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87
188. 기분 전환(3)
“어차피 좋은 것을 본다면 4억이건 3억 9천이건 사실 별 차이가 없어요. 그리고 집은 먼저 자신이 딱 드는 느낌이 중요한 것이에요. 돈은 그다음이야. 마음에 든다면 가서 살아야지, 안 그래요?”
102동으로 이동하는 중, 사장이 조은이와 노파에게 넌지시 말을 붙였다. 너무 돈에 연연해서 고르지 말라는 말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조은이의 뒤로 노파가 ‘구경만 할 거유, 구경만!’하고 스스로에게 못 박듯, 아니 조은이에게 못 박듯 외쳤다.
“아마 매물 중에서 인테리어나 상태 등을 보면 여기가 가장 좋을 겁니다. 뭐, 일단 가장 로얄동이니까.”
“맨날 로얄동이고 맨날 로얄층이라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조은이의 웃음 섞인 농담에 사장이 ‘보면 알 것’이라며 102동의 현관 출입 번호를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아파트의 가장 높은 층인 25층을 향해 움직였다. 왠지 모를 긴장감과 설렘이 엘리베이터 안에 가득 찼다. 나 역시 엄청 두근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 띵동~!
“대영 부동산이요.”
사장의 말에 안에서 ‘네’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천천히 문이 열렸다.
30대 후반 정도로 되어 보이는 여자가 웃으며 문을 열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조은이와 노파가 인사를 하곤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거실로 들어선 순간,
“우와…”
“아유, 좋다…”
“끼잉…”
우리는 왜 로얄동에 로얄층인지 알 수 있었다.
저 멀리, 바다가 보였다. 물론 푸른 바다에 새하얀 백사장은 아니다. 시커먼 갯벌과 인근 국제항의 컨테이너들, 그리고 정박 된 무역선들. 게다가 까마득하다.
그래도 분명 바다였다. 그 위로 태양을 반사한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또한, 전망이 탁 트였다는 말처럼, 이 동의 거실 베란다에서는 앞의 도로와 공원, 학교, 상가와 항구 등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였다. 방향의 중요성, 아무리 고층에 멋져도 문을 열면 벽이 마주하고 있거나 다른 동의 이웃과 원치 않는 내적 친밀감에 서로의 집안 숟가락 개수를 파악하는 게 아닌, 정말로 이 동에서만 누릴 수 있는 멋진 호사였다. 최고층이라 더욱더 좋았다.
“아유, 높기는 엄청 높다. 진짜 높아.”
“와, 정말 풍경 좋다.”
얼이 빠져있는 우리를 향해 여자가 웃으며 주스를 들고 다가왔다.
“이것 좀 드세요. 강아지는 줄 게 없네.”
“아, 감사합니다!”
조은이와 노파, 사장이 시원한 주스를 들이켰다. 그 옆에 선 여자가 설명을 이어갔다.
“밤에 야경도 괜찮아요. 공항도 공항이지만 항구 불빛도 정말 아름답고. 그래도 이 광역시에서 이 정도 연식의 아파트들 중에는 정말 좋은 위치인 것 같아요.”
“네, 뭐랄까 엄청 마음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에요. 진짜 좋다.”
“우리도 이 집 살 때 그런 점이 정말 좋아서, 오래 살아야지 생각하며 인테리어도 공들여 했던 거예요. 아쉽게도 생각보다 오래 못 살고 빨리 나가게 되었지만요. 신랑 직장 때문에. 그래서 인테리어도 그렇고, 여기에서 잘 돼서 나가는 거라 팔기 아까운 마음도 있어서 전세로도 내어놓기는 했어요.”
“아, 그래서 인테리어 디자인이 아직 새것 같구나.”
“그렇죠.”
조은이가 여자의 허락을 구하곤 노파, 사장과 더불어 안방과 거실, 작은방, 베란다 등을 둘러보았다. 나는 가만히 가방 속에서 너른 거실, 베란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이 정도의 환경이라면야 두말해 무엇하랴. 앞의 두 매물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하얀색으로 시원하고 넓은 느낌의 벽지와 커튼. 그리고 최대한 쓸데없는 짐을 제거해 더욱더 넓어 보이는 거실과 방들, 그 사이 짙은 색의 가구와 소파, 가전제품이 고급스러움과 심플함을 더했다.
잡다한 여러 가지가 쌓여있는 것보다 정말로 여유를 느끼게 할 만한 여백의 미가 인상적이었다.
‘이런 곳에선 오줌도 못 싸겠다.’
흔한 아파트여도, 이렇게나 완벽하게 꾸며서 그 이상의 가치가 있어 보이게 할 수 있다니…
솔직히…
여기에서 살고 싶었다. 느낌이 너무 좋았다.
구경을 모두 마친 조은이와 노파는 집주인 앞에 섰다. 사장이 슬쩍 집의 매매 희망가를 다시 한 번 집주인에게 물었다.
“4억 2천 정도요. 아무래도 로얄동에 로얄층이니까. 사장님도 아시잖아요, 빠지기 전엔 5억 8천까지도 거래되었던 것.”
이전에 봤던 것들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높았다.
3억 7,500만 원의 저층, 그리고 3억 9천만 원의 8층. 하지만 이것은 로얄동에 로얄층이라고 4억 2천. 크게 인테리어를 손볼 것은 없다고 해도 어쨌거나 해야 할 것은 해야 했고 가구나 가전도 필요하면 사야 했다. 지금 것을 그대로 쓴다고 해도 채워야 할 것들을 최소화한 것인지라, 이 집에 맞게 들어갈 것이 있을 것이었다.
나는 빛태창의 숫자를 쳐다보았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2억 6,796만 7,610원. 스튜디오 꿀잼 스톡옵션 28,000주]어차피 우승 상금은 1주일에서 열흘 안으로 들어올 것이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당연히 이 아파트를 사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오히려 국제 신도시로 지정된 곳에 가서 더 좋은 것도 살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봐 버린 다른 물건들과 지금 본 물건의 가격 차이, 크게는 4,500만 원에서 적게는 3천만 원까지 차이가 났다. 그 금액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만큼 이 집의 가치가 클 것인가?
사장이 슬쩍 조율의 여지를 물어봤다.
“거기에서 한 이사비 정도로 1천만 원 정도 더 빼 주실 수는…”
“아니요. 사장님도 보셨잖아요? 여기 인테리어, 이만큼 공들여 한 가구 이 단지에 없을 텐데. 저희도 사정만 아니라면 여기에서 평생까지는 아니더라도 10년 산다 생각하고 들어온 것이거든요.”
완고했다. 1천만 원은커녕, 500만 원도 깎을 여지가 없어 보였다.
“4억 2천으로 그대로 생각하고 있고요, 올 11월에 출국하는데 그 가격에 매매 안 된다면 말씀드렸다시피 전세로 돌리고 가려고 해요. 주재원 생활 정리되면 들어와 살면 그만이니까.”
오히려 부족한 것, 아쉬운 것이 없기에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만약 여유가 없었다면 급매로 조금이라도 더 깎거나 사장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그럼 손님은 어떻게 봤어요?”
사장의 말에 조은이가 얼떨떨한 표정에서 깨어나 미소를 지었다.
“좋죠. 정말로 마음에 들어요. 아마 저라도 안 깎을 것 같아요. 자부심이 있을 만한 집 아닌가요?”
조은이의 말에 주인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학생의 마음에 들어도 여기 어르신이 정하는 것이니까, 어르신은 어떠신지도 궁금하네요.”
주인의 말에 노파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유, 난 이런 집 와서 살라고 해도 무서워서 못 살어. 사람은 분수에 맞게 살아야 무병장수 하는겨! 그리고 내가 집 안 사요, 우리 손녀 조은이가 사지. 자기가 번 돈으로 자기가 산다는데 내가 뭐라고 좋다 싫다 말하것어.”
“네? 이 학생이 집을 산다고요?”
“왈!”
나는 맞다고 가방 안에서 외쳤다. 조은이를 쳐다보던 주인이 슬쩍 ‘연예인이세요? 배우?’하고 물어봤다. 그러나 조은이는 그 말에 ‘그냥 대학생이에요. 얼마 전에 방송도 시작하고 해외에 해피랑 대회 나가서 우승도 하고… 운이 좋아서요.’ 하며 손을 내저었다.
“대단하시다. 정말…”
“아니에요. 일단 저도 엄청 큰 금액을 들은 만큼, 조금은 더 생각해 봐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우리야 누구라도 우리가 정한 금액에 맞으면 팔 수 있고 안 팔려도 전세도 생각하고 있으니 느긋해요.”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좋은 집 잘 봤습니다!”
***
사장에게 다음 주에 다시 오겠노라 이야기를 한 조은이는 날 들고 노파와 함께 부동산을 나섰다. 노파는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
“엄청 좋아서 그런지 엄청 비싸드라. 아유, 세상 좋은 구경 오늘 다 한 것 같으네. 그런데 그냥 구경으로 끝내야지,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우리 상황에선 아니여!”
“헤에에에, 진짜 엄청나다. 무언가 나를 때리는 것 같았어. 그냥 감탄밖에 안 나왔어.”
“그러니까 시상에 집들이 얼매나 많냐? 지금 이 빌라에서 살면서 1년 후에, 우리가 계약 기간이 끝난 후에 다시 알아봐도 더 좋은 것들이 더 싸게 나올 수도 있고!”
“아까 그 바다를 바라보는데, 진짜 무언가 멍해지더라고. 아, 내 꿈이 여기에서 이루어지나? 막 이런 느낌이 들고.”
“그런 큰집은 청소도 문제고 관리비도 문제고. 아니, 우리가 집을 사는데 관리비를 내면 그게 월세지 우리 집이냐! 빌라는 계단 청소 1만 원만 내도 된다. 그 돈 날 주면 내가 계단 청소를 다 해줄 텐데. 순 도둑놈들.”
“여름인데 그냥 방충망 닫고 창문 다 열어놓기만 했는데도 에어컨 튼 것처럼 바람 정말 시원하더라. 그렇지, 해피야?”
서로 각자의 세상에서 각자의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난 도대체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저마다의 생각, 그리고 저마다의 목표. 누군가에게는 지금의 행복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지극히 당연했고 누군가에겐 그것을 뛰어넘어 더 큰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했다.
그럼 나는?
‘음… 어려운데.’
내게 그런 돈이 있다고 한다면 난 그런 집으로 갈 수 있을까?
오히려 난 노파의 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건 나에게 있어서 그 정도의 공간만이라도 지상에 올라왔다는 것은 더 이상의 행복을 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방 셋(물론 안방과 조은이 방을 뺀 하나는 옷만 널어놔도 꽉 찰 정도로 작았다)에, 비좁은 욕실 하나. 빌라 2층. 전세 1억.
나, 30살 계별욱에겐 그것은 내가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이상향이었다. 내가 그렇게 무턱대고 잡코인에 올인하고 주식 테마주에 올인했었던 것도 ‘지긋지긋한 반지하를 벗어나고 싶다’라는 간절함이었다. 거기에서 더 올라간다고 해도 오피스텔, 방 둘짜리 정도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또 코인을 하고 게임을 하고 살았겠지. 공장을 다니며.
방 셋짜리 빌라는 어쩌면 혼자 살기엔 필요 이상으로 클 수 있었기에 ‘미래의 꿈’ 정도로 남겨놓았을 것이다.
내 노력이기도 하지만 조은이의 노력이 빛을 발했던 결과물인 지금의 빌라 전세. 그 잡히지 않는, 내 인생에선 영원히 존재할 것 같지 않았던 공간은 너무나 아늑하고 또 충분했다.
아무리 돈이 더 있었어도, 난 내 공간 자체에는 그 이상의 꿈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건 확실했다. 왜냐면…
그게 내 상상과 그릇의 크기였기 때문이다.
어느덧 우리는 버스를 갈아타고 동네의 정류장에 내려섰다. ‘꼬북시장입구’라는 정겨운 정류장명.
거기엔 시장과 함께 여러 상가들, 그리고 다세대와 빌라들이 뒤섞여 있었다. 도로를 건너 아파트 단지도 있었다. 지은 지 20여 년은 넘었을 듯한, 최고 층수 20층 정도의 아파트들. 그 뒤엔 복도식 임대아파트.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 것으로 사람의 가치, 삶의 가치를 논할 수 없다.
다만…
확실히 아까 있었던 공간에서 이 익숙한 공간으로 넘어오면서 나는 어떤 위화감을 느꼈다. 같은 광역시, 구는 달라도 직선거리로 겨우 9km 정도의 가까운 위치.
도대체 나는 왜 그런 곳을, 그런 환경을 닿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평생을 살아왔을까? 아예 상상조차, 노력조차 안 하면서.
그런 나와는 반대로 조은이는 얼마나 멋진 꿈을 꾸고, 또 이루어가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 꿈을 이루는 데에 내가 정말로 큰 도움이 된 것 맞지?’
가방에서 내려진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조은이를 쳐다보았다.
조은이가 날 내려다보며 웃었다.
“우리 해피가 전부 다 해준 거야, 그치?”
목이 메었다.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행복한 것이었다.
조은아, 네가 어떤 목표를 꿈꾸든지 간에, 난 해피로 있는 동안은 그것을 이루도록 열심히 도울게. 내가 네게 선물이 아니야. 네가 내게 선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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