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29
130. 첫 팬미팅(3)
튀김을 튀길 기름 솥에 기름을 붓는 것은 걸덕이의 몫이었다. 깡통에 든 기름의 무게는 정말 만만치 않아 보였다. 걸덕이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진짜 이 무거운 것을 할머니가 들어서 붓는다고요?”
“가은이가 도와주지요.”
“아니, 도와준다고 해도 보통 무게가 아닌데!”
기름 솥뿐만 아니었다. 순대를 놓는 찜기 아래에 물을 채우는 것도, 튀김을 꺼내 앞에 진열하는 것도, 어묵탕용 육수를 만들기 위해 한 통 가득 물을 떠 오는 것도…
하나하나 힘이 안 들어가는 것이 없었다.
이미 몇 번 해봤다 하더라도 익숙해질 뿐이지, 그 노동의 강도 자체는 그대로였다. 조은이도 이마를 훔치며 고인 땀을 닦았다. 그것을 카메라가 하나하나 일일이 찍었다.
“자아, 이제는 메인 메뉴인 떡볶이! 마침 물 끓는다. 제가 직접 할게요. 오늘과 내일, 제가 손님들을 대접하는 날이니까!”
“잘 할 수 있겠어요?”
“그럼요, 일단 지금 시간이…”
조은이가 벽에 걸린 낡은 시계를 쳐다보았다. 오전 10시.
“빨리 만든 다음, 직원분들에게 먼저 시식시켜 봐야죠!”
그 말에 사람들이 저마다 함성을 질렀다.
걸덕이가 내가 묶인 줄을 풀고 가게 입구 쪽에 새로이 묶었다. 이미 바닥에 배를 깔고 누운 두찌가 심드렁하게 날 쳐다보았다.
“왈!”
‘헤이!’
“웍!”
하아, 멋없기는. 저러면서 후원금이 들어올 때는 걸덕이에 맞춰서 허리를 들썩이는 요망한 춤이나 추고.
그래도 걸덕이가 놓고 간 고구마말랭이와 육포 때문에 나는 저 무신경함을 용서할 수 있었다.
“물엿은 이만큼이요?”
“응. 딱 맞네.”
“그리고 이제는 물 대신 준비된 어묵 육수를 부어서 농도랑 간을 조절하고, 비법 고추장 소스를 요만치~!”
“떡은 미리 불려놨어.”
하나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떡볶이 정도야 나도 사람이었을 때 심심치 않게 만들어 먹긴 했지만, 역시 이렇게 대용량으로, 그것도 불 조절을 해가며 눋거나 졸아서 맛이 짜고 매워지지 않게 신경 써서 만들어 본 적은 없었다.
“이제 파랑 사각 어묵 잘라놓은 것 넣고, 맞죠?”
“잘하네. 진짜로. 그냥 이 가게 물려줘도 되겠어.”
“아하하, 진짜 그럴까요?”
조은이가 웃으며 철판을 뒤적이다가 부글부글 다시 끓어오르자 불려놓은 떡이 가득 담긴 대야를 그 위로 부었다.
“으아아아, 진짜 무겁다.”
곧이어 매콤달달한 향이 피어올랐다.
카메라가 떡볶이를 만드는 조은이의 옆모습과 익어가는 떡을 클로즈업해 찍었다. 어느새 골목을 오가던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잔뜩 모여들었다.
“이따가 11시부터 유명 인플루언서 안조은 님과 강아지 해피의 팬미팅 겸 할매 분식 고별 행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박건혁 팀장이 우렁차게 외쳤다.
“임플란트가 뭐?”
“치과 의산가?”
“왈! 왈!”
“오메, 요 요상시럽게 생긴 강아지 좀 보소.”
“그 서커스에 나오는 삐에로 같네.”
나는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피웠다.
떡볶이가 다 익자마자 조은이와 가은이가 접시에 비닐을 씌우곤 첫 시식분을 담아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후후 불며 입에 넣은 모두가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할머니, 할머니도 아, 해봐요!”
조은이가 찍어 준 떡볶이를 입에 넣은 할머니가 이만하면 됐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여기까지 1차 촬영 완료하고, 빨리 편집해. 고고!”
모션캠을 든 직원이 서둘러 승합차 안으로 뛰어갔다.
“휴우, 힘들다. 어묵도 드세요! 어차피 지금 시식분은 전부 제가 계산합니다!”
조은이의 말에 모두들 어묵 꼬치를 들고 빈속을 채웠다. 가은이가 미리 끼워둔 어묵을 빈 개수만큼 육수 통에 넣었다.
“조은 님, 여기 봐요! 여기.”
옆으로 다가온 걸덕이가 핸드폰을 셀카 모드로 한 채 조은이와 자신의 얼굴을 담았다.
“SNS랑 데스코드에 올리려고. 하나, 둘, 셋!”
“아왈왈왈왈!”
나의 견제를 무시하고 사진을 찍은 걸덕이가 휘파람을 불며 사진을 업로드했다. 은근히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다니, 내가 내일까지 매의 눈으로 감시하겠어.
어느새 10시 반, 이미 가게 앞에선 몇 명의 어슬렁대는 이들이 보였다. 무언가 조은이와 걸덕이에게 말을 걸 듯 말 듯 하는 모양새, 그리고 선물로 가지고 온 듯한 쇼핑백 안의 쿠션과 개 사료.
“왈! 왈왈왈!”
내가 아는 체 짖으며 꼬리를 흔들어대자 사람들이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짜 해피다! 와!”
“신기하다. 생각보다 주둥이가 되게 길다. 못생겼고.”
“와, 왈…”
조은이와 걸덕이가 매대에서 나와 인사를 하며 팬미팅차 오신 분인지 확인했다. 그리곤 밝게 웃으며 악수를 하곤 사진도 찍었다.
“어떻게 할까요? 아직 11시는 안 되었는데.”
“어차피 이따가 줄 설 것을 생각하면 일찍 오신 분은 미리 들이죠. 준비는 다 되었잖아요?”
박건혁 팀장이 OK 사인을 냈다. 다시금 카메라가 촬영을 시작한 가운데, 드디어 첫 팬미팅의 손님맞이가 시작되었다.
***
“떡볶이 3천 원어치에 모둠 튀김 하나!”
“여긴 포장이래요. 순대 2인분에 떡볶이 2천 원어치, 튀김은 오징어로만 네 개.”
주문을 받는 가은이와 걸덕이, 떡볶이와 튀김은 조은이가, 순대를 써는 것과 어묵, 그리고 계산은 할머니가 맡았다.
좁은 실내에서 가은이가 정신없이 사람들이 나간 자리를 치우고 비닐을 벗겨 쓰레기통에 담았다. 다음 차례로 들어온 이들에게 걸덕이가 미소와 함께 물통과 종이컵을 가져다주었다.
“조은 님이랑 사진 찍어도 돼요?”
“아, 물론이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빨리 그릇에 떡볶이를 담아 가은이에게 내어준 다음, 조은이는 나를 안고 앞에 섰다. 벌써 열 번도 넘는 촬영, 이제 겨우 11시가 지났는데도 이미 줄은 엄청 길게 서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왔다.
걸덕이가 호언장담한 대로 자신과 두찌의 팬들까지 오면 정말 많을 거라는 말, 그 이상이었다. 오히려 팬들의 대부분은 순수하게 조은이와 나를 보러 온 것이었다.
나와 두찌 앞에 쌓인 산더미만 한 개 사료와 간식들. 이미 나도 수십 명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무, 무언가 팬 서비스가 필요하다!’
나는 조은이가 그릇에 담아놓은 말표 사료 싸 온 것을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었다. 그리고 물그릇의 물을 마셨다.
“오오오! 해피가 사료 먹는다!”
“설마! 설마!”
줄을 선 이들이 웅성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훗, 보아라. 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세기말적 기적을. 어차피 버린 몸, 제대로 망가져 주지.’
나는 배변판의 냄새를 킁킁대고 맡으며 빙글빙글 돌다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엉덩이를 쭈욱 내밀며 뒤뚱뒤뚱 걸었다.
[♡]카메라 찍는 소리, 마치 엄청난 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포토라인에 섰을 때 쏟아지는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사진 외에도 동영상을 찍는 이들도 많았다. 전부 경악과 감탄이 뒤섞인 표정으로 내 똥꼬를 바라보았다.
“왈! 왈!”
나는 내 팬 서비스가 나름 훌륭하다는 만족감에 기분 좋게 꼬리를 흔들며 짖었다.
“해피야! 가게 앞에서 똥을! 제가 얼른 치울게요!”
카메라가 이 예상치 못한 해프닝을 담기 위해 앞으로 나왔다.
그때, 옆에 누워 내가 똥을 싸는 모습을 지켜보던 두찌가 육중한 몸을 일으키며 내게 다가왔다.
“어머! 두찌도 일어섰다!”
“두찌야! 이쪽 봐봐!”
사람들이 두찌를 연호하자 안에서 서빙을 하던 걸덕이도 고개를 내밀어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의 환호를 뒤로한 채 내 쪽으로 다가온 두찌는 내가 싼 똥을 쳐다보고 냄새를 맡더니.
– 핥짝! 찹! 찹!
“으아아아아!”
“두찌가 해피 똥 먹어요!”
“안 돼, 두찌야! 지지!”
있을 수 없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헐레벌떡 나온 조은이와 걸덕이는 이 엄청난 상황에 어쩔 줄 모른 채 발만 동동 굴렀다.
“해피야! 이러면 어떡해! 진짜! 해피야!”
“와, 왈! 아왈왈!”
‘아니, 내가 잘못한 게 없어!’
걸덕이는 누가 황급히 내민 물티슈를 받아들고 두찌의 입 주변을 닦았다.
“두찌야, 너 왜 그래! 요새 스트레스 받니? 식분증 고쳤잖아!”
대환장의 이벤트.
절반 정도 남은 일그러진 하트가 유독 슬퍼 보였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행사에 해피가 똥을 싸서 죄송합니다! 그 똥을 두찌가 주워 먹어 죄송합니다!”
조은이가 정신없이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
대참사는 정말 실시간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나에 이어 두찌도 전국의 웃음벨, ‘똥좀먹개’가 되어버렸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이들이 그저 해프닝, 잊지 못할 에피소드 정도로 지나쳐 주었다. 그러나 조은이는 걸덕이를 볼 때마다 미안함과 민망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괜찮아요. 원래 두찌가 식분증이 있었는데 다 고쳤었거든요. 잠시 뭐에 씌었나 봐요. 얼른 조은 님 하던 일 하세요! 아직 튀김 안 나왔어요!”
그래도 걸덕이의 아량은 대인배다웠다. 결국, 나는 두찌와 분리된 채 좀 더 떨어진 곳으로 매여졌다.
정신없이 서빙하고 사진도 찍어주는 가운데, 가은이가 ‘재료 떨어져 가고 있어요’하고 중얼거렸다.
“벌써?”
시간은 오후 1시 반. 공식 마무리는 6시.
“시, 시켜야지! 얼른!”
조은이의 말에 가은이가 고개를 끄덕이곤 재빨리 전화기를 들었다. 계산을 받는 할머니 앞에 놓인 통에 돈이 가득했다. 절반만 내는 것임에도 이미 미리 준비한 것이 다 팔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박건혁 팀장도 비상이었다.
“일단 급하게 기념품 떡을 더 주문했어요. 퀵으로 받기로 했고. 차라리 이렇게 대박이 난 게 낫지. 지금 못 보시겠지만 라이브 방송도 대박 터지고 있어요. 이따가 카메라 오면 짧게 인사하고 소통해주시고요!”
“알겠어요. 진짜 감사합니다!”
“너무 좋은데? 되게 특이한 컨셉의 팬미팅인데, 이것도 진짜 좋은 방법이네.”
박건혁 팀장이 박수를 치며 직원들을 향해 무엇인가 지시를 더 내렸다. 그리곤 전화를 들고 ‘아직 안 오셨냐’며 누군가에게 빨리 오라 채근했다.
한참 후, 1톤 화물차가 오더니, 뒤의 적재함에서 편의점용 파라솔과 탁자, 의자를 내렸다.
“이, 이게 뭐예요?”
“추운데 지금 팬분들이 너무 오래 기다리시니까. 대여할 수 있는 곳 찾아서 급히 대여했어요. 다행히 옆 건물에 공실 있어서 이틀 빌리기로 했으니까 거기에서 드실 분은 드셔도 되고, 번호표 받고 기다리실 분은 기다리셔도 되고!”
그 와중에도 방법을 찾아 불편을 줄여나가는 박건혁 팀장의 조치가 너무나 든든했다. 사람들이 옆 건물로 빠져나가니 그만큼 심적 부담도 줄었다. 옆에 놓인 물을 들이켠 조은이와 걸덕이가 ‘파이팅’을 외쳤다.
그때, 골목 사이로 오토바이 한 대가 들어왔다. 그리고 뒤에 실린 튀김과 어묵, 떡, 순대 등을 내리기 시작했다.
“아! 물건 들어왔어요!”
가은이의 말에 걸덕이와 남직원 하나가 뛰어가 물건을 받아 안으로 들였다.
“일단 가은이가 어묵 꽂아! 그리고 걸덕 오빠, 튀김 종류별로 뜯어서 앞에 놓고 저 대야에 물 받아 떡부터 불려줘요!”
완벽하게 가게에 녹아든 조은이의 모습, 여기저기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 사이로 한 여자가 자신의 강아지를 안고 살짝 앞으로 나왔다.
“저기, 바쁜데 죄송한데,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어요? 이따가는 더 찍기 힘들 것 같아서.”
“물론이죠!”
나를 안고 재빨리 앞에 선 조은이.
진정 프로였다. 마치 예전에 주식 대회에서 온 힘을 다했던 것처럼, 지금 조은이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딱 그러했다.
진짜… 멋지다는 말 외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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