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3
13. 빌런의 존재감(2)
내 하루의 일과는 여전했다.
노파와 함께 열심히 파지를 줍고 공병을 모으고 (물론 내가 모으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옆에서 족발 뼈나 얻어먹을 뿐), 간혹 노파가 누군가 내어놓은 박스나 책, 신문 더미를 놓치고 지나가면 유모차의 바구니에서 매의 눈으로 짖어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버는 돈은 언제나 라면 몇 봉조차 되지 않았다. 빚태창의 다섯 번째 자리의 숫자가 바뀌지도 않은 채 겨우 몇 천 원이 줄어드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조은이의 알바비가 들어온 날에는 빚태창의 금액이 약 55만 원 정도 줄어들었지만, 생활비로 꾸준하게 빠져나갔다.
‘정말로 걱정을 할 만하구나.’
그래도 저녁 늦게 들어온 조은이는 열심히 주식 공부와 투자를 하고 있었고, 내 80만 원을 더한 90만 원의 종잣돈이 약 열흘 만에 96만 원으로 늘어나는 것을 보는 것은 꽤나 즐거운 기쁨이었다. 학교에서 내내 핸드폰만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은 좀 되었지만 말이다.
운 좋게 살이 잔뜩 붙은 족발 뼈를 얻어와 오후 내내 갉아먹던 그때, 조은이가 아르바이트를 가기 전 밥을 먹으며 입을 열었다.
“내일 해피 털 좀 깎아주면 안 될까?”
“잉? 깎은 지 얼매나 되었다고.”
“염색도 더 진하게 해주고.”
“왐마? 뭣 때문에 그런디야?”
“이번 주 일요일이 알바 날이거든. 말했잖아, 그 애견 펜션과 카페 촬영 알바. 내일은 오전 파트 뛰는 애가 일 있다고 해서 내가 종일 뛰기로 했어. 데리고 갈 시간이 없어.”
“!!!”
나는 깜짝 놀라 조은이를 쳐다보았다. 맞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조은이는 날 보며 ‘잘할 수 있지?’ 하며 웃었다. 그 말을 들은 노파가 싱글벙글하며 날 안아 들고는 쓰다듬었다.
“아이구, 우리 해피가 복덩이네, 복덩이야.”
“할머니, 나도 같이 모델로 출연하는 건데?”
“그럼 개 말고 네가 미용실을 가는 것이 낫지. 이 똥개 털은 내가 저 가위로 대충 쳐 보지 뭐. 뭐하러 돈을 들이냐. 염색도 아직 괜찮구만.”
“안 돼! 그래도 미용실을 가야지. 나야 뭐 어차피 배경으로나 나올 텐데 미용실 갈 필요는 없고. 내일 할머니가 해피 털 좀 맡아서 해줘. 내일 꼭 해줘야 해.”
“그리여, 이 할매만 믿어.”
나는 뭔가 불안했다.
그러나 ‘큰일’을 도모하는 데에 설마 꼼수를 쓸까 해 그냥 넘겨버리고 말았다. 사실 넘기지 않는다고 해도 개인 내가 뭘 어떻게 반항하겠는가.
그날은 계좌를 보며 즐거워하는 조은이의 품 안에서 좋은 꿈을 꾸며 잠들었다.
다음 날, 오전부터 알바를 뛰기 위해 조은이는 허겁지겁 밥을 먹고 집을 나섰다.
“할머니 잊지 말고 해피 털 밀어줘! 꼭 해야 해!”
“염려 말고 얼른 다녀와. 니 가는 대로 나도 상 치우고 바로 동물병원 갈 거여.”
조은이가 나간 후 노파는 상을 치우고 내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끼잉…”
무언가 불안함을 느낀 나는 슬슬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기괴할 정도의 빠르기로 날 낚아챈 노파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한참을 날 쳐다봤다.
“이 똥개 털 깎는 것도 다 돈인디. 아직 그리 길게 자라지도 않았구만. 집에서 가위로 잘 치면 될 것 같은디.”
“왈! 왈!”
“가만 있어!”
– 팍! 팍!
“깨앵!”
내 허벅지와 엉덩이를 때린 노파가 이윽고 결심했다는 듯 부엌 가위를 들고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예전, 한 영화 채널에서 고전 명작으로 방영하던 ‘미저리’의 주인공을 기억했다.
“가만 있어라. 도망가거나 몸을 움직이면 큰일 나버린다. 알잖여. 서로 얼굴 붉히지 말자.”
세상 기분 나쁜 말, 그리고 무섭기 그지없는 말.
나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양반다리를 한 채 나를 허벅지 사이에 앉혀놓은 노파는 가만히 가위를 눕혀 내 뒷목의 털을 자르기 시작했다.
싹둑싹둑 소리가 이렇게나 무섭게 들려올 줄 몰랐다. 나는 얼어붙은 채로 가만히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길긴 했구나. 도대체 나 몰래 뭘 그리 주워먹은겨? 어디 가서 소고기라도 훔쳐 먹나?”
‘저 뻔뻔한!’
그때.
– 부덕(不德)! 부덕! 부덕! 덕! 덕! 덕! 덕!
“캥!”
“움직이지 말엇! 다친다!”
다친다는 그 말에 난 다시 온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퍼져나가는 이 지옥과도 같은 악취. 그리고 내 등과 목에서 들려오는 싹둑싹둑 소리.
“깨앵, 깨앵…”
“큰일 난다! 피! 피난다, 피! 훠이, 해피야!”
노파는 나를 잡아 누르며 위협했다. 나는 아주 커다란 슬픔의 눈을 한 채, 어쩔 수 없이 이 노파의 한 맺힌 울부짖음과도 같은 냄새를 맡아야 했다.
– 부덕! 덕! 덕! 덕! 덕!
“움직이면 피난다, 피!”
‘돈 30만 원을 버는데 그냥 미용실을 가서 조금만 다듬으면 될 것을, 조은이가 그렇게나 당부를 했는데도.’
나는 몽롱해지는 의식 속에서 노파를 끝없이 원망했다.
***
완전히 멀어지는 의식.
어느덧 나는 검은 실루엣을 따라 꽃이 흐드러지게 핀 들판을 걷고 있었다. 무의식 속에서도 난 여기가 명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이불 속에서 숨이 넘어가려던 무렵 내 앞에 나타났던 그 검은 실루엣은 슬픈 눈으로 나를 보며 방울을 흔들었다.
“엉엉…”
“무엇이 그리 슬프더냐.”
“이렇게 개로 태어나 죽는 것이 너무 슬프옵니다.”
검은 실루엣은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이승의 삶이 좋다고 누가 그러더냐. 아무런 아픔도 슬픔도 없는 이곳이 가장 좋으니라. 자아, 맡아보거라. 이 달콤한 꽃향기를.”
“킁! 킁!”
“어떻더냐?”
“매우 향기롭습니다.”
– 부덕! 덕! 덕! 덕! 덕!
순간 꽃밭이 갈라지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그 검은 실루엣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내게 다시 꽃향기를 맡아보라 권유했다.
“킁! 킁! 아아, 향기로워라.”
– 부드드드득! 득! 득! 득! 득!
“킁! 킁! 아아, 참으로 평안하다. 이리 좋을 수가.”
“그것 보아라. 모든 것은 네 마음속에 있으니, 네가 깨달음을 얻는다면 이 지독한 노파의 방귀 냄새도 극락 가는 길의 청초한 들꽃 향이 될 수 있느니라.”
“네? 노파의 지독한, 뭐요?”
***
순간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꽃밭도 사라지고 검은 실루엣도 없었다. 곰팡이가 슬은 벽지와 한쪽에 쌓인 신문지. 그리고 말표 사료 포대. 매캐하고 구릿한 냄새.
“끼잉, 끼잉…”
“옴마, 이놈의 강아지가 내 품이 얼마나 편안하면 털을 깎는데 잠이 들어버린댜?”
‘저승골을 다녀왔소. 덕분에.’
생각건대, 거실 바닥의 싸구려 장판은 원래는 흰색이었을 것이다. 이 장판이 노란, 아니 뉘런색인 데에는 분명 외부적 요인이, 그것도 매우 독한 화학반응이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아이고 색도 이쁘네.”
‘색?’
나는 순간 노파의 손에 조은이의 방에서 본 분홍색 형광펜이 들려있는 것을 보았다. 다른 손엔 형광펜의 뒤, 잉크를 흠뻑 머금은 솜이 압축된 필터가 들려있었다.
“왈! 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나 노파는 손에 잉크가 범벅이 된 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 있었다.
“잘 되었네. 참말로 잘 칠해졌다. 더 진해졌네.”
“왈! 왈!”
“그리여, 해피 니도 볼래?”
노파가 걸레에 손을 닦았다. 난 그 지저분한 걸레가 짙은 형광 분홍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공포에 질린 나를 번쩍 든 노파는 안방의 낡은 거울 앞에 섰다.
“봐라, 이쁘지?”
울고 싶었다. 아니, 죽고 싶었다.
온몸은 마치 쥐가 뜯어먹은 것처럼, 아니 부스럼이 난 것처럼 군데군데 살이 드러나 있었고, 그 와중에 귀와 꼬리는 덧칠한 형광펜 때문에 환장할 정도로 밝은색을 띠고 있었다. 게다가 전체를 다 하지 못했는지 얼룩덜룩하게 채도를 달리하고 있었다.
전에는 그냥 못생기고 처연해 보였다면 이것은 그냥 하나의 ‘오물’과도 같았다.
“크르르르… 웡?”
나는 거울 안의 내 모습을 향해 본능적인 적의를 드러내다, 이빨을 보인 그 모습이 한 공포 영화의 주인공인 듯해 깜짝 놀라 기겁했다. 아이를 유괴하는 삐에로, 한 손엔 풍선을 든 그 삐에로의 모습이 그대로 거울 속에 있었다.
‘망했다, 이건 진짜 망했다. 모델이고 나발이고, 그냥 망하는 거다.’
나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며 낑낑댔다. 그러나 노파는 자신이 만든 이 세기말, 아포칼립스적 결과물이 퍽 마음에 드는지 연신 싱글벙글했다.
“아유, 보면 볼수록 이뻐 죽겠다. 아무래도 바깥, 고물상까지 한번 마실이나 나갔다 와야겠다.”
‘그건 부관참시요! 더 이상 나를 욕보이지 마시오! 내 존엄, 존엄을!’
그러나 나의 격렬한 저항은 노파의 엉덩이 때리기에 산산조각이 났고, 나는 그대로 목줄을 맨 채 유모차의 바구니 안으로 들어갔다.
‘차라리 바구니 안이니 낫다. 최대한 안에 몸을 말고 있어야지.’
하지만 하늘은 내 편이 아니었다. 노파는 한참 바구니를 쳐다보다 아무래도 이렇게 해서는 자신의 미용 실력을 자랑할 수 없겠다는 듯, 나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고는 직접 목줄을 쥐었다.
“가자, 우리 이쁜 해피.”
“왈!”
‘못 가겠소!’
“이놈의 똥개가! 어서 안 움직여?”
“왈! 왈! 와알!”
“이놈이!”
결국 노파가 빗자루를 들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골목길 바깥으로 나왔다.
여태 보행기에 탄 채 오갈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동네 사람들이 마침 ‘굵고 싱싱한 계란이 왔다’라는 확성기를 튼 트럭 앞에 잔뜩 모여 있었다.
‘아, 안 돼!’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치던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노파는 모여든 동네 사람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여기, 우리 해피 좀 봐. 내가 직접 미용시켰잖우.”
순간, 행성이 지구에 충돌하기 직전의 짧은 침묵 후 엄청난 굉음, 아니 폭소가 터져 나왔다.
“푸하하하, 할머니 이게 무슨 짓이에요! 세상에, 가뜩이나 못생긴 개를 완전히 삐에로로 만들어놨네.”
“아휴, 진짜 깜짝 놀랐다. 이렇게 휘황찬란하게 못생긴 개는 처음이다.”
“색깔이 이게 뭐야, 게다가 몸은 또 왜 그래! 병 걸렸어요?”
‘아, 아…’
나는 멍하니 얼어붙었다. 계란을 담던 사내는 내 꼴을 보곤 배를 잡고 웃다가 비닐을 떨어트려 안에 든 계란을 모두 깨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그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우리 해피가 왜! 다들 보는 눈이 없어!”
“아유, 얼른 미용실이라도 가서 수습 해봐요. 사람들이 욕해요! 하하하하!”
“뭐가 그리 웃겨! 다들 강아지 안 키워봐서 몰러. 이게 얼마나 예쁜데. 내가 저기, 지하철역이랑 시장까지 크게 한 바퀴 돌고 올 거야.”
“가지 마요, 진짜 사람들이 보고 웃는다니까요. 호호호호.”
이웃들의 웃음에 잔뜩 골이 난 노파는 가기 싫어하는 나를 억지로 끌고 한참을 걸어가야 나오는 큰 사거리 앞의 지하철역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안 돼, 안 돼! 유동인구가 넘쳐나는 곳에 이런 꼴로 나가고 싶지 않아!’
“왈! 왈! 왈!”
“아유, 얘가 왜 이렇게 또 난리야! 해피야, 얼른 걷지 못해! 이 할매가 얼마나 예쁘게 널 꾸며줬는지 이 용숭동 사람들에게 다 보여줄 거야!”
“왈! 왈! 왈!”
죽기 살기로 저항하는 날 질질 끌며 노파는 기어이 대로변으로 나섰다.
그리고…
약 한 시간 후.
영혼이 소멸한 듯한 표정의 나와 노파가 입을 헤, 벌리고 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
나를 본 이들은 모두 그 자리에 쓰러져 배를 잡고 웃어댔고, 배달 오토바이(분명 조은이를 괴롭히던 지혜의 남자친구인 범죄인가 범재가 타고 있었다.)도 한참 나를 쳐다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고 비틀거리다 외제차를 긁어버렸다.
게다가…
“엄마, 저 개, 꿈에 나올 것 같아!”
“보지 마, 지지야! 지지!”
엄마들은 아이들의 눈을 가린 채 내게서 등을 돌려댔다.
그제야 노파는 사태를 뒤늦게 파악하고 동물병원으로 갔으나 토요일이라 일찍 문을 닫은 상태였다. 결국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였다.
“내, 내가 뭔 짓을 한겨…”
“끼잉, 낑…”
“조, 조은이를 어째 볼까나.”
노파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게 주어진 3년의 시간, 최고의 빌런은 바로 이 노파임이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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