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80
181. 미국 결선!(7)
내가 그리 길게 산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짧은 생도 아니다.
그래도 난 내가 살아왔던 29년 + 개로서의 1년 반 동안, 이처럼 적막한 분위기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모두가 얼어붙었다.
관객들도, 그리고 2억 명의 시청자들도, 그리고 심사위원들과 참가자들도.
콘솔 앞의 민관욱 감독도, 박건혁 팀장과 걸덕이도, 내 앞에서 똥이 잔뜩 튄 천사 옷을 입고 있는 조은이도.
물론 나도.
나는 멍하니 선 채 이 무게 1조 톤에 달하는 침묵을 가만히 등 뒤로 안고 있었다.
예전 점례 앞에서 터트렸던 똥폭탄이 최대구경의 박격포 급이라면 이건 최소 히로시마, 나가사키 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 대의 탱크는 평화의 상징은커녕, 그보다 훨씬 강한 폭격에 완벽하게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위로 쓸데없이 존 레넌의 이매진이 흘러나오다 페이드 아웃으로 끝났다.
계속된 침묵. 무대의 불이 켜졌다. 그러나 그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당연히 입을 여는 소리도 없었다.
야속하게도 내 똥폭탄이 터지고 나서 배는 멀쩡하게 원래 상태로 되돌아갔다. 그게 더 열 받았다.
무대를 가득 채운 채 관객석까지 퍼져나가는 개똥 냄새. 이게 K-Dog라니… 걸덕이에게 국격 운운할 것이 아니었다.
‘그냥 미친 척 이 똥 위에서 뒹굴까? 그러면 잠시 무대의 긴장감에 정신착란이 왔다 하고 다시 기회를 주지 않을까?
이젠 나마저 미쳐가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엉망이 되어서 조은이에게, 한국 팀에게 쏟아질 비난의 화살을 멈출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했다.
온몸을 탱크 위로 던지려는 순간,
“I can’t believe it. It’s a perfect antiwar message. (믿을 수 없어. 완벽한 반전 메시지야.)”
심사위원석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칸예 이스트가 금 수십 냥을 녹인 듯한 목걸이를 번쩍이며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쥐죽은 듯 조용한 대회장에서 그의 박수 소리만이 울리고 있었다. 모든 이의 눈이 내 똥꼬를 벗어나 칸예 이스트에게 향했다.
“You saw that? That tank. Those weapons that kill people and destroy cities are worse than dog poop. That’s what we need to know. If you know it, even dog poop can defeat the things that scare and destroy us! (봤어요? 저 탱크. 사람을 죽이고 도시를 부수는 저런 무기들, 결국 개똥보다도 못한 것들이에요. 우리는 알아야 해요. 우리를 두렵게 하고 파괴하는 것들, 알고 보면 개똥으로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But why does it have to be dog poop, I mean, a performance like that? (그러니까, 그게 왜 개똥이어야 하고, 저런 퍼포먼스여야 하죠?)”
맥 딜리베리 사장의 질문에 칸예 이스트가 그것도 이해하지 못하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Mac, look. Even the smallest, most useless thing in the world can stop a tank. If you can’t stop the tank, then it means you are not ready. We must prepare. For peace. (맥, 잘 봐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존재, 가장 쓸모없는 것으로도 우리는 탱크를 멈출 수 있어요. 그것을 못 한다? 그럼 당신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준비해야 해요. 평화를.)”
“Let me say something. (제가 한마디 더 할게요.)”
그때 오프라 루즈프리가 끼어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다시 그쪽으로 향했다.
“The action of that dog ‘Happy’ right now gives us a stronger message than that we must prepare for peace. It’s saying that we should go out and fight. (지금 저 강아지 ‘해피’의 행동은 평화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보다 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나가서 싸우자는 것이죠.)”
“Fight? Then it’s not peace. (싸우자고요? 그렇다면 그것은 평화가 아니잖아요.)”
“No, it means that we have to make the voices against war, the voices calling for peace that we have been doing so far stronger, and stronger enough to make it a kind of weapon. Like exploding a bomb. Just like Happy did! (아니, 우리가 여태 해왔던 반전의 목소리, 평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더욱더 강하게, 그것이 하나의 무기가 될 정도로 강하게 내야 한다는 것이에요. 마치 폭탄을 터트리듯이. 해피가 그랬던 것처럼!)”
박건혁 팀장이 거의 동시통역 수준으로 심사위원들의 대화를 설명했다. 나와 조은이는 기가 막혀 입을 떠억 벌렸다. 준비한 ‘Stop War!’는 쓰지도 못했는데, 다들 자기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붙여서 해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관객석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저지른 엄청난 실수가 저렇게 왜곡되어 미화되는 가운데, 다들 그 말을 받아들이며 코를 싸쥐고 ‘해피! 해피! 해피!’를 외치기 시작했다.
점점 그 소리가 커져가는 가운데, 오프라 루즈프리가 똥으로 엉망이 된 조은이와 나를 불렀다. 심사평을 할 차례였다.
“We probably know each other, right? Through social media, I got to know Happy and you and sent support. (우리는 아마 서로 알고 있을 거예요. SNS를 통해 나는 해피와 당신을 알게 되었고 응원도 보냈죠.)”
“Yes. I’m really grateful. (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This was a performance we hadn’t thought of. I was very moved by the part that gave an important social message, apart from the amazing animal performance. (이번 것은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퍼포먼스였어요. 동물의 놀라운 퍼포먼스를 떠나 중요한 사회적 메시지를 주었다는 부분에서 저는 굉장히 감동했어요.)”
조은이가 고개를 숙였다. 배가 멀쩡해진 난 ‘왈왈!’하고 힘차게 짖었다. 다음 마이크는 제이슨 피셔 본부장으로 넘어갔다.
본부장이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콘솔의 민관욱 감독이 센스 있게 재빨리 한국 본선에서 우승한 영상 중 본부장이 조은이와 나를 껴안고 축하하는 장면을 틀었다.
“Everyone who remembers the Korean team probably had the same thought, ‘What are they going to write this time?’. But you completely reversed that expectation. I’d like to commend you on that. (아마 한국 팀을 기억하는 이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이번엔 무엇을 쓸까? 하지만 그런 예상을 완벽히 뒤집었어요. 일단 거기에서 칭찬을 드립니다.)”
조은이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도 얼른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그 외에 여러 이야기가 지나갔다. 박건혁 팀장이 옆에서 읊어주는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메시지가 너무 좋았다는 것, 그리고 나의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웠다는 것.
어느덧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훌쩍 넘긴 가운데 드디어 심사평이 끝났다. 그리고 우리는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 속에 무대를 내려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진짜 마지막에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는데,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무언가 될 것 같아요. 기적은 정말로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일어난다고 하잖아요?”
민관욱 감독과 박건혁 팀장,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온 조은이가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각자 떨렸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가 그 긴 시간 동안 준비해 왔던 것이 이렇게나 완벽하게, 또 상상을 벗어나 마무리되었다.
그때 한쪽 구석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보고 있던 걸덕이가 멍한 표정으로 걸어왔다.
“왜 그래요, 로이 님?”
“이따가, 동영상 채널이랑 공식 채널 채팅창 보시면 아실 거예요. 난리 났어요. 난리. 진짜 빅난리.”
“그래요?”
걸덕이의 손에서 핸드폰을 받아 쥔 박건혁 팀장이 실시간 채팅 및 댓글들을 확인하곤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스튜디오 꿀잼의 직원과 주최 측의 카메라가 열심히 찍었다.
***
모든 경연이 끝났다.
참가자들이 모두 무대 앞으로 모였다. 동물들을 케이지나 켄넬에 넣어서 들고 있는 이들도 있었고 대기 공간에 두고 온 이들도 있었다. 모두 아쉬움과 함께 이제야 끝났다는 후련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앞에 섰다.
먼저 본부장의 이번 대회에 대한 소감이 이어졌다. 역시 각국의 우승자들이 모인 만큼 이전 대회보다 훨씬 멋진 대회로 치러져서 기쁘기 그지없다며 3년 후에 있을 다음 대회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는 말이었다.
그 외에 나머지 심사위원들도 저마다 간단하게 평을 남겼다.
현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앱으로 준 점수들, 심사위원이 준 점수들이 더해지고 평균이 나왔다. 한 스태프가 종이를 들고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심사위원들.
더러는 굉장히 놀란 표정이었고 더러는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쳐다보고 있는 참가자들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3등부터 1등까지, 부디 그 안에 들기를 기대하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저기서 기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울러 관중석에서도 응원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짜요우, 펭 페이! 펭 페이!”
“고로! 고로! 고로! 간바레, 고로!”
“해피! 해피! 해피!”
하지만 역시 미국이어서일까, 압도적 응원은 미국 출신 구관조 쥬디에게 쏠렸다. 쥬디를 데리고 온 20대 금발 여자가 사방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본부장이 목청을 가다듬었다.
“Now, let us present the results. As always, I’m just as nervous as the contestants. But don’t forget this, dear contestants, the audience, and the viewers around the world. Regardless of the results of the competition, all the animals here are winners. And you, who love animals, are the winners. (자, 이제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참가자들만큼이나 저도 떨립니다. 하지만 참가자도, 관객 여러분도, 그리고 전 세계의 시청자분들도 잊지 마십시오. 대회의 결과를 떠나 이곳에 온 모든 동물이 우승자입니다. 그리고 동물을 사랑하는 여러분이 우승자입니다.)”
환호가 이어졌다.
“We will announce the third place winner. The third place is the representative from the United States. Judy, the myna! (3등을 발표합니다. 3등은, 미국 대표. 구관조 쥬디!)”
엄청난 환호와 아쉬움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축포가 터지고 멋진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약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새장을 들고 올라온 여자가 억지로 웃으며 손을 흔들고 인사했다. 그리고 스크린으로 평균 점수 92.4점이 나타났다.
심사위원들의 짧은 평들이 지나가고 상금 10만 달러 팻말을 든 여자가 기념촬영을 한 뒤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난 복잡한 감정에 빠졌다. 기쁘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다. 적어도 아직 1, 2등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았긴 했지만 확실하게 순위권에 올라 상을 받을 수 있다는 안도감 또한 사라졌다.
“We will announce the 2nd place. (2등을 발표합니다.)”
관객석이 더욱 달아올랐다. 저마다 자신이 찍어놓은 우승 후보를 외치고 있었다.
“오, 제발! 제발!”
조은이도, 박건혁 팀장도, 민관욱 감독도 모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었다. 나 역시 눈을 감았다. 제발, 제발…
어떻게 하지? 2등도 좋았다. 상금 30만 달러가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당장 3억 6천만 원이 더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100만 달러, 12억 원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래도, 아예 2등도 1등도 아니라면?
나는 빛태창을 쳐다보았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2억 4,344만 6,620원. 스튜디오 꿀잼 스톡옵션 28,000주]크게 변하지 않는 숫자. 부디 내게 기적을, 제발 기적을…
“The 2nd place is the representative from Korea. Happy! (2등은, 한국 대표. 해피!)”
엄청난 함성. 조은이가 만세를 부르며 펄쩍 뛰었다. 박건혁 팀장도 민관욱 감독을 껴안으며 축하하고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했다. 걸덕이도 미친 듯이 방방 뛰면서 카메라를 향해 무어라 외치고 있었다.
“해피야, 해피야! 수고했어, 정말로 수고했어! 으흐흐흑…”
아…
2등? 어라, 2등.
그래, 좋지. 어마어마한 거야. 3억 6천만 원. 엄청 좋아! 당당하게 돌아갈 수 있어!!!
그런데 왜 아쉬운 거지? 왜 무엇인가 섭섭한 거야? 왜 화가 나는 거야?
주위의 모든 이들이 축하해 주는 가운데, 나는 홀로 멍하니 서 있었다.
로또 2등에 당첨된 이, 3등에 당첨된 이는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한 개의 숫자만 더 맞았다면 1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의 돈이 생겼어도 며칠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어쩌면 나도 그와 같은 심정일지도 몰랐다. 3억 6천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상금을 획득했음에도, 무언가 한끗 차이로 1등을 놓쳤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점수는 93.8점.
심사위원들의 심사평. 너무 환상적이었다는 말속에서 ‘그런데 대회의 분위기를 조금은 무겁게 만들었다’라는 평도 있었다. 그걸 전하는 박건혁 팀장도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We are now announcing the final winner of the Animals Got Talent – World. The first place is the representative from Japan. Goro! Congratulations! (이제 Animals Got Talent – World의 최종 우승자를 발표합니다. 1등은, 일본 대표. 고로! 축하합니다!)”
여태 터졌던 폭죽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다란 불꽃이 터졌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일본팀 팀원 중 하나가 1등이 확정되는 순간 재빨리 옆의 쓰레기통에 리모컨을 버리는 것을.
큰 음악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어마어마한 함성이 장내를 휩쓸었다. 일본팀 주장이 고로의 손을 잡고 무대 위로 올랐다. 그 뒤로 다른 팀원들이 손을 흔들며 뒤따랐다.
그리고 본부장이 축하하기 위해 그들 앞에 섰을 때, 나는 쓰레기통에서 찾아낸 리모컨을 입에 물고 무대 위로 뛰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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