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90
191. 괴밥(2)
결국 이 참사의 손실은 온전히 노파가 배상해야 했다.
노파는 떨어진 윗부분은 살릴 수 있다고 난리를 쳤지만 그건 위생상 절대로 불가능한 행위였으며, 무엇보다 내가 찹찹대고 신나게 핥았기에 다시는 통으로 들어갈 수 없는 상태였다.
결국 하칸은 장부까지 보여주며 그 아이스크림이 30만 원에 오늘 아침에 가지고 온 것임을 증명했고, 덕분에 노파는…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11억 8,189만 4,280원. 스튜디오 꿀잼 스톡옵션 28,000주]을 단번에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11억 8,159만 4,280원. 스튜디오 꿀잼 스톡옵션 28,000주]으로 끌어내리는 기염을 토했다.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카드를 내미는 노파, 빠져나가는 금액.
착잡한 표정의 하칸도 울고 노파도 울고 도화선녀도 울고 나도 울었다.
“거봐, 보살님. 결국엔 그렇게 된다니까. 이 일이 맞지 않는 거야.”
“시끄러, 점쟁이! 언제는 해 보라며! 된다며!”
“뭐, 그땐 내가 신령님이 아니라 귀신들렸나 보지. 개령님, 그렇죠?”
“끼이이잉…”
우리는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결국, 오늘의 소득은 노파가 케밥을 잘 만다, 그것뿐이었다.
“점쟁이는 왜 따라와?”
“저녁밥 얻어먹고 가려고. 보살님, 놀러 오라 해놓고 또 저 케밥 하나 주는 거, 그러는 것 아냐. 한국 사람이, 한국 신령이 밥을 먹어야지! 알라신 되겠어!”
“그놈의 알라딘 타령은.”
“알라신!”
결국 노파와 도화선녀는 시원하게 동태탕이나 끓여 먹자며 마트에서 간단히 장을 보곤 빌라로 올라왔다.
선풍기가 돌아가는 가운데, 물러터진 자두를 놓고 노파는 신세 한탄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말이여, 아무리 큰돈이 들어왔다고 그렇게 몇 억씩 하는 집을 자기 멋대로 사고 말이여! 점쟁이, 나는 진짜 도통 이해가 안 된다니까. 이 험한 세상에 뭘 믿고 말이여.”
“그러니까 이 험한 세상이니 스스로 헤쳐가는 것이지. 나라도 보살님 안 믿어, 조은이 믿지. 조은이랑 개령님 믿을 거야.”
“그 아파트가 4억이 넘는디야, 4억이.”
“내가 봤을 때는 10년 후엔 조은이 10억도 넘는 집에서 살 사람이야. 그러니 보살님이나 조은이 날개 단 것에 방해하지 마요. 어련히 잘할까.”
어마어마한 팩트 폭격이 이어졌다. 정말로 조은이와 더불어 내 주변에서 가장 정상적이고 합리적이고 지적인 사고를 가지신 분이었다. 존경합니다, 도화선녀님.
한참 서로 옥신각신하는 사이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도화선녀가 미나리를 다듬고 무를 써는 동안 노파는 동태를 씻고 냄비에 물을 끓였다.
– 삐, 삐, 삐, 삐, 삐리릭!
“다녀왔습니다아! 어? 아주머니 오셨어요?”
“아이고, 조은아! 그래, 아파트 잘 샀다. 잘 샀어!”
“아, 이야기 들으셨구나. 헤헤헤, 시원하게 질렀어요.”
“딱 봐서 이게 내 집이다 싶으면 서로 기운이 맞는 것이야. 그렇게 살면 딱 좋아. 다 복이 되고 좋은 기운을 끌어올리는 든든한 받침이 될 거야. 저 보살님이 가기 싫다고 하면 예전에 그 반지하, 거기 도로 얻어줘. 가서 고생을 해 봐야 손녀 덕에 호사 누리는 것이 얼마나 귀한 줄 알지.”
캬아, 저 한가운데로 꽂히는 시원시원한 스트라이크 보소. 오타니 쇼헤이가 여기 있네!
“하하하, 그래도 저 걱정하시는 거니까요. 큰돈이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고.”
“그 큰돈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집 사서 들어가 편하게 오래 산다 생각하면 걱정할 것 없고. 거기 오른대! 크게 오른대!”
“신령님이 그러세요?”
“뉴스에서 봤어. 거기 그 급행 지하철 뭐시기.”
“맞아요. 그 말도 확인해 봤어요.”
조은이와 도화선녀는 신이 나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도 그 옆으로 끼어 들어가 헥헥거리며 도화선녀가 내 몫으로 마트에서 사 온 맥시봉을 얻어먹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노파가 화가 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이봐요, 정신 차리시오!
“점쟁이는 얼른 미나리랑 무 다듬었으면 가져와!”
“미나리는 나중에 불 끄고 넣어야 숨이 안 죽고 향긋해. 보살님, 무부터 넣어. 그리고 마늘 많이 넣었지? 그래야 냄새 잡고 국물이 진득하지.”
“나도 할 줄 알아!”
“아니야, 보살님 음식 솜씨는 없어. 그래도 케밥은 잘 마니까 그건 낫더라. 다 만들어 놓고 다듬어 놓은 재료 넣는 것이니까.”
케밥 이야기에 노파의 귀가 다시 쫑긋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케밥 타령. 조은이는 한숨을 내쉬며 노파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곧이어 밥상이 차려졌다. 노파의 특제 쉰김치에 금방 데쳐서 무친 콩나물과 시금치, 그리고 두부부침과 동태찌개가 냄비째 상에 올랐다.
“우와, 잘 먹겠습니다!”
“보살님, 그래도 내가 하란 대로 끓이니 좀 먹을 만은 하다.”
“쳇.”
화기애애한 식사 시간.
저마다 근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또 조은이의 방송을 TV의 동영상 앱으로 열어 보며 웃고 떠들었다. 도화선녀가 똥첨자의 이름을 쓰는 내 모습을 보며 박수를 쳤다.
“말했잖아, 개령님 똥꼬가 돈 똥꼬라고. 하하하.”
“그러게요. 신기해요.”
“처음 개령님 봤을 때, 보통 영혼이 아니다 싶었는데, 글쎄 똥꼬 주변이 황금으로 빛나더라니까? 그날 꿈을 꾸는데 개령님이 똥을 싸는 족족 금화가 쏟아져, 아주!”
“점쟁이! 우리 밥 먹고 있잖아!”
“와하하하할, 와하하하할!”
거실이 왁자지껄한 웃음과 타박 소리로 가득 찼다. 이렇게 활기가 도는 저녁 식사도 참으로 오래간만이었다. 나는 옆에서 도화선녀가 몰래 가시를 곱게 발라 놓은 동태살을 맛있게 훑어 먹었다.
즐거운 식사가 끝나고 조은이와 도화선녀가 얼른 설거지를 시작했다. 도화선녀가 익숙하게 세제 거품을 내서 그릇을 닦아 주면 조은이가 헹궈서 싱크대 옆 선반에 차곡차곡 쌓았다.
“저기, 조은아.”
“네, 아주머니.”
“보살님이 자꾸 속이 좁아지는 것이, 나이 먹어서 그래. 자신이 할 일이 없어지면 존재 이유가 약해진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그걸 찾기 위해 일을 만드는 것이고.”
“알죠. 알아요. 다만 그게 왜 하필 그 힘들고 어려운 요식업이냐는 거죠. 케밥도 뜬금없고.”
“나 이제 집에 갈 건데 나가서 커피 한잔 할래? 해 줄 이야기도 있고.”
“제게 해 주실 이야기요?”
도화선녀가 슬쩍 노파를 쳐다보았다. 다행히 노파는 상을 닦느라 정신이 없었다. 조은이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그렇게 상이 정리된 후, 조은이는 날 보며 ‘할머니와 같이 놀고 있어’라고 부탁했다. 무슨 이야기이길래, 나도 궁금한데!
평상시와는 다르게 조은이가 도화선녀를 따라나서자 노파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둘을 쳐다보았다.
“우리 손녀 데리고 워디 가는겨! 막 신내림 받고 그런 거 시키면 점쟁이 죽고 나도 죽어!”
“말 좀 곱게 해, 보살님. 신은 아무한테나 실리나? 조은이는 당차서 그런 염려 하나도 하지 않아도 돼요. 보살님이야말로 귀신들릴까 두렵다.”
“저, 저 말뽄새는!”
조은이가 웃으며 둘 사이를 말렸다. 그리곤 ‘큰 길까지 바래다 드리고 온다’라며 서둘러 문을 닫았다.
“아유, 갑자기 있던 사람들이 다 나가니 심심하기는 하네. 그런데 우리 해피는 뭣 허나아?”
자기가 심심할 때만 이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찾는다. 나는 화가 끓어올랐으나 조은이의 부탁도 있고 해서 억지로 ‘헥헥’거리며 노파에게 다가갔다.
노파는 나를 품에 앉히고는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리곤 텔레비전을 켜서 ‘홈’ 버튼을 누른 다음 한참을 이것저것 만졌다.
“아까 조은이 영상 그것이…”
‘아! 동영상 플랫폼 앱!’
나는 가만히 일어나 노파의 손에서 리모컨을 물고 내려왔다. 그리곤 앞발로 가지고 노는 척하며 앱 버튼을 눌렀다. 서둘러 내 앞에서 리모컨을 뺏어가던 노파가 전환된 화면을 보며 놀랐다.
“잉? 이게 뭐여. 언제… 그리여 그럼 여기에서…”
‘아래 연관 동영상, 아니면 채널 가기! 아휴…’
답답한 마음에 다시 리모컨을 물고 온 나는 발로 버튼을 눌러 조은이의 최신 동영상을 플레이했다.
“우리 해피 잘 헌다, 아유!”
노파는 내가 TV 메뉴를 조정했다는 생각보다는 당장 나오는 손녀의 얼굴이 더 반가운 듯했다. 하기야, 이렇게 제대로 한번 익숙해지신다면 이제 낮에 더 이상 심심하지 않으시겠지.
똥첨자 영상, 산책 영상, 그리고 얼마 전 출시된 인형 영상. 다시 보니 나 역시도 어느덧 내 모습에 빠져들었다.
저렇게 열심히 해서 해외 구독자도 모았고 매월 어마어마한 돈도 들어오고 있지. 암, 이게 다 내 덕이지.
영상이 한참 플레이되던 그때, 문이 열리고 조은이가 들어왔다.
“왈! 왈왈!”
“어? 할머니, 내 채널 보고 있었네?”
“아유, 자꾸 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점쟁이는 잘 보냈어? 뭐 이리 시간이 많이 걸렸어?”
“아, 하하하. 목마르다 하셔서 잠시 카페에 앉아 차 한 잔 사드렸어.”
“뭐 이상한 소리는 안 하디?”
“아주머니 그런 분 아냐!”
조은이가 그만 좀 하라는 듯 노파에게 살짝 높은 소리를 냈다. 노파는 ‘아주 이 할매보다 점쟁이랑 살겠다!’ 하며 툴툴거렸다.
그러나 조은이는 금방 싱글싱글한 표정으로 노파 옆에 다가왔다.
“저기, 할머니. 그거 진짜 하고 싶어?”
“잉? 괴밥?”
“응, 케밥.”
“하기야 하고 싶지. 내가 언제 그런 장사 한번 해 보것냐.”
그 말을 들은 조은이는 한숨을 한 번 쉬더니 사업자 등록을 하는 것, 요식업 신고를 하고 보건소에서 건강 검진을 하는 것, 그 외에 부동산에 들러 점포도 알아보고 권리금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아봐야 한다는 것 등을 천천히 설명했다.
노파는 과연 알아듣고는 있는지 의심이 갔지만, 여하간 ‘잉, 잉. 그리여.’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다 이해하고 할 수 있다면, 해도 좋아. 내가 할머니에게 선물하는 것이라 생각할게. 단, 크게는 안 돼. 그 하칸 아저씨가 하는 그 정도 작은 점포? 그 정도라면 괜찮을 거야.”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도대체 도화선녀에게 무슨 말을 듣고 온 것이지? 당장 도화선녀부터 하면 망할 거라고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
“왈! 왈왈!”
나는 지금 한 말이 사실이냐, 조은이 너 제정신이냐며 짖어댔다.
그러나 조은이는 그저 배시시 웃으며 날 안고 쓰다듬을 뿐이었다.
“할머니, 할 거면 멋지게 해 봐요. 나도 시간 나면 도울게.”
“지, 진짜여?”
“응.”
노파의 눈이 동그래졌다. 조은이는 약간은 슬픈 미소를 지으며 노파의 손을 꽉 잡았다.
“내가 너무 할머니 생각을 안 했다. 그래, 그 정도로 삶에 기쁜 일, 떨리는 일을 만들어드리는 것도 효도인데.”
“잉? 그게 무슨 소리여? 그게 효도라니. 점쟁이가 그리 말해?”
“응. 네가 할머니에게 그냥 돈으로 3천만 원을 주는 것이 효도라면, 그 3천만 원으로 할머니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힘을 내고 도전하며 삶에 또 다른 자극을 얻게 해 주는 것도 또 다른 효도라고 하셨어.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고.”
아… 그런 것이었구나.
맞는 말이었다. 결국, 할머니에 대한 사랑의 표현방식은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의 성패를 논하고 가능성을 논하며 누르는 것보다, ‘해 보자. 잘할 것이다’라며 응원을 하는 것이 노파에겐 훨씬 큰 행복일 것이다.
어차피 그런 부분은 돈으로 환산이 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돈 이상의 무엇이 될는지도 모른다.
물론 30억을 모아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속 쓰린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래서 할머니! 가게 이름은 생각해봤어?”
“잉, 생각해 두었지.”
“뭔데?”
“해피 괴밥.”
망했네. 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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