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77
178. 미국 결선!(4)
이미 시작된 듯한 행사.
간혹 엄청난 함성들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작은 함성들. 소음에 익숙해진 동물들은 저마다 사료를 먹거나 가만히 앉아서 졸거나 했지만 나는 역시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는 오히려 생각이 많은 인간이라는 것이 훨씬 불편했다.
‘저 엄청난 함성 소리. 도대체 어떤 것을 보여주었을까? 초반이니 미국, 북미, 남미 쪽일 텐데.’
‘잠깐, 지금 한 다섯 번째는 한 건가? 아냐, 한 번의 함성이 꼭 한 동물의 묘기만 의미하는 건 아닐 수도 있지.’
‘어라? 이번 것은 왜 함성보다 야유가 많지? 실수해서 그런가? 그럴수록 동물들은 더 겁먹을 텐데?’
상상이 끝없이 커져만 갔다.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누구에게든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볼 수조차 없었다.
시계가 있다면 대충 시간으로나마 가늠할 수 있을 텐데.
– 끼이이익
그때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한 스태프가 안을 가리켰다. 조은이가 고맙다며 ‘Tank you’라 인사하곤 안으로 들어왔다.
“와, 왈!”
“해피야! 쉿!”
조은이는 안으로 들어와 케이지 앞에 섰다. 창살 사이로 내민 손을 나는 정성스레 핥았다. 너무나 보고 싶었다. 겨우 두세 시간 만일 텐데도 궁금한 것도 많고 정신이 없었다.
“이제 A조가 끝났어! 15분간 쉬는 시간이야. 미국 대표 구관조가 진짜 노래 잘하더라. 지역의 록 밴드를 데리고 와서 록을 커버했어. 고음 부분을 외워서 부르더라고. 코러스까지.”
그게 그 엄청난 함성의 이유였나? 하아, 보고 싶었는데.
“워낙 처음부터 너무 세서 그 이후로 나온 이들은 오히려 완전 힘이 빠지는 모양새였어. 멕시코에서 온 당나귀는 통제가 안 되어서 결국 다시 내려가고 탈락했어. 수만 명이 있으니 아무래도 긴장이 되나 봐.”
아까의 야유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대충 알 만했다.
“우리 해피는 안 심심했어?”
“왈? 와왈!”
나는 괜찮다는 듯, 신나게 꼬리를 흔들었다. 조은이 뒤로 몇 명의 사람들이 더 들어와 자신의 반려동물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인사를 나누며 나갔다.
“이따가 다시 올게! 알았지? 해피야, 아무런 걱정 하지 마.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우린 정말 최고니까.”
“왈!”
조은이는 창틀 사이로 내 콧잔등에 입을 맞춘 후 나갔다. 헤응, 조은이… 헤응.
사람들이 얼추 다 나갔다 싶을 때, 문이 열리더니 일본 팀이 들어왔다. 혹여 안에 다른 이들이 있는지 확인을 한 그들은 문을 닫은 후 조심히 들어와 고로 앞에 섰다.
‘뭐지?’
나는 고로를 쳐다보다 깜짝 놀랐다. 그때 봤던 그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고로가 철창 안쪽으로 소리를 지르며 숨었기 때문이었다. 방금까지 있던 다른 이들의 반려동물들은 절대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나도 조은이와 헤응 뽀뽀를 하지 않았는가.
“캬캬캬캭! 키히이이익!”
괴성을 지르는 고로의 모습이 꽤나 걱정스러웠다. 그 소리 때문인지 주변의 다른 동물들도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팀은 그 앞에서 서로 무엇인가 대화를 주고받더니 조용히 다시 나갔다.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 고로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무언가 기묘했다.
***
이후에도 조은이는 한 번 더 왔다. 유럽 지역인 B, C조 중 B조가 끝났을 때였다.
노르웨이의 까마귀는 아주 작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관중석에 숨겼는데도 저 멀리서 날아와 단번에 찾아냈다고 했다. 빛나는 것을 찾아 물고 오는 까마귀의 특성이 굉장히 발달된 것이었다. 그리고 독일의 닥스훈트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장애물을 뚫고 미로까지 짧은 시간 안에 통과했다고 했다. 그 미로도 중간중간 심사위원들이 장애물이나 가로막이를 놓아 완벽히 새롭게 만들어 낸 것이었다.
“끼이이잉…”
다들 열심히 하는 듯했다. 하기야, 이 안에서도 그 커다란 함성은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그래도 해피야! 지금 B조까지 봤는데, 처음 나온 미국의 구관조만큼 잘하는 동물은 없는 것 같아. 퍼포먼스가 워낙 독보적이라 그때의 함성은 다시는 안 나오고 있어. 우리에게도 기회가 분명 있다고.”
“왈! 왈!”
나는 신나게 짖었다. 그리고 다음 C조가 끝나면 사료를 잔뜩 씹어 먹어 배변을 준비하기로 했다. 역대급으로 가늘고 길게 싸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모두를 감동시켜야 했다.
조은이와 다른 이들이 돌아간 후, 다시 일본팀이 눈치를 보며 들어왔다. 그리곤 막대기를 들어 창살을 툭툭 건드렸다.
잔뜩 겁먹은 고로가 뒤뚱거리며 앞으로 나왔다.
무언가 윽박지르듯 고로를 향해 소리친 그들은 주변을 둘러보다 고로의 등에 무엇인가 동전 파스 비슷한 것을 붙였다. 고로는 자신의 몸에 붙은 그것을 떼어버리려 난리를 쳤으나 제대로 뗄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등에서 약간 위쪽인지라 팔이 헛돌았다.
팀원 중 하나가 품에서 야구복 상의를 꺼내어 고로를 향해 무어라 강하게 소리쳤다. 겁먹은 표정으로 다가온 고로의 몸에 팀원이 야구복을 입히고 단추를 채웠다.
‘저게 뭐지?’
나는 벌떡 일어서서 그들이 하는 행위를 지켜보았다. 그들 중 하나가 주머니에서 리모컨을 꺼내더니 빨간색 버튼을 눌렀다.
– 지지지직!
“캭!”
순간 고로가 짧은 비명을 지르더니 멍하니 일어서서 자리에 정좌하듯 앉았다. 그리곤 남자가 건넨 캔 음료를 따서 들이켰다. 그걸 본 남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버튼을 두 번 눌렀다. 그러자 고로가 박수를 치며 철창 안을 뛰어다녔다. 경계를 따라 한 바퀴 도는 그 모습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주변으로 털이 불에 그을린 냄새가 퍼져나갔다.
‘아, 야구복!’
그제야 나는 방금의 뜀박질이 홈런을 치고 각 루를 도는 행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하, 그런 것을 하려는구나. 야구. 역시 일본은 야구에 진심이니까. 바보냐, 계별욱? 아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중요한 것은 저 리모컨, 그리고 전기 충격을 주는 듯한 저 자기장 파스였다. 애당초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개별적인 움직임만을 외우고 있고 그것을 ‘외부 충격’을 통해 실행하는 것이었다.
나는 맨 처음 고로의 영상을 봤을 때 조은이와 박건혁 팀장이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 처음에 녹차를 마시는 부분에서는 엄청 놀랐는데, 그다음은… 무언가 감탄이 나오는 연출은 있는데 딱히 새롭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 맞아요, 저도 똑같은 것을 느꼈어요. 결국 저 원숭이는 반복된 학습으로 무엇인가를 뜯고 뜨거운 물을 붓고 그것을 마시거나 먹는 것뿐이에요.
– 모든 것은 연출이에요. 그것을 제외하면 저 원숭이 고로가 할 줄 아는 것은 다른 어떤 원숭이라도 충분히 학습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연출은 분명 저 전기 충격의 횟수로 조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대회를 위해 동물을 학대하면 안 된다는 것에 정면으로 위반된다.
나는 내가 무시무시한 것을 봐 버렸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래서 여기서 당장 뭘 어쩔 수 있단 말인가.
‘미치겠네…’
한참 후 일본팀은 고로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무엇인가 비웃듯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되돌아갔다.
고로는 다시 겁먹은 얼굴로 등 위에 붙은 자기 밴드를 떼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으나 결국 포기한 채 구석으로 가 얼굴을 파묻고 앉았다. 저것이 일본 대회를 우승하고 관광청의 홍보 대사로 떠오른 원숭이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일본팀은 다시는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
여러 번의 환호. 그리고 야유.
예전에 회의하면서 보았던 각 나라의 우승자들이 하나하나씩 공연을 마쳤을 것이었다.
나는 텅 빈 밥그릇과 물그릇을 보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불룩해진 배는 무섭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 정도 빵빵한 배라면 오늘 준비한 것을 다 쓰고도 남았다.
‘후우… 좋아.’
그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활짝 열렸다. 스태프가 들어와 바깥을 향해 외쳤다.
“Participants in Group E, please get ready! Participants who put their animals in the separate place, please follow me! (E그룹 참가자들은 준비를 마쳐 주시기 바랍니다! 별도의 공간에 동물을 놓아두신 참가자는 저를 따라오세요!)”
그리고 참가자들이 들어와 저마다 자신의 반려동물들을 찾았다. 조은이와 박건혁 팀장이 뛰어와 케이지를 열고 나를 가방에 넣었다. 뒤에 선 직원이 카메라로 그런 우리의 모습을 담았다. 핸드폰을 들이댄 걸덕이가 ‘이제 우리도 나갑니다! 장하다 안조은, 안해피! 개똥팸 여러분! 응원 부탁드려요!’ 하며 외쳐대고 있었다.
“이제 곧 E조야! 해피야, 우리 잘할 수 있겠지? 누나, 너무 떨려. 떨려서 심장이 폭발해 버릴 것만 같아!”
아니나 다를까, 아까와는 다르게 조은이의 동공은 크게 확장되어 있었다. 몸도 부들부들 떨렸다. 앞서 수많은 동물들의 장기를 보며 얼마나 놀랐을지 예상이 되었다.
박건혁 팀장도 엄청 표정이 굳어 있었다. 모두가 이 엄청난 무대 앞에서 이전까지 보였던 자신감과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벌써 감독님은 콘솔 뒤에서 줄 서 계셔. 얼른 나가서, 우리도 준비하자.”
“여기까지 찍고, 무선 조종 자동차에 탱크 씌우는 거. 두 분 다 도와줘요. 빨리 끝냅시다. 방송은 이어서 하고. 오케이?”
모두가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스태프 하나가 우리를 보며 행사장 안을 가리킨 채 ‘Hurry! Hurry!’하고 외쳤다. 허리를 조심하라는 그녀의 충고가 매우 고마웠다.
그때 저 멀리, 가장 늦게 케이지에 다가가는 일본팀의 모습이 보였다. 나오기 싫어하는 고로를 끄집어내고 머리에 야구모자를 씌우는 그들을 보며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민했다.
***
“와아아아아아!”
가슴까지 울리는 함성. 이제 마지막 참가자들인 러시아+아시아로 편성된 E그룹이 올라온다는 것에 대한 관중의 기대감은 어마어마했다. 특히나 이런 ‘기예’ 같은 부분에서 아시아는 언제나 ‘미지’, 그리고 ‘상상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는 기대감이 있어서일까, 대회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은 루즈해졌던 분위기가 단번에 다시 달아올랐다.
화면을 통해 41번부터 50번까지, 각 나라의 참가 동물들에 대한 소개와 짧은 본선 우승 영상이 지나갔다.
그리고, 역시나…
48번째로 내 환장할 만한 사진이 화면 가득 떠오르자 수만 명의 사람들이 폭소를 터트리며 휘파람을 불어댔다. 그 엄청난 반응에 나는 다시금 온몸을 떨었다.
모든 소개가 끝난 후 불이 꺼졌다.
어둠 속에서 스태프들이 미리 준비한 전자 오락기 두 대를 무대로 재빨리 끌고 왔다. 그리고 조명이 켜짐과 동시에 러시아 참가자가 빨간색 레슬링복을 입은 불곰 페도르를 데리고 나왔다.
안전을 위해 특정 동물들의 경우 재빨리 안전 케이지가 조립되었다. 그 안으로 들어온 러시아인은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페도르에게도 인사를 시켰다.
러시아인이 무어라 말을 하자 옆에 서 있던 통역가가 실시간으로 영어로 통역해 관중들에게 알렸다.
“Fedor, who participated today, is a bear who loves games more than anyone else. Today, he will show us playing an exciting fighting game with his trainer, Mr. Vasily! (오늘 참가한 Fedor는 그 누구보다 게임을 사랑하는 곰이라고 합니다. 오늘도 자신의 조련사인 미스터 바실리와 함께 흥미진진한 격투 게임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이윽고 준비된 영상에는 페도르의 게임하는 모습과 그와의 게임에서 패배하는 어린이, 청소년들의 모습이 보였다.
확실히 무조건 레버를 앞으로 밀고 버튼을 부서지듯 치는 모습보다야 조금은 더 발전한 듯했다. 적어도 자신이 너무 바깥으로 나가면 다시 반대로 레버를 당겨 앞으로 나올 줄 알았다. 그것만 해도 엄청난 발전인 것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쿠마쿤’이라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곰 캐릭터를 고르는 것이 더 인상적이었다. 페도르가 ‘우어어엉’ 소리와 함께 쿠마쿤을 고르자 장내에 폭소가 가득했다.
‘오오, 흥미진진한데?’
나는 저도 모르게 몰입한 채 위에 설치된 대형 화면을 통해 게임을 지켜보았다.
[READY… FIGHT!]게임 철혈권 특유의 사운드와 함께 페도르는 쿠마쿤을 전진시키면서 무지막지한 기본기로 조련사 바실리가 조종하는 레슬링 파이터를 떡실신 시켰다. 사실 무조건 강펀치 버튼만 연사한 것이긴 했지만 또한 그게 쿠마쿤이라는 곰 캐릭터의 상징성 있는 공격이라 장내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연달아 세 판을 모두 이긴 페도르가 신난다는 듯 ‘우어어엉’ 하며 하늘을 보고 포효했다.
그때, 조련사가 마이크를 잡고 무어라 말했다.
“Is there anyone who wants to challenge Fedor with this game? (혹시 페도르에게 이 게임으로 도전해 볼 도전자가 있을까요?)”
장내가 웃음으로 가득 찼다. 그저 대회의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던지는 말이라는 것을 모두 알았다. 그러자 조련사가 이쪽을 가리켰다.
“Are there any animals to challenge Fedor? (동물들 중에서 페도르와 겨뤄 볼 동물은 없습니까?)”
“동물들 중에서 누가 저 곰과 게임 붙겠냐는데?”
조은이가 중얼거렸다.
철혈권? 그거야 내 전매특허지. 내가 고등학생 때에는 성지 오락실에서 무려 48연승을 달리다가 화가 난 대학생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적도 있었지.
‘어?’
순간 나는 도화선녀를 떠올렸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 검역소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날 보며 했던 말.
– ‘싸움’이야. 싸움. 달라붙어야 하는 거야. 그것도 그냥 붙으면 안 돼. 딱 보면 아, 이거 싸워볼 만하겠다 싶은 것이 있을 거야. 그때 확실히 달라붙어야 해. 알았지요?
‘이것인가?’
나는 조은이의 품에서 펄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철망의 문으로 가 ‘왈왈왈!’하고 세게 짖었다.
카메라가 이쪽을 비추었다.
“Hahaha, this cute dog has challenged Fedor! (하하하, 귀여운 강아지가 페도르에게 도전을 했습니다!)”
내, 철혈권이 뭔지 제대로 가르쳐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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