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40
141. 봉사활동(3)
맞는 말이었다.
애당초 게임은 주인과 목표금액이 정해져 있었다. 거기에서 주인을 제거했다면 게임이 무너진 것이다.
멍한 눈을 하고 있는 내게 세인트버나드가 슬픈 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 그리고 나는 47번을 다시 태어나야 해. 개로. 그다음엔 지옥으로 끌려가게 될 거야.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뭔 줄 아나?
“모, 모르겠는데요?”
– 지금 자네의 머릿속에도 목표금액과 게임이 종료될 시간이 떠 있지?
빛태창을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 숫자가 바뀌더군. 내가 이번 생에서 죽을 시간으로.
얼핏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날 바라보며 세인트버나드는 빙긋 웃었다.
– 지금 내 머릿속에 무엇이 떠 있는지 아는가? 읽어주지. 이번 생 종료일 2024년 12월 3일 오전 11시 19분. 남은 환생 횟수 47회. 오늘이 몇년 몇월 며칠이지?
“2024년 2월 12일이요…”
– 10개월도 안 남았군. 내가 언제 죽을지, 그리고 몇 번을 더 개로 태어나 살아야 할지, 그리고 끝나면 어디로 끌려갈지 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게 얼마나 지옥 같은지 상상이 되나?
나는 방금 그가 한 말을 곱씹으며 여태 느껴본 적이 없는 거대한 공포를 맛보았다.
정말로 그것을 알면서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몸과 마음, 영혼의 모든 것이 무기력해지고 허무해질 것이었다. 그리고 환생해야 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수록, 지옥에 가까워질수록 더욱더 정신과 삶은 피폐해질 것이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벌이었다.
그와 나 사이에 기나긴 침묵이 흘렀다.
나는 감히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가 저지른 용서받을 수 없는 실수, 그리고 엄청난 형벌. 10개월도 남지 않은 이번 삶.
그것을 모두 알아버린 후 그의 눈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나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 우리가 왜 ‘빙의자’가 아니고 ‘환생자’일까?
갑작스러운 그의 물음에 나는 땅을 바라보며 모르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 실패하면 개로 그대로 남기 때문이지. 다시 돌아갈 수 없어. 그대로 이번 생은 개로서 계속 끝까지 살게 되고, 남은 횟수만큼 개로 계속 환생하기 때문이야.
“서, 선생님…”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이 비참한, 아니 비참하다는 말조차 사치일 삶에 어떤 위로를 보낼 수 있을까.
“제가 뭐라도 도와드릴 방법이 없을까요? 혹시 아프다면 수의사라도 부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볼까요? 저는 똥으로 글씨를 쓸 수 있는데요.”
그가 피식 웃었다.
– 아니? 알잖아. 지금 내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10개월 살 것이 1년 10개월이 된들, 그게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다음 생도 개, 다다음 생도 개, 계속 개, 그리고 지옥이 기다리는데.
“…”
맞는 말이었다.
그때, 이쪽으로 조은이와 직원이 달려왔다.
“해피야! 여기 있었어? 너 사라진 것 알고 얼마나 찾아다녔는데! 으이구, 바보! 어디 간다면 누나에게 이야기를 했어야지!”
나는 조은이를 보고 꼬리를 흔들지도 못했다. 방금 듣고 본 것이 너무나 엄청났기에 잔뜩 겁에 질려서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날 보던 조은이가 고개를 갸웃하고 조심히 안아 들었다. 나는 무서워서 조은이의 품속으로 더 파고들었다.
“갑자기 해피가 왜 이럴까?”
“그러게요. 여기 애들은 순해서 해피에게 해코지도 안 했을 텐데. 다 갇혀있기도 하고요.”
“그냥 워낙 큰 개들이 많아서 그런가 봐요. 해피야, 이제 갈까? 걸덕이 오빠도 청소 다 끝났대.”
“와, 왈!”
나는 짧게 짖었다. 그리고 조은이의 품에 안겨 이곳을 빠져나갔다.
– 행운을 빌어. 가장 마지막까지, 안심하지 말게나.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마지막 눈을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
바깥에 나오자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걸덕이가 퀭한 눈으로 두찌가 든 가방을 들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이, 이제 정리가 다 된 듯해요. 마지막 인사 영상만 찍으면 좋을 것 같아요.”
“네, 그렇게 해요!”
조은이가 나를 안고 걸덕이 옆에 섰다. 걸덕이가 카메라를 이쪽으로 향했다.
“자아! 오늘 이렇게 열심히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좀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요, 네. 정말 힘들었어요. 다만 아주 보람찬 시간이었습니다.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지 않았나 싶어요. 어때요, 조은 님은요?”
“네. 저도 아이들과 놀아주고, 또 소형견들의 견사를 쓸고 닦으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다음에 또다시 와야겠다. 이곳을 시작으로 다른 곳들도 찾아다니면서 사료를 기부하고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느꼈어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꾸준히요.”
“오오, 좋은 생각이네요. 우리가 반려견을 키우며 시청자분들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이 사랑을 다시 사회에 돌려드릴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다음에도 로이 님이 많이 도와주실 거라 믿어요. 함께 합동방송도 이렇게 봉사하면서 하고요!”
조은이의 말에 살짝 걸덕이의 눈가가 떨렸다.
“아하하하, 스케줄이 빈다면 어, 언제나 환영입니다. 이제 저희는 다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방송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로이와 두찌 채널의 김로이!”
“저는 조은&해피 Story의 안조은이었습니다! 해피야, 인사아~!”
“왈! 왈!”
“웍! 웍!”
가만히 카메라를 끈 걸덕이가 한숨을 쉬었다.
“이제 진짜 끝이네요! 우리, 어디 가서 밥부터 먹죠.”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그러나 두찌와 내가 있는 이상, 식당을 들어가 먹기는 애매했다. 결국,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 세트를 포장한 후 인근 공원의 정자에서 먹는 것이었다.
차를 타고 내려간 우리는 근처에서 드라이브스루로 햄버거 세트를 산 후, 한적한 야외공원을 찾았다. 걸덕이와 조은이가 펼치는 햄버거 냄새가 봄기운이 살짝 묻어나는 바람에 실려 퍼졌다.
‘하아아아…’
그래도 꽤 쌀쌀한 날씨였건만, 허기는 그런 악조건을 완벽하게 이겨내고 있는 듯했다. 조은이와 걸덕이 아래에서 두찌와 나도 일회용 포장 그릇에 담긴 사료를 씹어 먹었다.
“아 참, 걸덕이 오빠. 대회 신청서는 냈어요?”
“이미 다 써 놨고, 첨부할 사진과 영상도 골라놨어요. 오늘 저녁에 내려고요. 조은 님은요?”
“저도 오늘 저녁에 작업해서 내려고요. 그런데 이번 대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열리잖아요? 각 우승자가 미국으로 가고요.”
“네, 그렇죠. 물론 두찌가 본선에나 오를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죠. 하하하하! 그냥 연습하고 예선 나가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게 나올 테니까.”
한참 대회를 주제로 이야기하던 둘, 조은이는 전 세계에서 우승한 동물들의 영상을 틀어 걸덕이에게 보여주었다. 햄버거를 씹으며 영상을 보던 걸덕이의 표정이 굳었다.
“와, 이거… 장난 아닌데?”
“그쵸? 연출도 필요하고 세팅도 필요해요. 그냥 뛰어난 것만으로는 예선은 어찌 통과할 수 있을지 몰라도, 본선에서는 바로 컷 당할 수도 있어요.”
“두찌가 허리 들썩이며 웍웍할 게 아니네.”
“훌라후프 돌린다면서요.”
“아니, 맞는 훌라후프부터 자가제작해야 할 판이거든요. 와아, 이거 진짜 힘들겠구나.”
걱정하는 걸덕이에게 조은이가 조심스레 박건혁 팀장과도 나누었던 아이디어를 들려주었다. 그것을 듣던 걸덕이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참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조은 님, 이상하게 듣지 마시고요.”
“네? 네.”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 말씀해 주세요. 예를 들어 방금 말씀하신 그 직장 상사 연출도 만약 남자가 더 어울릴 듯하다면 제가 나서서 연기를 할 수도 있어요. 그 외에도 이런 건 어때요?”
“어떤 거요?”
“얼마 전에 해피가 지명 수배자를 잡은 적 있잖아요?”
걸덕이가 순간적으로 낸 아이디어는 이러했다.
조은이와 내가 걸어갈 때, 걸덕이가 등장해 조은이의 핸드백을 훔쳐서 뛰어간다. 그리고 어디엔가, 예를 들어서 폐건물 등에 숨으면 해피가 쫓아와 찾는 것이다. 문이 여러 개 달린 곳이라면 걸덕이가 숨은 문 앞에 똥으로 ‘범인’을 쓰는 스토리.
결국 똥으로 글씨를 쓰는 것은 같았지만 연출의 측면, 그리고 과거에 내가 했던 일이 자료 화면으로 같이 나간다면 분명 엄청난 시너지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오오오, 괜찮다! 재미있겠다!’
나는 걸덕이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어 사료를 먹다 말고 ‘왈왈’하고 짖었다.
조은이도 꽤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도와주시면야 저야 고맙죠!”
“다만, 저는 그냥 제 콘텐츠로 도와주는 것 정도만 찍을게요. 상금도 전혀 관심 없고요. 그 정도면 무언가 로이와 두찌 채널에도 꽤 오랫동안 새로운 콘텐츠가 올라오는 셈이니까.”
역시, 그럼 그렇지. 그렇다 해도 도와주는 것 자체는 너무나 좋은 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스튜디오 꿀잼으로서도 훨씬 좋아할 일이었다. 크리에이터의 노출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쁠 건 없었다.
둘은 의기투합하여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짜본 후 ‘아자아자!’하고 손을 마주쳤다.
왠지 오늘 둘의 사이가 훨씬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순간 입안의 사료가 모래알처럼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찌는 내가 먹다 남긴 사료까지 다 빼앗아 먹고 있었다. 다리 사이, 큼지막한 고환에 괜히 심술이 솟구쳤다.
***
집으로 돌아온 조은이는 피곤한지 바로 침대에 벌러덩 쓰러져 누웠다. 나 역시도 시원하게 배변 패드에 오줌을 싼 후 조은이 옆에서 스핑크스 자세로 자리를 잡았다.
아까 세인트버나드가 했던 말들이 다시 떠올랐다.
그의 말에서 묻어난 것. 그는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환생자도 몇은 더 만난 듯했다. 아무래도 애견펜션에서 수많은 애견 동호인들을 봤으니 나보다야 훨씬 더 많은 접점이 있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환생자끼리는 서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도 좋은 정보였다. 생전의 지식을 그대로 나눌 수 있었고 정보도 들을 수 있었다.
일단 그에게서 들은 정보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분명했다.
– 게임은 나만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 지나온 삶, 즉 나이만큼 개로 환생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 ‘그것’은 게임이 무너지는 것에 대해서 극도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 그리고 그는 누군가를 지옥으로 보낼 수 있는 만큼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 ‘그것’은 개로서 죽은 나를 다시 회생시킬 수 있을 정도로 전능한 존재라는 것. 아울러 그만큼 자신의 게임을 즐기는 이라는 것.
하기야 그렇기 때문에 게임이 무너지는 것에 그런 분노를 표출한 것이리라. 아직도 그 세인트버나드가 당한 벌을 생각하면 온몸에 오한이 돋을 정도였다. 자신이 이번 생에서 죽는 날짜와 시간을 알고 살아가고 47번을 그렇게 태어난다는 것.
아 참, 하나 더 있었다. 그 세인트버나드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
– 행운을 빌어. 가장 마지막까지, 안심하지 말게나.
그것이 정말로 묘하게 머리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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