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99
201. 이사(3)
“잘 탈게요!”
조은이가 밝게 웃으며 걸덕이의 차를 열고 조수석에 앉았다. 나는 조은이의 무릎에 앉은 채 ‘헥헥’거리며 이 대참사를 즐기고 있었다.
“이런 좋은 차에는 처음 타 보네.”
“보살님, 조은이는 더 좋은 차 끌 거야.”
노파와 도화선녀도 뒷좌석에 탔다.
핸들을 잡은 채 한참을 멍하니 앞을 바라보던 걸덕이를 향해 조은이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저기, 걸덕이 오빠! 다 탔어요.”
“네? 아, 네! 조은 님. 저기, 주소가…”
“세탁기는 너무 신경 쓰지 마요, 이참에 새로 하나 사면 되니까. 바꿀까 고민도 했었어요.”
어쨌거나 도와주려다 일어난 참사였다. 그리고 중고로 산 통돌이라 가격도 저렴했다. 이 기회에 좋은 것으로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노파에겐 어림 반푼어치 없는 소리인 게 문제지만.
“…우리가 반지하 침수되고 나서 그 세탁기를 없는 살림에 장만하면서 얼매나 기뻤는데, 밤새 세탁기 통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울었는데 말이여. 중얼중얼.”
“아, 그러세요? 죄, 죄송합니다! 변상해드려야죠, 당연히.”
“할머니! 그러지 말라니까? 어차피 나 그 세탁기 바꿀까 생각하고 있었어!”
“바꿀까 생각을 했지 바꾸지는 않았잖여. 그것이 꿈에 나타나 통을 허리 돌리듯 돌리면서 나 억울해유, 나 살려줘유 하고 울면서 나올까 걱정이다. 중얼중얼.”
“사람 무안하게 왜 그래! 그리고 끝에 중얼중얼은 왜 붙이는데!”
결국 참다못한 조은이가 뒤를 돌아보며 그만하라는 듯, 싫은 소리를 냈다. 그것을 본 도화선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 이래야 우리 보살님이지. 이게 박복녀 보살님 맞지.”
“시끄러, 점쟁이! 점쟁이도 도운 것 하나도 없으면서!”
“아이고, 내가 운수 대통하라고 밤새 기도해서 현관에 붙일 부적도 써 왔구만!”
옥신각신하는 가운데, 걸덕이의 차가 풍린 야이원 아파트로 출발했다.
***
빌라 2층에서 짐을 내릴 때는 작은 트럭의 사다리차였지만, 풍린 야이원의 고층으로 올릴 때는 별도의 사다리차가 필요했다. 그래서 짐이 적고 이동 거리가 짧아도 200만 원이라는 돈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시상에, 저렇게나 높이?”
“일단 올라가서 사다리 대를 올려서 맞춰야 해요. 먼저들 올라가세요!”
우리는 의기소침해진 걸덕이와 함께 아파트 현관에 들어섰다. 아까의 빌라에서 아파트라는 공간으로 새로이 이사를 한다는 것에 다시금 내 마음이 설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5층의 버튼을 눌렀다. 하나하나 숫자가 올라갈 때마다 침을 꿀꺽 삼키며 모두 그 숫자를 쳐다보았다.
엘리베이터 안은 쾌적했다. 거울도 있고 벽면엔 모니터가 달려있어 다양한 광고와 정보도 나오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고 와 봐서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우리는 이곳의 주민으로서 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니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신기하네.”
“점쟁이는 처음이지? 요즘엔 아파트에 이런 것도 있더라니까. 에레베이타가 아주 고급스러워.”
“그러게, 참 좋다. 보살님, 진짜 조은이에게 고마워해야 해.”
– 25층입니다.
“소리도 나잖여.”
“좋네.”
조은이와 걸덕이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틀어막고 있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자 미리 와 있던 사마귀 사장과 마크가 방진복을 입은 채 손을 흔들었다.
“아이고, 돈 아끼려고 가족 같다고 하시던 할머니, 잘 지내셨어요? 아들 왔습니다, 아들!”
“시끄러워! 이번엔 얼마 받을 거야!”
“안 나오는 곳, 미리 예방 방역하는 것은 30만 원. 이 정도 평형인데 한 푼도 깎을 수 없어요. 그리고 혹여 모르니 이삿짐 다 정리되면 며칠 후에 와서 가구와 가전, 여기저기 나오기 쉬운 구석들 골고루 뿌려드리고 갈게요. 우리 마크가 할 겁니다. 수요일? 수요일 저녁 좋네.”
“싸장님! 나, 쑤요일 쑤요예배 있어요. 가서 노래하고 저녁밥 먹어야 해요.”
“마크, 요즘 너무 독실해지고 있어. 회사 일에도 독실해져 봐, 응?”
울상이 된 마크가 등에 농약 통을 메고 신발장과 주변에 화학 냄새가 가득한 용액을 뿌려댔다.
“그나저나 우리 할머니, 로또 맞으셨어요? 세상에, 그 반지하에서 생명에 위협을 느끼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런 좋은 아파트로 오셨네?”
“다, 열심히 살면 되드라고요.”
“아왈왈왈왈! 아왈왈왈왈!”
‘당신이 열심히 살았어? 나랑 조은이가 열심히 살았지! 맨날 돈만 까먹으면서, 케밥집 어떻게 할 거야!’
나는 분노에 젖어 맹렬하게 짖었다. 자신 스스로도 창피했는지, 노파는 연신 헛기침을 하곤 얼른 지갑에서 돈을 꺼내 손바닥에 침을 뱉어 한 장 한 장 조심스레 세어서 사마귀 사장에게 건넸다.
“이것도 1년 안에 바퀴벌레 나오면 무상으로 AS 해드리기는 하는데, 혹시 짐에 바퀴벌레가 딸려오지는 않았을지 걱정이네요.”
“없어. 하나도 없어!”
노파가 손에는 침을 발랐을지언정, 입에는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그런 노파를 빤히 쳐다보던 사장이 씨익 웃었다.
“있었네, 있었어. 어디서 절 속이시려고. 지금 저 아래에 있는 이삿짐 트럭 속의 짐에서 바퀴벌레 똥 냄새가 바람을 타고 25층인 여기까지 풍겨오는구만.”
“싸장님! 대단해요! 점점 커짓말이 늘어요!”
“마크, 닥치고 저 뒤에 세탁실 배수구에 더 용액을 뿌려. 아이 왓칭 유!”
우울해하는 표정의 마크를 떠나보낸 후 사장은 수요일에 반드시 방역이 필요하다고 몇 번이고 강조를 했다.
“아 참, 할머니 사셨던 반지하, 나중에 그 앞에 지나가다 혹여 괜찮나 해서 들러봤는데 웬 젊은 커플이 동거하고 있더라고요?”
“아, 그리여. 잉. 기억나네, 우리 다음으로 이사 왔던 사람들.”
“와, 아주 아마존 정글 속 바퀴벌레를 다 몰아넣은 것 같던데? 간 김에 영업할 겸 한 번 소독해 주려 했는데 포기했어요, 포기.”
“그 정도여?”
“어마어마합니다.”
이윽고 방역을 마친 사마귀 사장과 마크는 손을 흔들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신나게 올려진 짐들이 너른 방 곳곳, 조은이와 노파가 지시하는 대로 옮겨졌다. 원체 없는 짐들은 금방 자리를 잡아갔고 옷장과 서랍, 책상도 제자리를 잡았다.
“잠깐 있어 봐. 내가 좀 사방에 부정도 치고 기도도 하게.”
도화선녀가 나서서 사방에 절을 하고 소금을 뿌렸다. 그리곤 중얼중얼 무엇을 읊더니 현관과 안방, 조은이의 방에 고이 쓴 부적을 붙였다.
“영 보기 싫어! 누가 보면 귀신 있는 집이라 하것네!”
“귀신? 귀신은 우리 개령님 때문에라도 못 들어오지. 잘 봐요! 대운, 대길 쓰여 있잖아! 잘 될 거야!”
“아하하, 고마워요. 아주머니.”
이렇게 웃고 떠드는 모습 하나하나가 걸덕이가 든 카메라에 담겼다. 이제부터는 조은이의 채널을 열어 상황을 설명하던 걸덕이가 핸드폰으로 실시간 반응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지금 팬분들이 난리에요. 집들이 안 하냐고 물어보고, 이사 선물로 도네이션도 마구 쏴 주시네요. 주소만 알면 선물 보내겠다고 난리예요!”
“아하하,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삿짐 싸고 출발하기 전에는 로이 오빠 채널에서 뵀는데, 이렇게 이사 와서는 제 채널에서 만나네요!”
조은이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걸덕이가 재빨리 몇 개의 질문을 골라 읽었다.
“오늘도라면 님이 묻네요! 조은 님 방 구경하고 싶다고. 혹시 해피 방도 따로 있냐고요.”
“아아, 오늘도라면 님! 제 방은 정리가 되면 다시 생방으로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가구가 더 들어와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해서요. 해피 방은… 역시 해피는 저랑 자야 서로 편하지 않을까요?”
“해피똥만세 님의 질문! 집들이하면 꼭 선물 챙겨서 가고 싶어요. 한턱 쏘실 생각이 있으신지!”
“네! 집들이는 아무래도 제 개인 정보와 프라이버시 때문에 좀 그렇고요! 집들이 선물은 마음만 받겠습니다! 오히려 제가 쏴야 하는 게 맞긴 해요. 혹시 케밥 좋아하시면 1인당 두 개씩, 케밥 파티를 한번 열도록 기획해 보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노파가 싱글벙글 웃었다. 그거 이쪽 돈으로 그쪽 메꾸는 것이야! 할머니, 좋아하지 마시오!
그렇게 몇 개의 대답을 하는 사이, 얼추 짐들이 금방 정리되었다.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나머지 것들을 채워 넣으니 이사는 1시가 좀 넘어 벌써 끝이 나려 했다.
“이사 빨리 마무리한다고 하다 다들 식사시간도 넘겨버렸네요. 제가 살 테니 아저씨들도 짜장면 드실래요?”
“아니, 우리는 200만 원에 식대 포함되어 있어요. 나가서 먹으면 됩니다.”
“그러지 마시고요! 오늘 너무 고생하셨으니 제가 사겠습니다!”
그때, 벨이 ‘띵동’하고 울렸다. 문을 여니 사마귀 사장과 마크가 서 있었다.
“아이고, 우리가 직접 제작, 기획한 특수용액 통을 다용도실에 놓고 와서. 금방 가져갈게요.”
“사장님! 사장님도 식사 안 하셨죠?”
“안 했죠.”
“제가 살 테니 앉으세요! 짜장면 시켜 먹으려고요!”
그 말을 들은 노파가 ‘아유, 이사비에 식대도 포함이고! 저 사마귀 같은 양반도 30만 원이나 받아갔잖여!’하고 투덜거렸으나 도화선녀의 손에 입이 막혔다. 도화선녀가 얼른 조은이의 말을 받았다.
“그래, 이렇게 좋은 날, 집주인이 한턱낸다는데 모두 짜장면이나 짬뽕, 볶음밥 중에 하나씩 고릅시다. 아! 간짜장도 돼요. 탕수육은 우리 집주인이 알아서 시킨다니까, 사양 말고!”
“아니, 점쟁이! 점쟁이 돈이야?”
“보살님, 지금 이렇게 좋은 기운으로 베푸는 것이 다 덕이고 이 새집에서의 첫날, 이 집의 기운을 정해주는 것이야!”
도화선녀의 타박에 노파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사마귀 사장과 마크가 웃으며 이삿짐센터 직원들 사이에 끼어 앉았다.
“그럼 사양 않고, 저는 짜장면 곱빼기. 마크는?”
“콥빼기 돼요?”
“그럼요! 마크 아저씨도 원하는 것 드세요.”
“싸장님은 맨날 저랑 먹을 땐 보통만 시켜요! 보통만 먹으라 해요.”
“마크! 조용히 해! 작업을 할 때 너무 배가 차 있는 것도 좋지 않아!”
사마귀 사장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마크는 간짜장 곱빼기를 외쳤다. 이윽고 모두의 주문을 받아적은 조은이가 배달 앱을 열려다 신발장 위에 놓인 배달업체 책자를 기억해내곤 가지고 왔다.
“아, 풍림각이죠? 짜장면 보통 둘, 곱빼기 둘에 간짜장 곱빼기 하나! 짬뽕 둘, 볶음밥 보통 둘에 곱빼기 하나. 그리고 탕수육 대자로 두 개, 아니 세 개요!”
캬아, 저렇게 통이 크다니까! 나는 얼른 조은이와 도화선녀 사이로 자리를 잡았다. 오늘 신나게 얻어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네? 주소요? 주소는 수평4동 47번길 그린빌라 202…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도 모르게 이사 오기 전의 주소를 말했던 조은이가 깜짝 놀라 얼른 정정했다.
“여기 관석동… 잠시만요? 석산로 35번길 풍린 야이원 102동 2501호요!”
새로운 주소를 불러 준 조은이가 전화를 끊고 빙그레 웃었다.
그래. 102동 2501호.
여기가 이제부터 우리 집이다.
전세도, 월세도 아닌 정말로 우리 집! 조은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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