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217
219. 조금씩의 변화들(2)
예전에 첫 번째 록돼 섬광 광고를 위해 왔었던 스튜디오.
오늘은 마지막 광고 촬영 날이었다. 특별히 이번 광고는 조은이도 함께 찍는 것이라 메이크업 팀 등 더 많은 인원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일단, 여기에서 조은 님이 의자에 앉아 ‘덥다. 너무 덥지, 해피야?’ 하고 손으로 부채 부치듯 얼굴을 부치면 됩니다. 너무 대사 그대로 안 외워도 되니 자연스럽게! 그럼 다음 콘티는 해피가 고개를 끄덕이며 ‘멍’하고 대답하는 것이고요.”
“왈!”
“아, ‘멍’ 말고 ‘왈’이네요. 여하간 그다음엔 해피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해피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그때, 멀리서 선글라스와 밀짚모자를 쓴 해피가 여름 느낌 풀풀 풍기면서 아이스크림을 물고 옵니다.”
“아아, 그런 컨셉이군요!”
“그리고 마지막! 물론 이건 성우 멘트로 나갈 것입니다만 ‘올여름 더위는 해피바가 잡는다! 아왈왈왈왈! 스페셜 에디션으로 울퉁불퉁 초코해피바도 있어요!’ 하고 끝나는 것이죠.”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울퉁불퉁 초코해피바는 또 언제 생긴 것인지.
조감독의 설명에 따라 조은이는 날 안고 몇 번씩 자신이 할 대사를 따라 읊어보았다. 나는 그 아래에 놓인, 그림으로 그려진 콘티를 열심히 봤다.
‘안 돼. 이 정도로 간단한 촬영에서 몸과 정신이 안 좋아진 티를 내면 안 돼! 할 수 있다, 계별욱! 할 수 있다, 안해피!’
뭐, 실제로 내가 해야 할 것은 조은이의 말에 ‘왈!’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과 분장을 마치고 아이스크림을 물고 뛰어오는 것, 마지막에 조은이의 품 안에서 ‘아왈왈왈왈!’을 하는 것이니 그다지 외울 것도 없었다.
“안조은 님, 메이크업이랑 환복하실게요!”
조은이가 ‘금방 갔다 올게!’ 하며 내 콧잔등에 입을 맞춘 후 직원이 가리킨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조금은 두려운 마음을 느꼈다. 적어도 앞으로 1년, 정말로 최소한 1년은 건강하게 버텨야 했다. 그래야 이번에 찍는 광고도, 그 외에 초코똥이나 사료 등 수많은 제품들에도 최소한의 도리를 하는 셈이었다.
물론 계약서상에 분명히 적혀있는 ‘천재지변 및 대처나 예상이 불가능한 사유’란 문구는 분명히 이런 사태에 대한 조은이와 나의 법적 책임을 최소화해 줄 것이었다. 그래도 도의상 나를 믿고, 내 캐릭터를 믿고 이렇게 큰 투자를 한 이들에게 최소 1년은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게 해 줘야 했다.
‘정신 차리자, 계별욱! 지금 컨디션 괜찮잖아? 충분하잖아? 그때 길을 깜빡한 것과 이런 암기력은 별개의 문제라고!’
나는 최선을 다해 정신을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해피야!”
뒤에 들려온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와! 와왈!”
이 동장군이 마지막 기승을 부리는 날씨 속에서 밀짚모자와 나시 티, 짧은 치마를 입은 조은이가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누나, 예뻐?”
“왈! 왈왈!”
나는 정말 예쁘다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이렇게나 여름여름하게 입다니! 평생 저런 차림은 본 적이 없는데!
“으아아아, 그런데 엄청 춥네.”
조은이의 말에 스태프 한 명이 얼른 전기난로를 끌고 와 조은이 옆에 두었다. 블루 스크린이 걸리고 몇 가지 소품들이 놓이는 가운데 드디어 무대 세팅이 끝났다.
“먼저 간단히 리허설이요!”
콘티를 보며 조은이는 가벼이 움직였고 나도 조은이가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척하며 고개를 갸웃하고 바깥으로 뛰어가는 등 내게 주어진 연기를 그대로 소화했다. 안이 솜으로 채워진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물고 오는 것까지 완벽하게 소화한 우리는 ‘바로 촬영을 시작해도 좋겠다’라는 말에 바로 다시 자리를 잡았다.
“자아, 가볍게 갑시다! 여러 번 다시 반복 촬영할 테니까요. 레디, 고!”
감독의 촬영 시작 소리에 조은이는 날 옆에 두고 더운 듯 연신 부채질을 해댔다.
“아아, 정말 덥다. 해피야, 해피는 안 더워?”
“컷! 좋아요! 똑같은 부분 다시 한 번이요! 레디, 고!”
“아아, 정말 덥다. 그렇지? 그런데 해피는 안 더워?”
조은이는 같은 촬영도 조금씩 대사를 자연스레 바꾸어가며 촬영에 임했다. 메인 카메라의 뷰파인더에 눈을 가져다 댄 감독이 자연스럽게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보냈다.
“자아, 다음엔 해피가 왜 그러냐는 듯, 무슨 일 있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는 장면입니다. 조은 님이 해피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면 잘 따라 한다고 했으니 그렇게 가 볼게요!”
카메라가 내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것이 느껴졌다.
“해피야. 누나 봐! 요렇게, 갸우뚱~♥”
나는 그것에 맞춰 고개를 왼쪽으로, 다음엔 오른쪽으로 갸우뚱하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오!’라는 표정을 지었다.
“오오, 완전 좋습니다. 자아, 그다음엔 갑자기 사라진 해피를 찾는 씬!”
조은이가 두리번거리는 부분의 촬영이 끝난 후, 나는 조은이에게 안겨 안으로 들어갔다.
“자아, 이제 시원해 보이는 이 옷 입고, 선글라스 끼고. 뒤에 고무줄 있으니까. 그리고 작은 밀짚모자.”
조은이가 고무줄이 달린 선글라스를 끼운 후 밀짚모자를 씌웠다. 그러나 고정하는 부분이 없어 자꾸 조금만 움직여도 흘러내렸다.
“어, 이거 자꾸 흘러내리는데, 어떡하죠?”
바깥을 보며 도움을 요청하는 조은이의 말을 들은 스태프 한 명이 재빨리 안으로 들어왔다.
“아, 이거는 안에 보면 털에 끼워서 고정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이걸 이렇게 벌린 다음에, 마침 해피 털이 충분하니까 이쪽으로 집게 집듯이 끼우면…”
“크르르르, 아왈왈왈왈! 왈왈왈왈! 왈왈!”
나는 내 머리에 닿은 손가락에 이유 모를 공포를 느끼곤 미친 듯이 짖으며 스태프의 손가락을 물었다.
“꺄아아아악!”
“어머! 해피야, 해피야!”
스태프의 비명과 조은이의 외침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내가 한 ‘입질’에 스스로 놀라 얼음처럼 얼어붙었다.
몇몇 스태프가 뛰어와 분장실을 열어보곤 손가락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스태프의 울음소리에 놀라 ‘구급함! 구급함!’하고 외쳤다.
“이, 일단 병원부터요. 혹시 모르니까, 네?”
조은이가 구급함을 열어 소독약과 지혈제를 뿌렸다. 상처 부위를 붕대로 감싼 스태프가 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다른 직원이 급히 준비한 차량에 탑승했다. 동료가 어깨를 감싼 가운데 차량은 스튜디오를 떠났다.
모두가 사라지는 차량을 걱정스러운 듯 쳐다본 후 약속이나 한 듯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겁먹은 나보다 더 겁먹은 조은이가 스태프들을 향해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해피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았나 봐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봐요. 이따가 저도 병실에 들러 사과드리고 치료비도 책임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끼이이잉…”
한참 무언가를 생각하던 감독은 ‘1시간 동안 잠시 휴식합니다.’하고 외친 후 몇몇 스태프들과 무언가 논의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갔다.
“해피야, 너 갑자기 왜 그래. 평생 안 하던 짓이었잖아.”
조은이가 덜덜 떨며 날 쓰다듬었다. 혼내는 말투가 아니었다. 이 상황에 놀라고 매우 당황한 모습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사람에게 입질을 했다.
물론 나를 해하려 했었던 도살장의 사람들이나 대놓고 적의를 드러낸 이들에겐 난 아낌없이 이빨을 드러내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었다. 귀생이에게도 그랬고, 예전 조은이가 첫 팬 미팅을 열었던 분식집에서 주인할머니의 돈 가방을 훔쳐 갔던 날치기에게도 그랬었다.
하지만 인간인 동시에 개의 감각을 가지고 있는 나는 내게 다가오는 손짓에서 묻어나는 감정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설령 어느 정도의 분노에 맞닿아 있더라도, 그것이 ‘살기’가 아닌 이상 먼저 피하면 피했지 맞서서 이빨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아까 내게 밀짚모자를 씌우던 손길.
거기엔 호의 외에 다른 감정은 없었다. 이곳의 모두가 날 좋아했고 내게 배려를 해주었다. 아까의 손길도 애견모자를 씌울 줄 모르는 조은이의 부탁으로 안으로 들어와 도우려던 것이었다.
– 낯선 이에게 평소보다 훨씬 더 강한 적의를 드러내며 증세가 심해지면 반려인에게도 극도의 경계심을 표출하기도 한다.
‘아, 미치겠네. 안 되는데. 또 튀어나왔네.’
나는 미친 듯이 나를 책망하고 또 책망했다.
사람들 사이를 벗어난 조은이는 무대 뒤에 쪼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날 쓰다듬었다.
“많이 스트레스받아서 그랬어? 갑자기 머리를 만져서 놀랐어? 평상시엔 누나 품에 있으면 누가 쓰다듬거나 만져도 늘 가만히 있었잖아. 우리 해피는 겁도 많지만, 그 이상으로 순둥이니까.”
“끼이이잉…”
뭐라 더 할 말이 없었다. 정말로 지금의 나는 완벽하게 내 스스로 제어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이렇게 돌발 상황이 가끔씩 튀어나오는 것에 대해서 미리 준비하거나 할 새가 없다는 것이었다.
“해피야, 촬영팀 분들에게 사과하고 오늘은 이만 돌아갈까? 나중에 일정 다시 잡더라도, 오늘은 해피 컨디션이 촬영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거 같지?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진다고 할 테니까.”
“왈! 왈!”
나는 그것은 아니라고 고개를 힘껏 내저었다. 그리곤 괜찮다는 표시로 헥헥대고 웃으며 조은이의 팔을 정성스레 핥았다. 미친 듯이 흔드는 내 염색된 꼬리를 쳐다보던 조은이가 ‘그럼, 다시 할 수 있겠어?’하고 물었다.
해야 한다. 여기서 다시 잘해야 ‘잠깐의 스트레스로 인한 돌발 해프닝’ 정도로 수습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이따가 병원에 들르건, 치료를 받은 스태프가 이 자리에 다시 오건 간에 조은이는 진실되게 사과를 하고 치료비를 배상할 것이었다. 그런 조은이의 행동에 힘을 더해주려면, 오늘의 촬영은 더 이상의 돌발 상황 없이 끝나야 했다.
내 의지를 읽은 조은이가 조심스레 감독에게 다가가 촬영 재개의 의지를 드러냈다. 감독과 스태프들이 날 쳐다봤고, 나는 최대한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그래요, 그럼 일단 다시 가 봅시다. 중요한 부분은 거의 다 찍었고 남은 것은 딱 두 씬, 해피가 아이스크림을 물고 꼬리를 흔들며 뛰어오는 컷과 조은 씨가 해피를 안고 웃으며 이쪽을 쳐다보는 컷입니다. 밀짚모자는 빼도록 할게요. 그럼 가 볼까요?”
이윽고 다시 카메라가 세팅되고 전부 내 쪽을 향해 촬영을 시작했다. 카메라 뒤에 선 조은이가 ‘해피야, 이리 와!’하고 손을 흔들었다.
나는 파란색 셔츠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채 입에는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물고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뛰어갔다. 내 동선을 따라 여러 개의 카메라가 동시에 움직였다.
“오케이, 컷! 그리고 한 번만 더 찍어봅시다.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조금만 더 해 볼게요.”
모두가 더 신중히 날 배려하고 있었다. 나는 조은이의 신호에 따라 다시 신나게 뛰었다.
마지막 촬영까지 단번에 마친 우리는 감독 앞에 섰다. 조은이의 사죄 의사와 치료비 배상에 대한 말에 감독은 ‘전체 촬영에 대해 보험이 들어있으니 괜찮다, 내가 조은 씨의 사과를 충분히 그 스태프에게 전달하겠다’라며 염려 말라는 듯 어깨를 두들겼다.
그렇게 모든 촬영 일정이 끝난 후, 다시 옷을 갈아입은 조은이는 내가 들어간 가방을 들고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조은이는 말이 없었다. 나 역시 복잡한 마음으로 침묵을 지킨 채 얌전히 엎드려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유독 길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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