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208
210. 미국에서의 똥꼬쇼(5)
“우와, 해피야! 진짜 멋있다. 그치?”
“조은 씨, 저기 봐봐. 저기가 그 페이머스한 ‘더 스트립’이야. 딱 봐도 호텔들 아주 쿨하다. 저긴 뭐랄까 미국의 청담동? 여하간 그런 느낌의 엄청난 거리야. 나도 조은 씨 때문에 처음 와봐! 땡큐!”
“와아, 장난 아니네요! 해피야, 보고 있어?”
“와, 왈…”
나는 억지로 웃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지난밤에 검은 그것으로부터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치매.
당장 그 단어에서 떠오르는 것 중에 당연히 긍정적인 이미지는 없었다. 그리고 우연히도 나는 공장의 한 형님이 애지중지 키우던 애견이 치매에 걸렸다는 넋두리를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 귀신같이 잘 가리던 애가 찔끔찔끔 여기저기 막 싸지를 않나,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지를 않나, 늘상 가던 골목인데 절대 안 가려 하지를 않나. 얼마 전엔 나도 물려고 하더라니까?
다행히도 그 형님의 말 중에 내게 해당하는 것은 겨우 오줌을 지리는 정도였다.
얼마 전 조은이의 침대에서 오줌을 지렸을 때도, 그저 기뻐서 지린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 첫 번째는 내 스스로 인지를 했지만 두 번째의 오줌은 스스로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생각해보니 그 외에도 그런 적이 꽤 있었다. 하칸의 가게 앞에서 노파가 실수를 할 때도 배를 뒤집고 누워 웃으면서 저도 모르게 오줌을 질질 쌌었다.
‘아, 안 되는데. 안 되는데!’
내가 점점 더 치매가 심해질수록 조은이는 방송이나 다른 일을 그만두고 나와 함께 있으려 할 것이었다. 그야 나쁠 건 없었지만 그렇게 한다는 것은 곧 소득이 크게 줄어들 수도 있음을 의미했다. 누가 치매 걸린 강아지의 사진을 걸어서 사료를 팔고 아이스크림을 팔겠는가.
건강을 유지해야 했다.
다행히도 지금 난 거의 멀쩡하다. 겨우 배뇨의 문제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치매는 치료할 수 없다. 그저 진행을 늦추는 것이 최선일 뿐이었다. 아무리 내가 바보고 상식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 정도의 얻어들은 풍월은 있었다.
그렇다면 일단!
‘우, 운동이다! 운동을 하고 계속 두뇌를 써야 해!’
나는 일부러 허리와 가슴을 바짝 폈다. 그리고 걸음 하나에도 온 힘을 담았다.
“어머, 해피야! 갑자기 왜 이렇게 늠름해졌어? 기분 좋은 일 있는 거야?”
“와, 왈! 왈!”
나는 제식동작을 시범 보이는 해병대 조교처럼 매의 눈을 한 채 각을 잡고 다리를 움직였다. 온몸의 근육을 깨워야 했다. 그리고 두뇌도 써야 한다!
‘1 더하기 1은 2, 2 더하기 2는 4, 4 더하기 4는 8, 8 더하기 8은 16, 16 더하기 16은 32…’
결국 128 더하기 128에서 잠시 멈칫거린 나는 이런 하찮은 것으론 두뇌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얼른 더하기를 지워버렸다.
‘이, 일본의 수도는 도쿄, 중국의 수도는 베이징,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 러시아의 수도는 모스크바, 이탈리아의 수도는 로마, 영국의 수도는 런던, 프랑스의 수도는 파리, 독일의 수도는 베를린, 탄자니아의 수도는… 엥? 갑자기 웬 탄자니아!’
결국 탄자니아의 수도 또한 머릿속에서 떠나보낸 나는 무언가 계속 머리를 굴릴 생각을 하다 저도 모르게 소화전에 머리를 부딪쳤다.
– 쿵!
“깨앵! 깨애애앵!”
무쇠로 만든 소화전은 아프기 그지없었다. 아파서 깽깽대는 요란한 귀 색깔의 나를 보곤 지나가는 모두가 웃음을 지었다. 조은이 또한 ‘아프겠다, 우리 해피!’하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앞을 보고 가는 것인지라 무의식적으로 오가는 사람이나 장애물은 피했다. 그런데 이렇게 빤히 앞에 있는 소화전에 머리를 부딪치다니!
‘아냐, 단순한 실수일 거야. 원래 난 머리가 좋지 않으니까.’
그러나…
‘아니지? 이건 지능의 문제가 아니야. 반사신경의 문제, 몸 자체의 문제라고!’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이런 간단한 실수마저 이제는 무언가 걱정이 되고 압박이 되었다.
결국, 이날 나는 산책을 유쾌하게 끝낼 수 없었다.
***
“어라? 왜 안 먹어! 입에 안 맞아? 우리 해피 좋아하는 고기인데.”
조은이가 이상하다는 듯 내 그릇에 닭고기를 두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행히 소스에 범벅이 된 고기는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조은이는 구운 것보다 삶은 것을, 소스가 묻어있다면 물로 씻어서 줄 정도로 나름 내 건강을 생각하는 아이였다. 오히려 그런 것들보다 더 자극적인 것에 환장하고 찾아 먹는 내가 문제였지.
난 내 앞에 놓인, 물로 한 번 씻어낸 닭고기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조용히 그것을 코로 밀어내고 말표 사료를 씹어 먹기 시작했다.
“어? 왜! 이거 맛있는 거야. 일부러 사서 껍질도 다 벗기고 기름 부분도 다 뜯어냈어.”
“끼이이잉…”
나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당장 몰래 컴퓨터를 켜서 개 치매 예방이나 관리법을 알아봐야겠는걸.’
나는 묵묵히 사료를 먹으며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을 떠올렸다.
결국 조은이는 날 꼭 안아주고는 호텔 본관으로 사라졌다.
혹시나 검은 그것이 다시 나타날까, 나는 어제 그가 나타났던 모퉁이를 노려보며 한참을 서 있었으나 그것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쳇, 괜히 나타나서 걱정거리나 던져주고 가다니. 당장 나와봐!’
나는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대며 ‘왈! 왈!’하고 짖었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다음 날. 우리가 간 장소는 ‘더 스트릿’ 인근에 있는 라스베이거스의 유명한 대형 쇼핑몰 중 하나, 웨스트 프리미엄 아울렛이었다. 그 커다란 쇼핑몰은 동서남북으로 모두 커다란 문이 나 있었다. 정문이 네 개인 것과 다름없었다.
그중에서도 남쪽 문이 우리가 행사를 벌일 장소였다.
쇼핑몰에 입점한 업체에 방문한 아만다가 우리를 소개하고 오늘 행사 준비를 점검했다. 그저께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이벤트가 얼마나 성황리에 진행되었는지, 그리고 초코똥에 대한 판매와 예약으로 얼마나 이어졌는지를 이미 전달받은 매장은 크게 고무되어 있었다.
“And since this is Las Vegas, there are clothes prepared for Happy to suit the characteristics of this city. (그리고 여기가 라스베이거스이기 때문에, 이곳의 특징에 맞게끔 해피를 위해 준비를 한 옷이 있어요.)”
매니저가 웃으며 강아지 옷을 내밀었다.
마치 인어공주처럼 비늘이 잔뜩 붙은 옷. 그러나 그 비늘은 하나하나가 다 금화 모양이었다. 눈이 찬란하게 빛날 정도로 반짝이는 황금 옷. 조은이와 아만다, 그리고 내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재빨리 세팅을 시작한 무대. 곳곳에 내 사진이 인쇄된 현수막이 붙었다.
“해피다! 우와!”
엇, 이것은 한국어?
조은이와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라스베이거스로 여행을 온 듯한 한 떼의 한국인들 중 젊은 커플이 우리를 쳐다보며 손으로 가리켰다.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라스베이거스, 하지만 이런 곳에서 한국인을 만나니 너무나도 반갑기 그지없었다. 나도 방금 전까지 우울했던 기분을 조금이나마 뒤로 밀어놓고 힘차게 짖으며 이역만리에서 만난 이들을 향해 반가이 꼬리를 흔들었다.
“우와, 진짜 해피다! 여기 사진 붙은 것 좀 봐!”
“어머, 안녕하세요! 해피 알아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해피 동영상 정말 엄청 봤어요. 짤방으로도 보고. 되게 신기하다. 미국에는 어떤 일이세요?”
모여드는 한국인 관광객을 향해 조은이와 아만다는 오늘 오후 6시에 멋진 이벤트가 있을 것이라는 걸 신나게 설명했다. 아울러 와서 꼭 자리를 빛내주시라, 다양한 경품도 준비해 놓고 있다며 다시 보러 오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It’s not a main street, but it’s historically known as a shopping hotspot. A lot of movies have been filmed on this street, in this mall. Surely today will be a wonderful day. (여기는 메인 스트리트는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쇼핑의 명소로 알려진 곳입니다. 수많은 영화들이 이 거리, 이 쇼핑몰에서 촬영되었어요. 분명 오늘은 멋진 날이 될 것입니다.)”
쇼핑몰의 간부로 보이는 양복을 입은 중년의 신사가 조은이와 아만다를 향해 쇼핑몰을 소개하는 듯한 말을 했다. 그리고 그의 눈이 나를 향했다.
“Wow… This dog looks powerful enough to chase away even ‘Chucky’. Hope he brings great luck here. (와우… 이건 마치 ‘처키’도 당장 쫓아버릴 정도로 강한 강아지군요. 부디 이곳에 큰 행운을 가져오기를.)”
나는 그의 미소를 바라보며 힘차게 짖었다.
***
수많은 이들의 환호. 그리고 카메라 세례.
지나가던 각양각색의 관광객들이 모두 멈춰서 이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조은이의 신호에 따라 바보같이 엉덩이를 실룩거리고 놀라서 쓰러지는 등 슬랩스틱 코미디를 이어갔다. 번쩍이는 황금 옷 뒤로 드러난 돈 똥꼬가 신나게 사람들을 향해 움직였다.
“This is a lot more fun than the theater show I just watched. (방금 봤던 극장의 쇼보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는데?)”
관객들 사이에서 누군가 크게 외치자 다들 폭소를 터트렸다.
라스베이거스에서도 현지 개똥팸이 나타난 것 또한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다. 행사가 나의 화려한 [X-mas]로 끝이 났고, 이어지는 기념촬영, 사인행사에도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하나하나의 이름을 적어 사인을 마친 조은이가 미리 택시를 앞에 준비해 둔 아만다의 손짓을 보곤 크게 소리쳐 감사의 인사를 표한 후, 날 들고 택시로 뛰어갔다.
“앞으로 렌트하지 말고 택시를 타는 것이 훨씬 낫겠어. 진작 우버를 이용할걸.”
“그런가요?”
“다행히 지금은 충분히 시간에 여유가 있긴 한데… 리슨? 도착하면 새벽 3시는 넘을 테고, 푸욱 자고 나서 바로 일어나 이벤트 매장으로 가야 해요. 어제 푹 쉬길 잘했죠? 이제 며칠간 왓더헬이라고.”
“하하하, 어쩔 수 없죠.”
우리를 태운 택시가 천천히 라스베이거스 공항으로 향했다. 운전석과의 플라스틱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빙 크로스비가 부드럽고 깊은 음색으로 캐럴을 불러댔다.
화려한 네온사인, 그보다 더 화려한 건물들과 사람들. 저 멀리 보이는 카지노의 불빛. 끝이 없는 빌딩들과 호텔들.
그것들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어쩐지 그 모습이, 지금까지 건강하게 뛰어놀고 열심히 짖고 똥을 싸던 내 모습이 점점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입도 덜덜 떨렸다.
나는 불안한 눈으로 날 안아달라고, 제발 안정시켜 달라고 조은이의 품에 파고들었다.
“어머, 해피야. 왜 그래? 뭐가 무서워?”
조은이가 날 쓰다듬었다.
그래도 무어라 표현을 할 수 없었다. 무턱대고 시간이 날 때 조은이의 앞에서 똥으로 ‘치매’라고 쓸 수도 없을 터였다. 그랬다간 당장 모든 것이 멈춰질 것이고 조은이는 그대로 날 데리고 한국으로 울면서 귀국할 것이 뻔했다.
‘이, 일단 이번 미국 행사만 잘 끝내자. 그게 최선이야.’
나는 조은이의 품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저 멀리 라스베이거스의 공항이 보이는 가운데, 택시는 기분 좋게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뜨고 내리는 비행기들, 라스베이거스에 어서 오라는, 또는 안녕히 가라는 간판들이 휙휙 지나갔다.
나는 멍한 눈으로 그것들을 쳐다보았다.
‘다음에 이동할 도시가 어디더라? 휴스턴이었나, 애틀랜타였나.’
그러나 전혀 떨리지 않았다. 기쁘지도 않았다.
그저 두려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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