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47
148. 만반의 준비
모든 연습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이제는 연습 영상을 올리더라도 다른 본선 진출자들이 그것을 보며 더 연구하거나 그 이상의 퍼포먼스를 다시 짤 수 있기에 ‘숨김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중요한 주제였다. 이 시대의 힘들고 지친 이들을 위로하는 힐링, 그리고 우리의 강인한 점을 찾자는 슬로건이었다.
예전에 짰던 그런 상황극은 본선 이후를 위한 여지로 열어두기로 했다. 당장 국내에서 상을 따려면 그만큼이나 감성에 호소해야 먹힌다는 의견이었다.
개똥팸도, 해외의 많은 이들도 우리를 응원하면서 궁금해하고 있었다.
“반드시 멋진 것으로 보답할게요! 그러니 모두 기대해주세요!”
조은이는 웃으며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아 참, 그리고 이번에 해피콘 3이 나와요. 해피콘 3은 해피를 직접 촬영해서 만든 거예요. 그러니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특별히 해피콘 3으로 얻게 된 수익금은 이번 연말까지 유기 동물 임시 보호소에 모두 기부할 것이랍니다.”
‘아깝다…’
솔직히 아깝기는 했다. 물론 해피콘 1, 2의 수익이 엄청나게 크게 들어오는 것은 아니어도 제법 쏠쏠했다. 거기에 해피콘 3은 정말로 기대가 되는 펀치였다. 그것을 위해 나는 카메라 앞에서 얼마나 많이 억지로 뛰어 놀아야 했던가! 똥도 싸고 말이다!
방송을 종료한 조은이는 주식 계좌를 오래간만에 열었다.
작년 초가을, 1,000만 원씩 두 종목에 넣었던 2,000만 원의 시드머니는 어느새 2,450만 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종목을 보는 눈이 좋은 조은이였다. 틈틈이 계속 확인을 하면서 다음 투자의 방향을 잡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이번에 저 둘을 환매하고 수익률 챙겨야겠다. 그리고 통장에서 1,000만 원 빼서 이번엔 로봇주랑 엄청 많이 떨어진 바이오주에서 하나 몇 개월 담아봐야겠어.”
나를 허벅지에 올려놓은 조은이가 미리 뽑아놓은 우량주들을 체크하며 최근 그래프의 상승세를 더듬었다. 바닥권에서 지루하게 움직이던 바이오주는 크게 움직이지는 않지만, 거래량 자체는 지난달과 비교해 꽤 많이 늘어나고 있었다. 로봇주는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계속 우상향하고 있었다.
해당 주식들을 한참 체크하던 조은이는 문득 생각이 난 듯, 오랜만에 청담동오리발의 채널에 들어가 봤다.
여전히 스캘핑으로 꾸준한 수익을 거두고 있는 그는 이번 여름에 있는 투자대회에서 설욕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자신을 다스리고 있는 중이라는 말을 공지에 박아 두고 있었다.
“인사드려야겠다.”
조은이는 공지의 댓글에 짤막하게 인사를 남겼다.
[안녕하세요, 청담동오리발 님! 저 기억하세요? 안조은입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늘 감사드리고 있어요. 제게 있어서 해피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도움을 주신 분이에요. 늘 건강하세요!]잠시 후 알림이 도착했다. 청담동오리발의 답변이었다.
[이번 대회에도 나오시죠? 안 나오시면 안 됩니다.]조은이가 웃으며 대댓글을 남겼다.
[저는 스캘핑이 너무 무서워서요. 딱 그것으로 좋은 경험을 한 듯해요. 꼭 우승하세요!]곧이어 달린 대댓글.
[그래요, 알겠습니다. 아쉽기 그지없네요. 조은 님도 건강하세요. 참고로 저 해피콘 쓰고 있습니다.]짧지만 강렬했던 인연, 그래도 서로가 서로의 건강과 행운을 빌어주는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그리고 나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서 난 고마움을 느꼈다.
결국, 실패로부터 (그에게 있어서 2등은 실패나 다름없었으니) 다시 자신을 채찍질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단련하는 이는 언제나 그 이상의 위치에 도달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조은이도. 주식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 언제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어.’
나는 존경의 눈빛으로 이 21살 주인을 바라보았다.
동영상 채널을 닫은 후, 다시 과제를 준비하느라 전공책을 뒤적이며 해당 자료를 검색하는 모습. 정말로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해 나가는 이 열정은 지금의 위치, 그 이상을 도달하기 위해 매진하는 숭고한 모습이었다.
이런 주인이 있는데 어찌 내가 가만있을 수 있겠는가. 당장 내 목표인 30억을 위해, 나도 더욱 치열하게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 풀쩍!
나는 조은이의 허벅지에서 뛰어내려 거실로 다가갔다. 그리곤 열심히 사료를 씹어 먹고 물을 마셨다.
곧이어 신호가 오자, 여태 연습했던 글자를 다시금 배변판에 연습 삼아 써 보았다.
박건혁 팀장이 준 자료 속, 국내 최고 서예가인 망언(望言) 김극혐 선생의 필치를 기억하며 그에 맞춰서 멋지게 한 획, 한 획 정성을 다해 싸 내려갔다.
***
오늘은 망언 김극혐 선생을 직접 만나는 자리였다.
같이 합을 맞춰보기 위해, 김극혐 선생은 지리산이 위치한 구례군의 읍내, 48평 아파트 최고층에서 이곳, 서울의 꿀잼 스튜디오까지 직접 올라오시는 중이었다.
망언(望言). 언제나 옳은 글과 말을 바란다는 멋진 호. 비록 동음이의어로 끔찍한 단어가 있긴 하지만 감히 그것을 입에 올리면 안 될 분이라 했다.
이름도 극혐(克嫌). 모든 혐오스러운 것을 이긴다는 뜻. 보통 상서로운 이름이 아니었다.
아마 도포 자락을 휘날리거나 생활한복을 입으셨을 것이다. 어쩌면 수염을 기르거나 상투를 튼 모습일지도 모른다. 비록 48평 아파트의 최고층에 사신다고는 했지만, 여하간 지리산 자락이 아닌가.
먼저 도착한 우리는 최대한 얌전한 자세로 선생님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직원들과 박건혁 팀장은 다양한 차와 함께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찻주전자와 찻잔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최고의 서예가이니 그에 걸맞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예를 다하려는 모습이었다.
어쨌거나 이쪽에서 초대하고 도움을 요청한 것에 흔쾌히 응해주셨으니 응당 그에 맞는 예를 갖춰야 하는 법이었다.
“선생님 올라오신다고 하네요!”
박건혁 팀장이 전화기를 들고 다들 회의실 바깥으로 나가라고 손을 휘저었다. 조은이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도 무언가 대단한 분을 만난다는 생각에 의자에 쭈그리고 있다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
형광색 추리닝에 외발 전동휠을 탄 70대 노인이 ‘지이잉’ 소리와 함께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뒤로 묶은 몇 올 없는 머리카락은 금발로 염색되어 있었다.
모두의 눈이 뜨악하게 변했다.
다들 인터넷 기사나 영상으로 봐 왔던 고색창연한 분위기의 서예 달인을 생각했기에, 이 모습은 완벽히 허를 찌른 것이었다.
“아, 혹시 망언 김극혐 선생님…?”
“잉, 나 불러서 오라허지 않았소?”
“아, 선생님. 네, 어서 오십시오.”
“아따, 이거 전동휠 충전 좀 혀야 쓰것는디.”
노인의 말에 직원이 다가와 얼른 전동휠의 배터리와 충전 케이블을 받아 갔다. 노인이 안을 둘러보다 날 보곤 깜짝 놀랐다.
“이야, 내 옷이랑 색깔이 똑같아부러. 아따, 겁나게 거시기허게 생겼소.”
“네, 이 강아지가 이번에 선생님과 함께 합을 맞추기로 한 강아지 해피이고, 옆은 해피의 주인인 우리 소속 크리에이터 안조은 님입니다.”
“잉, 보내준 거시기 영상 잘 봤소. 사람이 꽃보다 참말로 거시기혀. 잉.”
어마어마한 포스였다.
이윽고 자리에 앉은 노인에게 박건혁 팀장이 작설차, 죽로차, 오룡차, 세작 중 어떤 것을 드시겠냐고 물었다.
“나뭇잎떼기 우린 것 말고, 나는 단 것이 좋아. 쩌그 1층에 카페 있던데 캐러멜 프라푸치노 고거시 딱 좋겠는디?”
“아, 캐러멜 프라푸치노요?”
“그리고 휘핑 크림 올려달라허고. 좀 부탁허요.”
박건혁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은이를 쳐다보았다.
“아, 저도 같은 것 마실게요.”
“먹을 줄 알아부러. 사람은 단것을 먹어야 머리가 돌아가는 법이니께. 나도 글쓰기 전에는 벨기에산 초콜릿을 한 줌씩 먹어부리요. 스위스 것도 나쁘지 않아. 좋제.”
“아하하, 그러세요?”
“하아, 어제 저녁에 동네 후배랑 술을 마시고 잤더니 대굴빡이 겁나 아파 죽는 줄 알았당께.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여기까지 오느라 디지는 줄 알았제라.”
그 말에 조은이는 깜짝 놀랐다.
“아, 직접 차 끌고 오신 거예요?”
“얼마 전에 퉤슬라 전기차 한나 뽑아부럿지. 시방 아래 주차장에서 충전하고 있응게.”
무언가 고색창연한 것과는 거리가 먼 분이었다. 커피를 사러 나간 박건혁 팀장이 올 때까지 노인은 핸드폰을 들어 코인창을 바라보며 중얼중얼거렸다.
“하, 요놈을 빨리 잡았어야 혔는디… 뭔 NFT를 또 발행한다고 공시를 띄우고 난리여. 어차피 이번에 미국 SEC에서 소송 들어간 거 백프로 승소한당께. 그나저나 요더리움 요것은 베이징 업그레이드를 앞두고 빨리 좀 움직여야 쓰것는디.”
조은이와 내 입이 떡 벌어졌다. 그것을 본 노인이 히죽 웃었다.
“그래, 그동안 쩌그 박 팀장 말마따나 대충 해 볼 것은 정했응게 한번 잘 혀봅시다. 나도 합 좀 잘 맞춰보고 저녁밥이나 맛나게 먹으려니께.”
때맞춰 박건혁 팀장이 음료가 든 번들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
“글은 무엇을 쓰는가에 따라 마음가짐도 달라지고 들어가는 힘도, 잇고 끊는 마무리도 달라야 헌다, 요것이제. 자아, 잘 보소, 나가 요 갱아지를 겁나게 사랑헌다! 이성으로서 아주 밤마다 몸부림을 쳐불 정도로 좋아 죽것다!”
‘꼭 예를 들어도…’
“그런데 사랑을 생각혀보시오. 얼마나 여러 가지가 있능가! 독헌 것은 쏘오련의 안드레이 씨바노므스키가 물처럼 빨던 보드카마냥 독허고, 달콤헌 것은 최고급 생초코를 떠먹을 듯이 달콤허제. 향기는 또 어뗘? 돔 빼리뇽 샴페인의 향기처럼 환장허는 것이 사랑 아니것소?”
와아. 이 사람 뭐지? 완전 귀생이 뺨치는데?
조은이도, 나도, 박건혁 팀장도 완전히 홀리듯이 노인의 말에 빠져들었다.
“그럼 글자도 그렇게 써야 헌다, 이 말이제. 이번에 보내준 그 주제와 그 문구라면 어떻게 하것소? 한 획을 내리그을 때는 나무 밑동을 단번에 쪼갤 정도로 내리긋고! 옆으로 그을 때는 적군의 허리를 두 동강 낼 정도로 강하게 긋고! 아래에서 위로 쳐 올릴 때는 용이 승천하듯 올려야 그 글씨가 산다! 알것냐, 똥개야?”
“아, 아왈왈!”
나는 완벽하게 압도당한 채 노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머릿속으로 내가 써야 할 글자를 다시 한 번 떠올려보았다.
“아따, 요 갱아지 눈빛 좀 보소. 나가 허는 말을 찰떡처럼 알아듣는 것 같아부리오.”
“그쵸? 우리 해피가 다른 개들보다 확실히 뭐가 다르긴 해요.”
“영물이여, 영물. 여하간 나가 말한 듯이 똥을 싸면 그것은 똥이 아니여. 모습과 냄새, 색깔은 똥일지라도 그것에 힘과 기백, 신념이 들어가면 그것은 세상을 바꿀 금이라, 요것이제.”
노인은 가방을 열어 커다란 화선지를 꺼내어 펼쳤다. 그리고 붓과 벼루를 꺼내고 연적을 옆에 놓았다.
“아, 먹부터 가시려고요?”
“그냥 데코여. 먹은 비싼 것 사서 쓰고 있응게 염려 마소.”
플라스틱병을 꺼내 벼루에 담은 후 노인은 큰 붓을 들었다. 그리고 거대한 기합을 외쳤다.
“저스트 두 잇!”
일필휘지로 단숨에 써 내려간 그 글씨에 우리 모두 심장이 터질 듯한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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