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74
175. 미국 결선!(1)
수하물 사이, 즉 캐리어가 쌓인 한쪽에 끼인 채 어둠 속에서 갈 것이라는 내 예상은 깨졌다. 별도의 공간이 있었고 빛도 있었다. 켄넬에 부착된 물통과 안에 넣어진 사료도 충분했다.
물론 거의 11시간 이상을 이렇게 켄넬에 갇힌 채 있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 곤욕스러웠지만 사실 긴장감과 설렘 때문에 지루함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첫 비행기.
창피하지만 태어나서 처음 타 본 비행기.
물론 내가 상상했던 것은 이어폰을 낀 채 구름이 수평선처럼 깔린 창밖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다가 스튜어디스가 다가와 맛있기 그지없는 (무조건 맛있으리라!) 기내식을 내려놓는 모습이었다.
‘Excuse me.’ 하며 음식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면 나는 일부러 모르는 척 눈을 감다가 ‘Oh! Tank you.’하고 받는 것이다. 그리고 용기를 열면 육즙이 살아있는 스테이크와 아래에 깔린 구운 야채, 아 참! 와인도 잊을 수 없지. 루이 27세 와인 같은 것.
Tank you.
Tank you.
Tank you…
하지만 역시 희망과 현실은 달랐다. 뒤쪽이어서 그런지 소음도 있었고 간혹 흔들리는 느낌도 강하게 났다. 기내식은커녕 여기서도 조은이가 맡기고 간 말표 개사료였다.
‘뭐, 괜찮지. 이렇게 미국으로 가는 거야. 미국!’
***
정말로 놀랐다. 한참 자다가 깨었을 때, 기내는 꽤 소란스러웠고 어디에선가 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싶더니 덩치가 커다란 흑인 직원이 들어와 내 켄넬을 들었다. 그리고 난 캐리어 같은 기내 짐들을 적재하는 전기차가 아닌, 어디 골프장에서나 볼 법한 차량에 실려 검역소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면봉 똥꼬 찌르기부터 눈 검사, 피 검사, 그리고 조은이가 보냈던 서류 검토 등을 마친 후 나는 다시 켄넬에 실려 문 앞에 놓였다.
모두 외국인들뿐, 그리고 어디에서나 영어만 들렸다.
‘이세계에 온다는 느낌이 이것인가?’
“Hey, Happy. Good Boy!”
나와 눈이 마주친 한 여성 직원이 눈을 찡긋하더니 책상에서 간식을 하나 꺼내서 내게 주었다.
“Wow, what a weird color for your ears and tail. (와우, 너 귀와 꼬리 색깔이 정말 이상하구나.)”
“와, 왈? 와아아앗?”
“Did you just say ‘What’? Hahahaha. (너 방금 ‘What’이라고 한 거야? 하하하하.)”
뭔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으나 그래도 표정을 보니 매우 호의적이었다. 나는 열심히 간식을 씹으며 내게 보인 호의에 고마움을 표했다. 뉘런 이를 드러내며!
“뀽♥”
“Oh my god, that’s a bit scary. (오 마이 갓, 조금 무서운데?)”
직원은 몸서리를 치며 내게서 떨어졌다. 역시 한국에서만 통하는 애교였나? 웃음은 만국공통어라 그랬는데…
그때, 문이 열리고 조은이가 들어왔다.
“해피야!”
“아왈왈왈왈! 아왈왈왈왈!”
한나절 좀 넘게 못 봤지만, 이렇게 다시 보니 너무나 반가운 조은이. 조은이가 직원을 향해 무어라 유창한 영어를 하며 날 가리켰다. ‘Of course!’라는 대답(오오오, 찬양하라 오브코우얼스!)에 조은이는 켄넬을 꺼내 나를 꼬옥 껴안았다.
“심심했지! 밥은 먹었어? 물은! 잠은 제대로 잤어?”
“헥! 헥! 헥! 헥! 왈! 와왈!”
해후는 잠시뿐, 나는 다시 켄넬에 들어간 채 조은이의 손에 들려 검역소 바깥으로 나왔다. 이미 짐들을 가득 카트에 실은 박건혁 팀장과 일행들이 날 보며 미소를 지었다. 모두 비행기에서 잠을 설친 듯 눈이 조금은 퀭해 있었다.
비교적 적은 짐이 쌓인 조은이의 카트에 켄넬이 실렸다. 그리고 우리가 입국장을 나설 때,
“와, 왈!”
“세상에!”
“와, 이건 생각도 못 했네요.”
“아니, 아까. 그러니까 어제 공항에서 방송할 때 외국인 시청자들이 있기는 했는데요…”
걸덕이가 말끝을 흐렸다.
약 2, 30여 명의 외국인들이 입국장 한가운데에서 내가 인쇄된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있었다. 심지어 초코똥 보급형을 들고 있는 이도 있었다.
“진짜 대단해. 제가 방송했을 때에도 공항에 마중 나온다는 분들이 계시긴 했거든요. 그냥 인사라고만 생각했어요.”
조은이가 황홀한 눈으로 개똥팸 미국 지부의 화력을 쳐다보고 있었다.
의외로 나이가 지긋한 이부터 남녀노소 가리지 않았다. 인종도 다양했다. 조은이가 켄넬에서 나를 꺼내 번쩍 들자 모여든 이들로부터 환호가 터져 나왔다. 태극귀로 염색하기 전의 내 귀 색깔처럼 형광 핑크로 머리를 염색한 젊은 여자가 내가 인쇄된 깃발을 흔들었다.
“느낌 진짜 좋은데요?”
박건혁 팀장이 조은이를 향해 웃었다. 조은이가 씩씩하게 나를 안고 앞으로 나아가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나도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왈왈 짖었다.
“Ahn Joeun, I’m your fan! Can you sign my t-shirt? (안조은 님, 팬이에요! 내 티셔츠에 사인해 줄 수 있을까요?)”
“Here! Please sign this doll! A friend of mine studying in Korea sent it to me.
(여기! 이 인형에 사인해 주세요! 한국에 유학 간 친구를 통해 받았어요.)”
“I want to take a picture with you. Please look this way! (사진을 같이 찍고 싶어요. 이쪽을 보세요!)”
저마다 왁자지껄하게 조은이와 내 쪽을 향해 무엇인가를 내밀고 요청했다. 조은이는 그런 그들에게 일일이 모두 사인을 해 주고 사진도 찍어줬다. 어느덧 조은이의 팔에 선물이 가득 담겼다.
팬들이 법석을 떠니 자연스레 주변의 시선도 이쪽으로 모두 쏠렸다. 누군가가 ‘도대체 누가 온 것이냐’는 뉘앙스로 중얼거렸다.
“Ahn Joeun and Ahn Happy! The Korean representative for the final stage of Animals Got Talent! They are great internet stars! (안조은과 안해피! Animals Got Talent의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하는 한국 대표라고요! 대단한 인터넷 스타!)”
한 유쾌한 청년이 내 사진을 흔들며 외쳤다. ‘Animals Got Talent’라는 단어에 모두가 놀라며 우리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왈! 아왈왈왈왈! 왈!”
무언가, 정말로 큰일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예약해 놓은 렌터카를 공항에서 픽업한 후, 우리는 주최 측이 제공한 숙소로 향했다. 리조트의 한 건물을 모두 행사의 참가자들로 예약한 듯, 각국의 언어와 국기가 걸린 커다란 건물이 우리를 맞이했다.
정문에서 주최 측이 미리 보낸 참가자 및 스태프 인적사항을 대조하고 초대장을 확인한 경비가 우리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바깥에 나와 있던 이들이 짐을 내리는 우리를 보며 환호를 질렀다.
“아, 그리고 대형 동물이나 소음이나 낯선 사람들이 많은 곳에 민감한 동물은 별도의 장소에서 케어할 수 있대요. 해피야, 어떻게 할까?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좋겠어?”
“크르르르르…”
“그럼 같이 있을까?”
“왈! 왈!”
당연하지, 뭐하러 말도 안 통하는, 뭐 개가 되어서는 원래 안 통했지만, 여하간 그런 곳에서 혼자 쭈그리고 있을 필요가 없지! 움직여도 같이 움직이는 것이 좋았다.
배정된 3층의 숙소는 꽤 좋았다. 세 개의 방과 두 개의 화장실, 거실이 있었으며 앞으로는 너른 공원이 펼쳐졌다. 땅이 워낙 넓어서인지 공원의 넓이 자체가 아예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나는 조은이가 재빨리 마련해 준 배변패드에 똥을 싼 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오오! 해피 설사 안 한다! 스트레스성 장염이 사라진 것 같아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역시 도화선녀 아주머니의 기도 실린 소세지가 약이 된 거야.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지금쯤이면 그곳은 새벽 시간일 테고, 노파와 도화선녀는 나와 조은이를 생각하다 잠들었을 것이 뻔했다.
“일단 전화는 내일 하기로 하고, 짐부터 정리해야지.”
모두가 몇 번을 오르내리며 짐을 들고 왔다. 민관욱 감독이 커다란 박스에서 각종 장비와 조립할 수 있도록 나누어진 탱크 몸체들을 꺼내, 하나하나 살펴보며 상태를 체크했다.
“이따가 저녁때 도착 알림 및 응원 부탁 방송을 하기로 하고, 일단 조은 님은 피곤하면 방에서 쉬셔도 됩니다.”
“음… 해피랑 잠시 나갔다 와 볼까 해요. 아까 보니 바깥 1층 로비와 정원에 참가자들이 잔뜩 나와 있더라고요.”
“그래도 좋죠. 다녀오시되 우리가 무엇을 준비했는지는 숨기셔야 합니다.”
“염려 마세요!”
조은이가 날 안고 복도로 나왔다. 1층으로 내려가던 중 지나친 몇몇과 간단히 손인사를 한 후 로비에 도착하자, 벌써 한 쪽에선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 온 듯한 이들이 타악기를 두드리며 그들만의 언어로 신나게 노래를 하고 있었다. 어깨에 올라간 커다란 – 그렇게 커다란 앵무새는 처음 보았다 – 앵무새가 음악에 맞춰 몸을 들썩이며 춤을 추었다.
“어? 어디서 많이 봤는데… 아! 가나다. 가나! 와아, 옷도 앵무새도 진짜 국기랑 똑같은 색깔이네. 신기하다.”
조은이의 목소리와 ‘가나’라는 단어를 들은 이들이 ‘히렐렐렐레!’하며 추임새를 넣곤 웃어 보였다.
정원으로 나가자 비교적 소형 동물, 그중에서도 사람들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동물들을 데리고 나온 이들이 보였다. 한쪽에서는 몸을 풀려는 듯 가볍게 프리스비를 던지고 있었고, 가운데 위치한 수영장에서는 몇몇이 시원하게 수영을 하고 있었다.
“와아, 시원하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수영복 가져올걸. 뭐 원래 없었으니 사 올 걸이 맞으려나.”
“왈! 아왈왈!”
나는 신나서 마구 짖었다.
그때 우리를, 정확히는 요란한 귀와 꼬리를 가진 나를 본 몇몇이 휘파람을 불었다. 오가는 말들 속에 ‘Happy’와 ‘Korean’이 들린 것을 봐선 우리가 한국의 대표라는 걸 알고 있는 듯했다. 조은이가 그들과 밝게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곤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아왈왈! 왈왈왈!”
나는 신나게 하늘을 향해 짖었다.
한참을 그들과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저쪽에서 한 백인 청년이 다가왔다. 방금 전 도착한 듯, 그는 조은이처럼 사방을 신기한 눈으로 둘러보며 모인 이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Hey nice friend, where are you from? (이봐 멋진 친구야. 어디서 왔어?)”
“Sogndal, Norway. (송달, 노르웨이.)”
“Wow, where’s the animal friend you brought? (와우, 대회에 나갈 네 친구는 어디에 놔두고?)”
“He’s sitting quietly in the cage. He must be feeling very tired. (얌전히 케이지에 있지. 아주 피곤할 거야.)”
“What kind of animal is he? (어떤 동물인데?)”
“The crow. His name is Odin. (까마귀. 이름은 Odin이지.)”
사람들과 주먹을 마주치며 인사를 하던 노르웨이 청년이 나와 조은이를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Oh! Maybe you’re from Japan? Wasn’t the animal from there a monkey? (오! 혹시 일본? 원숭이가 아니었나?)”
“No. I am Ahn Joeun from Korea. This puppy is Happy. Nice to meet you. (아니야. 난 한국 대표로 온 안조은이야. 이 강아지는 해피. 만나서 반가워.)”
조은이의 소개에 청년이 멋쩍게 머리를 긁더니 ‘욘’이라며 악수를 청했다. 우리의 인사를 보던 한 청년이 손에 든 맥주를 마시며 건물을 쳐다보았다.
“Come to think of it, the Japanese team. They’re strange. As far as I know, they’re probably the first to arrive here, but they never come out or say hello. (그러고 보니까, 그 일본 팀 말이야. 이상해. 아마 가장 먼저 도착한 것으로 아는데, 절대 나오지도 않고 인사도 안 해.)”
“Is that so? Where are they staying? (그래? 그들의 숙소가 어디에 있는데?)”
“There, at the very end of the 4th floor. (저기, 4층 가장 끝.)”
청년이 가리킨 곳을 보니, 과연 응원하는 팬들이 전해준 듯 무엇이 잔뜩 쓰인 국기를 창가에 걸치고 있는 일본의 숙소가 보였다.
그때 베란다의 유리문으로 영상에서 봤던 그 원숭이가 슬쩍 얼굴을 나타냈다. 그러나 안에서 누군가가 잡아채는 듯 공포에 질려 입을 벌린 채 안쪽으로 사라졌다.
분명 공포에 질린 얼굴이었다.
개가 된 나는 예전보다 훨씬 동물들의 감정을 잘 읽을 수 있다. 적어도 동물의 표정을 인간일 때보다 더 뚜렷하게 알아챌 수 있다고 자부한다.
그 원숭이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은 분명 ‘공포’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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