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211
213. 일상으로의 회귀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
노파는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조은이가 아무리 옆에서 애교를 피워도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정말 미안해, 할머니. 워낙 바쁘고 피곤한 일정이라 생각도 못 했어. 빨리 할머니 보고 싶단 생각뿐이었단 말이야.”
“내가 미국에서 뭐라도 선물 사 올 것이라고 얼매나 점쟁이헌티 자랑혔는데! 아파트 지나가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붙잡고 우리 손녀가 미국 갔다고 얼매나 자랑혔는데!”
“아니, 그러니까 뭐 유학 간 것도 아니고 글로벌 회사, 아니 외국 회사 취업한 것도 아닌데 그런 걸 왜 자랑해.”
“하칸한테도! 괴밥 먹으러 오는 사람들에게도! 라면 끓여달라는 애들헌티도 우리 조은이랑 해피가 미국에 초대받아서 갔다고, 두고 보라고 엄청난 선물을 사 올 것이라고 얼매나 자랑혔는데! 어떻게 껌 한 통, 쪼꼴렛 한 쪼가리도 안 사 오냐!”
“하아…”
조은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 조은이뿐만이랴. 나도 저 늙은 꼬장에 한숨을 푹 내쉬곤 얼른 아파트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그건 뭐시여?”
“이거?”
노파의 눈이 조은이가 들고 있는 쇼핑백으로 향했다. 그리곤 조은이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재빨리 낚아채 안에 들어 있는 옷을 꺼냈다.
“아유, 이쁘다. 여기 영어도 적혀 있고.”
“아, 그거 이번에 나 미국에 있는 동안 많이 도와준 현지 직원 언니가 선물로 준 거야.”
“아유, 참말로 이쁘네. 질도 좋고.”
“그치? 그래서 이거 입을 때마다 같이 미국에서 함께 했던 추억을…”
“아유, 내일 입고 가면 딱이것네. 나헌티 딱 맞겠다.”
애당초 조은이의 말은 듣고 있지도 않았다. 아니, 네가 들어도 나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는 무언의 통보이자 압박이었다.
노파가 매의 눈으로 조은이를 쳐다보았다.
“으, 응. 할머니가 괜찮다면야. 나도 할머니 안 입을 때 입으면 되니까.”
조은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박복녀지.
나는 진심으로 내가 한국에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
“코오오오… 코오오오…”
쌔근쌔근, 그러나 아주 깊이 잠이 든 조은이의 품에서 나는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리곤 슬쩍 안방으로 다가가 보았다.
“쿠라라라라랑! 피슈우우우우~. 쿠라라라라랑! 피슈우우우우우~.”
– 부드더더더덕! 더더덕! 더덕! 덕! 덕! 덕!
“쿠흡!!!”
노, 노파도 제대로 잠이 든 것이 맞았다. 나는 비틀거리며 안방에서 나와 컴퓨터 책상에 풀쩍 뛰어올랐다.
그리고 전원을 켜고 부팅이 끝나자 웹 브라우저를 열었다.
‘천천히… 한 자 한 자 치자.’
[개 치먀]‘아니, 아니!’
나는 어둠 속에서 간신히 백스페이스키를 눌렀다.
[개 치메]‘어허!’
‘그렇지!’
마우스로 돋보기 버튼을 누르니 수많은 정보가 쏟아졌다. 그중에서 가장 믿을만한 링크를 찾아 클릭했다.
[강아지 인지기능장애증후군]무언가 치매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병명이 떴다. 아니, 원래 저게 정식 병명이고 우리는 그것을 그저 개 치매라 부르는 것이리라.
나는 침을 꿀꺽 삼킨 후 스크롤을 천천히 내렸다.
‘방향감각 상실, 상호작용 변화 등 평소에 나타나지 않은 이상행동들이 나타나며 규칙적인 일상이 깨지기 시작한다라…’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가끔 나오는 소변을 참을 수 없다는 정도? 물론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확실히 현저하게 횟수가 증가하고 있었다. 나는 긴장한 채 계속해서 다음 내용을 읽었다.
[흔히 ‘디샤’(DISHA)라는 약자로 요약된다. ‘방향감각 상실’(Disorientation), ‘상호작용 변화’(Interaction Changes), ‘수면시간 및 패턴 변화’(Sleep and wake cycle change), ‘실내 배변실수’(House soiling), ‘활동량 변화’(Activity level changes)가 꼽힌다. 평소와 다른 이상행동을 보이는 게 대표적이며 벽을 마주한 상태에서도 벽을 밀고 있거나 같은 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서클링’도 나타날 수 있다.]*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강아지 인지기능장애증후군
나는 마우스의 스크롤을 멈췄다.
지금의 이 요란한 귀와 꼬리를 한 내가 멍한 표정으로 벽을 낑낑대고 밀거나 자리에서 뱅뱅 도는 모습을 생각해보니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그 외에도 반려인에 대한 접촉이 줄어든다거나 가구 등에 부딪히고, 좁은 공간 사이를 무리해서 통과하려 하거나 매일 가는 길을 낯설고 두려워한다는 것 등이 나타났다. 그리고 가장 슬픈 것은 반려인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고 낯설어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내가 조은이를.’
어떤 증상들도 모두 슬프고 끔찍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조은이가 날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건 하늘이 두 쪽 나도 알 수 있었다. 다만 그 반대로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받고 서로를 향해 눈물을 흘릴 것이었다.
‘안 돼, 안 돼!’
나는 서둘러 스크롤을 내려 지금과 같은 극초기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균형 잡힌 식사나 주기적인 운동으로 자극을 늘려줘야 한다라. 그리고 새로운 길을 많이 다녀서 뇌를 일깨우는 게 좋다고? 특히 취침 시간을 엄격하게 유지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그 말을 확인한 순간 나는 바로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책상에서 풀쩍 뛰어내려 조은이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잠을 자야 할 시간.
나는 불안감과 실망감에 젖은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치매의 진행을 늦추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찾아야 했다. 그래야 이 해피의 몸 안에 들어가 있는 동안 끝까지 버티고 내가 해야 할 것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다음 날.
알람과 동시에 나는 벌떡 일어나서 거실로 나가 열심히 너른 벽면을 따라 규칙적인 보폭으로 걸었다. 이젠 운동도 습관화, 먹고 자는 것도 규칙화해서 지킬 생각이었다.
아파트의 거실이 주방까지 합치면 상당히 넓었기에 열 바퀴 가까이 도는 것만 해도 지쳐 늘어져 있던 몸을 깨우는 데엔 충분한 자극이었다.
“오메, 저 똥개가 지금 뭐 하는 것이여?”
“왈! 왈왈!”
나는 방해하지 말라며 노파를 향해 짖고는 밥그릇으로 가서 말표 사료를 천천히 오래 씹어먹었다.
– 까드득 까드득!
한번 입에 넣으면 최소 15회에서 20회 씹고 넘기기! 다음엔 물! 물도 충분하게 마시기!
– 찹! 찹! 찹!
그다음엔 소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가볍게 조은이의 방을 산책해 조은이를 깨우기!
나는 신나는 걸음으로 조은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오래간만에 자신의 방에서 단잠에 빠진 조은이의 품을 파고들어 꼼지락거리며 조은이를 깨웠다.
“으, 으응~! 해피야. 누나 조금만 더, 응? 어차피 방학이잖아.”
‘아, 그래. 피곤하겠지.’
나는 이불을 물어서 조은이의 목까지 끌어당겨준 후 보무도 당당하게 노파의 방으로 들어갔다가 치매를 악화시킬 독가스의 잔향을 맡곤 서둘러 나왔다.
“이 똥개가 신기허네. 얼른 가서 조은이 깨워라.”
“왈! 왈왈!”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짖었다. 적어도 충분한 휴식은 보장해줘야 했다.
노파는 어쩔 수 없이 거실의 TV를 틀어놓은 후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그래도 2주 만에 왔다고 한국 음식이 그리울까 하는 마음에 아침부터 쉰김치에 돼지 목살을 넣고 얼큰하게 김치찌개를 끓이기 시작했다.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아, 안 돼! 먹을 것 가려야 해. 씻어서 준다고 하더라도 저 지방 있는 돼지 목살은 먹으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계란후라이. 기름이 뽁짝이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거실 가득 퍼졌다.
‘안 되는 거야!’
이어서 고등어를 굽는 냄새.
‘아, 안 되는 거야! 아니지, 등 푸른 생선에 들어있다는 DNA, 아니 DHA는 분명 두뇌 발달에 도움을 준다고 한 것 같은데. 동완 참치, 사줘 참치에 분명 그리 적혀 있었어. 고등어 살 정도는 괜찮겠지.’
나는 자기합리화를 한 후 다시 조은이의 방으로 가 식사를 하라며 깨웠다.
“안 돼, 해피야. 누나 10분만 더, 응?”
“왈! 왈왈!”
결국 조은이는 팅팅 부은 눈을 간신히 뜨고 어기적어기적 걸어 나왔다.
이번에 이사하면서 산 식탁은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그저 장식으로만 남았고, 빌라에서부터 쓰던 밥상이 거실에 펼쳐진 채 나물과 고등어구이, 계란후라이, 김치찌개가 푸짐하게 차려졌다.
“아침부터 뭐가 이리 많아, 할머니이!”
“미국에서 한국 음식 안 그리웠어?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어디서 딸기잼 유리병이라도 얻어다가 씻어서 김치라도 넣어 보낼 것을.”
“아냐, 미국에도 다 있어. 그리고 행사하고 끝나면 이동, 눈 뜨면 준비하고 또 행사, 계속 일정이 그런식으로 바쁘게 이어져서 한국 음식 그리워할 시간도 없었어. 와, 근데 누가 보면 나 1년 유학하고 온 줄 알겠다. 잘 먹겠습니다!”
노파와 조은이는 식사를 시작했다. 슬그머니 노파의 눈치를 보던 조은이가 나를 보며 윙크를 했다. 우리만의 신호! 나는 은근슬쩍 발소리를 죽여가며 조은이의 옆에 앉았다.
김치찌개 안의 목살을 꺼낸 조은이가 양념을 밥에 닦은 후 내게 들어 보였다.
‘참아야 한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깜짝 놀란 조은이는 이번엔 계란후라이를 뜯어 내게 들어 보였다.
– 휙휙!
“오잉?”
“뭐가 밥 먹다 말고 오잉이여?”
“아하하하, 아니야. 김치찌개 되게 맛있게 됐다. 완전 그리웠어.”
“그리여? 많이 먹어.”
그다음엔 대망의 고등어. 조은이가 가장 맛있는 부위를 DHA가 풍부한 껍질까지 크게 뜬 후 일일이 손으로 가시를 다 발라냈다. 그리곤 내 앞에 들어 보였다.
– 끄덕끄덕
신이 난 조은이가 아래로 내리려 하던 그때,
– 척!
노파가 조은이의 손을 딱! 잡았다.
“동작 그만. 반찬 빼돌리냐?”
“뭐야, 할머니!”
손을 잡힌 조은이가 벌벌 떨었다. 그런 조은이를 보는 노파의 눈이 살벌하게 빛났다.
“아까 돼지고기, 그다음엔 계란후라이, 그리고 지금은 고등어지? 이 할매 눈이 장님처럼 보이냐?”
“증거 있어?”
“증거? 증거 있지. 여기! 이 밥에 흥건하게 묻은 김치찌개 양념은 돼지고기이고, 젓가락으로 안 먹고 손으로 뜯어서 먹다가 번들거리는 이 기름은 계란후라이일 것이고. 지금 아래로 내리는 손엔 고등어가 들려있다, 이 말이여!”
“할머니, 시나리오 쓰지 마.”
“시나리오? 으허허허허! 지금 그 손에 고등어가 들려있다는 것에 괴밥 열 개를 건다. 니는 뭐를 걸래.”
“할머니,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돼?”
“개헌티 사람 먹는 것 주다 큰일 난다는 것 못 배웠냐?”
“할머니, 잠깐!”
“이리 내!”
그러나 나는 순간 재빨리 고등어를 물고 방으로 달아났다. 그것을 본 노파가 아귀의 눈으로 고함을 치며 달려왔다.
“저것이 또 조은이 침대 위에서 먹으려고! 고등어, 그 비린 것을!”
“으아아악, 해피야! 침대에서는 안 돼!”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조은이가 서둘러 날 뒤쫓아왔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침대 위로 뛰어 올라가려다 다시 방향을 바꿔 컴퓨터 책상 아래에서 게걸스럽게 잘 구워진 고등어자반을 씹어먹었다.
‘크으으으, 이 맛이지. 등 푸른 생선 DNA! 아니, DHA!’
이렇게 활달하게 움직이는 멋진 아침이라면, 치매도 그리 쉽게 오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아, 이게 우리의 일상이지.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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