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22
123.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1)
즐거운 만남이었다.
진혁이도 유미도, 금방 조은이를 누나, 언니라 부르며 친근하게 다가왔고 조은이도 동생이 없던지라 아이들과 신나게 놀며 시간을 보냈다.
오히려 심심한 것은 내 쪽이었다.
처음에야 ‘해피다! 해피야!’ 하고 반가워하며 날 안고 사진도 찍었지만 그것도 잠깐, 둘은 조은이에게 더 흠뻑 빠져들었다.
공원에서 만나 산책을 하며 싸 온 간식도 먹고 기념사진도 찍고 난 뒤 이어진 편안한 대화 속에 셋은 정말로 찰떡같은 케미를 자랑했다.
“그럼, 누나는 처음부터 그렇게 공부를 잘하신 거예요?”
“아, 공부를 잘 하지는 않았고, 공부를 할 시간이 엄청 많았던 것 같아. 내가 학교에서 인기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거든, 오히려 없었지. 하하하.”
“믿기지 않아요. 정말로요?”
“정말이지.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 집에 가면 공부할 생각. 그것 외엔 할머니 일하는 것을 돕거나, 뭐 그게 전부였어.”
“친구 엄청 많았을 것 같은데요.”
유미의 말에 조은이의 표정이 쓸쓸해졌다.
이미 전에 용숭동의 공원에서 만났던 지혜와의 대화로써, 나는 조은이가 어떤 학창 생활을 보냈는지 알고 있었다. 학창시절 내내 괴롭혀댔던 이들.
지금에서야 완벽히 정반대되는 위치가 되었다.
지혜는 남자친구인 범재와 함께 ‘둠칫 둠칫’거리는 하얀 차에서 내려 바퀴벌레가 다시 구석 곳곳을 장악한 반지하 집에서 살고 있을 것이었고, 조은이는 내로라하는 대학을 다니며 인플루언서의 단계를 밟아가고 있었다.
하는 일로만 따져도, 적어도 사회나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조은이가 훨씬 더 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그것으로써 예전에 자신이 당했던 아픔이 완벽히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애당초 그런 상처에서 나아지기 위해 지금의 노력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아냐, 친구가 진짜로 별로 없었어. 세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하하하. 내가 엄청 왕따에 소심한 아이였다는 것은 지금 모습으론 잘 모르겠지? 비밀이다아~!”
“농담이죠? 진짜 안 그럴 것 같은데.”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도 하고, 나아지려고 목표도 세우고 그랬지. 그나저나 이제 밥 먹으러 가자. 뭐 먹을래? 햄버거? 치킨?”
오예! 버거퀸! 버거퀸! 몸스터치! 몸스터치!
공원 입구에서 봤던 여러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을 떠올리며 조은이는 하나하나 브랜드의 이름을 나열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것은 의외의 음식이었다.
“어, 그냥 분식이면 될 것 같은데.”
“엥? 아냐, 언니가 엄청 맛있는 것 사줄게! 햄버거가 별로면 다른 것도 좋아!”
“아니, 그게 아니라요. 사실은 우리 학교 앞에 할매 분식이라고 있거든요.”
“할매 분식?”
아이들의 말은 이러했다. 간판도 없는 분식집. 할머니가 떡볶이를 만들기에 할매 분식이라 불리는 그곳은 같은 자리에서 30년, 아니 40년을 해 온 분식집이라 했다.
지금은 주인인 할머니도 80이 넘은 나이에 허리가 잔뜩 구부러졌지만, 아직도 컵볶이와 떡볶이 500원어치가 가능한 곳이라 학생들의 군것질 장소로 사랑받는다고 했다.
“할머니가 너무 몸이 안 좋아지셔서 겨울방학인 12월 중순까지만 하신대요. 그래서 이젠 진짜 얼마 남지 않아서 아쉽기도 하고. 더 중요한 건 할머니와 같이 사는 손녀가 우리 학교 3학년이거든요. 우리 친구이기도 하고.”
“아, 그래? 그래서 팔아주고 싶은 거야?”
“뭐 그렇기도 하고요. 친한 친구인데 또 고등학교를 어떻게 배정받을지도 모르니까요.”
아이들의 마음 씀씀이가 예뻤다.
이렇게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다면 분식을 사줘도 아무렇지 않을 듯했다. 가서 많이 팔아주고 동영상으로 홍보도 해주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었다. 다만…
이것도 어떻게 보면 광고가 될 수도 있었고 영리가 될 수도 있었다. 혹시 몰라 조은이는 박건혁 팀장에게 전화해 영상을 찍어도 괜찮겠느냐 물었다. 아이들이 해준 이야기와 함께.
[전혀 상관없습니다. 업체에서 요청이 들어온 것이 아닌, 그저 조은 님이 원해서 찍고 올리는 것이라면 일일이 허락 안 받으셔도 좋아요. 좋은 일이네요.]전화를 끊은 조은이가 아이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엄청 사 줄게. 포장도 해줄게. 친구들 다 불러도 좋아!”
***
진혁과 유미의 학교로 이동하며 조은이는 카메라를 들어 간단하게 녹화를 했다.
할매 분식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더불어, 자신도 예전에 할머니에게 천 원을 받아 피카츄 모양의 돈가스나 떡볶이 등을 사 먹곤 했다는 추억을 나누었다.
“뭐, 추억이라 하기엔 사실 지금도 학교 끝나고 오면서 종종 사 먹지만요!”
그래서 조은이가 현관문을 열기 전 오백 원, 천 원씩 줄어들 때가 있었구만!
“너희도 이야기해봐. 괜찮아!”
조은이가 골목을 걸으며 카메라를 진혁과 유미에게 향했다.
부끄러운 듯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던 진혁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초등학교 때는 태권도장 끝나고 오면서 항상 들렀었거든요. 그리고 지금 중학교 3학년인데 지금도 앞을 지날 때마다 들러서 먹고 가요. 할머니가 맨날 이런 것 많이 먹지 말고 밥 많이 먹으라고 그러세요.”
다음엔 유미 차례였다.
“가은이 친구라고 말씀드리면 떡볶이에 어묵이 더 들어간다는 비밀도 있는데요, 엄청 바쁘실 때도 꼭 기억하셔서 ‘너 가은이 친구라 했지?’ 하고 물으시곤 어묵을 더 주세요.”
듣다 보니 참으로 정이 넘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카메라는 가방 안의 나를 향했다.
“해피도 떡볶이 좋아해? 물론 주지는 못하지만.”
“왈! 왈!”
“순대는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왈왈! 왈!”
순대 좋지, 순대. 하아… 피카츄, 그것도 오랜만이네. 떡꼬치도 기가 막히는데.
나 역시도 추억에 젖었다. 조은이처럼 천 원, 혹은 오백 원이 있으면 언제나 먹던 문방구 옆의 그 장소. 뭐, 매일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쩌다 돈이 있으면 늘 앞에서 얼쩡거리던 추억의 장소였다.
‘아직도 있을까. 언젠가 계별욱으로 되돌아가면 한번 가보고 싶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던 곳, 거기도 어쩌면 지금 가는 곳처럼 추억이 될 날을 기다리고 있거나 이미 추억으로 사라져 버렸을 수도 있었다.
이윽고 우리는 진혁이와 유미가 다니는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흔히 보이는 동네 풍경 속, 학교를 지나 조금 더 거리 안으로 들어서자 정말로 ‘왜 이런 곳에?’라고 할 만한 골목 입구에 작은 규모의 분식집이 나왔다.
조은이가 재빨리 카메라를 꺼냈다.
“여기가 진혁이와 유미가 말한 그 간판 없는 분식집인 것 같아요. 봐요, 벌써 앞에 익숙한 저 떡볶이판! 순대도 있고 튀김도 있고, 피카츄는 없지만 떡꼬치도 있고, 어묵도 있고!”
조은이가 카메라를 들며 설명을 하는 것을 본 한 할머니와 소녀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왔다.
“가은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친구들을 본 가은이의 표정에 그제야 미소가 펼쳐졌다. 여태 할머니를 따라 일을 도운 듯, 노란색 면티 곳곳이 떡볶이 국물과 케첩 등으로 얼룩이 져 있었다.
“어서 와. 그런데 저 언니는…”
“그분! 해피랑 같이 동영상 찍는!”
“해피?”
“왜, 내 핸드폰의 똥 싸는 강아지!”
가은이는 아직 나와 조은이를 모르는 듯했다. 그래도 유미가 핸드폰을 꺼내 배경화면을 보여주고 다른 영상들도 보여주자 깜짝 놀랐다.
“그런데 우리 가게에는 왜?”
“아아, 오늘 이 언니랑 만나서 이야기했는데 밥 사준다고 하셔서. 언니, 들어가요!”
유미의 재촉에 조은이가 카메라 녹화를 마무리 짓고 안으로 들어섰다.
매대가 놓인 면을 제외한 나머지 세 면에 자리한 나무 테이블, 그리고 플라스틱 의자. 벽을 보고 먹을 수 있게 만들어진 옛 분식집의 풍경 그대로였다. 벽면마다 가득 채운 낙서들, 학년 반 이름과 함께 적은 작은 바람들, 우정, 순간의 기록들. 그리고 하트 속 사랑의 낙서들까지, 정겹기 그지없었다.
“친구들 다 불러도 돼!”
조은이의 호기 어린 외침에 유미와 진혁이 핸드폰을 들고 저마다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등이 잔뜩 굽은 노파가 무엇을 시킬 것이냐는 듯 이쪽을 쳐다봤다.
“일단 떡볶이 3인분이랑…”
“인분으로 안 팔고 금액대로 팔아요.”
노파의 말에 조은이가 재빨리 ‘삼천 원어치랑’ 하고 말을 바꿨다. 그리곤 어묵 세 개, 튀김 각각 종류별로 두 개씩에 삶은 계란도 두 개를 주문했다.
“아! 순대도 한 접시요!”
벽에 적힌 메뉴판을 보니 그렇게 해도 만 원이 채 안 되었다. 유명 브랜드 떡볶이와는 차원이 다른 정말로 싼 가격, 학교 앞 분식집다운 차림새였다.
“수정이 온다는데?”
“시온이도. 재민이도 같이 온대.”
그 말을 들은 조은이가 ‘아하하, 더 오라 그래!’하고 외쳤다.
가은이가 내려놓은 물을 마시며 조은이와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말로 지난 세월이 켜켜이 내려앉은 듯한 모양새, 파는 것도 너무나 단출했다.
“가은이 넌 계속 여기 있었어?”
“응, 할머니가 손이 너무 아프니까. 적어도 나르는 거랑 설거지는 내가 해야지. 비닐 씌운다고 해도 씻을 건 항상 나오니까.”
그 말에 나와 조은이는 할머니의 손을 봤다.
잔뜩 굽은 허리만큼이나 손목과 손가락이 뒤틀려 있었다. 수십 년을 같은 일을 한 손이니 여러 작업에 맞게끔 손의 모양도 변형되기 마련이다.
나와 조은이의 눈길을 읽었는지 할머니가 비닐을 씌운 큰 접시에 떡볶이를 가득 담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일 안 하면 괜찮아지겠지. 일하는 동안은 아프고 쑤신 줄도 몰라. 일이 끝나고 집에 가면 그제서야 쑤시지.”
“쑤시는 정도가 아니잖아. 밥 먹을 때 수저도 덜덜 떨면서 간신히 쥐면서.”
가은이의 말에 할머니가 ‘시끄러워. 손님들 앞에서!’ 하며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떡볶이 접시를 드는 그 손은 가은이의 말마따나 위태로울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얼른 접시를 대신 받아 든 가은이가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내가 담는다니까 그러네.”
“음식을 만들었으면 최소한 손님 앞에서 접시에 담는 것까지는 하는 게 당연한 거야. 큰 식당을 가 봐라. 주방장이 다 음식 담아서 착착 내놓으면 다른 사람이 가지고 가지.”
“거긴 거기고, 우리는 학교 앞 작은 분식집이잖아.”
“가게가 작아도 나는 평생을 그리했어.”
고집 가득한 말이었다.
그렇게 어묵도, 튀김과 삶은 계란도 접시에 담아져 놓였다. 이윽고 찜기에서 김이 풀풀 오르는 뜨거운 순대를 장갑도 안 끼고 맨손으로 든 할머니가 적당량을 칼로 자른 후 도마에서 맛나게 썰었다.
“간이랑 내장도 먹을겨?”
“아, 네! 강아지가 먹어도 괜찮아요?”
“누가 먹든 맛있게만 먹으면 되는 것이지. 강아지도 줄 거면 많이 썰어야겠네.”
“왈! 왈!”
가방 안에서 나는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짖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에 미소가 가득했다.
음식들을 촬영하고 맛있게 먹는 조은이와 아이들. 가은이도 그 옆에 앉아 우리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가방 문이 열리고, 내 앞에도 간과 허파, 순대가 조금 놓였다.
‘오메!’
– 촵! 촵! 촵! 촵!
떡볶이 국물이 아쉬웠지만, 소금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이 가게 닫게 되면 너도 심심하겠다.”
“심심한 게 문제가 아니라, 할머니 치료받아야 하는 병원비도 문제고 먹고사는 것도 당장 문제지. 복지센터에 물어봐야겠지만.”
아이들이 주고받는 말에 음식을 먹던 조은이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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