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5
15. 나는 하나의 혁명이다(2)
‘못생김과 추함에 있어서 이것은 하나의 혁명이야. 레볼루션.’
이 말을 들은 나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분명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굴 지칭하는지야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나를 뽑은 이유였다는 것이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원래 잡힌, 즉 완성된 콘티를 모두 뒤집었다니, 그것도 나 때문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쪽, 이쪽 대기 공간으로 오세요.”
메인 감독이 조은이와 나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곧이어 스태프 한 명이 종이를 들고 다가왔다.
“확인 좀 할게요. 슈가, 마루, 밀크, 망고, 코코, 샤넬, 루이, 두찌… 다 체크 되었고 그럼 이 강아지가 해피인가요?”
“아, 네.”
조은이가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리곤 조심스레 박스를 내려놓았다.
메인 감독이 그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해피야, 이리 나오겠니? 나와서 네 존재감을 우리에게 보여주련.”
이 정도의 지극정성에, 다른 견주들이 도대체 어느 정도의 강아지냐는 듯 모두 박스를 주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두려워서 더 박스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갔다.
“괜찮단다, 해피야. 너는 내 반려동물 촬영 이력에 있어서 감히 상상도 못 할,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을 주었단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나는 조심스레 얼굴을 내밀었다.
그것만으로도 주변의 공기가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몇몇은 웃음을 참지 못해 입을 가리다 뛰쳐나갔고 내 얼룩덜룩한 귀 색깔을 본 다른 강아지들은 맹렬하게 짖기 시작했다. 여긴 네가 올 곳이 아니라는 듯, 나는 너와 어울리지 않겠다는 듯.
나는 부들부들 떨며 겁먹은 눈으로 조은이와 메인 감독을 올려다보았다.
메인 감독은 마치 한 농구 만화의 인자한 감독과도 같은 눈으로 날 지그시 바라보았다.
“괜찮아. 이리 나오렴. 이리 나와서 내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렴.”
“해, 해피야. 어서 나와.”
벌벌 떠는 나를 보다 못해 조은이까지 어서 나오라고 채근했다.
내 주인을 난처하게 만들 수 없던 나는 눈 딱 감고 박스에서 기어 나와 감독 앞에 벌벌 떨며 간신히 섰다. 개다리춤을 추듯 힘없이 달달 떨리는 다리 사이로, 너무 긴장한 탓인지 오줌을 찍 싸버렸다.
그 오줌이 신호탄이었을까?
“푸하하하하, 와! 진짜 쩐다!”
“뭐야, 오늘 진지하게 광고 촬영하는 거 맞아? 장난 아니다!”
“아, 어떡해. 안 웃으려 하는데 너무 웃겨!”
사람들이 포복절도하는 가운데, 조은이의 얼굴이 새빨개지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들의 개처럼 잔뜩 멋을 내고 온 이들이 나를 보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더러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기까지 했다.
감독은 잔뜩 주눅이 든 나를 조심히 들곤 안심시키려는 듯 가만히 눈을 마주쳤다.
“놀라워. 정말 놀라워.”
“그, 그런가요?”
“어떻게 이력서의 그 역사적인 프로필 사진에서 더 못생겨질 수가 있지? 더 추해질 수가 있지?”
“네, 네에?”
“끼이이잉…”
감독은 황홀한 눈으로 내 겁먹은 얼굴과 주둥이, 환상적으로 요란한 귀와 분홍소세지 같은 몸, 대충 잘라 입힌 옷과 꼬리, 마지막으로 화룡점정을 찍을 다리 사이의 시커먼 고환까지 훑어보았다.
“퍼펙트. 완벽에 완벽을 넘을 퍼펙트. 이대로, 그 어떤 미용도 하지 마시고 잘 데리고 있어 주세요. 박 기사? 견주분들 모아놓고 오늘 촬영 컨셉을 설명해 드려.”
감독은 연신 두 팔을 하늘로 올리며 ‘원더풀, 퍼펙트’를 중얼거리며 돌아갔다. 이윽고 웃음을 가득 참은 한 카메라맨이 다가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자아, 원래 컨셉은 즐겁게 강아지들이 뛰어 놀고 견주분들은 데이트를 하거나 바비큐 파티를 하는 야외 씬, 그리고 카페에서 강아지를 안고 커피를 마시거나 독서를 하는 실내 씬이 있었습니다만 좀 바뀌었어요.”
“네.”
“기본 컨셉은 그대로 가지만, 여기에서 주인공이 되는 강아지는 해피입니다.”
모두의 표정이 뜨악하게 변했다. 심지어 조은이마저도.
수많은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나는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박 기사를 쳐다보았다. 내가 주인공이라는 말에 조금은 당당해졌다.
“일단 모두가 즐겁게 파티를 하고 웃고 떠드는 가운데, 이 철망 밖에서 엄청 꼬질꼬질하고 힘든 상태의 해피가 안의 행복한 모습을 쳐다보는 겁니다. 그리고 잔잔하게 음악이 흐르고 강아지의 나레이션이 지나가는 거죠. 나도 저 안에 함께이고 싶어, 나도 저 안에서 행복하게 뛰어 놀고 싶어…”
“아아~!”
그제야 모두 이 컨셉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단번에 내가 주인공이라는 것을 납득할 만한 설명이었다.
‘결국 내 외모가 어쨌거나 한몫한 것이구만.’
그때 아까 말티즈의 털을 드라이기와 빗으로 열심히 다듬던 한 새침한 여자가 손을 들었다.
“아니, 그건 우리를 그저 병풍으로 세우는 거잖아요? 지금 우리 샤넬이가 이렇게 예쁘고 완벽하게 준비를 하고 왔는데! 어떻게 저런 후줄그레한 외모의 개를 주인공으로 쓴다는 거죠?”
그 말에 카메라 기기를 세팅하던 메인 감독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여자를 향해 차갑게 내뱉었다.
“나는 이쪽 촬영만 30년을 넘게 해 왔어요. 샤넬이? 그 정도의 개는 수천 마리를 찍어왔지. 지금 당장 그와 똑같은 개를 바로 섭외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 해피라는 개는 독보적입니다. 30년 동안 저만한 아우라를 본 적이 없어요!”
“그, 그래도…”
“물론 견종이 같기 때문에 실내 컷에서는 둘이 함께 등장할 겁니다. 샤넬은 이 해피의 견주인, 이름이 뭐죠?”
“아, 안조은입니다!”
“조은 씨가 품에 안은 채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볼 겁니다. 그리고 그 창문 밖으로 지금 항의를 하신 견주님이 우리 스태프의 점퍼를 빌려 입고 해피를 안은 채 안을 쳐다볼 겁니다. ‘나도 들어가고 싶다’, 하는 표정으로. 방금 그쪽을 보니 떠오른 컨셉이죠.”
‘저, 저자는 천재인가?’
즉석으로 만들어낸 것치고는 너무나 완벽한 콘티이자 무례에 대한 복수였다. 여자가 어버버하더니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잠시의 휴식을 가진 후 촬영이 시작되었다.
***
맛있는 바비큐 냄새가 펜션의 뜰을 가득 채웠다. 프리스비를 날리는 청년과 공을 물고 달리는 개, 손에 칵테일이나 주스를 들고 방금 구운 고기를 집게로 집어 서로 먹여주는 모델들.
그 사이에서 조은이도 한 남자가 집어 준 고기를 새빨개진 얼굴로 어색하게 받아먹었다.
– 부들부들
나는 정말로 화가 났다.
저 안의 과일들, 고기들, 그리고 가득 쌓인 간식과 사료. 적어도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말표 사료보다야 훨씬 맛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저 뺀질뺀질하게 생긴 놈은 무언가 흑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조은이와의 투샷을 연출하고 있었다.
물론 둘이 너무나 잘 어울리긴 했다. 여자 출연자들 사이에서 조은이는 그야말로 도드라질 정도로 예쁘고 귀여웠고, 저 흉남 아니 훈남 비스무레한 것은 실제 모델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확실히 멋졌다.
“끼잉, 끼이잉, 낑…”
나는 너무나 애가 탔다. 조은이가 날 바라봤으면! 이렇게 굶고 있는, 못생기고 추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내 상처를 돌봐 주었으면.
나는 철망에 발을 올리고 낑낑대다 구슬프게 짖었다.
“왈! 왈! 왈!”
그 순간,
“컷! 와아. 이거 두 번 안 찍어도 되겠는데? 2번 카메라, 눈 클로즈업 제대로 했어?”
‘뭐, 뭐야! 언제 찍고 있었어?’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감독의 말을 들은 한 카메라맨이 울먹울먹하며 수풀 사이에서 일어섰다.
“저, 울 뻔했습니다. 정말 저렇게 처절하게 슬픈 눈, 원통한 눈은 처음이었어요. 그냥 앵글을 꽉 채우는 감정의 파도, 아 정말 저런 연기가 가능하다니.”
“이 강아지, 뭔가 있어. 정말 제대로 나올 것 같아.”
나는 민망해서 고개를 숙이곤 ‘끄응’ 하며 뒤돌아섰다. 그것까지 카메라에 담은 메인 감독이 황홀한 표정으로 외쳤다.
“야외 해피 씬 끝. 원테이크로 끝냈다. 세상에, 이런 촬영이 있나? 그것도 동물을 데리고?”
“진짜 대박입니다!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들 화기애애한 가운데, 한 스태프가 나를 조심히 안아 박스로 데려갔다. 그리곤 여태 먹어본 적이 없는 고급스러운 과자들을 내어놓았다.
“자아, 이 애견용 쿠키랑 말린 과일칩 먹고 있어.”
“!!!”
나는 느긋하게 그것들을 먹으며 펜션에서 파티를 벌이고 있는 조은이와 어중이떠중이들을 바라보았다.
“왈!”
마침 중요 씬이 끝났는지, 약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조은이가 주위를 휘휘 둘러보더니 고기 몇 점과 소시지 구운 것을 접시에 담아 다가왔다.
“해피야, 해피야! 잘 찍었어?”
“왈!”
“얼른 이것 먹어. 몰래 먹어!”
나는 조은이가 가져다준 목살을 허겁지겁 먹었다. 족발 뼈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참숯 향 가득한 이 목살 바비큐! 게다가 얇은 피에 싸여 내 이에 가벼운 반탄력을 보여주다 결국 푸욱 씹혀지고 마는 육향 가득한 소시지!
‘아, 이것이다. 내겐 30만 원보다 당장 이것이 최고의 보답이다!’
나는 흐뭇한 눈으로 고기를 씹으며 조은이를 바라보았다. 조은이도 너무나 행복한 눈으로 날 쳐다보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별꼴이네, 정말.”
“네?”
어느덧 그 뒤로 다가온 아까의 여자와 털이 출렁이는 말티즈가 조은이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조은이가 뒤로 물러섰다.
“왜, 왜요?”
“별 그지같은 개를 데리고 와서 콘티나 망쳐놓고. 우리 샤넬이가 애견 포토 콘테스트 3회 연속 수상한 개거든? 이번에도 원샷 받을 생각으로 왔는데, 이따위 개의 병풍 노릇이나 하고 앉았네. 하아, 짜증 나.”
그때 조은이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저기요, 우리 해피가 어때서요?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제겐 가장 예쁜 강아지예요!”
“왈!”
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 조은이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뭐래, 얘가 예쁜 강아지라고?”
“누가 뭐래도, 우리 해피는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예요! 전에도 그래왔고 지금도, 앞으로도!”
조은이가 소리치자 순식간에 촬영장의 모두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것에 부담을 느낀 여자가 머뭇거리더니 뒤돌아섰다.
“그래, 계속 소중하세요. 그 거지같은 박스 집처럼.”
거지같은.
순간, 나는 내 머릿속에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번개처럼 그 여자와 하얀 털의 말티즈에게 돌진한 나는 박스를 딛고 공중으로 뛰어올라 고운 털의 샤넬에게 뉘런 오줌을 찍! 흩뿌린 다음, 그 여자의 다리를 잡고 흉측하게 마운팅을 하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이 미친 개가!”
여자는 혼비백산해서 도망갔다. 그리고 그 뒤로, 뉘런 오줌에 흠뻑 젖은 샤넬이 낑낑거리며 뒤쫓아 뛰어갔다.
“왈! 왈! 왈! 왈!”
나는 분노에 차 울부짖었다.
‘다시는 남구 용숭동 반지하의 안조은과 안해피를 무시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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