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20
121. 걸덕이도 그랬구나
차를 갓길에 세운 걸덕이는 티슈를 꺼내 자신이 뿜은 커피를 닦았다.
“괜찮아요, 걸덕 오빠? 갑자기 왜 그렇게 놀라세요.”
“아, 음! 그, 하하하. 그래요, 로랑이. 로랑이 예쁘죠.”
“와하하하할! 와하하하할!”
나는 속이 다 시원해져 신나게 웃었다. 입을 벌리고 웃는 나를 보는 걸덕이의 표정이 꽤나 매서웠다.
“해피는 되게 기분 좋은가보다.”
“아, 그러게요? 이제 집에 간다고 기분이 좋아진 건가? 아니면 걸덕 오빠 차 타서?”
차라는 말에 다시 걸덕이의 얼굴이 좋아졌다. 이게 어떤 차고, 왜 이것을 타고 싶었는지에 대해서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마냥 웃으며 들을 만한 건 아니었다.
“되게 친한 친구가 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엄청 친한.”
“네.”
“그 친구와 우리 집이 엄청 가까웠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 집은… 아마 48평 정도? 좋은 아파트였어요. 우리 집은 그 옆에 가장 작은 평수의 임대아파트였고.”
“아…”
미소 짓던 걸덕이의 얼굴에 슬픔이 묻어났다. 조은이도 가만히 앞을 내다보았다.
“초등학교 때는 뭐 집도 가깝고 성격도 잘 맞고 그러니 너무 좋았죠. 둘이 허구한 날 붙어다니며 놀고. 야, 너희 집 넓으니까 거기 가서 놀자! 하는 게 당연하고, 또 자연스러웠거든요. 그땐 그랬어요.”
“그렇겠죠.”
“나중에 알게 됐죠. 어떤 ‘차이’를. 그리고 그걸 깨닫는 순간, 엄청난 지옥이 시작되어버렸어요. 같이 학교를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갈림길에서 친구는 커다란 아파트 쪽으로 들어가고, 저는 그 옆으로, 1/4 정도 되는 작은 임대아파트로 들어가는 것.”
“…”
“어느 순간, 너무 불편했어요. 아침에도 마찬가지였죠. 친구는 그대로였는데, 8시 20분까지 그 갈림길에서 만나자고 하는데 나가기가 너무 싫더라고요.”
나는 가만히 그 상황을 떠올려봤다. 물론 나는 반지하에서 살았었지만 지금 걸덕이가 쓴웃음을 지으며 하는 말과 어린 걸덕이가 느꼈을 감정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 친구와는 중학교 때까지 같은 학교에 다녔죠. 친구는 그대로였어요. 늘 웃고, 밝고, 나를 대하는 어떤 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내가 슬슬 짜증이 나고 그 친구를 보기가 싫어진 것이죠. 결국 변한 것은 나였어요. 내 자격지심이 날 비뚤어지게 만들었던 거죠.”
“그랬군요.”
조은이가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조은이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조은이의 성격상 싫어하거나 거리를 두진 않았을 테지만, 분명 다른 방식으로라도 홀로 상처를 받는 일이 있었을 것이다.
내비게이션을 슬쩍 쳐다보던 걸덕이가 아직 도착 시간이 멀었음을 확인하곤 말을 이어갔다.
“고등학교에 가면서는 학교가 다르니 그 녀석이랑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됐어요. 뭐 연락할 일도 없었고, 딱히 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그때 저는 되게 우울한 학창 시절을 보냈어요. 그런데 제가 처음으로 방송을 하고 얼마 안 있어서 말이에요.”
“네.”
“그냥 완전 새끼인 두찌를 안고 되는대로 떠들고 있는데, 시청자도 수십 명 정도였나? 그런데 한 시청자가 10만 원씩 계속 후원을 해주는 거예요.”
“아!”
조은이가 깜짝 놀랐다. 나 역시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놈이랑 어렸을 때 온라인 게임도 같이 해서 영문 아이디를 알거든요? 익숙한 거예요. 처음엔 가물가물해서 어디서 봤는데, 누구지? 하는데 10만 원, 10만 원, 또 10만 원. 별도로 메시지도 없어요. 그냥 그렇게만.”
“…”
“마지막 10만 원을 보낼 때 처음으로 메시지가 같이 날라왔는데, 그 기계음이 읽더라고요. ‘걸덕이 잘 살고 있네. 보고 싶다, 임마!’ 하고. 아, 현재구나. 내 친구 현재구나.”
차 안이 침묵으로 가득 찼다.
“그때 어머니가 엄청 아프셔서 병원비가 많이 나갔어요. 낮에는 영업직으로 일하고 밤에는 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거든요. 그런데 주점 알바가 너무 몸이 축이 나서 그만두고 마침 관심 있던 인터넷 방송을 한번 시작해 본 거였는데.”
“엄청 힘드셨겠어요.”
“뭐, 방송 시작하면서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나 주변 지인들에게 뿌리기는 했는데 그게 타고 타서 그 친구에게 들어갔던 것이죠.”
그리고 연락이 닿아 직접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 친구가 타고 온 차가 지금 자신이 타는 차의 이전 모델.
“그때 드림 카로 이걸 정했던 게, 이제 와서 금수저인 친구를 따라잡고 싶다가 아니라, 다시 동등하게 친구로 옆에 서고 싶다. 안 꿀리고 자격지심 없이 그때처럼, 만나거나 헤어질 때 늘 변함없던 너처럼, 나도 너와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
‘걸덕이, 너! 너란 존재, 왜 갑자기 영롱하냐.’
걸덕이의 말을 듣고 보니 사람이 완전히 달라 보였다.
“엄청 가난한 것, 그런 환경에서 태어난 것. 제가 고른 게 아니잖아요? 제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게 아닌데 거기에서 오는 엄청난 상실감과 패배감, 자격지심, 열등감은 필수옵션처럼 달라붙어요. 그래서 어느 순간 내 스스로 공격적이 되고 방어적이 되고.”
“…”
“아, 벗어나야지. 내 스스로의 힘으로 이걸 벗어나야 나도 진정으로 마음에 들러붙었던 이 지긋지긋한 찌꺼기들을 털어낼 수 있겠다. 그래야 나를 좋아해 주고 좋은 친구로 기억했던 이들에게 다시 제대로 설 수 있겠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죠.”
“대단해요, 정말로. 걸덕이 오빠, 진짜 대단한 사람이에요.”
“반드시 방송으로 성공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 잘할 수 있다. 어차피 광대라 하더라도 무대에서 내려가면 분장을 지우는 법이니까. 무대에 설 때만큼은 정말로 간절하게 해서 반드시 애견 콘텐츠, 하면 김로이가 나오게끔 할 것이다.”
“벌써 이루셨잖아요.”
“아직 갈 길 멀어요. 다만 빛은 보여요. 그리고 확신도 들어요, 이대로 쭉 가면 된다. 그러니 날 막지 마, 방해하지 말아줘. 엄청 집중하게 되는 거죠.”
조은이가 박수를 짝짝 쳤다. 나 역시도 옆에서 ‘왈왈’ 짖으며 진심으로 걸덕이를 칭찬했다.
조은이와 함께 있으며 나는 조은이의 긍정적인 모습과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려 하고 실제로 이겨내는 모습을 보며 감동했었는데, 걸덕이 역시도 지금의 나에게 엄청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조은 님에게 이런 마음속의 이야기까지 할 줄은 몰랐네요. 뭐, 암튼 그런 겁니다. 그래서 제겐 방송이라는 것이 굉장히 소중해요.”
걸덕이가 남자조차 설렐 정도로 멋진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마셨다. 조은이가 황홀한 눈으로 그 옆모습을 바라봤다.
“진짜 멋져요. 점례 언니도 걸덕이 오빠 이야기를 들었다면 완전 빠졌을 것 같아요.”
“쿠훕! 퀙, 콱! 커흡!”
“괘, 괜찮아요? 걸덕 오빠?”
“네? 네, 아니 갑자기 거기서 로랑이가, 쾍! 콜록! 컬럭! 컬턱! 컬턱! 거얼덕!”
크게 기침을 하던 걸덕이가 제대로 사레가 들렸는지 비틀거리며 다시 갓길로 차를 세웠다. 한참을 기침하는 가운데 새빨갛게 충혈된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고 커피는 입뿐만 아니라 코에서도 뿜어져 나왔다.
아메리카노 색을 띤 기다란 콧물이 핸들을 잡고 고개를 숙인 걸덕이의 코에서 길게 매달려 대롱대롱 흔들렸다.
“꺄아악! 걸덕이 오빠! 코, 코가!”
“보지 마! 보면 안 돼! 커헐럭! 커헐떡!”
보면 안 된다고 외치며 고개를 흔드는 바람에, 길게 늘어진 콧물이 원심력으로 휘어 조은이의 점퍼에 끈끈하게 묻었다.
“꺄아악! 휴, 휴지! 오, 오빠!”
“미, 미안해요! 조은 님! 콜록! 콜록! 칵!”
“아왈왈왈왈! 아왈왈왈왈!”
대환장.
***
“가, 감사합니다. 걸덕이 오빠,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 그… 혹시 필요하면 부담 없이 연락 줘요. 세탁비 보내줄게요.”
“아니에요! 이 정도야 뭐, 아무 문제 없어요. 기침을 하다 보면 그럴 수 있죠. 오늘 여러 가지로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제가 밥 제대로 한번 살게요!”
“밥은 무슨, 나중에 커피나… 아니, 커피는 그만.”
조은이 앞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여버린 걸덕이가 다크서클이 짙어진 눈으로 손을 흔들었다. 조은이는 꾸벅 인사를 한 후, 날 들고 수평역의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하아, 진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그래도 학교 촬영도 잘 끝냈고, 걸덕이 오빠 덕분에 편하게 왔다. 그치?”
“왈! 왈!”
“걸덕이 오빠도 힘든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살아왔구나. 나도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정말로 열심히. 그래서 꼭 내가 목표하는 걸 이뤄야지.”
“왈! 왈!”
나는 가방 안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나 역시 그랬다. 나도 내가 목표하는 것을 반드시 이룰 것이다. 적어도 아까 걸덕이가 했던 만큼은 노력할 것이다. 그래야, 적어도 ‘노력’의 측면에서는 당당하게 마주 설 수 있으리라.
버스에서 내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집 안에서 구수한 냄새가 풍겨 왔다.
“잉? 벌써 들어왔어?”
이제 오후 4시가 살짝 넘은 시간. 아직 저녁 먹을 시간이 아니건만 노파는 큰 닭을 하나 삶아 신나게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도화선녀가 투덜거리며 뼈에서 살을 발라 노파의 그릇에 올려놓고 있었다.
“아! 아주머니!”
“아왈왈! 왈왈왈!”
“아이고, 조은이! 그리고 우리 개령님! 개령님 어서 와서 닭고기 좀 드세요.”
“아왈왈왈! 왈왈왈!”
조은이와 나는 반가워서 신발을 벗자마자 달려가 옆에 앉았다. 여전히 한쪽 눈이 쏠린 채로 도화선녀는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닭고기를 바르던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운 엄청 좋다. 빛이 나. 밝아졌어.”
“진짜요?”
“우리 개령님도 빛이 번쩍번쩍해요. 들어올 때 무슨 호랑이가 들어오는 줄 알았네.”
“점쟁이, 나는! 왜 나는 그런 말을 안 해주는 거야!”
“닭고기 먹으러 놀러오라 해놓고선 순 자기만 먹고 살 바르라 시키는 보살님? 번쩍번쩍해. 욕심이 번쩍번쩍해!”
여전히 둘의 케미는 그대로였다.
조은이는 옆에 앉아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도화선녀에게 이야기했다. 유명하고 큰 회사와 계약하게 된 것과 ‘세상에 이런 뭣 같은 일이’에 나갔던 이야기. 학교 홍보 동영상에 출연하게 되어 오늘 다녀온 것까지 천천히 이야기했다.
“잘했네, 정말 잘했어.”
도화선녀는 노파 몰래 순살을 집어, 내 앞으로 스윽 밀어 놓으며 조은이를 칭찬했다. 그러면서도 학교 공부까지 하고 주식 투자도 하고 있으니 정말 대단하긴 했다.
“한동안 방송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해요. 물론 학교 공부도 열심히. 그렇게 하다 보면 잘 되겠죠? 어때요, 아주머니?”
“그런 것 묻지 마. 사주가 어쩌고 팔자가 어쩌고 다 필요 없어. 대단한 사람은 이미 그런 것들 다 때려 부수고, 악운도 밑에 깔고 뛰어 올라가. 지금 아주 좋아. 그대로 가.”
“그리고 학교에서 촬영하는데 연인의 다리를 건넜어요.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난 솔로인데, 인연이 있다면 언제 나타날까?”
그 말에 도화선녀가 살을 다 발라낸 닭다리를 들고 흔들며 눈을 감았다. 국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 점쟁이가, 좋은 집 거실을 다 더럽히네!”
“보살님 조용! 짤랑짤랑. 입으로 내는 방울 소리에도 간절함이 붙으면 진짜 방울이 됩니다, 짤랑짤랑!”
한참을 중얼거리던 도화선녀가 눈을 번쩍 떴다.
“응? 이미 들어왔는데? 그건 빈 곳간이 아냐. 이미 채워져 있어.”
“에엥? 정말요?”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도화선녀를 쳐다봤다.
“더는 몰라. 그런데 이미 만나고는 있어. 네 주변에 있다고 나오는데?”
“이미 만나고 있다고요? 설마… 걸덕 오빠?”
“그 방송국 사장?”
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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