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4
14. 나는 하나의 혁명이다(1)
“할머니, 해피가 왜 이렇게 된 거야?”
알바를 마치고 돌아온 조은이가 날 보며 멍하니 입을 열었다. 노파가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한숨을 쉬었다.
“왈! 왈! 왈!”
나는 필사적으로 이 노파가 얼마나 내게 정신 나간 짓을 했는지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날 붙잡고 방귀를 뀌어 수면 마취를 시키고, 그 사이 털을 이렇게 흉측하게 깎고 형광펜으로 내 귀와 꼬리를 얼룩덜룩하게 만든 것까지 모두 알려야 했다.
“왈! 왈! 어우우우우우!”
눈물이 젖은 눈으로 하울링까지 하는 날 안은 채 조은이는 세상을 잃은 눈으로 노파를 쳐다보았다.
“뭐라도 말을 좀 해봐, 할머니! 해피가 어쩌다 이렇게 끔찍해졌냐고!”
뒤돌아 앉아있던 노파가 중얼거렸다.
“그러니께, 나는 털을 잘 깎으려고 했는데 요 똥개가 자꾸 몸을 움직여서 이 사달이 나부렀어. 미안혀.”
‘뭐, 뭐라는 거야! 이 할망구가!’
“아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털 다듬는 게 얼마나 한다고! 게다가 이 얼룩덜룩한 형광색은 뭐야! 빨리 씻기기라도 해야지!”
“안 된다. 그거 니 형광색 그거 꼬다리를 따서 칠한 거여. 물 묻으면 온몸에 번질지도 몰러.”
크리티컬 데미지를 입은 조은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노파는 슬그머니 눈을 들어 뻔뻔하게 물었다.
“그래도 내일 알바 가서 30만 원은 받을 수 있겠지?”
“몰라, 이 꼴로 어딜 가. 누가 모델로 쓰겠어. 흐흐흑.”
“아, 울지 말고. 이왕 이렇게 돼버린 걸 뭘 어쩌것어.”
“일단 털이라도 제대로 깎아야지. 쥐가 파먹은 것도 아니고 이게 뭐야!”
‘또, 또 깎는다고?’
나는 순간 어리둥절하여 조은이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얼굴에 나타난 굳은 결의를 보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다 기르든가, 아니면 다 깎든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 깎아서 다듬어야 해. 꼬리랑 머리만 남기고.”
“끼이잉!”
슬픈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날 외면한 채, 조은이는 손톱 가위와 부엌 가위를 가져왔다.
“해피야, 조금만 참아. 누나가 많이 미안해. 그래도 지금 모습보다는 조금은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보기에도 좋을 거야.”
“끼이잉…”
맞는 말이긴 했다. 어쨌거나 조은이는 내일 알바를 가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그렇다면 나도 최대한 거기에 맞춰줘야 했다.
나는 가만히 조은이의 앞으로 가 앉았다.
‘깎아라. 내 털을 깎아서, 내일 막상 어찌 될지 모르겠다만 그래도 30만 원을 벌어보자. 네가 이 정도로 한다는데 내 털 따위 무슨 소용이야.’
– 싹둑, 싹둑, 싹둑.
– 착, 착, 착, 착.
“가만히 있어 봐. 여기는 좀 힘들어.”
–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얼마나 섬세한 작업이었는지, 조은이는 땀까지 뚝뚝 흘려가며 온몸의 털을 다듬고 있었다.
약 두어 시간이 넘게 흐른 후.
“돼, 됐다! 끝났다!”
조은이가 가위를 내려놓고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 감탄사에 나는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노파 또한 안방에 처박혀서 신세한탄을 하다 조은이의 소리에 나와보곤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조은아! 이, 이게!”
“휴우, 정말 오래 걸렸어. 나 너무 피곤해. 내일 아침에 나가야 하니 얼른 씻고 잘게.”
“아니, 조은아! 정말로 네가 이렇게…”
‘이렇게 뭐? 뭐야? 설마 할망구, 당신이 해 놓은 것보다야 백 배는 낫겠지!’
노파는 거의 도망치듯 작은방으로 들어간 조은이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 나를 안고 엉거주춤 안방의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그 거울 앞에는 정말로 사람의 맨피부와도 다름없을 정도로, 마치 분홍색 소세지 같은 몸을 한 내가 노파의 품에 안겨있었다.
소세지의 앞과 뒤. 즉 얼굴과 꼬리, 그리고 정말 비참하게도 고환과 소중한 곳의 부위만 털이 남아있었다. 그 털 바깥으로 나온 시커먼 색의 고환은 너무나 도드라졌다.
‘하…’
나는 울부짖지도 못했다.
‘그냥 나는 이 방 안에서 안 나가고 이대로 소세지로 살다 죽을 테니, 29번 개로 태어나 갈 테니 느그들은 알아서 잘 살아라. 뭐가 되었건 간에.’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조은이는 새벽부터 일어나 씻고 머리를 드라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노파는 피처럼 아끼는 박스 하나를 꺼내 테이핑을 하고 있었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 그 상태로 영혼 없이 사료를 씹어 먹은 후 물그릇의 물을 핥았다. 세상은 그대로 정지해 있는 듯했다.
“자아, 이러면 딱 좋네. 요즘은 개도 가방이 없으면 버스고 지하철이고 못 탄다니께.”
나는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으로 박스를 쳐다보다 깜짝 놀랐다. 청테이프로 견고하게 모서리를 막은 채 들락날락할 구멍을 뚫어놓은 그 박스가 설마 내 가방?
“왈! 왈! 왈!”
나는 현실을 부정하며 재빨리 안방으로 뛰어갔다. 그리곤 구석진 곳에 몸을 숨기고 꺼이꺼이 울었다. 내 뒤를 쫓아온 노파가 그런 나를 부드럽게 껴안았다.
“이 할매가 우리 해피 홀라당 털이 깎여서 추울까 봐 옷도 준비했다.”
‘싫어, 보고 싶지 않아. 어차피 어디서 남의 개가 입다 버린 것 주워왔겠지. 혹시 알아? 무지개다리를 건넌 개의 유품일 수도 있어. 진짜 그만 좀 하자고요…’
“할매가 직접 만들었지.”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내 심장에 앞발을 얹고 하늘을 우러러 맹세컨대, 절대로 직접 만들었다는 말에 감동을 받아 고개를 든 것이 아니었다. 이 똥손계의 정점에 다다른 노파가, 이름 이상으로 박복함을 퍼트리고 있는 박복계의 걸어 다니는 포자 같은 이가 만들었다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디 누가 입다 버린 스키점퍼(놀랍게도 깔맞춤으로 밝은 형광 분홍색!)의 소매 부분을 잘라 만든, 팔 토시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난 그 안에 억지로 머리, 앞발 순으로 내 몸을 집어넣어야 했다.
“세상에! 봐라, 봐! 아주 부잣집 개 같다.”
‘그냥 모든 게 개 같다.’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스스로 그 박스 가방으로 들어갔다. 하필 기저귀 박스라 시선을 끌기도 좋았다.
“할머니, 해피는?”
“잉, 여기. 이 박스 안에 들어갔다.”
“으악, 이게 뭐야!”
“그럼! 그냥 들고 가려 했냐! 버스나 지하철 탈 것 아니여! 남헌티 피해 주는 것 아니여!”
‘와, 저 뻔뻔함. 진짜 기가 막히네.’
“해피야, 나와봐. 누나 예쁜지 봐야지? 어때?”
그 말에 나는 한없이 우울한 표정으로 박스를 나왔다.
“어머, 우리 해피 옷도 입었네! 진짜 잘 어울린다!”
‘이 집안은 단체로 미적 감각이 결여된 것이나 다름없다. 진심으로. 도대체 조은이 너는, 어? 어어어어?’
내 입이 벌어졌다.
발랄하게 펄럭이는 짧은 치마와 흰 줄이 들어간 무릎까지 오는 스타킹, 그리고 분홍색 니트 위의 흰 점퍼. 찰랑이는 머리와 신입생다운 풋풋한 화장까지.
‘가끔 미적 감각이 폭발할 때가 있구나. 세상에.’
원체 예쁘고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지금의 조은이는 누구라도 뒤를 돌아볼 정도로 깜찍했다.
내가 카메라맨이라면 무조건 조은이를 탑으로 세울 것이었다. 비싼 옷, 브랜드 상표가 하나도 아님에도, 그 코디 자체만으로도 완전히 빛이 났다.
“이제 다녀올게요. 해피야, 어서 박스 안으로 들어가야지?”
“왈! 왈!”
나는 신이 나서 기저귀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 작은 가방을 멘 조은이가 먼저 나가고 노파가 ‘영차’ 하며 박스를 들어 뒤따랐다.
“가서 시키는 대로 잘 허고.”
“하아, 염려 마요. 나만 찍는 게 아냐. 엄청 많이 온단 말이야. 나는 그냥 아주 많은 이들 중 하나야. 엑스트라 같은 것.”
“괜찮여. 30만 원 정확히 딱 받아오고. 돈은 받은 그 자리에서 침 발라서 하나, 둘 세서 확인해야 헌다.”
“다 입금해 준다니까요?”
세상 모든 걱정을 다 안은 듯한 표정의 노파가 지하철역에 서서 박스를 조은이에게 건넸다. 개찰구를 넘어간 조은이가 박스를 안은 채 노파에게 인사를 했다.
“해피야, 해피도 할머니에게 인사해야지. 잘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크르르르, 월! 월!”
“아유, 우리 이쁜 해피. 가서 조은이 말 잘 듣고!”
“월! 월!”
내가 짖어대니 조은이가 깜짝 놀라 재빨리 박스의 입구를 막고 뒤돌아섰다. 그리고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싱글벙글하며 자리에 앉은 조은이는 발치에 박스를 내려놓았다. 나는 입구 바깥으로 머리를 내어놓고 오래간만에 타 보는 지하철의 진동을 바닥에서부터 느끼고 있었다.
“푸, 푸하하하하!”
“어머, 뭐야 저 개. 하하하하!”
앞에 앉은 커플이 날 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그 소리를 들은 주변의 다른 이들도 웃음의 근원지를 확인하곤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난리가 난 것도 모른 채, 조은이는 무엇이 즐거운지 핸드폰을 꺼내 열심히 집중하고 있었다. 결국 난 삐에로가 된 심정으로 다시 박스 안으로 얼굴을 집어넣었다.
‘될 대로 되라. 휴우. 되돌아가란 소리만 안 했음 좋겠다.’
그런 내 심정도 모른 채, 지하철은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
지하철역에 내려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외곽 지역.
조은이가 헉헉대며 박스를 들고 걷고 있었다. 나는 흔들리는 박스에서 고개를 빼곤 주변을 살펴봤다.
카페와 펜션들이 밀집해 있는 곳, 그중에는 수영장과 파라솔까지 갖춰진 곳도 있었다. 개중 가장 화려한 곳은 벌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저기인가 보다.’
촬영을 위한 조명들도 보이고 카메라를 든 여러 명이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먼저 와 있는 모델들도 보였다.
“아…!”
“낑…!”
조은이가 그제야 현실을 파악했다. 그리고 나 역시 이 잔혹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애견쇼 박람회나 콘테스트와도 같은 분위기. 고급스러운 켄넬이나 가방이 늘어서 있었고 온갖 미용을 받은 채 액세서리를 착용한, 어디 카탈로그에 나올듯한 강아지들이 주인들의 발아래 얌전히 앉아있었다.
그 와중에도 비단결 같은 흰 털을 늘어트린 한 말티즈의 주인은 드라이기와 빗을 이용해서 계속 털을 빗기며 말리고 있었다.
모두 나비넥타이나 넥타이, 혹은 머리 위에 핀 등을 꽂고 있었고 정장, 드레스, 스포티룩 등 가지각색의 애견 옷을 입고 있었다. 저 미용 중인 말티즈 또한 옷은 입지 않았어도 머리에 꽃핀을, 네 발목 아래에 리본을 묶고 있었다.
“끼, 끼잉…”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그냥 되돌아가자.’
나는 솔직히 그러기를 바랐다.
내가 이 꼴이 난 것은 아무 상관없었다. 조은이가 기가 죽거나 상처를 받는 것은 정말 보기 싫었다. 그리고 그 상처의 이유가 결국은 내 모습 때문이라는 것도 싫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을까, 조은이가 멈칫하더니 뒤돌아서려고 했다.
그때,
“아, 아르바이트 오신 견주분이시죠!”
한 카메라맨이 조은이를 보며 외쳤다. 그리고 모두가 우리를 쳐다봤다.
“네, 네에.”
얼떨결에 조은이가 대답을 해 버렸다.
현장의 책임자, 혹은 메인 감독인 듯한 베레모를 쓴 남자가 우리를 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뚜벅뚜벅 다가왔다.
그의 얼굴이 경이로움으로 빛났다.
하지만 그 시선은 조은이를 보고 있지 않았다. 아니, 조은이를 보기도 했지만 박스에서 고개를 내민 날 더욱더 깊게 바라보았다.
“이 강아지야. 우리의 촬영 콘티를 처음부터 다 뒤집어버리게 만든 존재감 있는 강아지가. 바로 이 애야.”
‘어, 어? 뭐야, 뭐가 잘 되는 거야?’
메인 감독은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센세이션이야. 못생김과 추함에 있어서 이것은 하나의 혁명이야. 레볼루션.”
‘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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