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45
146. 예선(5)
음악이 꺼진 채, 조은이와 나는 가만히 심사위원을 보고 서 있었다.
똥으로 빈칸을 채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아, 어…”
다섯 명 모두 너무나 당황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간신히 먼저 마이크를 잡은 것은 신도엽 MC였다.
“안조은 참가자님, 전에 우리 프로에 나왔었잖아요?”
“네, 맞아요.”
“그때도, 이런 말도 안 되는 게 가능한가? 하고 녹화 끝나고서 MC들끼리 한참 이야기했었어요. 글자를 보고서 똥으로 그린다는 게, 이게 진짜 말이 안 되잖아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더 놀란 것이, 오늘은 ‘사람’이나 ‘꽃’ 같은 글자들을 아예 붙여놓지도 않았어요. 만약에 붙여놨어도 대단하긴 했을 테지만, 이건 진짜 어떻게 한 것이지? 외운 것이라고 해도 이게 이해가 안 되는데요?”
신도엽 MC의 말을 동물원 사육사가 받았다.
“맞습니다. 아무리 개의 지능이 얼마다, 코끼리가 얼마다 하더라도 그런 인식과 표현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거든요.”
“예를 들어서 어떤 게 있을까요?”
“오랑우탄이 아이큐가 70, 80이라 하더라도 인간과 동일한 사회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이해와 활용의 문제 때문이죠. 그리고 기억력에 대한 차이. 그런데 해피가 저 정도를 해낸다는 것은…”
분위기가 좋았다.
그때 강형우 훈련사가 마이크를 들었다.
“제가 전에 방송에서 안조은 님 집에 들어갔을 때, 해피가 글씨 쓴 것 보고 나서 했던 말 기억하시나요?”
“네. 해피는 즐기고 있다고요.”
“맞아요. 해피는 지금 교감이 너무 잘 됨과 동시에, 그 표정과 행동에서 조은 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 느껴져요. 이 정도로 주인, 뭐 요즘 반려인이라는 말도 씁니다만 여하간 대상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어요.”
강형우 훈련사의 말에 조은이가 얼굴을 감싸며 너무 기뻐했다. 나 역시 괜히 뺨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귀에 염색된 핑키핑키 체리블라썸 NO.5 리미티드 뉴 에디션 스페셜 럭셔리 컬러링이 뺨까지 번지는 듯했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나를 보며 동물심리 전문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강형우 훈련사님의 말에 동감합니다. 등장할 때부터 지금까지, 여기서 가장 즐거워하고 자신의 무대를 기다린 것은 해피였네요. 앞으로 그 엉덩이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해피하게 만들지 기대됩니다.”
그리고, 다섯 명 모두에게 받은 동그라미!
“아아! 감사합니다!”
“아왈왈! 왈왈!”
강당에 대기 중인 참가자들로부터도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쪽에서 동영상을 찍으며 중계를 하고 있던 걸덕이가 이쪽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
합격증과 본선 일정이 담긴 안내서를 받은 후, 조은이와 나는 서둘러 강당을 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걸덕이와 두찌가 우리를 반가이 맞았다.
“대박! 진짜 성공하실 줄 알았다니까요?”
“아하하, 진짜요?”
“지금 방송 장난 아니에요. 제가 라이브로 송출하는데, 조은 님이 심사평 듣고 합격 받을 때, 와… 댓글 올라가는 속도가 진짜! 한마디 해 주세요! 지금 우리 방에도 조은 님의 개똥팸 여러분들이 엄청 많이 와 계세요.”
걸덕이가 카메라를 들이댔다. 조은이가 나를 번쩍 안아 들고 카메라를 쳐다봤다.
“아하하하,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겁게 대회 나가서 좋은 추억 만들자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는데 그건 이룬 것 같아요. 본선이 아마 다음 달에 있는 거 같은데, 그때까지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네! 정말로 축하드리고요, 이제 오늘 일정을 마감했기 때문에 저희도 돌아갈 준비를 하겠습니다. 급히 켠 라이브 방송에 찾아와주신 로이팸, 두찌맘 여러분과 안조은 님의 개똥팸 여러분, 그 외 시청자분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아~!”
카메라를 끄고 장비를 정리한 걸덕이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짜 대박인데요, 해피?”
“그쵸? 저는 사전에 연습하거나 준비했던 것도 아닌데 해피가 노래 후렴에 맞춰 ‘아오~’ 했을 때 정말 소름 돋았어요. 지금 얘가 화음을 넣고 있네?”
“아마 조은 님이랑 연습하면서 계속 틀었던 노래에 익숙해졌나 봐요. 여하간 해피는 이해력이나 기억력, 판단력이 진짜 어마어마해요. 저도 찍으면서, 이게 진짜? 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하하하, 감사합니다.”
조은이가 시계를 보았다. 얼추 5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날씨가 다시 쌀쌀해지고 배도 고파왔다.
“어떻게 하지? 저기, 걸덕이 오빠. 식사하고 가실래요?”
“아아! 저야 영광이죠. 그런데 우리 두찌랑 해피가 얌전히 가방에 들어간다 해도 받아줄 만한 데가…”
“일단 가 봐요. 뭐라도 먹어요, 너무 배고프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좋죠!”
조은이는 날 들고 대로변으로 걸어가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와중에도 이번 대회 때문인지 정신없이 핸드폰의 알람이 울리고 있었다. SNS고 동영상 채널이고 엄청나게 댓글이 폭발할 것이었다.
게다가 주최 측인 Animals Got Talent – Korea의 공식 동영상 채널에서 생방송된 오늘 서울/경기의 예선. 이미 수많은 시청자가 예선을 실시간으로 보았을 것이었다. 엄청난 홍보나 다름없었다.
–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아, 여보세요? 네! 팀장님.”
조은이에게 온 전화. 걸덕이가 깜짝 놀랐다.
“아하하하, 감사합니다. 다 응원해주신 덕분이죠. 걸덕이 오빠요? 옆에 있어요. 그리고 지금 저희는… 조금만 더 가면 잠실역인데요?”
잠시 박건혁 팀장과 통화를 하던 조은이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네, 그럼 근처 아무 데나 들어가서 일단 연락드릴게요. 팀장님은 가리는 것 없으시죠? 우선 저희가 좀 시켜놓을게요!”
조은이가 전화를 끊었다.
“아니, 박건혁 팀장님이 갑자기 왜요? 하긴, 우리 방송 다 보고 계셨겠다.”
“네, 그래서 축하한다고, 근처에 있으니 식사나 같이 하자고 하셔서요. 아무 곳이나 자리 잡으면 그쪽으로 찾아오시겠다 하시는데요?”
“흐음… 어디가 좋을까? 왠지 밥을 사주실 것 같은데 고기 먹는 게 좋겠네요. 삼겹살, 괜찮아요?”
“저야 뭐든 좋죠. 사실은 제가 오늘 걸덕이 오빠 밥 한번 사드리려 했던 건데.”
아, 안 돼! 그것은 안 돼!
하기야 전에 봉사도 그렇고 여태 걸덕이가 조은이를 도와준 것을 생각한다면 밥 정도는 충분히 살 만하긴 했다. 그래, 얌전하게 밥 정도야 뭐.
오잉?
걸덕이가 얼굴이 발그레한 채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아아, 밥이요? 그럼 그건 다음에 따로 사주세요. 어차피 제가 본선에 도와드릴 부분이 있으면 도와드리기로 했으니까.”
“그럴까요? 알겠어요.”
“그럼, 저기 보이는 고깃집으로 가죠! 그리고 오늘 피곤하실 테니, 그리고 연기도 옷에 밸 텐데 지하철 타면 민폐예요. 집에 갈 땐 제가 차로 바래다 드릴게요.”
“아니, 안 그러셔도 돼요!”
“피곤하시잖아요. 가뜩이나 긴장도 풀린 데다 장시간 바닥에 앉아있어서 힘든데!”
이럴 줄 알았다.
역시 이름에 걸맞게 껄떡임에 있어서는 타고난 전략가다웠다. 순간적으로 기회가 사라질 뻔한 걸 다음으로 미루어 두 번 함께 식사하게끔 만드는 순발력. 그리고 고깃집의 연기 냄새 때문에 민폐가 될 수 있다는 공공장소에서의 에티켓을 무기 삼아 차에 타게 하는 매끄러운 논리.
역시 만만찮은 상대였다.
“아니, 진짜 괜찮아요. 저 되게 튼튼하거든요.”
“대신 밥을 비싼 것을 사주시든가, 가볍게 사주시려면 한 번 더 사주시든가.”
그 말에 웃음을 터트린 조은이가 ‘그럼 진짜 맛있는 것으로 사드릴게요’ 하고 걸덕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아… 내가 만약 인간의 몸으로 돌아간다면, 당장 영혼을 팔…면 안 되고, 여하간 범재처럼 카푸어 영정사진을 찍는 한이 있더라도 자동차부터 사리라! 차가 있어야 했다. 내가 몰랐네, 범재야, 미안하다!
먼저 가게로 들어간 걸덕이가 반려견들이 가방에 얌전히 있을 것이라고 주인에게 잘 이야기한 후 양해를 얻었다. 안에 자리를 잡고서 걸덕이가 먼저 고기를 주문하는 사이, 조은이는 해당 가게의 상호와 주소를 찍어 박건혁 팀장에게 보내는 듯했다.
‘하아, 나도 삼겹살 진짜 먹고 싶네. 예전 반지하 침수되었을 때 도화선녀가 종종 구워서 몰래 놓아주던 삼겹살이 끝내줬는데…’
여기저기에서 피어오르는 고기 굽는 냄새, 하필이면 솥뚜껑 삼겹살인지라 아래에 묵은지와 콩나물무침이 깔려있었다. 자글자글 고기가 익으며 흐르는 기름이 김치를 볶고 콩나물무침을 익혔다.
‘뜨거운 밥에 저 볶아진 김치에 삼겹살, 생마늘에 쌈장, 파채. 아 참, 계란찜은 서비스로 나오겠지? 그렇게 밥 두 공기도 먹을 수 있는데. 된장찌개 작은 뚝배기로 나왔으면 좋겠다.’
아는 맛이 무서운 법.
나는 몽롱한 환상 속에서 코만 벌름거리며 이 지독한 식고문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박건혁 팀장이 들어왔다. 조은이와 걸덕이가 일어나 인사를 하려 하자 그는 얼른 앉으라고 손사래를 쳤다.
“대박이야. 진짜 대박.”
평상시 이렇게 흥분하지 않는 박건혁 팀장의 들뜬 모습과 말투에, 걸덕이와 조은이 모두 깜짝 놀랐다.
“아, 물론 조은 님도 짧게 라이브 방송하고 저도 길게 했죠. 대박 맞긴 한데, 그렇게까지 대박은…”
“아니야, 아니야. 잘 들어봐요. 이거 공식 채널에서도 실시간 라방한 것 알죠? 주최 측에서.”
“네, 물론 알죠.”
“거기서 난리가 났어.”
그렇다고 해도 그것도 어느 정도는 예측할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영상을 보는 이들이 내 묘기를 신기하게 생각해줄지언정 그대로 전부 다 채널을 구독하는 것도 아닐 것이었다.
물론 좋기야 좋고, 고마운 일이긴 했다. 그런데 정말로 그 정도로 대박이 났다고?
“끼이이잉…”
내가 의문을 표하는 것을 알았는지, 조은이가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 플랫폼을 열었다.
[+999…]댓글, 그리고 채널 추가 등의 알림이 어마어마하게 쌓여있었다.
아니, 공중파 방영도 아니고 엄청난 버라이어티 쇼 프로도 아닌데 이 정도라고?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걸덕이도 눈이 휘둥그레진 채 박건혁 팀장을 쳐다보았다.
“놀랐죠? Animals Got Talent가 전 세계에 팬들이 엄청나게 많잖아요. 이것은 나도, 회사도 간과했던 부분이었어요. 오늘 Animals Got Talent – Korea의 공식 채널에서 라이브 방송되는 것, 한국 사람들만 본 게 아니었어요.”
“아!!!”
조은이와 걸덕이가 입을 틀어막았다. 나 역시 놀라 가방 안에서 벌떡 일어나다 위에 머리를 부딪쳤다. 오직 세상만사가 귀찮은 두찌만이 가방 안에서 허리를 들썩이고 있었다.
“Animals Got Talent 열정 팬들은 전 세계의 예선 영상들을 다 찾아가서 본단 말이죠. 나도 거기까지 생각을 못 했어요. 전체적으로 한국 편이 매우 지루하다는 반응들이었는데, 조은 님과 해피가 나오면서 완전히 붐 업. 지금 조은 님 채널에 구독 신청한 이들 절반 가까이 외국인이에요.”
“대, 대박… 진짜 생각도 못 했는데.”
“게다가 놀라지 말아요. 할리우드에서 극성맞은 애견인으로 유명한 아만다 사이프라이드가 조은 님 채널에 댓글을 남겼어요. 아마 구독도 했을걸? 오프라 루즈프리도 자신의 SNS에 이번 대회 라방 영상 링크 달고 ‘OMG! A Korean dog is writing with his own poop (한국 개가 똥으로 글씨를 쓰고 있어)’라고 글을 썼어요. 바로 얼마 전에.”
무언가 엄청난 홍보가 된 듯하다.
아니, 이건 ‘엄청난’ 정도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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