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20
20. 낭만사기꾼(3)
이번 주도 하릴없이 흘러갔다.
4월의 시작이라고 노파의 노인 연금과 동사무소에서의 생활지원비로 합쳐서 86만 원가량이 들어온 것이 꽤 고무적이긴 했다. 거기에 56만 원, 조은이의 아르바이트 월급도 들어왔다.
둘을 합치면 얼추 140여만 원. 빚태창의 숫자가 빠르게 내려갔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3,509만 6,230원]-3,600여만 원이 -3,500만 원대 초반으로, 거기에 조금만 더 노력하면 -3,400만 원대로 입성도 가능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처럼 기쁘지 않았다.
계속해서 생활비는 빠져나갈 것이고, 아무리 아껴 쓴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있기에 금방 다시 -3,600만 원대로 떨어질 것이었다.
이번 아르바이트로 30만 원이 늘어났고, 내가 80만 원을 힘들게 보탰지만 결국 거기까지였다. 조은이의 수익률이 아무리 놀랍다고 해도, 원금에 비해 늘어난 금액은 15만 원에도 못 미쳤다.
‘이대로는 곤란한데. 정말 곤란해.’
무언가 더 획기적인 것이 있어야 했다. 첫 광고 촬영은 이번 주 일요일에 잡혔지만 그런 광고가 계속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광고를 아무리 찍은들 30억이라는 자산을 3년 안에 이룰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끼이이잉.”
걸덕이가 말해준 그 동영상 플랫폼. 아무리 그래도 집안이나 주변을 돌며 찍어서 올릴 수 있다면 그게 얼마가 됐던 무엇이라도 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이래저래 생각만 많아진 나는 식욕조차 뚝 떨어져 가만히 좁은 거실 구석에 찌그러져 있었다.
“저, 저 똥강아지가 밥도 안 먹고 왜 저런댜? 있는 복도 다 달아나게.”
‘있는 복은 그대 이름 때문에 다 달아났소, 박복녀 여사님.’
“그러게. 해피야, 기분 안 좋아?”
“끼잉, 낑!”
“내비 둬. 더 굶어봐야 정신이라도 차리지. 김치에 밥만 먹고 살아도 행복한 줄 왜 몰라!”
‘당신이나 평생 그리 드세요!’
나는 매서운 눈으로 노파를 노려보았다.
“아 참, 나 이틀 후 촬영가는 것 알지?”
“잉. 그래. 뭐 또 준비헐 것이 있냐? 털이라도 더 깎아버릴까? 귀랑 꼬리에 염색도 더 하고?”
“아니? 사진 찍어 보냈는데 그대로면 된대. 현장에서 해피를 분장시킬 거래.”
“아유, 아주 탈렌트여 탈렌트!”
“그나저나 나 내일도 오전부터 저녁까지 풀 알바 뛰기로 했어. 할머니는 어디 가지 않지?”
조은이의 말에 노파가 헛기침을 했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도 남았다. 저 노파는 여태 방귀생이라는 사기꾼 생각만 하고 있던 참이었다.
곱게 편 그 종이비행기의 말도 안 되는 시를 동네 문방구에서 코팅까지 해서 안방에 붙여놓은 것이었다.
‘에리자베트라니, 기도 안 막혀서. 슬픈 베아트리체는 언제 나온답니까?’
으르릉거리는 날 향해 노파가 ‘이놈!’ 하며 베어 먹던 풋고추 꼭지를 던졌다.
“아왈왈왈왈! 왈왈왈!”
“할머니, 왜 해피한테 그런 걸 던져! 그나저나 내일 어디 안 나가냐고.”
“나가긴 어딜 나가. 파지랑 공병이나 주우러 가야지.”
“너무 무리하지 말고. 나도 아르바이트랑 촬영도 열심히 하니까.”
“그리여.”
그러나 노파의 얼굴엔 무엇인가 홍조가 피어있었다. 어째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
다음 날.
오전의 일과로 열심히 날 태운 채 골목을 누비던 노파의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에 뜬 화면을 바라보던 노파가 환하게 웃었다.
나는 무언가 불안했다. 오늘은 토요일, 그 사기꾼들의 행사가 있는 날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를 건 것은 귀생이었다.
“귀생 오라버니! 아유, 바쁘신데 이렇게 전화를 주시고.”
– 바빠도 에리자베트와 전화할 시간은 언제나 내 양복 포켓에 고이 접어놓고 있지유. 있다 오실거쥬?
“그럼유, 이따가 가야쥬. 3시 시작으로 알고 있어유.”
– 내 마음에 지금 설렘의 비가 내리고 있구만유. 그런데 혹시, 같이 점심식사 어뗘유?
“아, 점심이유? 아이고. 귀생 오라버니가 먹자고 하면 먹기야 헐 것인데. 내가 지금 잠깐 바깥에 나와 있어서.”
이, 이게 무슨 소리?
어차피 노파가 조은이의 말을 듣지 않고 공연을 보러 체험관에 갈 것이라는 건 충분히 예상한 바였다. 그러나 점심이라니? 이건 아주 느낌이 좋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무엇인가를 부탁하거나 사기 작업을 들어갈 것이 뻔했다.
“왈! 왈! 왈!”
“시끄러워! 지금 우리 귀생 오라버니가 이 엘레베이트랑 통화하는 것 안 보여?”
“왈! 왈! 왈!”
‘에리자베트! 엘레베이트는 또 뭐야! 당장 끊으라고!’
“아이구, 아녀유. 지가 똥개 한 마리 키우는 것 아시쥬? 그때 본. 이름이 해피인데 아주 말을 안 들어서 불알을 떼어, 아니다! 아유, 내가 무슨 말을 오호호호!”
‘가관이네.’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노파를 쳐다보았다. 노파는 약속을 정한 듯 ‘그럼 빨리 준비를 끝내고 이따 찾아가겠다’라고 한 후 바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분홍색 눈화장을 한 노파는 거울을 보곤 썩 마음에 든다는 듯,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전에 입었던 화사한 옷을 입고 날 쳐다봤다.
“할매가 금방 다녀올 테니까, 여기서 집 잘 지키고 있어. 알았지?”
“왈! 왈!”
“같이 점심 먹은 다음에 특별히 이 할매만 미리 안에 들여보내 준다고 하네! 가서 가운데자리 딱 차지하고 있다 이것저것 많이 받아올 겨!”
“끼이이잉!”
그러나 노파는 내 반대를 무시한 채 제 딴에는 생색이라도 내려는 듯, 말표 사료를 그릇에 넘치도록 담았다. 그리곤 찬장을 열고 개껌을 하나 꺼냈다. 겉이 육포로 말려있는 그것은 내가 환생한 날, 내 엉덩이를 때렸던 동물병원의 직원이 주었던 것이다.
‘하아, 저게 저기 있었구나. 아니 진작 안 주고 뭐 했대? 나도 받은 것조차 까먹고 있었네.’
어쨌거나 말표 사료보다야 훨씬 나은 맛일 건 분명했다. 개껌을 물고 꼬리를 흔들어 대는 날 놔둔 채 노파는 서둘러 문을 닫고 나갔다.
***
시간은 한참이나 흐르고 있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텔레비전을 틀어 버라이어티 쇼와 음악 프로를 실컷 봤다. 어차피 혼자인 이 시간, 즐길 때는 제대로 즐기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TV를 보다 꾸벅꾸벅 졸던 나는 ‘아! 그것!’하고 벌떡 일어나 오줌을 한 번 싼 후 조은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별달리 볼 것이 정말 없었다. 스무 살 신입생의 방이라기엔 정말로 초라한 방이었다. 가구며, 침구, 작은 소품 하나도 눈이 갈만한 구석이 없었다. 또래들이 흔히 갖고 있을 인형 같은 것도 없는 그런 방이었다.
아주 가끔, 조은이는 안고 있던 나도 내려놓은 채 가만히 문을 닫을 때가 있었다. 귀를 문에 대어 보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왜 우는지 알기 위해 낑낑대도 바로 열어주지 않았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야 발개진 눈으로 ‘우리 해피, 누나 보고 싶었어? 많이 기다렸지.’ 하며 꼬옥 안아줄 뿐이었다.
그런 조은이를 못 본 체하는 노파도 이상했다. 다만, 그랬던 어느 날, 살짝 닫히다 만 서랍 안 그곳에 무언가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서랍이었지.’
꽉 닫혀있는 서랍은 개의 몸으로 열기가 꽤나 힘들었다. 앞발로 아무리 노력해도 겉을 긁기만 할 뿐 앞으로 잡아당길 수가 없었다.
결국 아랫니로 손잡이 부분을 물고 잡아당기는 행위를 수십 번을 해서야 겨우 열 수 있었다. 턱이 바스러질 듯한 아픔을 뒤로하고 나는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살폈다.
‘아, 이게 뭐야? 그랬구나…’
앨범과 사진들, 그리고 액자. 앞발로 그것을 모두 꺼내어 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적어도 가장 위에 올려진 액자만 봐도 조은이가 왜 울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얼굴을 그대로 축소해 놓은 듯한 조은이는 테마파크에서 작은 놀이기구를 타며 활짝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선 키가 큰 체구의 남성과 누가 봐도 조은이의 엄마라 할 정도로 꼭 닮은 외모의 아름다운 여성.
그 셋은 너무나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겨우 그 액자를 들어 젖히자 아기 때, 아마 돌 무렵인 듯한 조은이의 사진이 나왔다. 다른 사진들도, 크기는 지금과 그다지 큰 차이는 없지만 훨씬 깨끗하고 따뜻해 보이는 방 안에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엄마나 아빠의 품에 안겨있고 사과를 베어 물며 웃기도 하는 그 모습들.
‘그래. 어린이집에서는 이랬었구나. 초등학교 때엔 피아노도 배웠었고.’
어쩌다 할머니와 둘이 살게 되었는지 그 세세한 사정이야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조은이에게 너무나 따뜻한 가족이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친김에 바로 위의 서랍을 열자마자,
나는 바로 다시 닫았다.
방금 봤던 조은이 부모의 영정 사진들.
‘하아…’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실제로 눈으로 보니 더욱 막막했다.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이런 환경을 남기고 갔다는 것은 무언가 경제적 보상(물론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이 뒤따르는 사고 같은 일은 아니었을 것이었다.
‘더 생각하지 말자. 앞으로도 울고 싶어 하면 조용히 나와주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밑의 서랍도 모두 닫았다.
그때,
– 덜컹!
바깥, 1층의 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낯익은 목소리.
“아유, 집도 지저분한데 뭘 꼭 따라와서 커피를 드신다고.”
“공연도 잘 끝났고 저녁도 얻어먹었으니 마무리로 우리 여사님이 타 주는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려 하지요. 어허허.”
나는 화들짝 놀라 재빨리 조은이의 방을 뛰쳐나왔다.
그러고 보니 벌써 창문 밖은 캄캄했다. TV를 보고 낮잠도 자고 탱자탱자 놀다 보니 이렇게나 시간이 간 줄 몰랐다.
그나저나, 방금 뭐? 저녁을 얻어먹어? 아니 점심 먹고 공연만 보고 온다면서요? 설마 점심에 저녁까지?…는 설마… 설마, 아니죠?
나는 내 머릿속의 빚태창에 신경을 집중했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3,514만 6,230원]빚이 5만 원이 늘어나 있었다.
‘뭐, 뭘 처먹었길래! 게다가, 아니 저 사기꾼에게 왜 자꾸 밥을 사는 거야!’
“왈! 왈! 왈! 왈!”
나는 분노에 차 맹렬히 짖어댔다. 들어오지 마, 여긴 너 같은 사기꾼이 들어올 데가 아니야! 당장 나갈지어다!
“아유, 요놈의 개가 왜 이렇게 짖어대? 그나저나 귀생 오라버니처럼 귀한 분 모시기에는 방이 지저분해서 민망헌디…”
“여사님과 커피 한잔만 할 수 있다면야 그곳이 바로 알라스카 사막의 오아시스요, 진나라 진시황이 머물던 그 궁전, 그… 그… 덕수궁 그거 아니것어유?”
“아유, 우리 귀생 오라버니 아시는 것도 많으셔.”
‘알래스카에 사막이 어디 있고, 덕수궁에 진시황이 언제 살았냐. 그리고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박복녀, 당신은 대체…’
– 쾅!
기세 좋게 문이 열린 가운데, 양손에 두루마리 휴지를 든 노파가 이제 막 첫사랑을 시작한 소녀와도 같은 얼굴로 들어왔다.
그 뒤로 술기운에 얼굴이 불콰해진 귀생이가 연신 헛기침을 하며 따라 들어왔다.
“왈! 왈! 왈! 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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