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8
18. 낭만사기꾼(1)
예전에 조은이와 사진을 찍었던 근린공원 앞의 대로 사거리. 그 코너에 위치한 큰 빌딩의 7층.
이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빌딩의 현관 입구부터 현수막과 화환이 커다랗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남구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 공연 대잔치!] [환상의 쑈! 쑈! 쑈!] [평양 기예단 초청 공연! 인기가수 특별 축하무대!]손에 든 초대권의 유무와 상관없이, 말쑥하게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상품 추첨권’이라 적힌 작은 종이 쪼가리를 나눠주며 사람들을 있는 대로 안으로 들여보내고 있었다. 노파는 유모차를 한켠에 맡기고 나를 안아 든 채, 해자 할매와 함께 사람들 사이에 낑겨 간신히 엘리베이터 안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끼이이잉.”
나는 무언가 불안하다, 이런 곳은 영 수상하다는 눈으로 노파를 바라보며 낑낑댔다. 그러나 내 걱정은 아랑곳없이, 내 귀와 꼬리 색만큼이나 화려한 눈화장을 한 노파는 연신 해자 할매와 이야기를 나누기에 바빴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 조은이가 그 뭐시냐. 광고도 찍는다고 허드라고. 아유, 대단혀.”
“참말로. 조은이가 얼마나 이뻐? 잘 되얐소. 잉.”
“돈 들어오면 요 똥강아지 불알이나 확 떼버릴라고.”
그 말에 엘리베이터의 모든 이들이 동시에 뒤를 돌아 노파의 품 안에 안긴 나를 쳐다보았다. 모두가 자신을 주목한다는 것에 신이 난 노파는 날 번쩍 들어 사람들 앞에 내보였다.
“보시오. 요것. 요것을 확 떼어부릴라고.”
‘죽여라, 차라리 날 죽여…’
나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감당치 못하고 고개를 돌려 낑낑댔다. 어쨌거나 지금 당장은 내 몸이었다. 나의 존엄이 이렇게 훼손되는 것은 정말 원치 않는 일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마침 엘리베이터는 7층에 도착했다. [여러분의 등골을 편안하게 뚝! 등골젠 메디컬 테크 홍보관]이라 쓰인 거대한 철문이 열리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노인들이 ‘와아!’ 소리와 함께 재빨리 달려가 맨 앞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조은이 할매! 달려, 달려!”
“가야지, 가야지!”
파지와 공병을 줍고 유모차를 끌던 이 노파가 이렇게나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여태 몰랐었다. 무협지에 나오는 ‘답설무흔’의 경지가 무색하게 빠르고 가벼운 경공술을 펼치며 노파는 재빨리 한가운데의 자리를 점령했다. 뒤이어 도착한 해자 할매가 바로 옆자리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삽시간에 자리가 꽉 찬 가운데, 나비넥타이에 갈치 비늘 같은 정장을 입고 머리를 뒤로 빗어 넘긴 사회자가 앞으로 나왔다.
“등골 뚝! 골수 쪽! 오늘도 우리 등골젠 메디컬 테크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스페셜하게 준비한 특급 버롸이어티 쇼를 찾아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우리 어르신들, 아주 그냥 엄청나게 달려오시던데요? 저는 제게 달려오시는 줄 알고 안아드릴 준비를 하느라 뒤에서 손 벌리고 있었다니까요? 우리 엄마, 사랑해~!”
“와하하하하하!”
저 저렴한 멘트가 뭐가 그리 웃긴다고! 나는 어이가 없었다.
“자아, 오늘도 이렇게 가장 먼저 달려와서 자리를 빛내주신 우리 앞 열의 어머님들께 선물 안 드릴 수가 없죠? 아낌없이 나갑니다, 쉰라면 번들!”
“와아아아아!”
탄성이 이어진 가운데 직원들이 박스를 들고 나타나 다섯 개짜리 라면 번들을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아유! 또 받았네! 전에 준 것도 다 못 먹었는데.”
“조용히 혀! 뒤에서 달라고 하것다.”
노파와 해자 할매는 감격에 찬 표정으로 라면 번들을 꼬옥 껴안았다. 정말로 기가 막혔다.
이윽고 행사 소개와 함께 첫 공연이 시작되었다.
쫄쫄이 타이츠를 입은 기예단원 넷이 머리에 도자기를 이고 훌라후프를 온몸에 돌리는 등의 묘기를 이어갔다. 어느새 나도 그들의 묘기에 빠져 박수 대신 꼬리를 부채처럼 흔들며 ‘왈! 왈!’하고 짖었다.
묘기가 끝난 후에는 색동 한복을 요란하게 입은 여자가 나와 ‘반갑습니다, 반갑스읍니다아~!’ 하며 북한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그 말투는 어째 북한보다 더 북쪽에 있는 나라의 말투 같아 영 의심스럽기 그지없었다.
몇 차례의 묘기와 노래가 끝나고 평양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기예단이 사라지자 사회자가 다음 차례를 소개했다.
“그리고, 지난 공연에 이어 오늘도 찾아오신 이 땅의 마지막 로맨티스트! 여러분의 가슴을 적실 준비를 착착 마친 낭만가객이자 음유시인! 한국 색소폰 연주의 달인!”
“와아아아아아!”
소개만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중간중간 ‘오빠아!’ 소리도 들려왔다.
사회자가 빙긋 웃으며 무대 옆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영원한 젊은 오빠! 영원한 로맨틱 가이! 방귀생 오빠가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꺄아아악!”
“귀생이 오빠!”
방귀생이라니, 이 무슨 어마어마한 이름인가? 게다가 낭만가객이자 음유시인이라니. 그리고 이 엄청난 환호성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누가 나타나는지 너무나 궁금해 머리를 한껏 내밀고 무대를 주시했다.
그때, 160cm가 약간 넘는 키에, 배꼽 위까지 흰 바지를 입고 빨간색으로 반짝이는 나비넥타이를 맨 한 노인이 현란한 문워크로 무대 중앙으로 입장했다.
옆머리만 남아있고 가운데는 한 올도 나지 않은 헤어스타일. 구두와 상의, 하의까지 순백색으로 감싼 저 자태. 뼈만 앙상히 남은 가녀린 체구의 노인이 무대 중앙에 서서 마치 유럽의 무도회에서 귀족이 인사를 하듯, 손을 내밀며 우아하게 허리를 숙였다.
‘아, 저건 아니다. 진짜 아니다.’
그때, 난 나를 안고 있는 노파의 가슴에서 울리는 심장 박동을 들었다. 그 박동은 점점 강하고 빠르게 울려 퍼졌다. 오죽하면 내 등에서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이, 이 노파가! 혈압 어떡하려고!’
나는 걱정이 되어 뒤를 올려다보다 깜짝 놀랐다. 완전히 하트가 된 눈, 멍하니 벌어진 입.
‘빠졌네, 빠졌어. 사랑에 빠졌네.’
점점 심장 박동 울림이 커져만 갔다. 나는 제발 정신을 차리라고 노파의 손을 긁었다.
“낑! 낑!”
“이 똥개가, 가만있어! 이제 시작헌다! 아유, 아유! 멋져.”
‘하아…’
그 방귀생이라는 노인은 조잡한 유로 비트 음악에 맞춰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만 같은 관절을 덜걱거리며 천국에서 마이클 잭슨이 절규할 만한 춤을 추어댔다. 그렇게 분위기를 한껏 달아오르게 한 후 직원이 가져다준 색소폰을 들었다.
“부우우우우~ 부루루~ 부루부루부루우우우우~!”
BGM에 맞춰 자신의 몸만 한 색소폰을 불어대는 그 모습. 아닌 게 아니라 음알못인 내가 들어도 그 처연한 음색과 물 흐르는 듯한 기교는 꽤 멋졌다.
“아아악! 방귀생 오빠!”
곡이 끝날 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소리가 터져 나왔다. 노인은 씨익 웃더니 와이셔츠의 앞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시 낭송을 하려는 듯했다.
어느덧 조명이 가을 낙엽처럼 노랗고 빨갛게 바뀌었다. 스포트라이트가 그의 머리를 반짝이게 비추었다.
“제목, 나의 에리자베트에 대한 송가. 지은이는 자는 현로요, 이름은 방귀생.”
‘에, 에리자베트…’
내 입이 떡하니 벌어진 가운데, 대방어의 뱃살보다 더 기름진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 나의 에리자베트는 어디 있는가, 내 시를 받을 영원한 절대자여!
고오오오! 나의 에리자베트는 어디 있는가, 내 연주를 받을 영원한 여신상이여!
타하아아! 고목나무에 꽃이 피는 이 생명력을 나에게 준 이여!
롸하아아! 달래 나물보다 맵고, 씀바귀보다 쌉싸름한 사랑을 주고 간 그대여!
키요오옷! 나는 준비했노라, 이 자리에서 내 모든 것을 줄 준비를.
하아아아, 나는 기다리노라, 이 자리에서 내 영혼을 바칠 그대를.
나의 에리자베트여.”
와, 진짜 미치겠네. 나는 정말 온몸에 두드러기가 퍼지는 듯한 가려움을 느꼈다.
“꺄아아아아!”
“귀생이 오빠아아아아!”
“귀생 오라버니!!!!!”
이유를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기합과 함께 한 행 한 행 멋들어지게 시를 읊은 노인은 시가 적힌 종이를 비행기 모양으로 접어 하늘을 향해 휙 날렸다.
그 비행기는 허공에서 한 바퀴를 돌았다. 비행기의 궤적에 따라 손을 벌리고 잡으려는 엄청난 인파의 움직임에 나는 세기말적 공포를 느꼈다. 이게 아포칼립스다!
그리고 그 비행기는 모두의 손길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더니…
– 툭!
내 머리에 꽂혔다.
‘엥?’
어리둥절한 나와는 다르게, 노파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그 비행기를 집어 들었다.
그것을 본 노인이 빙그레 웃었다.
“오늘 저와의 식사권입니다.”
“오, 오메! 내가! 아이고!”
노파의 혈압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노파를 진정시키기 위해 팔을 미친 듯이 긁어댔다.
“왈! 왈! 왈!”
온몸이 감동으로 얼어붙은 노파와 부러운 눈빛이 가득한 관객들을 두고, 방귀생이란 노인은 마그네슘이 부족해 보이는 윙크를 날린 채 무대 밖으로 사라졌다.
***
사교댄스의 시간. 무대 앞의 의자들이 접히고 치워진 가운데, 형형색색의 조명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노파가 받은 라면과 커다란 콩기름 식용유 통에 목줄이 묶인 채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여사님. 돌리고 도올리고… 앞으로 갔다 뒤로 물러나 이렇게 돌고 저렇게 돌고.”
아까의 복장에서 위에 파란색 반짝이 조끼를 더한 노인, 아니 귀생이 노파의 손을 잡고 춤을 가르치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 황홀한 표정을 지은 노파가 귀생의 리드에 어설프게 손을 잡고 몸을 돌리고 있었다.
“아주 춤을 잘 추시네요, 우리 여사님. 마치 내가 꿈꿔오던 에리자베트처럼.”
“아유! 내가 무슨.”
“우리, 이따가 끝나고 식사나 할까요? 제가 날린 종이 뻐꾸기가 여사님 품에 고이 안착했으니 이게 무슨 인연이랄까.”
‘여사님 품이 아니라 내 대가리에 꽂혔다.’
“왈! 왈! 왈!”
나는 정신 좀 차리라고 맹렬히 짖었다. 그러나 노파는 아랑곳하지 않고 귀생의 리드에 맞춰 춤을 추며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뒷발로 날 걷어찼다.
– 퍽!
“깨애앵! 깨앵!”
‘분위기 깨지 말어, 요 똥강아지가.’
하아,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후 몇 개의 남은 행사가 다 끝난 후, 노파는 해자 할매와 헤어져 빌딩의 뒤쪽에 있는 주차장에 서서 귀생을 기다렸다.
“낑, 끼이이잉!”
‘제발 돌아가자, 정신 좀 차려요!’
내가 팔을 벅벅 긁자 노파는 ‘이놈!’ 하면서 내 머리를 살짝 때렸다.
“조용히 혀. 지금 우리 귀생이 오빠와 식사를 혀게 생겼잖여.”
“끼이이잉.”
그때 뒷문으로 귀생이 나왔다. 그 넉살 좋아 보이는 얼굴과 쪼글쪼글한 주름 속 빛나는 눈이 재빨리 노파를 훑는 것이 느껴졌다. 느낌이 매우 좋지 않았다.
“많이 기다렸을까요, 우리 여사님?”
“아니요.”
“뭐를 좋아하실까? 혹시 추어탕 좋아하세요?”
“아유, 좋지유.”
“그럼 가시죠. 제가 잘 아는 곳이 있으니까. 요 요상하게 생긴 강아지는 식당 입구에 잘 매어놓으면 될 테니.”
그리고 귀생이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날 안은 노파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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