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54
155. 가자, 본선으로(6)
조은이가 날 안은 채 덜덜 떨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확실히 예선과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 훨씬 큰 무대, 그리고 나의 부상. 준비한 것들은 매우 여러 가지.
“아, 안녕하세요. 참가자 29번! 안조은과 안해피입니다!”
우리를 본 의사의 얼굴이 굳었다. 분명 병원을 가는 게 좋을 것이라 권고했는데 그것을 어긴 채 참가를 강행한 나와 조은이가 좋아 보일 리 없었다.
이미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점수를 잃고 있었다.
“아아, 해피네요! 우리 해피가 태극기가 되어 올라왔네요!”
우릴 보며 반가워하던 신도엽 MC의 눈이 붕대를 감은 내 다리로 향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것이죠?”
심사위원들이 웅성였다. 의사가 우리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아, 해피가 대기 중에 다른 개에게 물리는 일이 있었어요.”
“크게 다친 것 같은데, 지금 대회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 맞나요?”
강형우 훈련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왈!’하고 외친 다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귀도 흔들었다. 어디에선가 대한민국 만세의 함성이 터져 나오는 듯, 묘한 뽕이 차오르기를 기원하며 열심히 나는 괜찮음을 어필했다.
“잠시만요, 일단 우리가 내부적으로 이야기를 좀 하고요.”
신도엽 MC가 우리를 기다리게 한 후 의사 앞으로 의자를 당겼다. 다섯 명의 심사위원들이 저마다 의견을 건넸다. 통역사가 정신없이 한국어를 영어로, 영어를 한국어로 옮겼다. 그 사이에서 잠깐 본부장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의 말 가운데 ‘global audience (글로벌 시청자)’와 ‘celebrity (유명 인사)’, ‘publicity and advertisement (홍보와 광고)’ 등의 단어가 흘러나왔다.
무려 5분 가까이 토의가 이어졌다. 참가자들과 관객들이 술렁이는 가운데, 결국 결론이 내려졌다. 본부장이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댔다.
“By the authority of the head of the Animals Got Talent Association, the participation of No. 29 Ahn Joeun and Happy is acknowledged. However, please pay attention to the dog’s injury as much as possible, and if it seems that the leg will be overworked, I will stop it with my authority. Do you agree? (Animals Got Talent 협회 본부장의 직권으로, 29번 참가자 안조은과 해피의 참가를 인정합니다. 단, 최대한 부상에 신경 써 주시고 만약에 다리에 무리가 갈 것 같다 싶으면 제 직권으로 멈추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해당 내용을 통역사가 더듬거리며 설명했다.
조은이가 나를 쳐다봤다. 이젠 진짜 되돌아갈 수 없는데 괜찮겠냐는 마지막 물음.
“왈!”
나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은이의 목구멍에서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네! 동의합니다!”
***
무대가 점점 어두워졌다. 그리고 우리가 준비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저 멀리, 꿀잼의 카메라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걸덕이가 무대를 설명하는 듯 무어라 말하고 있었고, 박건혁 팀장이 하늘 높이 손을 들어 엄지를 올렸다.
– 둥, 두둥, 두둥, 두두두!
– 채챙, 챙, 챙, 챙, 채, 채챙!
북과 꽹과리 소리, 그리고 점점 고조되는 장구 소리.
무대 뒤에서 태권도복을 입은 시범단이 나와 도열했다. 그리고 앞선 이가 인사를 한 후 ‘절망’이라 쓰여있는 송판을 들었다. 그 뒤로 다른 두 명이 ‘침체’, ‘위기’를 들었다.
“하앗!”
힘찬 기합과 함께, 한 사내가 다가가 돌려차기와 회축으로 송판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다 같이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 내가 위로 올라가도록 비스듬히 허리를 들었다.
마지막에 선 이가 작은 박을 들었다.
‘가자, 할 수 있다.’
나는 힘차게 절뚝이며 달려갔다. 발을 디딜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증에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아픈 티를 내서는 안 되었다. 그러면 당장 저 본부장은 이 퍼포먼스를 중단시킬 것이었다.
게다가 어디에선가 여기를 보고 있을 검은 그것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내 의지는 이렇게 강하다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나는 반드시 내가 원하는 것을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얻고 싶다는 것을!
“아왈왈왈왈!”
나는 기합을 넣으며 달려가 엎드린 이들의 등을 밟고 뛰어올랐다. 그리곤 공중에서 태극 귀와 꼬리를 펄럭이며 이마로 박을 깨트렸다.
– 쾅! 촤아아아아!
박이 쪼개짐과 동시에 안에 든 꽃가루가 휘날리며 ‘Animals Got Talent – Korea, 우승!’이라는 작은 현수막이 내려왔다. 맞은편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은이가 떨어지는 나를 받아들었다.
“오오오오!”
이 완벽한 뽕!
서둘러 현수막과 송판 등을 치우고 태권도 시범단이 사라졌다. 다시 어둑해진 무대.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민족의 노래, 아리랑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뒤의 대형 스크린으로 우리나라의 역사가 흘러갔다. 고대, 중세, 근대, 현대를 아우르는 가운데 여기까지 발전한 대한민국과 그 사이 가려져 있는 사회의 어두움이 지나갔다.
고령화, 경제침체, 안보 문제, 세대 갈등, 그리고 그 사이 울부짖고 쓰러져가는 국민들…
“이리 오너라! 민족의 얼이여!”
뒤에서 우렁차게 외치며 등장한 망언 선생이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근엄하게 들어왔다. 그리곤 준비한 비단 화선지를 펼친 후 커다란 붓을 잡았다.
“오늘 날이 좋으니, 내 붓 한 자루에 모든 것을 실어!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는 이들이 부디 힘내도록! 한민족이 만세 만세 천만세 뻗어나갈 글을 쓸 것이여!”
그리고 일필휘지로 비단 화선지에 [일어나라, 대한민국! 뻗어나가라,] 까지를 썼다.
내가 그 앞으로 뛰어가 엉거주춤 자리를 잡고 모든 힘을 다해 똥꼬를 열었다.
– 그럼 글자도 그렇게 써야 헌다, 이 말이제. 이번에 보내준 그 주제와 그 문구라면 어떻게 하것소? 한 획을 내리그을 때는 나무 밑동을 단번에 쪼갤 정도로 내리긋고! 옆으로 그을 때는 적군의 허리를 두 동강 낼 정도로 강하게 긋고! 아래에서 위로 쳐 올릴 때는 용이 승천하듯 올려야 그 글씨가 산다! 알것냐, 똥개야?
“아왈왈왈왈!”
모두 힘내십시오.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결국 일어난 우리는 여기까지 달려와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진국의 위상에 올랐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것들, 그것들을 인정하되 밟고 일어서십시오! 똥개가 되어 3년에 30억을 벌어야 하는 저도 이렇게 일어섭니다! 그러니 일어서십시오!
“아왈왈왈왈! 아오오오오오오~!”
내리그을 때는 도끼처럼 쪼개고! 옆으로 그을 때는 칼로 양단하듯이 긋는다! 아래에서 위로 올릴 때는 동해바다의 용왕이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듯이 올린다!
보아라, 이게 K-개똥이다!
[한 민 족!]“와아아아아아!!!”
엄청난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심사위원들이 모두 기립해서 박수를 치는 가운데, 뒤에서 배경음악으로 ‘상록수’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느새 무대 앞으로 다시 나온 태권도 시범단과 망언 선생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합창을 했다.
– 우리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아왈왈왈왈, 아오오오오~~~!”
나는 태극 귀와 꼬리를 흔들며 합창에 맞춰 하울링으로 화음을 더했다.
모두 감동을 받아 오열하는 가운데, 무대의 조명이 비단 화선지를 비추었다. 대형 스크린으로 망언 선생과 내가 쓴 명필이 가득 채워졌다.
[일어나라, 대한민국! 뻗어나가라, 한민족!]기립박수가 이어지는 가운데, 본부장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일어서서 통역사에게 무언가 물었다. 분명 우리가 함께 써, 싸 내려간 글의 뜻과 이 전체 퍼포먼스의 의미를 묻는 듯했다.
눈물범벅이 된 통역사의 설명을 들은 본부장이 크게 박수를 치며 원더풀을 연이어 외쳤다.
이 순간, 모든 것이 정해져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늠름하게 가슴팍을 펴고 선 나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한민족을 상징하는 하나의 시대적 아이콘이었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만은 그랬다.
진돗개나 삽살개의 피가 1%도 섞이지 않았지만, 여하간 나는 대한민국의 국견(國犬)이었다.
그런 나를 껴안으며 조은이가 펑펑 울었다.
대한민국, 만세!
***
어쩌면, 이후의 참가자들에게 이 완벽한 무대는 하나의 저주나 다름없었을지도 모른다. 객관적으로 하나하나 놓고 본다면 다들 너무나 뛰어난 재주들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여줄 것이냐’의 기획에 있어 감히 비교 대상에 놓기가 어려웠다.
“아아, 이제 우승자를 발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승자 호명과 동시에 전체 참가자의 점수가 발표됩니다. 그럼 발표에 앞서서 제이슨 피셔 본부장님의 평가와 인사가 있겠습니다.”
본부장이 앞으로 나와 강단에 섰다. 그 뒤로 본선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트로피와 상금 증서, 그리고 꽃다발을 든 스태프가 섰다.
본부장이 입을 열자 옆의 통역사가 그 말을 받아 전했다.
“먼저 이 자리에서 자신들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주신 참가자분들과 동물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전한다고 하십니다. 아울러 정말 다양한 동물들의 다양한 장기를 볼 수 있어 긴 시간 날아오면서 쌓인 여독이 단번에 사라졌다고 하네요.”
참가자들 사이에서 잔잔한 웃음이 퍼져나갔다.
“전체적인 퍼포먼스는 여태 둘러본 여러 나라의 수준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다만, 어느 나라를 가도 우승자는 정말로 ‘이 사람이 세계 결선에서 우승할 것이다’하고 생각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고 해요. 그 사람들은 무엇보다 자신이 가진 것을 어떻게 포장하고 어떻게 덧입혀서 잘 풀어낼 것인가, 하는 것을 이해하는 이들이었다고 합니다.”
내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왔다. 조은이가 나를 꼭 껴안았다.
본부장의 표정이 변했다. 이제 중요한 발표를 할 차례였다.
“Ladies and gentlemen. Now, we announce the final winners of the Animals Got Talent – Korea and the finalists of the world competition coming July 11th in the USA. Participation number 29, Ahn Joeun and Ahn Happy! (신사, 숙녀 여러분. 이제 Animals Got Talent – Korea의 최종 우승자이자 오는 7월 11일, 미국에서 열릴 세계 대회의 진출자를 발표합니다. 참가번호 29번, 안조은과 안해피!)”
관중석과 참가자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위에 매달린 풍선들이 동시에 터지며 꽃가루가 휘날렸다.
기뻐서 날뛰는 걸덕이와 울며 나를 껴안은 조은이를 찍는 여러 대의 카메라, 박건혁 팀장이 잔뜩 흥분한 채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 모습이 뒤엉켰다.
‘결국 해냈다, 해냈어. 여기까지 왔어!’
나는 빛태창을 쳐다보았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1억 5,366만 1,550원. 스튜디오 꿀잼 스톡옵션 26,656주]이제 저기에 1억이 곧 더해질 것이었다. 물론 세금을 떼어야겠지만 말이다.
“자아, 안조은 님과 해피는 어서 위로 올라오세요!”
조은이는 엉엉 울면서 나를 안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본부장이 활짝 웃으며 가볍게 조은이와 나를 껴안았다.
“Congratulations. It’s really amazing, you know? As we were debating whether or not to include you in this competition, the live chat on our channel was buzzing with everyone shouting, that they want to see Ahn Joeun and Happy. (축하드립니다. 정말로 놀라운 것 알아요? 우리가 당신을 참가시킬지 말지 토의를 하고 있었을 때, 생방송으로 진행되던 우리 채널의 채팅창이 난리가 났어요. 모두가 외치더군요, 안조은과 해피를 보고 싶다고.)”
“Thank you, I hoped to show you the performance I prepared. But most of all, it was my dog, Happy, who was willing to be in this competition. (감사합니다, 저 역시도 꼭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대회에 나서려고 했던 것은 바로 해피였어요.)”
트로피와 상장, 상금 증서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작은 꽃다발이 내 목에, 큰 꽃다발이 조은이의 목에 걸렸다.
모두가 환호하는 가운데, 저 멀리서 검은 그것도 나를 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정말 즐겁다는 듯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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