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216
218. 조금씩의 변화들(1)
“이것도 치워주세유! 얼른.”
㈜왈랄푸드의 직원들이 한숨을 쉬며 케밥용 고기가 빙글빙글 돌아가던 유리통을 해체해 트럭에 실었다.
의외로 철거할 것은 거의 없었다. 이미 완벽하게 세팅된 매대나 안의 냉장고, 그 외 기타 물품들은 그대로 쓰기로 했다. 옆의 하칸이 자신의 매장에서 쓰기 위해 고깃덩어리와 토르티야, 그 외 소스 등을 챙겼다.
노파가 꽤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한 것임을 나도, 조은이도 잘 알았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마시던 도화선녀가 ‘알라신 떠나간다. 아이고, 이제 괴밥 못 먹는다 생각하니 또 마음이 서운하려 하네!’하고 한마디 했다가 노파의 손바닥에 등을 얻어맞고 멀찌감치 도망갔다.
워낙 영세한 업체였기에 이런 폐업이 익숙한 듯, 직원들은 본사에서 수거할 것들을 빠르게 수거했다.
“여기서 계속 쓰기로 하신 것들에 대해서는 보증금에서 제하고 드릴 거예요. 여기 요율표를 보세요.”
조은이가 노파를 대신해 꼼꼼하게 계약서에 붙었던 계약 기간 내 해지 시 위약금 부분과 시설 설비 등에 대한 금액단가표를 다시 확인했다.
“거의 환불되는 것이 없네요.”
“아무래도 그렇죠. 4개월 만에 문을 닫는데 우리도 속이 쓰리기는 매한가지죠. 그래도 이것으로 이제 설치된 것들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잘 관리하며 쓰시면 됩니다. 다만 떡볶이 장사를 하신다 했으니 별도로 가스 설비는 설치하셔야 할 거예요.”
“네. 그건 일단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주변의 상인들이 모여들어 혀를 차며 철거되는 케밥 시설을 쳐다보았다. 어깨가 축 늘어진 채 떠나는 트럭을 바라보는 노파의 옆으로 하칸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하루머니, 그래도 오래 해써! 나, 한 달 만에 망! 망! 망!하는 출 알아써!”
“시끄럽다. 네가 쓸 거나 어서 챙겨서 가. 훠이, 하칸이 간다~! 훠이~!”
하칸이 어깨를 으쓱하며 나중에 라면과 떡볶이를 먹으러 오겠다 한 뒤 떠나갔다.
“이제 저 흉물스러운 것도 떼어버려야지.”
빛바래고 찢어진 채 내 다리 사이에 우스꽝스러운 그림과 낙서가 있는 현수막도 조은이가 내려 돌돌 말았다.
이렇게 노파의 창업은 시즌 1이 끝나고 시즌 2로 돌입하고 있었다.
“할머니, 그러니까 일부러 가스를 둘 필요가 없어. 그거 설치비와 화구를 생각해도 공사비 만만치 않더라. 그리고 돈이 문제가 아니라 할머니가 조절하기가 까다로워.”
“이, 잉.”
조은이의 생각은 이러했다. 차라리 그렇게 대량으로 많이 팔 게 아니라면 전기 쿠커 큰 것을 두 개 놓고 하나는 일반 떡볶이, 하나는 매운 떡볶이로 구분 지어 놓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기름 솥도 필요 없어. 간단한 튀김은 대용량으로 팔거든? 매일 기름 채우고 기름 다 쓰면 퍼내고 솥 닦고, 그을음 생기면 보기에도 안 좋아. 에어프라이어를 사면 전자레인지처럼 돌리기만 하면 되니까 오징어 튀김이랑 김말이랑 못난이만 식자재마트에서 대용량으로 사면 돼. 세 개만 해.”
“잉, 그리여.”
“마찬가지로 순대도 기성품이니까 냉장고에 포장째 넣어놓고 하루 쓸 것만 빼서 전기밥솥 안에 넣어놔. 알았지? 어차피 초등학교 아이들은 간이나 내장 안 먹으니까 미리 말만 하면 될 거야.”
“잉, 그리여.”
“그리고 위생 진짜 철저해야 해. 그날 못 판 것은 떡볶이건 어묵이건 밥솥 안의 순대건 다 버려. 집에 가지고 오지 말고.”
노파가 아쉬워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노파가 고민하는 동안 자신도 고민하며 꽤 많은 준비를 한 조은이였다. 조은이의 생각을 통해 겨우 수십만 원 정도의 예산으로 전기만을 쓰는 작은 분식집 시설이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다가온 도화선녀가 그런 조은이의 모습을 보곤 감탄했다.
“이야, 완전히 조은이가 장군이네, 장군이야! 보살님, 진짜 엄청난 손녀를 뒀어! 어쩜 이렇게 딱 부러져?”
나 역시 황홀한 눈으로 조은이를 쳐다보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이렇게 나서서 멋지게 지시하고 또 직접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안조은 이사’다웠다. 이 작은 가게도 하나의 기업이라 치면,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가져야 할 색채, 팔아야 할 것들을 완벽하게 정하고 밀어붙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현수막이 도착했다. 지금의 ‘해피괴밥’이라는 끔찍한 간판 위에 덧씌울 것이었다.
[해피분식]크으으으, 이것이지. 이런 감성이 20년이 지나도 계속 초등학교 앞에서 살아남는, 가늘고 길게 가는 가게에 어울리는 이름인 것이다.
식자재마트에서 주문한 물품들은 오후께나 도착할 것이었다. 예전에 아주 짧게 첫 팬미팅을 분식집에서 해 봤던 것을 떠올리며, 조은이는 능숙하게 어묵을 구불구불 모양으로 접어서 꼬챙이에 끼웠다.
“왈! 왈왈!”
나는 신나게 꼬리를 흔들었다. 종종 이 앞을 지나가며 라면을 사 먹던 아이들이었다.
“어? 오늘은 라면 안 해요?”
“아냐, 해! 어서 들어와!”
휑한 매대를 쳐다보던 아이들이 쭈뼛쭈뼛하다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들에게 물을 내어준 조은이가 자연스레 그 앞에 마주 앉았다.
“이제 여기서 떡볶이랑 튀김이랑 순대도 팔 거야. 물론 어묵이랑 라면도 그대로 팔고.”
“어, 진짜요? 우와! 대박!”
“오늘은 준비하느라 바쁘고, 내일부터 할 거야. 되게 싸고 푸짐하게 팔 거다? 자주 올 거지?”
“네!”
웃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은 조은이가 아직 채워야 할 것이 가득한 가게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
2월. 상장과 동시에 스튜디오 꿀잼의 주식은 상한가를 기록했다. 시장의 기대를 모은 주식의 출발이야 대부분이 그런 셈이지만 돌려서 생각해보면 그만치나 많은 이들이 이 꿀잼 주식이 장기간 확실하게 우상향을 그릴 것이라는 걸 믿고 있다는 뜻이었다.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14억 5,781만 6,950원]상한가로 인해 빛태창 금액도 크게 올랐다.
“어디 보자, 다음 주에는 록돼에서 세 번째, 즉 마지막 광고 촬영이 있고 한국관광공사 미팅이 잡혀 있네? 그리고 화요일은 무조건 이사진 회의가 있고. 하아, 동영상 콘텐츠도 빨리 찍어야 하는데. 내일, 할머니 가게에서 일하는 걸 좀 찍어야겠다. 여태 잠깐씩 돕기만했는데 이번엔 꼭 찍어야지.”
“왈! 왈왈!”
나는 힘내라고 응원을 했다. 분명 조은이가 맡아서 하는 일들의 종류가 많아지고 무게가 무거워지고 있었다. 다음 주 스케줄을 확인하고 정리한 다음에는 자신에게 날아온 회사의 문서들을 열어 확인하고 의견을 달아 재전송하는 업무가 이어졌다.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들기는 조은이를 뒤로하고 나는 슬쩍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운동을 하기 위해 몸을 꼿꼿이 펴고 거실의 주변을 따라 돌기 시작했다.
“헥! 헥! 헥! 헥!”
금방 숨이 차올랐지만, 아직 한참은 더 돌아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돌고 난 후, 나는 천천히 자리에 멈춰 섰다.
왜인지, 어째서인지 이 거실이 무언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방금 왜 이렇게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지를 잊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어? 나 지금 뭐 하고 있었더라?’
당황해서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보고, 마침 방에서 나오던 조은이가 “해피야!” 하고 불렀다. 나는 얼른 뒤를 돌아 꼬리를 흔들며 조은이를 향해 뛰어가 안겼다.
“우리 해피 뭐 하고 있었어? 또 운동했어?”
“왈! 왈왈!”
‘아, 맞다. 난 운동하고 있었지! 치매 속도를 늦추기 위해.’
맞다, 그게 이유였다. 그런데 왜 방금까지 생각이 안 났던 것일까?
나는 고개를 갸웃하다 불길한 상상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
“가자, 우리 해피! 가서 떡볶이 팔자!”
“왈! 왈왈!”
아침을 먹은 후, 노파는 익숙하게 내 목에 줄을 채웠다. 맨발로 차가운 바닥을 딛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러웠지만 금방 또 익숙해졌다.
사실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자극이 뇌에도 큰 도움이 될 듯하다고 느꼈고 컴퓨터에서 본 예방법에도 외부의 다양한 자극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었기에 나는 이렇게 밖에 나갈 때마다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헤라 미용실 다음엔 월, 수, 금, 토에만 문 여는 한우 9,900원 정육점. 그리고 편의점 왔씨유 다음엔 간판 없는 보세 옷 가게. 그다음엔 화장품 가게 엘르…’
나는 늘 다니던 익숙한 길을 노파보다 앞서 걸으며 하나하나 간판들을 외웠다. 이따가 돌아오면서는 맞은편 간판을 외울 차례였다. 그것이 내가 내 스스로에게 내린 하나의 단기 과제였다.
이렇게 걷다 보면 상가들의 끝에서 모퉁이를 돈다. 그리고 수평 초등학교 쪽으로 걸어가게 된다.
상가의 마지막 가게, 온복 떡집을 지나 코너를 돌았을 때.
‘엥?’
나는 처음 보는 풍경에 놀랐다. 아니, 아주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몸이 기억하고 있는 듯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향했으나 막상 코너를 돌아서는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여기가 어디지? 이쪽이 맞나?’
멈춰선 채 멍하니 골목을 쳐다보는 날 보고 노파가 ‘잉? 해피 안 가고 뭐 하냐. 얼른 가자, 훠이!’하고 소리를 냈다. 그래도 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결국, 보다 못한 노파가 ‘벌써 다리가 아픈겨?’ 하고 날 안아들었다.
난 겁에 질려 노파의 품 안에서 눈을 뒤룩거리며 주변을 쳐다보았다. 무언가 익숙하면서도 한없이 낯선 느낌. 어디에선가 본 듯한 풍경인데 그것이 정확하게 내가 가야 할 길 안에 있는 풍경인지 확신할 수 없는 답답함.
잠시 노파의 품에 안겨 걷다 보니 조금씩 다시 풍경이 익숙해졌다. 완벽하게 내가 아는 길임을 확신한 나는 답답하다는 듯, 얼른 내려달라고 몸을 뒤틀었다.
“요 똥개가 또 이렇게 금방 내려달라 한다니까?”
나는 노파의 품에서 내려와 신나게 해피분식을 향해 뛰어갔다. 저기 보이는 해피분식이 오늘 내가 신나게 사람들을 향해 짖고 꼬리를 흔들며 일을 해야 할 장소이다!
노파가 날 내려놓고 개줄을 바깥 우수관에 묶었다. 노파가 열쇠로 문을 따는 동안 나는 가만히 앉아 길가를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다.
분명 점점 악화되고 있는 듯했다. ‘검은 그것’이 나타나서 내게 치매 증상이 있다고 가르쳐 준 것이 분명 작년의 크리스마스 행사 기간, 미국에 있을 때였다. 그리고 거의 두어 달이 지난 지금.
‘분명 운동을 하고 열심히 두뇌 자극을 하는데, 왜 이러지?’
물론 몸에 나쁜 것은 최대한 먹지 않기도 했었다.
‘조, 조금 더 노력해야겠다. 이대로는 안 돼!’
문이 열리고 안의 전기 히터가 켜졌다. 어제 닦아놓은 쿠커에 적정량의 물을 담아 뭉근하게 끓이던 노파가 다른 물로 떡을 씻고 불리기 시작했다. 온수가 나오지 않아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이었지만 노파에겐 일할 수 있음에, 자신의 사업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한 일이었다.
“인자 어묵탕 국물 좀 끓이자.”
어묵용 국물 통에도 물을 붓고 냉장고에서 무와 파, 멸치 등을 꺼내 넣은 노파는 떡볶이용 쿠커의 물이 끓기 시작하자 시판용 떡볶이 소스를 붓고 주걱으로 곱게 개었다.
나는 멍하니 서서 노파의 그런 모습들을 눈에 새기고자 노력했다. 어쩌면 언젠가는 이런 모습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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