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94
195. 괴밥(6)
폭풍이 지나갔다.
토요일과 일요일의 행사는 조은이가 도와줘서 원활하게 끝나기도 했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기에 정말 정신없는 날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월요일.
– 위이이이잉~!
파리가 폴폴 날아다니고 있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케밥 기계는 덧없는 우리네 삶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다. 노파도 앞치마를 두른 채 가슴엔 튀르키예 배지를 붙이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끼이이잉…”
그 밑, 사료 그릇과 물그릇을 앞에 둔 나는 배를 깔고 앉아 오가는 이 드문 거리를 쳐다보았다. 간혹 몇몇이 오가지만 케밥에 구미가 확 당기는 나이대는 아니었다.
“아유, 주말에는 그렇게 북적이며 구경도 하더니…”
“왈! 와와왈!”
‘어차피 월요일 오전이잖아요!’
너무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 가게뿐만 아니라 그 어느 곳도 월요일 오전은 한산한 법이었다.
“아유, 이렇게 있으면 안 되겠다. 아이스크림 연습이라도 해야지.”
노파가 정신을 차리고는 노파를 위해 특별제작된 나무 봉의 주걱 끝에 아이스크림을 푼 후 콘을 씌웠다. 그리곤 허공에 내밀고 요리조리 돌리기 시작했다.
“자아, 자아! 잡으면 아이스크림이 공… 아니, 10% 할인!”
헐… 이 상도덕도 없는 노파가!
“왈! 아왈왈왈왈! 왈!”
“잡으면 아이스크림이 바, 반값…”
“아왈왈왈왈! 왈왈왈!”
“잡으면 아이스크림이 고, 공짜…”
암, 그래야지. 여태 3일간 신나게 그렇게 행사를 해놨는데 도대체 왜 저러는지. 하여간 소탐대실의 역사적 표본으로 교과서에 남을 만한 인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다가 정말 고기도 종잇장처럼 대패질해서 주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아유, 그나저나 왜 이렇게 손님이 없냐. 점심시간 되면 좀 나아지려나? 아이들이 오면 좀 괜찮겠지? 아이스크림이라도.”
“끼이이잉…”
아니나 다를까, 조금 염려가 되기는 했다.
그리고 점심.
–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파리가 여덟 마리 정도로 불어나 있었다. 노파가 혀를 차며 파리채를 휘두르며 그것들을 쫓아냈다. 그때 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여, 여보세요. 해피괴밥 사장 박복녀 여사입니다.”
그래, 저것을 티 내고 싶었던 거야.
[아유, 보살님! 나예요. 그나저나 장사는 좀 어때? 내가 기도를 하는데, 막막한 사하라 사막에 보살님이 혼자 빼짝 말라서 걷고 있는 것을 화경으로 봤어!]“점쟁이! 그게 무슨 소리여! 지금 사람이 미어터지는데. 앞에 줄이 그냥…”
–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파리가 거짓말 말라는 듯 노파의 머리 위를 돌다 그만 파리지옥처럼 성긴 파마머리에 빨려들어 갔다.
“끼이이잉, 낑!”
나는 이 지옥 같은 풍경을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내 위로 쩌렁쩌렁한 노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침에만 50개는 팔았나 보다.”
[아유, 그렇게 바빴어요? 한번 구경이나 가야겠다. 도와주러.]“오, 오지 마! 열 뻗쳐서 정말, 오지 마!”
[왜, 왜 이러실까? 보살님? 보살님!]서둘러 전화를 끊은 노파가 애가 탄다는 듯 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그때 저 멀리서 하칸이 걸어왔다.
“하루머니! 장사 잘돼요?”
“하칸! 아유, 내 선생님! 내 첫 손님!”
“네? 하루머니, 뭐라코요?”
“배고프지? 어서 와서 여기 괴밥 좀 사 먹어. 좀 팔아줘!”
하칸이 뜨악한 얼굴로 노파를 쳐다봤다. 나는 창피해 죽을 것만 같았다. 안 팔리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도대체 케밥을 파는 하칸에게 자신의 케밥을 사 먹어달라니!
게다가 어제까지, 3일 동안 여기에서 저 재료, 저 고기로 케밥을 말아서 팔았던 하칸 아닌가!
“하루머니! 나, 내가 가게에 있으면서 점심에 먹는 것 말고는 케밥 안 먹어요! 나, 케밥 안 조아해!”
“그래 하칸이, 네 말대로 점심에 괴밥 먹으니 내 괴밥도 좀 먹어! 응?”
“저 월요일날 쉬어요! 킴치치개 먹으러 가요. 일부러 들른 겁니다!”
“한국 사람이 김치찌개 먹고 그쪽 나라 사람은 괴밥을 먹어야 해!”
노파는 아예 ‘지금 내가 싼다? 봐라, 봐! 아유, 하칸이 먹을 괴밥 싼다!’ 하며 얼른 토르티야를 꺼내서 채소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역시나… 종잇장처럼 고기를 얇디얇게 대패질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 나빠요! 고기 많이 넣어야 해! 싸람들, 욕해!”
결국 하칸의 극노를 못 이긴 노파가 고기를 더 넣었다.
“두 개 먹는다고 했지?”
“아니! 한 개, 하나! 하나!”
“아유, 우리 하칸이가 계산하기 쉽게 두 개 먹는다. 하칸이 괴밥 두 개 먹는다!”
모든 것을 포기한 하칸이 멍하니 서서 힘없이 노파를 바라보았다. 노파는 신나게 케밥 두 개를 말아 하칸에게 주고 만 원을 받았다.
드디어, 첫 개시! 하칸!
결국 노파에게 포섭당한 하칸은 힘없이 케밥을 먹으며 가게를 둘러보고 소스의 양을 다시 말해주곤 의자에 앉았다.
“이제 학교 끝나! 아이들 많이 와, 많이! 아이스크림 해 봐요! 내가 응원한다!”
“잉?”
말마따나 저 멀리서 초등학교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노파의 눈이 빛났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이스크림을 뜬 노파가 한 무리의 아이들이 다가오자 벼락 치듯 괴성을 질렀다.
“터키 아이스크림! 형제의 나라 터어키이!!!”
“으앗, 깜짝이야!”
“어? 어제 여기서 춤추고 똥 싸던 강아지다!”
아이들이 쭈뼛거리며 몰려들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형광색 꼬리를 흔들면서 애교를 피웠다.
“아유, 개만 만지지 말고 이 아이스크림 좀 먹어! 이거, 잡으면 공짜야, 공짜!”
“하루머니 잘한다!”
뒤에서 하칸이 박수를 치며 응원을 했다. 노파가 응원을 받아 신나게 아이스크림 막대를 돌…
– 착!
“우와! 나 잡았다, 잡았어! 봤지? 태현아, 형진아! 서현아! 봤지? 내가 잡았어!”
그 순간…
“喝!!!!!!!!!!!!!!!!!!!!!!!!!!!!!!”
노파의 일갈에 아이스크림을 잡고 좋아하던 아이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노파가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으로 적군의 뼈를 씹어 먹듯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시, 시작! 하고 말해야 하는겨!”
하아, 추잡스럽다. 진짜 땅을 파고 숨고 싶었다. 하칸도 그 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모르는 척 먹다 남은 케밥을 씹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 알겠어요.”
“시, 시이작!”
노파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막대를 빙글빙글 돌렸다. 그러나 아이는 잠시 노려보더니 너무나 손쉽게 잡아냈다.
결국 더 미룰 방법이 없자 노파가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와하하하할! 와하하하하할!”
“하루머니 잘한다!”
나와 하칸은 싱글벙글한 채 노파를 응원했다. 신이 난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들고 환호하자 순식간에 주변의 모든 초등학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할머니, 저도요! 저도요!”
“저도 하게 해주세요! 저도요!”
“이, 잉? 살 사람한테만 하는 거여!”
“못 잡으면 돈 낼게요!”
아이들이 성화를 부렸다. 이런 세기말 좀비 떼들의 습격과도 같은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노파의 안색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안색이 질리는 만큼 손의 움직임은 더 느려지고 단순해졌다.
– 척!
“아싸!!!”
– 착!
“오예!!!”
– 첩!
“나이스!!!”
아이스크림의 통이 점점 비어갔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노파가 뒤를 돌아보며 ‘하칸아…’하고 울먹거렸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하칸이 노파 대신 막대를 쥐고 섰다. 그러나 아이들도 바보가 아니었다. 절정의 고수가 나타나자 아이들은 도전에 응하지 않고 모두 웃으며 가게 앞을 떠나갔다.
“아, 아유! 한 열 개는 공짜로 준 것 같은데! 돈으로 치면 3만 원이여! 아유!”
“하루머니! 당분간 아이스크림 공짜 쇼는 하지 말아요! 그냥 망하는 거야!”
하칸이 신신당부를 한 채 앞으로 잘하면 된다며 가게를 떠났다.
***
저녁이 되었다.
–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이 망할 놈의 파리가! 잡아서 오장육부를 해체해 버릴라!”
장사가 안 된다는 조급함이 분노가 되어 노파의 성질을 한없이 더럽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혹여나 나에게도 불벼락이 떨어질까 두려워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덜덜 떨었다.
불이 들어온 간판, 형광색 귀가 한없이 밝게 빛나는 내 사진과 ‘해피괴밥’이 주는 이 음산하기 그지없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함.
그리고 매대에 선 도깨비 같은 형상의 노파.
망하기 좋은 조건을 이렇게나 두루두루 갖추기도 힘든 법이었다.
그때 저 멀리서 학교 수업을 마친 조은이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할머니~! 해피야~!”
“아왈왈왈왈! 아왈왈왈왈!”
나는 불이 나도록 꼬리를 흔들며 조은이를 향해 짖었다. 제발 이 마귀 소굴 같은 곳에서 날 구원해 달라며 짖고 또 뛰었다.
“으하하하, 우리 해피! 오늘 잘 보냈어? 할머니랑 열심히 가게 지켰어?”
“그리여, 지켰다. 판 것은 하나도 없이 열심히 가게만 지켰다.”
“에엥? 그게 무슨 소리야. 열심히 가게만 지켰다니. 오늘 많이 못 팔았어? 얼마나 팔았기에…”
“잉, 4만 원 팔았다. 괴밥이 여섯 개, 아이스크림이 세 개.”
하칸이 강제로 사야 했던 두 개를 빼면 케밥의 순 판매 개수는 네 개. 그나마도 늦은 오후가 되어 사람들과 학생들의 출몰이 잦아지며 일어난 판매 효과였다.
노파의 말을 듣고 걱정하는 표정을 짓던 조은이가 얼른 미소를 띠었다.
“에이, 어제까지 이벤트로 많이, 잘 팔았잖아. 원래 월요일엔 뭐라도 장사 잘 안돼. 너무 우울해하지 마.”
“후우, 그리여. 그래도 그렇지 4만 원 벌어서 인건비도 안 나오것다.”
인건비만 안 나올까? 나는! 내 견건비도 생각해야지! 하루 종일 여기 앉아서 사람들 눈 마주치면 꼬리 살랑살랑 흔들어댔는데!
그나저나 정말로 4만 원으로는 심각하게 적자였다. 저 많은 손질된 채소들도 일주일 정도가 유통기한이었고 고기도 계속 못 팔면 못 팔수록 육즙을 잃어 퍽퍽해지고 냄새가 날 것이었다.
“끼이이잉…”
조은이도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가게를 둘러보았다. 그래도 막상 여기서 이 시간에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일단 할머니, 이번 주까지만 열심히 해 보자. 알았죠? 주말에는 내가 여기서 특별 생방송이라도 해야겠다. 원래는 안 밝히려 했는데 좀 다시 생각해 봐야겠어.”
조은이의 눈이 간판으로 향했다.
[해피괴밥]그리고 그 옆의 내 사진. 벽에 걸린 커다란 현수막.
‘오, 오잉?’
나는 깜짝 놀라 ‘왈!’하고 짖었다. 조은이와 노파도 내 소리에 놀라 현수막을 바라보았다.
어느샌가 벽에 걸린 내 얼굴에 히틀러 수염이, 다리 사이엔 심각하게도 고추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똥개’라고 써진 매직 글씨.
아까 아이스크림을 잡으러 온 아이들 중 장난스러운 아이 몇이 가게가 정신없는 틈을 타 낙서를 한 것이리라.
“아왈왈왈왈! 아왈왈왈왈! 아오오오오오~!”
나는 슬프게 울었다.
견건비는커녕, 견권도 없는… 최소한의 존엄조차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하, 하하하… 저거 어떻게 해야 하지?”
“아유, 놔둬. 내일 내가 걷어서 잘 빨아볼 테니까.”
검게 번지기라도 하면 더 추잡스럽고 비루해져 보일 것이 뻔했다.
나는 그 모습을 상상해보곤 너무나 끔찍해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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