부드드드드득 득! 득! 득! 득! 드으으으윽! 퐁!
내 아무리 개라고 해도 이 사탄의 공기를 코에 넣을 수는 없었다. 나는 후덥지근하고 눈앞이 노래지는 이 이불 속에서 최대한 코로 숨을 쉬지 않기 위해 입을 벌리고 ‘헥, 헥!’ 대며 입으로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맡으면 죽는다.’
“헥! 헥! 헥! 헥!”
이 뉘렇고 지독하기 짝이 없는 공기가 입 안 가득 묻더라도, 내 차라리 입을 버렸으면 버렸지 코로 맡을 수는 없었다. 코로 맡지 않으면 이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다. 코를 막고 눈을 감은 채 양파를 베어 물면 다들 사과를 먹는다고 착각하지 않던가!
“헥! 헥! 헥! 헥!”
그러나 좁은 이불 속에서 산소는 빠르게 소진되어갔고,
– 부덕! 부더더덕! 부덕!
부덕(不德)한 고밀도의 가스는 점점 더 농축되어만 갔다.
‘아, 안 된다. 이대로는!’
나는 입을 있는 대로 힘껏 벌리며 코로 숨을 쉬지 않기 위해 사활을 건 노력을 했다.
그때,
“우리 해피. 이놈이 왜 이리 헥헥대?”
노파의 손이 이불 속에서 헥헥대던 내 주둥이를 잡았다.
‘읍! 읍! 으으으읍!’
더 이상 구강호흡이 불가해진 난 사후세계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에서 ‘삐이~!’하고 이명이 들려왔고 귀가 먹먹해졌다.
그래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킁?”
‘망했다!’
“캐애애애애애애앵! 캐에에에에에에엑! 캥! 크헉! 깨애애앵! 크엉! 컥, 카악!”
이 노파가 설마 쌀을 아끼기 위해 내 사료를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독한 이 냄새. 울부짖는 내 눈에 다른 의미의 검은 실루엣이 보였다. 그 실루엣이 종을 흔들며 나를 명도로 이끌려 했다.
“옴마야, 이 개가 왜 이런댜! 옴마야! 해피야, 해피야!”
노파가 이불을 활짝 열고, -그래! 꼭 개가 다 죽어나가는 꼴을 봐야 속이 풀리지!- 게거품, 아니 개거품을 문 나를 번쩍 들었다.
동시에 내 비명을 들은 조은이가 작은 방의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할머니! 이게 무슨 소리야? 해피가, 해피가 왜! 어? 우우우욱!”
날 바라보던 조은이가 순간 안방에 퍼진 악귀의 냄새를 맡곤 헛구역질을 했다.
“우욱, 할머니! 이게 무슨 냄, 우욱!”
“아니 글쎄 말이다. 해피 이놈이 이불 안에서 방귀를 뀌었나 봐. 그리고 지 방귀 냄새에 놀라서 저렇게 경기를 일으키나 보다.”
얼레? 이건 무슨 모함인가?
나는 천장을 향해 발버둥을 치며, 하얗게 거품이 일어난 주둥이로 저 거짓말에 속지 말라며 황급히 고개를 휘저었다.
조은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코를 막은 채 날 흘겨보더니 아직 새벽인 것을 확인하곤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비틀거리며 조은이의 방으로 향했으나 조은이는 ‘방구쟁이, 저리 가! 누나 잘 거야!’ 하며 매몰차게 문을 닫아버렸다.
‘아, 진짜 이게 아닌데!’
나는 어쩔 수 없이 안방으로 다시 돌아갔으나, 이 뻔뻔한 노파는 ‘아유, 냄새가 이리 지독하냐. 뭘 먹은겨?’ 하며 문을 닫아버렸다.
‘환장하겠네.’
양쪽에서 외면당한 나는 어두운 거실 안에 홀로 남겨졌다.
억울함과 설움이 밀려들었다. 나는 내 몸을 던져가면서까지 핸드폰을 물어왔고, 또 조은이에게 내 전 재산을 이체해 주었는데, 조은이에게 버림받고 누명을 뒤집어쓴 채 할매에게도 냉대를 받다니.
“끼잉, 낑! 낑!”
불 꺼진 거실에서 서럽게 울부짖던 그때, 작은 방의 문이 열렸다.
“우리 방구쟁이 해피! 누나 품 안에서 방귀 뀌면 안 돼. 약속할 수 있지?”
“왈!”
누워있던 조은이가 배시시 웃었다. 그리곤 이불을 열어 공간을 만들었다.
나는 빛과 같은 속도로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빨리 안방의 문이 열렸다.
“우리 조은이 조금이라도 더 자고 학교 가야 허니께, 우리 해피는 이 할매랑 자자. 또 방귀 뀌면 아주 고물상에 팔아버릴텨.”
‘아…’
나를 덥석 안아 든 노파는 그대로 안방으로 들어가 다시 무덤의 이끼와도 같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썼다.
“우리 강아지, 우리 해피. 말도 안 듣고. 쿠울, 쿠우울!”
– 부덕, 덕! 덕! 덕! 덕!
“캥! 캐엑!”
***
아침, 노파가 일어나 재빨리 상을 차리는 동안 난 좀비처럼 비틀거리며 거실로 간신히 기어 나왔다. 움직일 때마다 내 털과 피부에 깊이 스며든 방귀 냄새가 폴폴 피어오르는 듯했다.
“아유, 저 똥 덩어리 같은 강아지. 온몸에서 냄새가 아휴!”
‘하아…’
노파의 구박 속에 나는 한숨을 쉬며 사료 그릇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어, 어어!”
그때 작은 방에서 들리는 소리. 이윽고 문이 열리더니 조은이가 핸드폰을 들고 멍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봤구나!’
“조은아, 얼른 이리 앉어! 빨리 먹고 학교 가야지.”
“하, 할머니! 저기 있잖아, 되게 놀랄 일이 있어! 갑자기 팔십만 원이…”
“뭐, 뭐 하는데 돈이 팔십이 들어가? 아유, 또 뭘 사야 허는디! 할매 돈 없는 것 알잖여?”
“어? 어…”
조은이는 침을 꿀꺽 삼키다가 빙긋 웃었다.
“아니야, 그냥 신기한 일이 있어. 뭔지는 모르겠지만 학교에 가서 한번 알아보려고.”
‘아냐, 그러지 마. 전혀 상관없어!’
나는 조은이의 앞에 가서 낑낑댔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조은이가 행복한 미소와 함께 날 안아 올렸다.
“조은이를 위한 선물? 해피야, 지난밤에 되게 신기한 일이 일어났… 우앗! 얘 몸에서 똥 냄새나! 어휴!”
조은이는 질색을 하며 날 내려놓았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으로 조은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윽고 밥상 앞에 앉은 두 사람, 나는 지옥의 말표 사료를 씹어먹으며 아침상을 살폈다. 콩나물 한 봉지를 사서 만든 콩나물밥과 콩나물무침, 콩나물국. 그리고 노파의 특제 쉰 김치와 계란프라이.
‘잘 먹기라도 해야지, 하긴 아침을 챙겨 먹는 것만 해도 어디야.’
언제나 일어나면 텅 빈 방에서 대충 씻고 공장으로 출근했던 지난날. 가끔 버스 정류장 옆의 토스트 포장마차에서 토스트를 하나 사 먹거나 삼각김밥이나 줄김밥으로 때우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것이 불만이진 않았다. 그저, 엄마가 있었을 땐 먹기 싫다고 투정을 하더라도 된장찌개에 밥을 놓아 ‘몇 술이라도 뜨라’며 악착같이 나를 자리에 앉히던 추억이 있었기에, 홀로 된 날들의 시작인 아침이 못 견딜 정도로 슬펐었다.
‘어쩌면 이것도 작은 행복이겠지.’
나는 사료를 씹어 먹으며 빙긋 웃었다.
원효대사의 해골물처럼, 이것도 생각하기에 따라 산해진미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은 갈비찜, 이것은 마늘간장치킨, 이것은 철판닭갈비, 이것은 몸스터치 싸이코버거…
“퉤! 퉤! 퉤!”
‘하아 못 먹겠네, 진짜. 아니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거야?’
나는 징글징글하게도 줄지 않는 이 사료를 노려보았다. 그래도 주는 것이 이것뿐이니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저 밥상을 바꾸고, 이 사료도 바꾸고, 우리가 사는 반지하를 바꾸는 것도 내가, 그리고 조은이가 할 일이었다. 그 80만 원이 몇 배로 불지는 않겠지만, 지난밤의 이체는 ‘이것으로 우리는 한배를 탔다’라는 일종의 상징이기도 했다.
‘조은아, 할 수 있어. 해 보자. 나도 나를 위해서건 또 너를 위해서건 최선을 다해볼게. 저 할매를 위해서는 아냐. 화이팅!’
나는 사료를 씹어 먹으며 조은이를 향해 입을 씰룩씰룩 미소 지었다.
“옴마, 조은아. 저 개가 미쳤나 보다. 이쪽을 보며 실실 웃는 것 같네.”
“엥? 해피에게 왜 그런 말을 해. 우리 착한 해피. 해피야, 콩나물 줄까? 계란프라이 줄까?”
‘오오!’
나는 그 말에, 돈키호테를 날려버린 풍차처럼 꼬리를 돌리며 조은이를 향해 다가섰다. 그러나 내 입에 계란이 들어오기 직전, 노파는 다시 나를 빼앗았다.
“아침에 계란이라도 한 알 먹고 가야 공부도 잘 되지, 응? 계란은 개가 먹으면 큰일 난댜.”
“에? 아냐, 나 그런 말 못 들어봤는데?”
‘그게 뭔 개소리야, 이 노파가!’
“김치! 한국 사람이랑 한국 개는 김치가 보약이여!”
“아휴, 맵고 짠 걸 개한테 먹이면 안 돼!”
“왈!”
조은이가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거칠게 반항하는 내 주둥이를 열고, 노파는 기어이 그 굵은 손가락으로 집은 쉰 김치를 입안에 밀어 넣었다.
“캥! 캑! 케에에엑!”
나는 황급히 물그릇으로 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저거 봐라. 을매나 잘 먹는지.”
“다신 주지 마. 그거 학대야, 할머니.”
“학대는 뭐가 학대여! 그나저나 저 똥개, 이따가 할매가 몸에 피가 나도록 씻겨야 되겠다. 아유, 똥 냄새.”
진짜 학대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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