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206
208. 미국에서의 똥꼬쇼(3)
리허설이라고 해서 본 행사처럼 제대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무대를 세팅하고 음향을 손본 후 미리 준비된 룰렛 게임과 여러 소품을 가져다 놓는 정도였다. 조은이가 마이크 테스트를 하는 가운데, 나는 무대 위에 조용히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맑은 겨울 하늘. 높다란 나무들과 건물들.
이제 첫 행사의 시작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온 힘을 다해 한 시간을 즐겁게 채우리라.
큰 소리가 없더라도 우리의 무대는 대로변의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있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오가는 이들이 무대와 무대 위의 나, 그리고 무대 벽면에 미리 걸어둔 내 사진과 초코똥의 제품 사진을 보며 놀라워했다.
“왈! 왈왈!”
나는 사람들을 보며 신나게 짖었다. 이따가 오후 6시에 오라고, 와서 내 똥꼬쇼를 보라고.
한 여자의 품 안에 있던 치와와가 그런 나를 보며 맹렬히 짖어댔다. 그래도 고마웠다.
‘오늘,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K-잡종의 매력을 보여줄 것이다.’
비장한 각오로 꼬리와 귀를 흔들고 있는 나를 향해 사람들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럼, 여기서 비장의 한 수!
– 휙!
나는 뒤로 돌아 엉덩이를 사람들에게 드러냈다. 그리고 실룩 실룩대며 형광색 꼬리를 흔들었다.
마치 심해어가 불이 빛나는 더듬이를 흔들며 먹이를 유혹, 다가오면 큰 입을 벌려 잡아먹는 것처럼 그렇게 실룩였다.
“Wow! I think that’s amazing. (와우! 뭔가 아주 신기한데?)”
“What kind of event will take place in here later? (이따가 어떤 이벤트가 일어나는 거지?)”
“I get it! I saw this dog on TV! (난 알겠어! 이 강아지, TV에서 봤단 말이야!)”
몇몇이 호응을 했다. 그렇다면 좋다. 조은이도, 아만다도, 다른 직원들도 각자 이것저것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을 이때!
나는 뒤뚱거리며 엉덩이를 내렸다. 그리곤 힘을 주었다.
‘이상하네, 아까 신나게 싸서 안 나오는 건가? 얼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잖아!’
나는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계속 힘을 밀어넣으며 집중했다. 그러나 너무나 갑작스럽게 정한 것이라 그런지, 똥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1분, 2분…
바보 같은 자세로 계속 힘을 주던 내게 드디어 신호가 왔다!
나는 똥으로 간단하게 하트를 그리곤 이것 보라는 듯 신나게 뒤를 돌았다.
‘엥?’
너무 시간을 끌었을까, 아까 ‘오오’하는 소리를 내던 사람들은 전부 사라지고, 종이 박스로 만든 팻말에 [HOMELESS! HUNGRY! PLEASE HELP! THANK YOU! GOD BLESS!]라 쓴 것을 목에 건 한 노인이 커다란 개 한 마리와 함께 내가 싼 하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잔뜩 썩은 이빨로 박수를 치는 그의 모습, 그리고 그 옆에서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개.
“왈! 왈왈!”
나는 꼬리를 흔들며 내 똥꼬쇼의 유일한 관객을 위해 고맙다고 짖었다. 그때, 내 눈에 아까 아만다가 조은이를 위해 사 온 샌드위치와 햄버거 봉투가 눈에 띄었다.
얼른 거기로 뛰어간 나는 노인이 사라지기 전에 그 봉투를 물어서 끌고 와 무대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어서 가져가라고 크게 짖었다.
노인과 개의 눈이 그 봉투로 향했다. 케이스에 든 샌드위치, 햄버거, 감자튀김.
하지만 앞에는 무대 설치와 동선 확인, 동영상 파일 재생 확인 등으로 정신이 없는 이들이 있었다.
“Are you giving this to me? (이것을 내게 주는 것이냐?)”
“왈! 왈!”
‘뭐라는 거야! 영어는 모르니 어서 가져가요!’
나는 재빨리 코로 그것을 노인에게 밀었다. 그러나 노인은 차마 손을 대지 못한 채 계속 사람들을 힐끔힐끔 쳐다볼 뿐이었다. 함부로 내가 내민 것에 손을 뻗쳤다가 절도 현행범이 될 것을 겁내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욕설과 함께 쫓겨나는 수모까지 더해질 수도 있었다.
“어? 해피야, 뭐해? 앗! 언제 똥 쌌어!”
조은이가 아만다와 이야기를 하던 중 날 바라보며 소리를 쳤다.
“언제 이렇게 하트 똥을 싼 거야? 도대체 뭘 본 거야.”
그때 조은이의 눈이 무대 앞에서 날 보고 있는 겁먹은 표정의 노인과 개에게 향했다. 그리고 앞에 놓인 자신의 점심.
모두의 눈길이 이쪽으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바람이 불어오면서 노숙자의 몸에서 나는 악취가 이쪽으로 강하게 풍겨왔다.
“Hey, please get out of here. We’re busy preparing for the event right now! (이봐요, 여기서 나가주세요. 우리는 지금 이벤트를 준비하느라 바쁘다고요!)”
직원 하나가 노인을 향해 소리쳤다. 아만다도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그때 조은이의 손이 종이봉투를 집었다. 그리곤 천천히 노인을 향해 내밀었다.
“Here, take this. You don’t have to thank me. And wait a minute. (이것 가져가세요. 고마워하지 않아도 좋아요. 그리고 잠시만요.)”
조은이가 한곳에 놓여 있는 따뜻한 커피를 하나 집었다. 그리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매장에서 날 위해 놓아둔 작은 사료 포대와 애견 간식도 챙겼다.
‘헛! 저 간식은 나도 안 먹어본 것인데!’
노인의 손에 커피를 쥐여준 조은이는 사료와 간식도 내려놓았다.
“I think the dog is very hungry. Take it. And at 6pm, there’s a fun event going on here, so come and see! (강아지가 배가 많이 고픈 것 같아요. 어서 가져가세요. 그리고 오후 여섯 시에 이곳에서 재미있는 이벤트가 열리니 구경 오세요, 꼭이요!)”
노인의 눈이 조은이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Thank you, thank you very much. God bless you! (고마워요, 정말로 고마워요. 신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모두가 조용한 가운데, 노인은 품 안 가득 조은이가 챙겨준 것들을 들고 비틀거리며 공원 쪽을 향해 사라졌다.
***
[Ladies and gentlemen, a very special dog from Korea! Winner of Animals Got Talent! ‘Happy’ has arrived in San Francisco with a surprise gift! (신사 숙녀 여러분, 한국에서 온 매우 특별한 강아지! Animals Got Talent의 우승자! ‘해피’가 깜짝 놀랄만한 선물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습니다!)]그리고 터지는 음악 소리, 사람들의 박수.
설치된 대형 화면을 통해 Animals Got Talent의 영상과 동영상 채널에 올려진 내 영상들의 하이라이트 편집본이 나왔다.
“자아, 멋지게! 힘내요!”
아만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삐에로 옷에 빨간 주먹코를 단 나도 조은이의 품 안에서 긴장감을 떨치기 위해 ‘왈!’하고 강하게 한 번 짖었다.
이윽고 우리를 소개하는 멘트가 나옴과 동시에 우리는 직원의 손짓에 따라 무대 위로 올라왔다.
“세, 세상에!”
“와울…”
조은이와 나는 깜짝 놀랐다. 무려 수백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 메인 스트리트 앞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속에는 나와 조은이가 인쇄된 티셔츠를 입은 이들도 보였다.
“Hey, Joeun! Happy! I’m a subscriber to your channel! Gimlet is me! (헤이, 조은! 해피! 나는 당신 채널의 구독자야! Gimlet이 나라고!)”
사람들의 박수 사이로 들려온 함성에 조은이가 손을 흔들었다.
“Hello, Gimlet! You said you’d come right away if I really came to San Francisco, and you kept your promise. Thank you. (안녕, 김렛! 정말로 샌프란시스코로 오면 당장 오겠다더니, 약속을 지켰네. 고마워요.)”
마이크를 쥔 조은이가 유창한 영어로 대답하자 관객들 사이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행사가 시작되었다.
조은이와 나의 소개가 다시 한번 이어지는 가운데, 나와 조은이는 가벼운 레크리에이션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움직였다. 특히 미리 연습한, 손가락으로 빵! 하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조은이가 실망하며 뒤돌아서면 그제야 ‘왈!’ 짖고 뒤늦게 쓰러지는 연기는 많은 이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제품 소개와 함께 시작되는 시연 참가자 모집. 몇몇 이들이 손을 들고 무대로 올라와 초코똥의 다양한 기능을 체험하고 직접 초코똥의 똥꼬에서 나오는 초코바를 맛본 후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이후 이어지는 룰렛 게임, 그리고 사진찍기와 사인.
아까 자신의 이름을 외친 청년이 웃으며 조은이에게 다가와 조은이와 내가 인쇄된 티셔츠를 펼쳤다. 거기에 멋지게 사인을 한 조은이! 나는 미리 준비한 인주를 내 발로 밟은 후, 티셔츠를 꾸욱 밟았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함께 온 다른 개똥팸 회원이 ‘Today is such a fantastic day. (오늘은 정말 판타스틱한 날이야.)’라며 카메라로 찍었다. 자신의 채널에서 라이브를 진행하는 듯했다.
정말로 정신이 없었다. ‘1시간을 어떻게 채우지’가 아니었다. 뜨거운 호응과 사람들의 사진 요청으로, 준비된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대망의 똥꼬쇼!
신나던 유로 비트의 댄스음악이 사그라지면서 멋진 빅밴드의 크리스마스 캐럴 연주가 흘러나왔다. 미리 ATOZ 메가스토어와 이야기를 한 대로, 캐럴과 함께 건물의 외벽에 장식된 다양한 전구들이 환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탄성 사이로,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초록색 옷에 빨간색 주먹코를 붙인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뒤로 돌아 미리 준비한 하얀 종이 위에 글자를 썼다.
그 종이에는 [Merry]가 인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의 빈 공간.
[X-mas]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샌프란시스코의 화려한 도시 야경 사이로 은은하고 구릿한 개똥 냄새가 거북하게, 아니 거룩하게 피어올랐다.
멋진 첫날의 행사였다.
***
“자아! 이제 시간 없어요. 허리 업! 얼른 옷 갈아입어! 이미 짐들은 다 차에 실어놨으니까.”
“일정이 정말 어마어마한데요?”
“그래도 지금 빨리 가서 티케팅을 해야 해요. 다행히 가서 하루는 온전하게 쉴 수 있으니까 그것만 믿고 가자고요.”
모여든 이들에게 인사를 마쳤음에도 계속해 몰려드는 이들과 사진을 찍어주고 사인을 해 주느라 너무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다.
간신히 직원들과 인사를 마친 조은이는 날 들고 정신없이 주차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앞서서 쇼핑백을 들고 뛰던 아만다가 연신 핸드폰을 확인하며 ‘오마이갓’을 중얼거렸다.
“지금 완전 황금 시즌이거든요? 놓친다고 하면 다음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가능성이 없어요. 대기자가 어마어마하니까. 그도 안 된다면 정말로 우리는 열 시간 가까이 운전을 해야 할 거야.”
“아아, 큰일 났네요. 헉, 헉!”
“차라리 확실히 늦으면 포기를 할 텐데 이런 애매한 시간이 싫어. 헉, 헉!”
주차장에 도착한 조은이와 아만다는 얼른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시동을 걸고 ATOZ 메가스토어를 빠져나오자마자 도로에 갇혀야 했다.
황금 시간대. 아니, 지옥의 시간대. 무대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며 신났을 때는 몰랐지만 이 도심을 지금 시간대에 헤쳐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만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어떡하지? 미치겠네?”
“그, 그냥 포기하고 차로 갈까요?”
“아아, 아주 피곤할 거예요. 열 시간은 걸릴 거야. 아니, 이렇게 막히는 걸 보면 열두 시간?”
앞에 멈춰있는 택시를 향해 아만다가 얼른 가라고 경적을 울렸다.
그때였다. 길거리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창문을 두들겼다. 깜짝 놀란 나와 조은이는 그 사람이 아까의 노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Miss, thank you so much. How can I help you? (아가씨, 아까는 고마웠소. 내가 무엇을 도와줄까요?)”
노인의 말에 조은이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I have to go to the San Francisco airport, but I can’t seem to get out of this main street. Looks like I’ll miss my flight. It seems I can’t help it.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이 메인 스트리트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요. 비행기를 놓치게 생겼어요. 어쩔 수 없을 듯해요.)”
노인은 가만히 ‘The airport? If you’re going to the airport, you’d better turn around and go. (공항? 공항이라면 차라리 돌아서 가는 게 낫겠군.)’라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아만다가 노인을 쳐다보며 퉁명스레 외쳤다.
“Sir! I can’t go back anyway. I can’t turn it back. (할아버지! 어차피 돌아갈 수도 없어요. 돌릴 수 없다고요.)”
그 말을 들은 노인이 웃었다.
“No, I know all the alleys here. Trust me, I’ll get you to the airport perfectly. (아니, 여기의 골목은 내가 모두 알고 있지. 날 믿어, 내가 너희를 완벽하게 공항으로 데려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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